윤리적 소비 - 세상을 바꾸는 착한 거래
박지희. 김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합리적 소비'가 아닌 '착한 소비'

 

  경제학의 오래된 논리 '합리적 소비'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잘 사는 방향으로서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합리적 경제인의 행동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은 합리성이 높아질수록 맹목적이고 방향없는 빈부의 격차와 비정한 물질논리 그리고 끔찍한 미래에 대한 예고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나온 것이 '착한 소비'이다. 의식있는 소비야말로 세상의 정의에 대한 우리들의 투표행위이며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힘이자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이 그 생산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없다면 사멸하게 되어 있는 구조야말로 평등한 세상의 구조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데올로기에 속아 우리들은 기업이 휘두르는 거짓 신념에 속아 살아왔다. 이제 우리들의 정의로운 지갑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환경도 살리고 인간성도 살리는 윤리적 소비

 

  의식있는 우리들의 윤리적 소비는 지구의 환경을 개선한다. 보다 먼 곳에서 온 식품일수록 탄소배출량을 더욱 많게 하고 그것은 지구생태계를 파괴한다. 지역에 기반한 안전한 먹거리만이 탄소배출량을 줄여서 지구생태계를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 나아가 인간이 서로 신뢰하며 살 수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게 하며 우리 사는 지구의 환경을 더욱 쾌적하게 하고 인간의 성숙한 의식의 기반 위에 인간정신의 성숙을 이룰 수 있게 한다. 그 모든 출발점은 의식있는 윤리적 소비로부터 출발한다. 식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비생명적이고 반윤리적 기업 행태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윤리적 소비는 윤리적 생산과 윤리적 기업을 만들어 낸다.

 

윤리적 소비의 사례

 

  나이키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유명잡지 [라이프]에 실린 1996년 파키스탄의 열 두 살 난 소년 타리크가 나이키 공을 꿰매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미국 소비자들의 의식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타리크가 하루종일 나이키 공을 꿰매고 받는 품삯은 60센트였다. '어린이에 의해 만들어진 어린이를 위한 신발' 나이키는 소비자들의 뭇매 속에 매출액의 감소를 겪어야만 했다. 제 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피를 비롯한 플랜테이션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아이들의 임금 또한 살인적이다. 이에 착안해서 '공정무역'이라는 윤리적 소비운동이 생겨나고 그것은 점점 세상을 인간의 얼굴을 한 생산-소비활동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착한 돈

 

  1930년대 독일의 바이에른의 슈봐넨키르헨은 페광도시로 몰락할 운명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을을 살린 것은 '착한 돈'운동이었다. 탄광의 소유주 헤벡커는 '베라'라는 통화를 만들어 언제든지 석탄과 바꿀수 있게 함으로써 지역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지역경제는 되살아나고 사람들은 폐광촌에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캐나다의 코목스벨리도 제2차 오일쇼크로 침체된 경제 속에서 쇠퇴해가는 마을이었다. 화폐의 근본인 물물교환의 매개로 돌아감으로써 '레츠'는 지역을 살리는 의식적 지역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이 잘 하는 일로서 타인을 도와주고 또 물건을 구입하고 하는 순환과정을 통해 이 도시는 경제적 활기를 잃지 않았다. 자본으로서의 화폐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살리는 의식적 화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슬로라이프와 슬로시티

 

  결국 의식있는 윤리적 소비는 세상의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에너지와 좋은 점을 제공하지 못하면 안된다. 그런 면에서 슬로라이프와 이 공동체의 삶의 공간인 슬로시티는 윤리적 소비가 가져오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 우리가 윤리적 소비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기업

 

