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 홍기대 조선백자와 80년
홍기대 지음, 한국미술정보개발원 기획 / 컬처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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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장남으로서 가족을 건사해야 했던 우당 선생님의 골동이야기이다. 그는 특히 조선백자에 몰입하면서 백자의 색과 형태 그리고 그림에 매료되어 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인생을 통해 인연으로 만난 조선 백자의 사연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일본인이 만든 일제시대 '구하산방'에서 일을 하면서 조선도자기에 눈을 뜨고 어깨너머로 배운 백자에 대한 안목이 자신의 삶과 경험과 공부를 거쳐서 더욱 성숙해지게 된다. 이로서 그는 도자기와 함께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도자기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국보가 된 백자철화포도문 항아리에 얽힌 이야기들과 18세기 백자 청화죽문 각병 등 많은 국보와 보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물건에는 그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소전 손재형 선생님의 백자 청화철채난초청랑자문병과 관련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지금은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 병은 백자 병에 희귀한 잠자리가 그려져있는 통형병이다. 청자 철채퇴화문 나한좌상도 깨어진 네 부분을 수리하여 깜쪽같이 원형그대로 수리하여 이후 국보 제 173호가 되었다. 때로는 기물과 관련한 업장에 끌려 형사에 여러 번 쫒겨다니기도 했으나 조선백자와의 삶 그 자체가 그에겐 인생이었고 의미였다.

 

  조선 백자를 취급하면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순택 님과의 도자기 공부 및 만남은 기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자기를 만날 때 마다 그 제작기법 및 연대를 추정해가며 공부해나가는 과정이었고 마에다와 아사카와 형제, 그레고리 헨더슨 및 간송 선생님, 최순우 선생님, 이 병철 삼성회장 등  많은 만남을 통해 조선 백자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는 재미있다. 조선 도자기를 사랑한 컬렉터들이야말로 그의 인생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도자기에 대한 그만의 공부방법도 도움이 된다. 많이 보고 경험하고 그리고 공부하고 그 사료적 가치와 시대적 가치까지 챙겨야 비로소 귀한 기물을 만날 수 있다. 눈이 없으면 귀한 기물이어도 알지 못하고 보내게 된다. 그 80년 내공의 안목으로 그가 만난 조선의 도자기들에 대한 설명은 재미있다. 우리가 도자사나 책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기물도 이 책에서 처음보는 기물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롭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자기를 보는 안목이 문제다. 어떤 기물이든지간에 그 안목으로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기물도 새롭게 볼 수 있는 것이 되고 또 전혀 새로운 것도 그 안목으로 선별해서 수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별 청화안료와 조형 그리고 화법의 특징들과 굽의 상태와 유약의 성질 등을 알아볼 수 있어야 어느 정도 도자기를 선별해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초보이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백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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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의 사람
에미야 다카유키 지음, 박종균 옮김 / 부코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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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한 한국 도자기와 민예품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데에는 아사카와 형제의 인연이 절대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동생인 아사카와 타쿠미의 도자기 감상자로서의 역할이 지대했다. 조선의 임업관리자로 한국생활을 시작한 그는 조선의 산천을 사랑했고 조선인을 사랑했고 조선의 예술품 그 중에서도 다양한 흰 색이 뿜어내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끄는 백자를 사랑했다.

 

  조선인의 옷차림을 하고 조선말을 사용하고 조선사람들과 아무런 꺼리낌없이 밥을 먹고 사귀고 도우며 사랑하고 살았던 일본인. 어쩌면 그 정신까지 더욱 깊은 조선인으로 살아갔던 일본인. 조선의 황폐한 산림을 무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을 이루어냈던 일본인. 조선 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을 통해 조선인에게는 조선민족의 자부심을 갖게 하고 일본인 위정자에게는 조선을 침략하고 억압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리려 했던 사람.

 

  그의 역사적 자취를 쫓아서 써 내려간 소설이 이것이다. 비록 소설이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아사카와 다쿠미의 전기를 읽는 듯 했다. 기본적인 서사의 구조인 다쿠미의 생애와 조선에서의 삶의 시작과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아내의 죽음과 다쿠미의 일의 진행과 그의 직업과 또 조선미술관 건립을 둘러싼 소설 속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은 다쿠미의 삶 속의 내면을 소설적 구성을 따라 추적해본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는 조선인으로 여러 번의 생을 살다간 한국애에 많은 삶을 바쳤던 우리들의 조상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조선의 생활용품과 미술품 그리고 백자에 얽힌 깊은 미감을 끌어낼 수 있었고 또 우선 그렇게 마음이 젖어서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었을까?  처음 본 순간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영혼의 인연이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잠재되어 있던 만남의 순간을 준비했기 때문은 아닐까?

