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 유족이 최시원에게







나는 최시원이나 문제의 그 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했다시피 유족이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은 없다고 했을 때, 이상하지도 않았고  “소송으로 회복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이라는 말에 공감했기 때문에 단지 그것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또 자기 관심사들이 각자 있겠지. 말하고 싶으면 자기 서재에서 그것을 말하면 될 것이다. 곰발님의 먼댓글을 보았는데 끄덕끄덕, 그분은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자기 생각이고), 어쨌든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얘기인 것 같고.


그래서 그분 결론은 이건데 :


[그렇다면 이번 사고는 일반적 과실치사가 아니라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된다고 볼 수도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단순한 과실치사보다 형량이 무겁다. 한일관 유족이 최시원 가족에게 보상을 요구해야 되는 이유이다.]


업무상 과실치사는 단순한 과실치사보다 형량이 무겁다. ㅡ> 그래서 보상을 요구해야 된다? 


(응? 왜 그렇게 되지?)


(그래야 곰발님이 만족스러우니까? ) 


나는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가 있는 건가? 싶지만, 어쨌든 그런 주장도 곰발님의 자유라고 생각하고, 댓글을 봤다.


* 우선 누가 보면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이전에 곰발님에게 뭘 잘못한 적이 없다. 그분은 나한테 몇 번 실수를 했다. 


(어쨌든 나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 내 글 혹시 뭔가 잘못이 있는 건가?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0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업이 발생했을 때 노와 사는 태도가 다르다. 사측은 대부분 평화롭게, 대화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는 태도를 보인다. 트러블이 발생할 때마다 기득권은 항상 대화를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링크를 걸어둔 글의 논리가 병맛인 이유는 좆도 없는 놈이 기독권의 논리에 기승한다는 점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링크를 건 윗 글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마치 염치 없는 태도처럼 비하하는데 꽤나 웃기다. 
만약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없던 일로 하자며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 더 도덕적일까 ?




ㅡ>
즉,
1) 좆도 없는 놈이 기득권의 논리에 기승한다는 점이다.
2)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없던 일로 하자며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 더 도덕적일까 ?
이것은 좋은 질문이기 때문에 내 글과 관련해서 대답해 보겠다.
1)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전 이곳에서 줄곧 <편가르기, 정치적인 사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ㅡ> 밥그릇 싸움(기득권 쟁탈전)은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 나의 경우, 모순, 정당성, 타당성, 진위 여부, 사실이 글의 주된 목적이며 관심사다" (신지,150831)
2) 그러니까 도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관심사에요. 도덕에 독립적인 표준이 있을까요. 어느 경우에나 도덕적으로 옳은 일은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최선의 이유입니다. 단순히 혐오하고 적대하고 처벌하고 윽박질러서 선과 악을 확립하는 도덕원리에는 항상 의구심을 갖는 편입니다.
그런데요, 제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대가(보상)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 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건 법륜스님한테 배웠어요. "그러나 불교에서는 어떠한 전제나 목적을 두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자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하는 것입니다. 대가(보상)를 바라지 않고요.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않고요.
이상한가요? 저는 공감이 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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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힘 없고 가난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때 사람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남의 아기가 슬슬 물가로 걸어가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일관 대표 일은 그런 케이스도 아니어서, 왜 우리나라에선 사과를 받아주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해명까지 해야 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국적 사고방식에 경도되어 있는지ㅡ지금 자신이 미국, 백인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ㅡ 가끔 잊어버리는 듯 하다. 



[알려진 대로 미국은 소송 천국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2초마다 한 건의 소송이 있고, 전체 GDP의 2.2%가 소송비용에 쓰인다. 바지 한 벌 잃어버렸다고 65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재미 한인동포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억지로 꾸며낸 얘기가 아니다. 


미 기업들은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세탁기에 사람 넣지 마세요",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말리지 마세요"라는 괴상한 문구를 제품에 붙인다. 이 모든 유무형의 비용은 사회적 불신을 증대시키고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

이명박 정부는 '오륀지' 발음부터 모든 걸 미국식으로 따라가려 한다. 제발 새 정부가 바라는 미래 한국이 소송이 난무하고, 전문가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 위해 우르르 법원으로만 달려가는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ㅡ 소송천국 미국의 밥그릇싸움,오마이뉴스, 08.03.2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소송중독증의 부작용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뉴스위크는 지난 2003년말 특집호에서 "수 틀리면 누구에게나 소송하겠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소송' 신드롬은 미국이 않고 있는 큰 병이며 그러한 소송 만능주의로 인해 각종 사회기능이 마비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도주기간 중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 당한 성폭행 용의자가 "왜 빨리 체포하지 않았냐"며 경찰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상태까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2014.12.9)

http://blog.naver.com/jeanpk/220204592439

소송천국 미국- '네 탓이요'의 부작용]






#3.


