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가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그의 말이 다 잘못됐거나 그를 비판했던 사람들 말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서민 교수가 얼마전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통보한 애인을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말해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모친이 사다달라고 한 칼을 시장에서 샀는데 애인을 만나서 말도 꺼내보기 전에 품안에 잘 넣어놓은 칼이 그녀 앞에 툭 떨어져버린 것이다. 즉각 신고 됐고, 바로 그는 끌려갔다.


기회에 여기저기서 충고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말하자면 나는 그들이 지금 도무지 바른 말(용감한 발언)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지난 21일 손혜원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서민 교수와 '문빠'들에게 조언을 보낸다며 글을 남겼다.


손 의원은 서민 교수에게 "'문빠'들의 자정능력, 균형감, 무시하시면 안됩니다"라며 ""문빠'들은 일반 국민의 표준 지성, 표준 감성 위에 분별력 있는 애국심과 용기만 좀 더한 사람들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기생충과 인간은 다릅니다" 서민 교수에 역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79&aid=0003047990&sid1=001]


ㅡ>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극에서 보는 <간신들>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왕(王)은 ㅡ> 대중(소비자,네티즌,국민)이다.


즉, 실은 우리가 말할 때 눈치보게 되는 것은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잘 보이려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언제나 '타인들'이다.


[고독한 군중을 쓴 데이비드 리스먼은 이미 오래전에 현대 대중사회의 사회적 성격을 '타인지향형' 인간이라고 명명한바 있다.  타인지향적 사회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저하된 고령화 사회로서 사람들은 타인의 취미나 언동에 민감해져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구시대의 '구속력'은 점차 완화되어 가고, 이런 상황에서는 '또래집단'이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외부세계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은 점점 더 강력한 매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타인지향형 인간은 정치적 의견에 흥미를 보이며, 정치적 사건을 심벌을 통해 경험한다. 

타인지향형 인간의 공통점은 개인 지향성의 근원이 <동시대 타인들>이라는 점이다.  타인들이 퍼뜨리는 신호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인다.  남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시대는 지금까지 없었다. 이상이 데이비드 리스먼의 설명이다.

타인지향형 인간은(=현대인들은) 무엇보다 무리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 '지식인'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 어떻든, 누구나 <말은 진보처럼> 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주로 ㅡ 뒤늦게 '정치'에 흥미를 가지면서,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쉽게 남탓을 하고, 옳고 그름을 말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연예인 팬클럽처럼 '확신'하며 ㅡ 모든 문제를 진영논리로 판단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확실히 옳다고 굳게 믿고 있는 모습이 좀 재미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대중이다. 누구나 국민이고 시민이고 시청자고 소비자고 네티즌이다. 그런데 오르테가이가세트의 정의에 따르면 대중이란 '자신이 타인과 똑같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신분이나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  

그가 보기에는 "자질을 요구하고 있고 또 그것을 전제로 하는 지적인 생활에서조차, 자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질을 평가할 수도 없고, 정신구조상 부적격인 가짜 지식인들이 점차 승리를 거두고 있다."  

"정치인들은 모두 엘리트이면서도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에게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에 경도되는 경향이 있다." (강준만, 강남좌파)

그렇다면 <정치적인> 지식인이 어째서 그렇지 않겠는가. 

미국의 강단 좌파인 크리스토퍼 래쉬는 스스로 강단 좌파의 폐쇄성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열성분자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의문에 빠뜨릴 수 있는 주장과 사건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한 채 반대자들과의 토론을 한사코 회피한다. 그들이 읽는 문건들은 대부분 자신들과 동일한 견해에서 쓰인 것들 뿐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알라딘의 리뷰나 페이퍼들을 볼 때마다, 실제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다. 