  그러나 이 모든 윤리적 소비의 귀결점은 윤리적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생산과 소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고 윤리적 기업이 탄생하지 않으면 대기업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 부분적으로 또는 수단으로서만 '윤리적 소비'나 '공정무역'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농 농산물'도 보라 대기업에서 더욱 이 이미지를 광고하고 만들어내고 상품판매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가? 그래서 결국 인간의 의식적인 윤리적 소비는 '윤리적 기업'을 만들어내고 그 윤리적 기업이 세상의 주류로 만들어낼 때에라야 비로소 그 귀결점에 이른다. 그 출발점이 바로 윤리적 소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짜처럼 생각하라 - 상식에만 머무는 세상을 바꾸는 천재 경제학자의 사고 혁명
스티븐 레빗 & 스티븐 더브너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경제학의 천재 스티븐 레빗의 저서다. 국내에는 세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글쓰기의 대가 스티븐 더브너와 함께 편찬한 이 책에서 그들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편견을 깨는 새로운 방법의 사고하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축구 페널티 킥에서 가장 안전하고 확률이 높은 차기의 방식은 골키퍼가 서 있는 한 가운데를 차는 것이다. 87%의 경우 킥커가 공을 차는 순간 골키퍼는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몸을 날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대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공은 전체의 17%에 불과한데 그 이유는 키커가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골대의 구석을 차서 실패하더라도 그리 큰 비난을 받지 않지만 가운데로 차서 골을 성공시키지 못할 경우 많은 비난과 야유를 감수해야 하고 스스로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상식은 때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자신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일들에 때로는 동전던지기와 같은 우연의 요소에 맡겨보는 것이 때로는 더 합리적인 판단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즉 세상 사람들 모두는 스스로의 편견으로 인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래서 우선 자신의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는 것으로 경제학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그 의견에 대해 겸손하고 반대의 가능성을 사려깊게 고민하고 많이 열어 둔다. 그런데 외부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에는 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에 보다 기회비용이 많이 들게 되므로 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요구할 때에는 책임자는 사라지고 그 피해만 고스란히 사회에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걷어들이는 인센티브의 제공방식에서도 이 책은 기존의 사고를 뒤집는다. 단 한번만 기부하게 하고 다시는 기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이는 사회적 기부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해서 역이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실제 기부받을 때에는 또 다시 세 가지의 문항으로 질문을 한다. 영영 이 단체의 기부와 관련된 팜플릿을 받지 않겠다. 연간 한 두번의 팜플릿을 받아보겠다. 팜플릿이 만들어질 때마다 받아보겠다. 고 이중적인 물음을 던짐으로써 첫 기부자의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아이디어는 우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 어떤 것을 파악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어쩌면 대기업 광고는 인간의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한 후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영역에 정통한 경제학자들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변에 소변을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호소하거나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보다 파리 한 마리를 변기 속에 그려넣음으로써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방법은 사람들의 상황이나 맥락에 대한 닻내림효과를 실현함으로써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이러한 의도가 좋지 못한 것일 때 우리는 그 의도를 벗어나 자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드리운 편견을 걷어내고 깨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 비로소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런 깨인 마음이 없더라도 경제학의 몇 가지 기법들로도 인생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고는 언제나 신선하고 새롭다. 그의 저서를 다시 사람들이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BI 행동의 심리학 -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몸의 단서
조 내버로 & 마빈 칼린스 지음, 박정길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미연방수사국에서 25년간 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한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와 지능범죄자를 수사하여 진심을 꿰뚫는 수사관으로 명성을 날린 조 내버로의 관찰의 기록이다. 거짓말탐지기라고 불리우는 그는 인간의 의사표시는 말보다는 표정, 제스처, 몸동작, 얼굴, 그리고 마음의 비언어적 표시가 70%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어릴 적 타국에서 살아온 그는 본능적으로 언어를 습득하기 전 사람들이 표현하는 몸의 동작을 통해 그의 의사표시를 알아내야만 했고 이는 후에 미연방수사국의 수사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그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 의도,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뇌는 '지휘통제센터'로서 인간의 모든 행동을 통제한다. 단순히 머리를 긁는 것으로부터 복잡한 논리적 사고를 거치는 것에까지 뇌의 통제나 명령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미국의 뇌 선구학자인 매클린은 인간의 뇌는 '파충류 뇌', '포유류 뇌', 그리고 '인간의 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포유류 뇌'라고 부를 변연계가 우리들의 비언어적 행동을 이해하는 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생각하고 느끼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언어는 변연계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변연계란 뇌의 특정부위가 아닌 뇌의 가운데를 연결하는 여러 부위를 일컫는다. 변연계는 환경에 대해 생각없이 반사적이고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따라서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대한 진정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변연계는 '정직한 뇌'이다.

 

  변연계는 자연계의 한 종으로서 인류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정지, 도망, 투쟁의 세 가지 반응으로 구성된다. 위험을 느끼는 정지하고 멈춰서 해결되지 않으면 도망하고 도망할 데가 없으면 투쟁한다. 얼굴이든 손이든 다리든 제스처이든 그를 통해 비언어적 지시가 의미하는 바를 공부하고 오랫동안 관찰하다보면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읽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그 어떤 비언어적 태도에 관한 이 책의 방향도 어떤 사람에게 짧은 시간 동안 바로 적용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다리를 거두어들인다고 해서 마음이 수축되는 것도 아닐 수 있으며 팔짱을 낀다고 해서 위협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명확한 의식적 뇌로서 사람들을 기만하려는 행동들은 파악할 수가 있다는 점은 기억하면 좋을 듯하다.

 

  동공의 확대와 축소는 순간적인 파악을 통해 그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어 주고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말에 다리는 정직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그것이 뇌의 사고인지 변연계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나온 행동인지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하게 패턴화된 행동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그것을 통각하는 인지, 메타인지가 아닐까? 