앞에 인용한 유족의 해명 기사에, 댓글이다 :



[msal****

섣부른 용서는 제2제3의 피해를 낳는.가해자가 민사든 형사든 엄중한 대가를 치루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제도가 미흡한 사회에서 경각심을 갖게된다.섣부른 용서와 편의주의 발상이 사회 부조리를 개선할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또다른 부조리를 낳는다.보상 필요 없을 정도로 넉넉함은 어머니 유산 덕 아닌가?그 유산은 또한 우리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거둬들인 결실이다.단물만 취하고 사회 악을 바로 잡는 노력에는 무관심하다면 고인의 죽음을 의미없게 만드는 행위다.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한 고통들 덕에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옴.


공감6비공감0



pure****

좋은말씀이네요 정말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953803]



좋은 말씀이긴 하지만


[홍세화 : 한국의 교육은 남과 싸우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을 누르는데 목적이 있다. 경쟁에서 이지 못한 자들은 차별당하고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교육 철학의 근간은 프랑스 공교육과 같이 협동과 연대의 정신에 둬야 한다. 


ㅡ 노무현 "교육은 미국식보다 유럽식으로" 오마이뉴스 2002-09-08] 


그렇게 교육되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내가 남보다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 세태, 남을 밀치고 누르는 일들이, 싸우는 일상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게 정의고, <내가 바로 정의>라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중생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지옥과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육도 세계를 윤회한다고 여겼다.
옛날 사람과 달리 현대인들 중에 저 하늘 어딘가에 천국이, 저 땅속 깊숙한 곳에 지옥이, 따로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람마다 같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가령, 사랑 없이 분노로 사는 사람은, 자기가 사는 세상이 꼭 수라도로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니 몸은 어디에 있어도 그는 수라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탐욕을 버리지 못해서 매순간 아귀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런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천국에서 살듯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또 누구라도 한때 어리석어서 짐승처럼 굴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에게 보이는 세상이 각자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은, 그것은 남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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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최시원 가족 반려견이 한일관 대표를 물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을 때, 기사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유족의 그 마음에 십분 공감이 됐고,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김 씨 유족은 최 씨 가족에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가족은 같은 아파트에 10년 넘게 살며 알고 지낸 이웃이다. 유족 측은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소송으로 회복되는 문제가 아닌 만큼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며 “최 씨 가족이 김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해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밝혔다. 


맹견 아니라도 물리면 죽을수 있다, 동아일보 2017.10.23  http://news.donga.com/3/all/20171023/86898136/1 ]


다음날 오후쯤 한 식당의 TV (JTBC 시사프로그램이었다)에서 남자 앵커가(정확한 워딩은 기억할 수 없지만) 그 유족들도 약간 좀 이상하다는(골때린다는) 늬앙스로 패널로 나온 변호사와 ㅡ 왜 쉽게 용서하느냐,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지 않으냐, 왜 소송을 하지 않느냐 ㅡ며 한참 가십삼아 흥미 본위로 진행하는 것을 보았다.
(응? 저게 이상한 일이었어? )
각종 언론의 왜곡과 비난에 시달린 유족은 25일 결국 해명을 해야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가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소통도 없이 무분별한 기사들이 범람하고 있어 고통스럽다


“소송을 하면 애도가 아닌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적 대응을 포기했다”


“최씨와 싸우고 싶지 않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개인 간의 싸움으로 비추기보다 제도 마련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낳는 계기로 만들어주셨으면 한다"



`한일관` 대표 아들 “최시원 측 사과받은 건 母 위한 것” 이데일리, 2017.10.25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3953803]



1997년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는 <성과주의>가 도입되었다. "개인의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을 하는 것으로, 성장은 제자리 걸음이고 심지어 축소되던 그 시절, “회사 성과 향상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이라는 성과주의는 기업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711371&memberNo=1215962&vType=VERTICAL