ㅡ2011.9.4. 신지]



만약 "자신들과 동일한 견해에서 쓰인 것들"만 보고 있다면 당연히 자기 생각만 옳은 것 같을 수밖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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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통령의 방중 논란이라든지, 그동안에 서민 교수가 어떤 발언들을 했는지, 서민 교수가 어떤 성향이고 어떤 행동들을 한 사람인지> 나는 정말 그런 사정은 잘 모른다. 


나는 (서민 교수가 아니라)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과 인간은 다릅니다" 서민 교수에 역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79&aid=0003047990&sid1=001






제발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고들 말하는데


그것은 유불리에 따라서 ㅡ> 판단하는 <마음>이다.


사실 그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로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선의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좀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에게 (그런 행동은 나쁘다고) 억압하고 강제하기보다는, 가능하면 하고 싶은 말은 뭐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말이어도, 미리 판단하지 않고ㅡ> 일단은 충분히 말하게 하고 ㅡ> 듣는 것이다 ㅡ> 화내거나 혼내거나 지시하기보다 ㅡ> 잘 설명하고 (잘 들어야 잘 설명할 수 있다) ㅡ>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억압하고 아이를 체벌하는 방식이 확실히 쉽고 편하면서도 효과가 더 좋은듯 보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폭력적인 방식으로 부모와 다투게 된다. 매사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 아이가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는 또다시 폭력적인 사람이 된다. 왜 그럴까. 타인이 보기에는 폭력적이지만, 그 사람 자신은 자신의 그런 성향이<지극히 정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전체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고민한다. 그것이 자기성찰(내부비판)이다. 

그런 생각의 차이들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민주적이지 않으면서, 말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ㅡ>

실제로는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니편 내편이 겉으로 보기에는 뭔가 크게 차이가 있는듯 보여도, 실제로는 (욕망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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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4일 지인들을 만났을 때 서민 교수 얘기가 화제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가 방송에 나오거나 경향에서 글을 쓴다는 소리는 알라딘에서 예전부터 들었지만, 내가 그를 TV에서 보게 된 것은 아주 최근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었고, 그 한 사람을 놓고도 아주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도 개중에 있어서,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왜 그럴까, 서로 본 것이 달랐고, 각자 알고 있는 것도 판이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알라딘에서 보았던 모습이 거의 다여서 재미있고 주로 친절하고 선한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 반면, 


나와는 다르게 신문 칼럼으로 그의 정치적인 글들을 자주 접한 사람도 있었고, 또는 그가 강연하는 모습만 본 사람, 또는 (무슨 까칠남년가) 방송에서 봤다며 페미니즘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책으로만 그를 접한 독자(여러 분야의 책을 쓰지 않았나) 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누가 본 서민 교수가 더 참다운 서민 교수였을까. 그래서 과연 누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더 그를 옳게 본 것일까.



#2. 


그건 서민 교수 본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꼭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 역시도 그건 그냥 자기 생각일 뿐이니까.


내가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SNS를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사실처럼 말하기 좋아하는 <정치, 시사 쪽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에는 평소 관심이 다른 사람에 비해 현저하게 없는 편이다(정치 시사를 표방하는 방송은 전혀 안 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정치 냉소주의 아니냐고 나를 비판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쪽이 이상하다. ㅡ 그런 프로가 만약 당신에게 유익하다면 당신은 보십시오. 저는 저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보지 않습니다. 




[나를 지배하는 욕망이 왜 생겨나서 어떻게 나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구조화되었는지 알게 되면 나를 포함하여 동시대의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에 바로 연상되는 것이 돈이라고 말했지요. 자본의 목적은 증식이에요.(...)