 

  그보다는 마음이 깨어 그 사람에 대한 전적인 행동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비언어적 행동이 차지하는 많은 의사소통방식 역시 마음이 만들어내는 장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의도와 감정으로 생겨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변연계를 통해 전달되는 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마음상태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으로 우선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관찰하는 자의 마음상태가 어지러운데 어떻게 관찰이라는 것이 일어나겠는가? 중림적인 태도란 자신의 마음이 비워져서 상대방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에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실수없는 진정한 상대방의 감정과 의도 그리고 생각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 사랑하지만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사랑은 변함없는 동서고금의 주제다. 그러나 과연 그 누가 상처없는 완전한 사랑을 할까? 사랑은 생물학적인 시작을 출발점으로 해서 심리적인 갈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결국은 정리되는 과정을 밟는다. 때에 따라서 한 생을 관통하는 운명적 사랑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사랑의 스토리를 각자는 쓰게 될런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은 사막에서 물을 찾듯 그렇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그 '사랑'으로부터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

 

  자아존중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 원인이 어떠하건 간에 그들이 안정적인 정서감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관계면이나 조직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며 특히 사랑의 짝을 찾고 사랑하는 데서도 그런 문제점이 지속된다. 자존감의 문제는 허세적으로 자아도취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상대방에 무조건 맞추어주려고 하면서 자아도취를 얻으려고 하는 데서 나타난다. 주로 전자는 남자에게서 후자는 여자에게서 자주 나타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자아라고 하는 마음 속의 집착이 불러낸 현상의 여러가지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런 나르시시즘을 가진 남자나 여자가 누군가와 만날 때는 그 관계가 지속될수록 갈등이 생기고 문제를 유발하게 된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공감하고 교류하기보다는 자신만을 들여다보고 자기중심적인 자아에만 촛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허세적 나르시시즘의 여자와 열등감 나르시시즘의 여자가 만날 때는 불꽃이 튀는데 이는 주로 상대방의 억압적 기제가 잘 짝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서로를 파탄으로 몰아가게 되므로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업장대로의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그 인연이 선연이면 좋은 쪽으로 변화시켜가겠지만 악연이 되면 서로의 업장을 부풀려 더욱 악연으로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이런 자아에 대한 집착에 빠진 자가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를 스스로 고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두 사람 모두가 부정적 업장으로 만나 함께 관계를 지속해나갈 때 생긴 갈등은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두 사람 모두의 관계개선의 의지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아도취감에 빠져 있고 그것이 인생의 훈습으로 고착화된 사람에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가 쉽지 않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이나 비난 또는 자신에게 하는 말들이 단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로 각색되어 보이고 그것이 자신의 자존감을 침해하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만들어 마음 속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패를 치게 되면 관계는 어떤 식의 개선도 어려워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뀐다고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 된다.

 

  따라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9가지 법칙을 저자가 대안으로 내놓는 것도 이것을 관계의 법칙처럼 받아들여 무조건 행동화시킬 때에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니면 마음을 닦아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고 투명하게 업장을 비워내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관계의 '공진화'를 추구하라. 공진화란 함께 생활하는 연인이 서로 개인적 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커플의 담합이라 부르는 이는 두 사람의 애정과 파트너쉽을 높이는 관계맺기라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심리전문가가 절대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허세적 자기도취자를 남편으로 둔 보완적 자기도취자의 경우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관계개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파트너를 동참한 심리코칭이 전제되어야만 건강한 관계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유의할 것이다.

 

  솔직한 대화를 시도하라.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감정의 침해를 받았는지를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감정상태가 어떤지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또는 말을 솔직히 듣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개선이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당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 말하고 당신의 욕구를 표현하라. 당신이 상대방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혹은 그러기를 원치 않는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라. 상대방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할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라.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을 머릿속으로 맘대로 해석하지 말고 직접 물어봐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발전시켜라. 조작, 복수, 시기를 피하라."

 

  둘만의 '마법의 주문'을 만들어라. 행동을 중단해서 파괴적인 행동을 피하는 절대의 말을 약속하라.

 

  평가가 아닌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라.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을 그려라.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

 

  내면의 생명력을 발견하라.

 

  질문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접점을 찾아라.