ㅡ>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에든 꼭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상식인가? ㅡ> 헬조선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불만족, 자기 경멸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 시달린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불안감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불가침 영역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늘 마음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은 무슨 성과를 이루었는지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정신적으로 위축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경우에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언제나 부족하다는 위장된 허영심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은 속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ㅡ'완벽의 배신'에서 (라파엘 M. 보넬리,와이즈베리)]


어떻게든 보상을 받아야 한다 ㅡ> 끝까지 싸워야 한다 ㅡ>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가 당연한 상식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헬조선을 만드는 상식> 아닌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나는 유족의 태도가 성숙한 모습으로 여겨졌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됐다.
소송의 천국인 미국이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상하거나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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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일관 유족이 최시원에게
    from 새빨간 활 2017-11-01 16:15 
    한일관 유족이 최시원에게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 이유 시민이 낸 후원금 12억 가운데 이영학 딸 수술비로 사용한 금액은 700만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머지는 엉뚱한 곳에 사용했다(고). 후원금 유용 목록을 살펴보면 몸값이 상당히 비싼 혈통의 개를 분양받았다는 대목(분양받은 개가 새끼를 낳아 비싼 가격에 그 새끼-들을 분양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저잣거리 입말로 표현하자면 개장사를 한 것이다. 과시욕이 남다른 그에게 비싼 혈통의 개 또한 명품 브







**님 <새벽부터 악플 ㅋ>글에서 말한 댓글




#1.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않고 (그 책을 어떤 이유에서 비판하는지 자신의 의견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나는 위 댓글보다는 글쓴이의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처럼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되는 이유는 누구 때문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닐 것이다. 각자에게는 이곳이 무언가 유익함이있기 때문 아닐까. 그게 좋든 싫든 타인의 글과 행동에는 언제나 배울 것이 있다.  

 

#2. 

한편으로는 의아한 점도 있다. 

그 댓글이 과연 악플인가 싶기는 하다.


그동안 알라딘에서 여러번 이런 댓글을 악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마다 알라디너들과 나는 (악플에 대한) 감각이 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초면에 반말하고 너라고 하는데 좋을 사람은 없다. 기분 나쁜 것이 당연하고, 말하는 데 있어서 예의가 중요하며 가능하면 선플을 주고받고 싶고, 악플을 싫어하는 것에는 나도 다름이 없다. 


한편 그저 네이버 등 온라인에서 늘 보는 익명 댓글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악플이 흔하기 때문에 그것이 괜찮은 것이냐,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각종 논란이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때는, 그렇다면 그때는 왜 괜찮았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SNS에 글을 올린 연예인에게, 또는 책을 읽고 나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자유나 권리가 있다면, 

그렇다면 알라디너들도 자신의 글에 대해서 그것을 감수해야 마땅한 게 아닐까.


나는 불쾌한 댓글보다는, <악의적인 댓글>을 악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누군가를 모함하거나 위협하거나 폭력적이고 거짓을 말하는 댓글은ㅡ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대방을 해치는 댓글이기 때문에 나는 그쪽을 악플이라고 보는 것이다.


저 댓글의 경우(단지 불쾌한 댓글의 경우)에는 딱히 글쓴 사람에게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해명하고 아니면 반박하거나 또는 그저 무시해 버려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예의 없는 댓글이긴 하지만, 저 댓글에는 말하는 이유나 그 사람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을 단 사람이 혹시 잘 아는 사람이거나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정(기분)이 또 다르겠지만,
아마도 지나가는 이, 그저 익명의 댓글에 대해서,
그 말의 이유나 내용이 중요하지
욕이나 말투 같은 것에 일일이 상처받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3.

나는 적대나 혐오에 대해서 항상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고 온라인에서 말하려면 반드시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나는 적대나 혐오가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적대나 혐오가 때로는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전보다 지금은 오히려 나는 그게 ㅡ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게 아니라ㅡ 전적으로 나쁜 결과(영향)를 가져오게 된다고 더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온라인에서는 내가 남에게 무엇을 하도록, 안 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요지다. 민주주의를 잃어버리면 더 큰 손해니까.



#4.