 

  아베와 알본 정치인의 역사 왜곡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대하는 태도나 한 나라 국민이 다른 국적의 사람을 만나 사귀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의 성숙함을 우리는 다쿠미로부터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점점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의 세계에 우리가 배워야 할 정신이 다쿠미의 그것 아닐까?  우리의 먼 미래가, 하지만 밝은 미래가 다쿠미의 삶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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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출토 도자기 바로 보기 중원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 1
강경숙.김세진 지음 / 진인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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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토 도자기를 기술하는 방법에 대해 한 연구자가 논문형식으로 책을 썼다. 기술하는 것은 도자기의 제조 가마나 불의 온도, 태도와 수비과정을 거쳐 물레질을 통해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과정과 그 사이에 문양과 무늬를 새겨 미감을 표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즉 출토 유물에 대해 기술하는 방법이란 출토 유물에 대한 공예사적이고 그에 대한 수요자의 시대적 반영과 그 미감을 포함해서 한 시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전에 본 도자책과 비교해서 이 책이 가진 장점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우리나라 도자기 발전의 개략적인 시대적 구분과 그 의미와 특징이 간략히 정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자기 기술에 따른 도자기의 유형 분류와 발, 완, 접시 등 기형에 따라 사례를 사진으로 정리하여 시대별 같은 유형과 유약색과 조형을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내겐 시원한 점이었다. 물론 사례로 든 유물의 수와 종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조형과 문양과 유약색을 바로 옆에 놓고 비교해볼 수 있는 구조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시대별, 가마별, 도자기 종류별 다양한 태토와 유약을 비교해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굽부분의 모래받침, 태토빚음받침, 규석받침 등의 모양과 형태에 대해서도 비교해볼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도자기 편을 태토와 유약이 구분되게 그리고 태토의 수비에 따른 청자색과 백자색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좋았다. 사실 도자기편이 시대별 가마별로 조사가 되어 있었다면 한국의 도자사가 훨씬 더 분명하고 체계적인 연구상태에 놓여 졌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제 시대에 도굴품을 빼돌리기 위한 측량과 무분별한 도굴행위의 의도를 가진 가마터조사가 자행되지 않았더라면 도자편의 태토와 청자색, 유약, 백자색 등 보다 많은 정보와 기물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책이 나오기 위한 계단이 되어주는 이같은 책이 있기에 또 그 다음의 연구는 좀 더 진보된 연구를 만날 수 있겠다. 다만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기물의 확장이 없어서 늘 발표된 자료로만 접근하려 한다면 한계를 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민간이 소장한 보다 폭넓은 기물조사와 정확한 연구와 근거에 의한 기물의 인정과 수용이 한국도자사의 구멍난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진정 보는 안목이 있다면 기물이 많은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편견과 폐쇄성 속에 갇혀 있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기물은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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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 다산·추사·초의가 빚은 아름다운 차의 시대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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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선생님이 오랜 시간과 공력을 들여 차문화를 정리했다. 조선 후기 다산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의 차애호문화를 중심으로 조선후기의 차문화는 번성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초의스님의 차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다. 물론 다산과 추사가 있었기에 초의스님의 차문화는 더욱 발전을 거듭했고 경화세족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래서 내가 연이어 읽고 있는 다완의 시리즈를 이쯤에서 접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 한 권으로...

 

  신라 흥덕왕 때 중국에서 차 씨앗이 들어와 국토에 뿌려졌지만 그것을 가꾸고 차로 만들줄 몰라서 오랜 세월을 기다려 조선후기의 차를 통한 만남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책은 차 문화와 관련한 고문을 일일이 찾아서 해석하고 검증해가며 차와 관련한 글귀를 뽑아서 정리했다. 그래서인지 개인문집에 실린 글이 많았고 또 걸차의 편지글 형식이 매우 많았다. 차를 통한 교우에 서로 상찬하는 글을 통해서 차문화에 대해 알려준다.