돈이 왕창 생기면 뭘 하고 싶으세요? 바로 쇼핑! 꼭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쇼핑 자체를 즐기는 건 일종의 중독입니다. 그래서 명품을 탐닉히게 되지요.(...) 86 


성욕의 저변에 또 하나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식욕입니다. 요즘 TV프로그램의 절반이 소위 말하는 '먹방'이죠. 정말 엄청나게 먹어댑니다.(...)87


식욕과 연계된 욕망이 또 있습니다. 폭언과 수다! 먹는 것과 말하는 것. 이때 말의 주된 내용이 뭔지 모두 아시죠? 바로 남을 헐뜯는 일, 소위 뒷담화라고 하지요.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88 


성욕과 식욕 말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또 뭐가 있을까요? 여행? 여행 좋지요. 근데 여행 가서 하는 일이 뭡니까? 또 먹습니다 (...)88 


우리는 또 뭘 하고 싶을까요? 공연, 음악, 뮤지컬 등 문화활동이라는 게 있어요.(...) 자극과 흥분에 의존하게 되면 그것 역시 중독인 것이지요.(...)89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시대 욕망의 배치는 모든 방면에서 중독을 권하고 있는 겁니다.  '열정을 가져,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수시로 듣다 보면 무엇을 미칠 때까지 해야 되나보다 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중독이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넌 할 수 있어', 이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습니다.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90


열정? 열정이 뭘까요? 심장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낮에도 쉴 수 없고, 밤에도 잠들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합니다. (...) 일, 연애, 소비 그 어떤 것에 미쳐 있든 간에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라 '미쳤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욕망의 계보학에서는 그렇습니다. 90


옥시토신은 아주 양면적인 벡터를 지니고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면서, 동시에 매우 폭력적인 성향도 함께 한다는 겁니다. 93


ㅡ<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고미숙 편, '욕망의 지도, 운명']



이를테면 사건의 실체는 없고 <남이 전해주는 소문들>만 무성할 때, 또는 비리나 의혹, 남의 사생활 같은 종류의 기사에는 관심 자체가 아예 잘 없는 편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실이 드러나면 -남을 조종하고 속이는 소문들은 자연히 가라앉게 되고- 친절하게 사건을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이들도 분명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정치평론가,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뭔가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있으세요? 저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뿌우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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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말할 때마다 고민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댓글에는 참 소질이 없습니다. 한편 예전에는 공감이나 댓글이 없을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곤 했습니다(아, 그때는 ㅠ). 


내가 그래서인지 (예전에 누가 공감했는지 알 수 없던 시절에는) 아마 저만큼 추천을 많이 누른 사람도 없었을 거에요. 어떤 분이 사람들 앞에서 뭔가 말을 했는데, 잘 썼든 못 썼든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데 댓글 무, 공감 무ㅡ 이런 걸 볼 때마다 댓글은 남기지 못하지만 누군가 당신 글을 보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계속 써 주세요, 막 응원하는 마음이 되고는 했었죠.


지금은 그때처럼 알라딘을 많이 보지 못하고, 게다가 언제부턴가 누가 내게 공감을 했는지 알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왠지 점점 공감을 잘 안 누르게 되더군요.  제 딴에는 댓글 대신, 최대한 의사표현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하려고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호객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고, 


거래가 아니지만, 상호부조하듯 거래처럼 되다보면(만약 그런 관계가 점점 늘어나게 되면) 그것을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새롭게 알게된 분에게는 <좋은 마음이 있는데도> 안 하게 되더군요. (다들 그렇겠지만, 그동안 어떤 이유에서든지 제가 공감을 전혀 누르지 않는 분들 중에도, 사실은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몇 몇 분에게는 그게 어떤 글이든 모든 글에 누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보기에는 왠지 위화감이 느껴질 것 같아서... 아무튼 그래서 앞으로 좋아요는 좋아요 말고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만 선별해서 누르자 생각하면 그것도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의사(이유)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만약 공감을 자주 하던 분에게 ㅡ 그 글을 못 봤을 수도 있고, 언제나 알라딘의 모든 글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데 다른 어떤 사정이 있어서 ㅡ 갑자기 안 누르게 되면 그때 그분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그가 <내게 실망했나? 아니면 내 글이 그 사람에게 뭔가 불쾌했던 게 아닐까? 내가 싫어졌나?>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 염려도 됩니다.