말할 수 있는 자유가 기반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이곳에서 여러번 말했던 것이고, 똑같은 말을 또 하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러나 내 생각이 전과 약간 달라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그 일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런 말을 할 때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러니 내가 어떤 피해를 본 사실과, 불쾌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실이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상처를 받은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든> 실제로는 이랬다저랬다한 사실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 자체 외에는 나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는 항상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가령, 과거에 나는 행복할 때도 있었고 종종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언제나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사실은 내 협소한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점점 더 믿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안부, 사적인 '댓글'은 당분간 알라딘에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잠시 댓글 창을 막아놓습니다만, 

지적이나 비판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의견 있으시면 <먼댓글>로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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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나 이런 사람이야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괜찮아 나니까


손발 다 써도 안되면 

깨물어버리는 나니까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연봉이 내 명함이고

차가 내 존함이고

집이 내 성함이고


괜찮아 나니까


ㅡ 나 이런 사람이야,  DJ  DOC]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특히 이 부분을 힘주어 신나게 부르는 것을 보면, 그때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실제로는 어떤가, 저런 사람 만나면 다들 싫어하지 않나?


(그런데 왜 저렇게 다들 신난 거지?) 



[폭력을 연구하는 미국 심리학자 제임스 길리건이 살인죄로 수감 중인 재소자들을 심층 인터뷰 했는데,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그놈이 나를 깔보았다"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한다. (...) 


한 재소자는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만큼 자신이 존중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41)


ㅡ 강준만, 개천에서 용나면 안 된다]


저 노래가 DJ  DOC의 대표곡일 정도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지금의 어떤 세태를 그만큼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들의 욕망, 사람들의 본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도 싶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보고 있으면, 겉으로는 다들 정의나 약자에 대한 배려를 얘기한다. 따라서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공정한 사람이구나,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로는 남에게만 공정하라고들 난리지, 우리들은 자신이 관련된 문제에는 다들 하나도 공정하지가 않지 않나? 


그러니 자꾸 묻는 것이다. 요즘은 모든게 다 (자기가 아니라) 사회탓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고. 요즘의 자기과시(나 이런 사람이야~)한없는 자기긍정 (괜찮아 나니까~) 세태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헬조선이라면서, 남에게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공정한 사회를 바란다면서, 

(만약 그런 것을 주장한다면) 왜 자신이 공정한 시민이 되지 않는 거지? 하는 의문.

공정은 자신과 남에게 잣대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평등주의가 강한 사회라지만, 평등주의는 위를 향해서만 발휘될 뿐이다. 밑을 향해선 차별주의를 외치는 이중적 평등주의는 우리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148) 


ㅡ 강준만, 개천에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하는 좋은 말, 좋은 구호, 좋은 의견 표명을 대체로 잘 믿지 않는 편에 속한다.


그것은 마치 우산장수와 짚신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내 가게에서 하는 행동과 남의 가게에 가서 하는 행동이 전혀 다르고, 


자신의 입장이 갑이냐 을이냐, 내가 사장이냐 종업원이냐, 우리편이냐 적이냐에 따라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하는 '말'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나 많, 았기 때문이다.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성찰의 필요성을 "왜 적을 이롭게 하느냐?"는 항변으로 대체하는 멘탈리티다. 


즉, 전쟁 같은 삶의 자세에 어울리게 정치를 전시 상황으로 보면서 무조건 적을 때리는 게 옳으며 자기비판은 적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281)


ㅡ 강준만, 개천에서]



실제로는 "정치를 전시 상황으로 보면서 무조건 적을 때리는 게 옳으며 자기비판은 적을 이롭게 할 뿐"인데, 


대체 왜 굳이 골치 아프게 자꾸 옳고 그름을 내세워서 말하는지.


그게 정말 이상하기 때문에 홍상수는 계속 그런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제가 보는 남자들과 홍상수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자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 우리 모습(누구든 예외없이)을 누군가 만약 바깥에서 보고 있다면 딱 저렇게 보일 것이다- 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성인 남자들은 늘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듯 보이는데, 관객의 시점으로 보면 실은 다들 말과 몸이 따로 놀고 있달까^^;; 


ㅡ 신지(2012,3,3)]


그 사람이 계속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자기를 먼저 성찰하지 않는 한, 남만 쳐다보고 있으면 사실은 자신도 갑이 돼서 한번 으스대고 싶었던 건지, 정말로 정의를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하는 말은 대개 ( 남들 앞에서 실제 속마음은 억압되고, 그것은 흔히)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겉으로 정의나 도덕으로 포장되어 발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남들에게 의식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또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진보 역시 "내가 누군지 알아?"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한 수단으로 진보를 외치는 건 아닐까? (...)"운동권 선배들은 기껏해야 나보다 한두 살 많은데, 행동하는 것은 자기가 왕이에요.(...)" 