 

 

  다음의 아홉가지 저자의 9가지 법칙을 행동습관화하면 관계가 최악을 갈등으로 치닫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더욱 파트너쉽이 공감과 이해 속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없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림없이, 이 모든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강요의 부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체험이 없다면 어찌 스스로 마음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포커스는 "내면의 생명력을 발견하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버드 중국사 청 - 중국 최후의 제국 하버드 중국사
윌리엄 T. 로 지음, 기세찬 옮김 / 너머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까지의 동양사는 주로 서양인들의 시각에 의한 것이었고 아시아사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아시아사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은 아시아가 서양과는 다른 발전경로를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서양처럼 오랜 민주주의와 산업발달, 그리고 전근대성의 혁명적 방법에 의한 혁파 및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 등과 같은 일반적인 방법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저개발성 및 낙후성은 서구와 같은 단계를 밟기에는 부족한 정치체제였으며 경제적 기반 조성 또한 없었다고 보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로는 아시아의 근대 역시 서구와 같은 방식의 흐름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생적인 발전 속에서의 시장의 형성과 자본의 맹아인 화폐의 발달, 상공업의 발달과 중세도시의 발달이 있었고 봉건제를 혁파하기 위한 노력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서구적 관점에서 중국을 들여다본, 청이라는 시대의 중요성은 중국의 근대 사회로의 이행의 단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청나라는 중국의 현재의 모습을 형성시킨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청나라에 와서 중국은 명나라 때의 영토의 두 배에 이르는 넓이를 확보했다. 청나라는 그 외 많은 봉건적 잔재와 불충분한 근대화로 인한 치욕스런 사건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중국 역사에서 그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에 와서 중국의 인구는 1억명에서 4억 5천만에서 5억 정도까지 증가를 했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청은 자산으로 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생산력의 증가이다. 농토의 증가와 노동력의 증가 그리고 새로운 농토의 개간, 새로운 영농법과 강력한 통치체제의 확립은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족이 통치하였을 때에는 한족의 지배에 대항한 주변민족들의 필연적 분리주의를 가져오게 했던 반면 만주족에 의한 새로운 통치는 중국사회가 다문화사회와 다문화정책으로 가는 중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이다. 지역을 다스리는 방법에서도 청은 한족과 만주족 또는 다른 민족들의 공동통치를 기본으로 하였다. 이 청제국을 자산으로 현재 중국은 50여개의 소수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통치방식의 세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구 13억 중국의 잠재력이 현대에 와서 꿈틀거리고 있다. 경제는 이미 미국 다음으로 2위가 되었고 또 미래의 어느 멀지않은 시기에 패권을 쥐게 될 것으로 세상은 내다보고 있다. 다음으로 그 국격에 걸맞는 군사력의 확장과 아시아에서의 패권 확대를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일본의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하였고 미국의 아시아 진출 정책을 가져오게 하였지만 그만큼 중국의 세계에서의 중요성이 그리고 그 위협이 커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런 중국의 근대화가 서양 열강들의 이해관계와 견제 속에 놓여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거대한 용의 움틀임은 더욱 시대적으로 빨리 세상을 끌여들였을런지도 모른다.

 

  서양처럼 확실하고 배경을 갖춘 봉건적 잔재의 청산도 아니었고 '중체서용' 식이 아닌 철저한 근대화도 아니었던 중국의 근대화를 대체로 실패한 것이라보 보는데 주저함이 없다. 청일전쟁에서의 패배의 충격과 그 뒤 이어지는 사회주의화 역시 중국의 현대화를 늦추었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중국에 서구문물의 전파와 그로 인한 중국의 내재적 발전을 지켜봤더라면 결과는 사뭇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 중국의 힘이 두려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국의 탐욕에 의해 중국을 큰 식단으로 여겼기 때문인지 그 원인을 무어라 단정하기 어렵다.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 그토록 집요하게 팔지 않았더라면..... 중국의 내부적 개혁에 대한 서구의 방해공작이 없었더라면.....중국에서의 자본의 형성이 어찌 어려웠겠는가? 중국에서의 봉건적 잔재의 청산이 어찌 불가능한 것이었다고만 말할 것인가?

 

  청 말기의 신사층의 형성과 그들에 의한 자생적인 반봉건제의 청산과 근대화의 움직임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처럼 반외세에 대한 감정으로 인해 의화단 사건과 같은 복고주의가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태평천국운동, 변법자강운동 등 신사층에 의해 주도된 지방분권주의와 근대화의 움직임 또한 외세의 개입없이 자생적으로 두었더라면 상업의 발달과 자본의 형성에 의해 낡은 봉건적 잔재의 일소까지 가면서 새로운 정치체제를 창출하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중국 역사 최후의 제국이었던 청의 몰락은 새로운 중국사회를 예견한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열강들에 의해 찢기고 유린당한 깊고 오랜 상처 위로 오랫동안 움츠렸던 중국이 이제야 비로소 많은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중국에 의해 다시 쓰여질 세계사의 시대가 오면(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청 제국에 대한 중국 스스로의 평가는 다시 내려지게 될 것이다. 또한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 역시 그에 맞추어 변화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