전 구조적으로, 그러니까 지금의 '좋아요' 만으로는 그게 어떤 표현인지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고 또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게 다 내 오지랖일뿐이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로 나 혼자 고민하고 있구나,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부턴가 저는 댓글이나 좋아요를 아예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그래서 댓글창도 당분간 접어놓을 생각입니다).


그동안 제 글에 좋아요가 눌러졌을 때, 그게 어떤 표현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의 고마웠던 마음이 생생히 기억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언제까지고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떤 분이 절 응원해 주셨는지- 고맙고 좋은 기억들만 가득하지만, 이제 앞으로는 제 글에 (비판이나 의견이 아니라면) 안부나 댓글, 좋아요를 일체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marine' 님을 모델로 그분처럼 가끔 할 말이 있으면 하거나, 또는 안 하거나, 혼자서 그렇게 오고가고 하겠습니다.)

   

뭐랄까요, 아는 사람은 알겠지 (저도 그동안 공감해주셨던 분들에게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이라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ㅡ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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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지 님을 응원합니다!
    from 죽은 줄 알고 내가 눈을 떴을 때 2017-11-03 14:48 
    알라딘에서 말할 때마다 고민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댓글에는 참 소질이 없습니다. 한편 예전에는 공감이나 댓글이 없을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곤 했습니다. : 이미, 몇 번이나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저로서는 번번이 안타깝습니다. 댓글에도 소질이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서요.ㅎㅎ^^ 그런데 뭐, 이젠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습니다.내가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누가 공감했는지 알 수 없던 시절에는) 아마 저만큼 추천을 많이





#1. 

앞에 글에는 내가 그 글을 쓴 <계기>와 <대상>이 있다.

1) 23일 오후 JTBC 앵커의 가십성 흥미위주 방송 진행을 보고 (계기)

2) 유족 해명 기사에 달린 댓글에 대해서 (대상)


즉 최시원이나 반려견은 내가 비판하거나 말하는 대상(= 내 관심사)이 아니다.

반박을 하려면 구체적으로 반대하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이 댓글이다 :


[msal****

섣부른 용서는 제2제3의 피해를 낳는다.가해자가 민사든 형사든 엄중한 대가를 치루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제도가 미흡한 사회에서 경각심을 갖게된다.섣부른 용서와 편의주의 발상이 사회 부조리를 개선할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또다른 부조리를 낳는다.보상 필요 없을 정도로 넉넉함은 어머니 유산 덕 아닌가?그 유산은 또한 우리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거둬들인 결실이다.단물만 취하고 사회 악을 바로 잡는 노력에는 무관심하다면 고인의 죽음을 의미없게 만드는 행위다.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한 고통들 덕에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옴.


공감6비공감0



pure****

좋은말씀이네요 정말]