정상근은 상명하복의 문화, 토론 없는 일방주의, 파시스트적 성격 등 진보의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조직문화'를 고발하면서 "지금의 진보운동에서 권위적인 분위기는 아주 일반적이다"고 말한다. (85) 

ㅡ 강준만, 개천에서 ]


그러니 이런 식이 된다. 우리 빼곤 죄다 나쁜놈, 왜냐면 나는 약자지만, 너는 강자잖니. 

그러니까,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그런데, 괜찮아,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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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7-08-12 11:01   좋아요 0 | URL
지금 끝까지 들어봤는데, 되게 재밌는 노래네요? 춤추고 싶게 하는 노래입니다. 춤을 못 춰서 참았지.ㅎㅎ

그건 그렇고,
미구에 글 하나 올려 주세연!


신지 2017-08-14 00:40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번에는 좀 꾸준히 하려고 했었는데, 또 무기력증이;;

예전엔 자꾸 말을 하고 싶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순 인정투쟁이었나 봅니다. 지금은 뭔가 다른 목적이나 의미를 찾아야지 싶은데,
(늘 즉흥적으로 말을 하고나서 후회하고 그랬는데, 자꾸 그러느니 자연스럽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만 말하자-)
요런 생각으로 게으르게;;
고맙습니다 ㅠㅠ

한수철 2017-08-14 12:09   좋아요 1 | URL
제가 본의 아니게, 실은 라이트한 기분으로 댓글을 단 건데, 얼마간 부담을 드린 것 같네요.-.-;


괘념하지 마시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시길요.^^

모쪼록 점심 맛있게 드시고요~

신지 2017-08-14 14:52   좋아요 1 | URL
아니, 저도 ‘라이트한 기분의 댓글‘로 생각했어요. ^^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그렇게 대댓글을 했어야 했는데 싶네요;;)
그런데 제가 원래 말하는 방식이 그렇잖아요 (표현을 하기보다, 설명하는 식으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드디어 말할 기회가 왔다는 듯이 -_- 대댓글 하는 버릇을 빨리 고쳐야 되겠;;

부담을 느꼈던 것이 아니라,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한수철님이 나한텐 유독 참 잘해 준다? 뭔가 편애 같고 우정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었었습니다



한수철 2017-08-14 22:30   좋아요 0 | URL
혹시 한국영화 ‘넘버 3‘를 보셨나요?

그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한석규 식으로 말하자면

신지 님은 암, 제가 51프로 정도 믿는 사람입니다.ㅎㅎ

어,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신지 님은 일당백 논쟁가가 몸에 맞는 듯요.

....왜 안 하시죠?

신지 2017-08-16 04:12   좋아요 1 | URL
그러면 한수철 님은 왜 안 하십니깟? ^^ㅋ
사실 한수철 님 보면서 항상,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가령, 어떻게 저렇게 설명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블로그를 할 수 있지? 같은) 그런 생각 많이 했었는데요,
저는 어쩐지 그런 거, 조금 닮고 싶고 그랬음.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려고 하는 것은 똥덩어리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 가지고 백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그러니 세상일을 잘 하려고 하지 마라.˝

이건 근대 한국불교를 개창하신 경허스님의 말씀인데요, 왠지 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 말씀에 공감이 되더군요.
.
.
.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죽 생각해왔던 저의 관심사들(은 좀 비판적인 것인데 비해서), 그리고 나중에서야 가지게 된 가치관(은 방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알라딘에 들어올 때마다 그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 고민이 될 때가 많아요. 아직도요 ㅠ

한수철 2017-08-15 10:27   좋아요 1 | URL
넵, 그런 고민이 신지 님의 원활한 서재 활동을 방해하는 동인動因일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어요.