 

  차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봄에 올라오는 풀은 새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성을 가지고 있는 데 이 차잎 또한 곡우 전후로 흐린 날을 골라 채취하는 방법부터 덖는 방법, 그리고 구증구포의 반복적 덖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이 알려진다. 체증을 내리고 학질을 치료하고 감기를 치료하는 약성으로 인해 다산선생님은 차를 마셨다. 이 차가 기호품으로 되기까지는 독성제거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예술품이 그러하듯 생산자 뿐만 아니라 그 수요자의 기호가 예술품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한다. 다산 선생님과 그 제자들, 그 아들 정학연 정학유 등이 차를 애호하고 즐기지 않았다면 초의스님의 차는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또한 추사의 까다로움과 그 우정을 나누었던 벗들이 없었던들 차문화는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리라.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자하의 남차시병서 그리고 홍현주의 요청에 의해 동다송이 씌여지는 과정에서 그들은 차를 매개로 인생을 나누었고 삶의 깨달음을 나누었고 시정을 나누었고 무엇보다도 차의 그윽한 맛을 나누었다.

 

  다산 선생님이나 추사 선생님의 걸명시 또한 때로는 구걸하고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거칠고 험하게 차를 보내달라고 하는 편지글은 웃음을 선사한다. 조선 후기의 어느 시절로 돌아가 차에 미친 차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차를 둘러싼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나는 이 봄이 올 때까지 차를 달여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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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최준식 지음 / 효형출판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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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패배감에 젖어 있다. 자신의 것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수많은 외침과 내부갈등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바램으로 바램이 열망으로 바뀌어서 한국인의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던지고 서양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국 근대화의 시계가 빨라질수록 한국 정체성의 파괴는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누군가를 모방한다는 것은 자신이기를 버리는 행위였다. 그러한 결과 한국인은 자신 고유의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좀 더 근사해보이는 외국문화를 추구하기 시작했지만 늘 모방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많은 노력과 공에 비해 그 결과는 최고가 아닌 늘 2류에 머물러야 했다.

 

  한국학자 최준식 님은 이러한 한국문화의 열등감과 패배감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말한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 나아갈수록 우리 고유의 것이 받는 엄청난 찬사 속에 우리는 우리의 것이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세계화된 한국음식문화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음악, 전통 춤, 전통 회화, 전통 공예 등 무수하게 많은 잃어버린 한국의 전통은 새시대에 극복되어지길 바라며 세계로 도약할 씨앗을 감춰두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한국은 자신을 버리고 타자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그 중요한 씨앗을 대부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서양바라기의 세월 속에 잃어버린 자신의 본래모습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런지도 모른다.

 

  한국 음악에 드러난 즉흥성은 공예에서는 무기교, 자연미, 비균형성으로 이는 다시 음악의 엇박자, 시나위로 돌고 돌아 그 자유분방함의 미가 온 땅에 스며든 시절을 떠올린다. 중국화의 정형에서 벗어난 조선 독자적인 회화가 정선에게서, 단원에게서, 혜원에게서 나타났고 중국도자기에서 비롯되었으나 한국만의 고유한 청자를 비롯하여 자유분방함과 무기교의 공예, 분청사기와 정호다완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그 고유성과 창작성의 미를 꾸준히 이어왔다. 수십 수백가지의 색깔의 층차를 가지는 흰색의 예술, 백자는 또 유교적 검소함과 여백의 미를 얼마나 살려내었던가?

  특히 조선 후기에 와서 신분질서가 흐트러지고 상하간의 신분이동이 많아지면서 자유로운 의식과 정신세계는 조선 후기의 독창적인 예술의 창조를 가져왔다. 시나위와 산조, 판소리와 살풀이춤과 승무, 창작과 자유의 탈춤, 민화, 장승 등의 조선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문화가 쏟아져나오는 시기, 문화예술의 빅뱅이 바로 이 때 이루어졌다고 저자는 본다. 실제로 민화를 보다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적인 그림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조각보를 보다가 추상미술의 원조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생활 속의 파격과 창조에 의한 일상생활의 재미, 그것이 우리 전통의 예술세계였고 정신세계였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우리가 독창적인 우리의 문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버린 전통과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전통과의 만남 속에 발효되고 소화되는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새로운 그 무엇이 창조될 수 있다고 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런 면에서 만나야 하고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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