"단물만 취하고 사회 악을 바로 잡는 노력에는 무관심하다면"
"고인의 죽음을 의미없게 만드는 행위다.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한 고통들 덕에"
ㅡ> 이렇게 보면 지극히 정의롭고 옳은 말인것 같다.
너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우리는<애도>가 아니라 대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너는 부모님의 애도보다, 우리와 사회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만약 당신의 부모님이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면, 당신은 어머니를 애도하지 않고 남들을 위해서 싸우십니까?)
역시 공감이나 반대의 숫자가 옳고 그름을 말해주지는 않는구나.
판단은 자기가 해야지, 남의 말에 좋다고 끌려가면 안 되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 드는 것이다.
살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예외 없이) 실수나 잘못을 할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어서인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남의 실수나 잘못에는 좀 너그러워야겠다고, 관대하고 싶다고 자꾸만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2
가끔 재미있게 여겨지는 건, 흔히 사람들은 만약 내가 아는 것을 저 사람이 모르면, 그 순간 <상전이라도 된 듯 갑자기 고압적으로> 돌변하곤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조그만 실수라도 발견되는 순간 너는 이제 꼼짝없이 내게 약점 잡혔어, 라는 식으로 갑자기 욕을 해대고 호통을 치면서 사람을 막 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평상시에는 다들 웃으면서 예의있고 좋은 사람 같은데도,
남이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ㅡ그자는 이제 반항할 수 없을 것이기에ㅡ 사람들은 그제서야 안심하고 가면을 벗게 되는 모양이다. 언제 사람이었나 싶게, 갑자기 야수로 돌변해 순식간에 한 사람을 난도질을 해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게 마치 '동물의 세계'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저러나 보면 대개 맞춤법이라든지, 페미니즘이라든지, 사회정의 뭐 이런 것들이다. 내가 아는 것을 너는 모르니, 네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이런 식이랄까.
왜 그러는 것일까. 앞에 인용한 '완벽의 배신' (라파엘 M. 보넬리,와이즈베리) 중에서, 한가지 단서가 있다.
["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은 속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공동체 의식이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다들 정의를 표방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우선 듣기에 옳고 좋은 말이어도, 그 말만 듣고서는 그 사람이 진정으로 정의를 원하는지, 실제로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저러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행동과 평소 실천에 따라서 평가해야지, 그 사람 말의 정의로움, 순수성, 멋짐, 목소리의 숫자에 따라서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뭐라도 하나 알게 되면, 그 <지식>은 금방 그 사람에게는 <무기>가 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온순하고 착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나워지고, 사람 자체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다.
가령, 이런 사람들은 세월호에 말로만 공감하면서도
마치 금방망이라도 주은듯이 남의 슬픔을 도구로, 지식을 지혜가 아니라  무기로 써먹곤 하는 것이다.
너 지금 감히 세월호 유가족을 능멸하는 거니?
저놈은 친일파다, 저놈은 기득권을 옹호한다ㅡ
(이게 저놈은 빨갱이다, 하고 뭐가 다릅니까)
영민한 사람들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할 리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깃발처럼 들고 흔드는 정의와 도덕은, 대개는 진실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곳에 가서 자주 세워져 있곤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이 합리적이고 영민하다는 것에 있다.
그것은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ㅡ> 오직 <이해타산이 나하고 맞았을 때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내가 좋으면 옳은 말이고, 내가 싫으면 틀린 것이다. 우리에게 유리하면 옳은 말이고, 우리에게 불리하면 틀린 것이다.
모든 것이 비즈니스일 따름이기 때문에 오직 <너는 어느 편이냐> 가 중요하다.
정의는 곧 <무기>이기 때문에, 늘 옳고 그름을 들어 말을 하는데,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단지 니편이냐 내편이냐 편가르기에, 그저 유행이나 대세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아서 SNS나 종편 방송 같은 것을 보다보면 아연해질 때가 많다.
어느 때보다 많이 배우고 합리적인 그들은 어느 곳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잘 알기 때문에 ㅡ>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들 편"에 있으면서, "언제나 능수능란하게 자신을 정당화한다." "자본주의 체제와 더불어 부르주아 계급이 되고, 이제는 사회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사회주의자가 되고 있다.(자끄 엘륄)"
그렇다면 선한 감정으로 충만하여, 누구보다 똑똑하고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곳에만 있는 사람들이,
오늘은 또 어떤 놈을 때려잡겠다고 사냥에 나설지, 언제나 흥미진진한 곳, 그게 지금 <종편과 언론이 하루 종일 보여주고 있는> 우리 사회다.


[최명길은 천천히 말했다.

-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우나 그것은 말일뿐입니다. (...) 갇힌 성 안에서 어찌 말의 길을 따라가오리까. ㅡ남한산성]
그러자 신하들은 일제히 엎드려 큰소리로 외친다.
"명길은 적과 내통하는 자이옵니다. 저자를 당장 끌어내어 단칼에 목을 베시옵소서, 전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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