반면 저는 좋게 여겨지고, 호감이 가면, 그래야만 적극적으로 행동해요. (예외가 있는데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는 적극적으로 행동을 못해요.ㅎ 상대가 내게 호감이 있다는 걸 확신해야 비로소 움직이죠. -.- )

알라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는 서재만 가요. 가서, 도대체 왜 글 안 올리냐는 댓글을 쓰죠.^^

...음, 일전에 한번 말한 기억이 나는데 저는
신지 님이 알라딘계의 ‘미디어오늘‘ 같은 역할을 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상 알라디너에게 먼저 양해와 허락을 구하고 시작하는 방식이 어떨까 싶은데요....

아니면, 불가 관련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리뷰를 심층적으로 쓰시든지요.ㅎㅎ^^

아무려나 비가 추적추적한 광복절 아침입니다. 평온한 시간 보내십시오!


신지 2017-08-17 09:22   좋아요 1 | URL
요 며칠 한수철 님 서재에도 못 가볼 정도로 실은 좀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어요. 바빠서가 아니고, 극저질 체력이어서 뭔가 신경 쓰이는 일만 있으면 생각이 온통 그쪽으로 가기 때문에 금방 피곤해지고 인터넷이나 글자를 잘 못 보는 편이거든요. 그랬는데
근데 댓글이 너무 웃겼;;;;;(죄송) ˝알라딘계의 ‘미디어오늘‘ 같은 역할˝

여보세욧! ^^
정말로 알라딘에 그런 게 필요하다면, 한수철 님도 같이 하시라구욧! ^^
그런데 한수철 님이 가는 서재에만 가는 방식은 특이하군요, 아닌가, 다들 그러나? 저는 주로 ‘화제의 서재글‘ 페이지를 통해서 알라딘을 보는 편이거든요.
넵, 한수철 님도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

한수철 2017-08-18 10:42   좋아요 1 | URL
저기요 신지 님, 처음 댓글은 ˝ㅋㅋㅋㅋㅋ˝이 굉장히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수정을 하셨구먼요?^^

그땐 순간- 내 댓글이 괜히 잠시 창피하게 여겨졌어요. 즉, 잘 수정하셨어요. ㅎㅎ

....아, 저는 노트북에 즐겨찾기를 해 두었습니다. 말하자면,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방식인데, 효과적이에요. 왜냐하면, 즐겨찾기한 대부분의 서재에 글이 안 올라오고 있으니까요.ㅎㅎ

신지 2017-08-18 12:38   좋아요 1 | URL
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ㅠㅠ
그게 ㅡ댓글 미숙이 ㅡ 바로 제가 알라딘을 하면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ㅠ 댓글 쓸 때 그런 의도가 아닌데도, 막상 쓴 것을 보면 상대방이 보기에는 오해할 수밖에 없는. 그런 바보 같은 댓글을 쓸 때가 많아서 저 스스로도 그 경망스러움에 혀를 찰 때가 많다는 ㅠ
(그게 제가 댓글을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아무튼, 앞으로는 좀더 성숙한 댓글러로 거듭 나겠;; (불끈)

한수철 2017-08-18 13:17   좋아요 0 | URL
허허, 의도(농담)가 잘 전달되지 않았네요. 이번엔 전적으로, 제 탓입니다.TT

항상 정제된 댓글을 쓰(려고 애쓰)는 분께서, 이번엔 다소 생경하고, 적나라하게 댓글을 쓰셨길래

물론 ‘순간‘적으로는 그 웃음소리에 공연히 화들짝 놀라 뭔지 모를 창피함을 느낀 건 사실이나, 실은 되레 유쾌했거든요. 근데 제가 댓글을 잘 수정했다고 씀으로써, 애초의 의도를 스스로 중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네요. -.-;

그나저나 저는 왜 이렇게 댓글을 많이 남기는 걸까요?ㅎㅎㅎ


음, 이제 저는 해야 할 일들을 해결하러 가겠습니다.^^

총총......

신지 2017-08-21 14:52   좋아요 1 | URL

이번엔 다소 생경하고, 적나라하게 댓글을 쓰셨길래, 물론 ‘순간‘적으로는 그 웃음소리에
ㅡ> 말씀이 우스웠던 게 아니고, 댓글 보았을 때 마음이 전해져서 고마웠더랬습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도, 그러겠다, 안 그러겠다고도, 말할 수 없을 때 ....그렇게 순간 미친사람처럼 될 때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