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포스팅을 했을 때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이 나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훌륭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니고.

가끔 내가 예전에 한 말과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누가 나를 싫어해도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말하다 보면 남들의 마음이 꼭 내 맘 같지 않아서 간혹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도 생각된다. 


가령 왜 나는 이렇게 인기가 없을까?......

예전이었다면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저분, 도대체 나에게 왜 저러지? 저분이 나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다_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인정하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다 내 잘못이다, 이렇게 생각되는 것이다.


섭섭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원인을 몰라서 그렇지 뭔가 이유가 있거나, 사정이 있겠지. 잠시 후의 내 마음도 예상할 수 없는데, 오히려 남의 마음이 내 맘 같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 같다. 요즘은 그런 마음이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ㅡ> 곰곰발님이 포게터블님에게 한 행동이었다.


바깥에서 보았는데, 그때 나는 말 그대로 깜짝 놀랐던 것이다.

ㅡ 앞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이미 그것을 말했기 때문에 ㅡ 

지금 다시 반복해서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포게터블님에게 너무 부당하고, 잘못된 일로 보였다. 

그래서 나로서는 또 이해가 잘 안 되었다. ㅡ>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적이고 사회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곰발 님은 자주 남을 비판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분이다.

그런 그가 실제로는 알라딘에서 ㅡ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자기를 비판하면 협박을 일삼으며ㅡ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을 방해할 때, 

또한 여성에게 폭력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같이 동조할 수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오전에 syo님의 글을 읽고 나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자세하게는 표현할 수 없지만 (손발이 오글거릴 것이다) 좀 감동을 받았다. 남이 하는 말을 싫어하지 않고 기분 나빠하지 않고 말하는 그대로 이해해 주셨기 때문이다. 


syo님,

말씀 듣고 보니, 저에게 사과하실 일도 아니었구나 생각됩니다. 

12월 31일에는 

나 때문에 포게터블 님이 봉변을 당했다(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웠고, 마음이 다급했던 것 같습니다.

별뜻 없는 댓글이었는데도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2.


그 날 검색하다가 예전에 곰곰발 님에게 쓰다 만 글 (만약 내가 여성이라면~)을 발견했고 ㅡ그 글은 어느날 밤 곰곰발님이 나에게 갑자기 심각하게 폭력적인 비밀 댓글을 남겼을 때 ㅡ 분개해서 내가 쓰고 있던 글이었다. 


(당시 나중에 곰발 님이 사과하셔서, 제가 그런 글을 지금 쓰고 있었는데, 알겠습니다. 사과하시니 올릴 필요 없겠군요, 하고 말씀 드렸던 그 글이다. )


다시 읽어보니 12월 31일에 내 마음이 딱 그랬다.

그래서 (아갈마님 이름이 포함된) 그것까지 마구 끌어다가 급하게 글을 올렸더랬다. 


지금은 그 글을 쓰게 된 'FORGETTABLE' 글을 곰곰발님이 내렸기 때문에 

#4~#7 중에서 예전 글(사회적 시선)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옮겼다.


빈말이 아니라 나는 그에게 자주 감탄하곤 한다.(좋은 의미로) 

그런데 뜻하지 않게 서로 반목하게 되었다.

서로에게 다 오해와 잘못이 있겠지만

내 생각이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달라지곤 한다.

그러니 지금은 예전에 한 일에 대해서 돌이킬 수도 없다.

그저 이해를 바랄 수 밖에


곰발님

나는 당신을 욕한 적도 없고 미워한 적도 없고

싫어한 적이 없었지만 

나로서는 알라딘에서 <의견>이 다 같지는 않았던 것 뿐이었습니다. 




[ㅡ 2015.10.1 내 서재 댓글 중에서 :



곰발님,

참, 이해가 안 되는군요.

아무래도 곰발님 기억과, 제 기억은 어딘가 좀 다른 모양입니다.


사실만 간단하게 확인해 보면 

ㅡ>


곰발님이 페미니즘 글을 썼슴. 그 글에

신지가 <쌍년 발언을 페미니즘과 엮어서 글을 쓴 것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댓글을 달았슴.

그때, 곰발님과 신지 두 사람은 

서로 심각하게 싸웠던 것도 아니며,

댓글과 글로 몇 번 옥신각신 했을 뿐임.

(여기까지, 온라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장면이었슴.)


그후, 어느날 신지는 단순히 한수철님의 어떤 글(아질아질하군)에 대해 시를 읽고 소감을 말하듯, 감상을 적은 페이퍼를 올렸슴. (그 페이퍼는 곰발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글이었슴.)

그런데, 곰발님이 신지에게 느닷없이 비밀댓글로,

쌍욕을 하며, 엉뚱한 말과 함께, 심각하게 폭력적인 행동을 시전하였슴.


신지는 너무 황당했고 어이가 없었슴. 

도대체 이 사람 뭐지?? 하면서 비밀댓글을 공개하였슴.

몇 시간 후, 곰발님이 (술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난동을 부린 것 같다며) 사과하였슴.


신지는 또 금방 화가 풀렸고, 공개했던 비밀댓글을 바로 내리며 의기소침하시지 말라고 하면서 침실로 갔슴.

그런데 그 일로, 곰발님은 알라딘을 떠나겠다고 사람들에게 선언했슴.

(신지는 그 이후 곰발님에 대해 더이상 어떤 말도 언급하지도 않았슴.)


자, 곰발님, 이게 우리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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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곰발님 편이 아니었을 뿐, 

알라딘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의사소통행위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곰발님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았거나, 전혀 잘못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즉, 우리 두 사람 간에 실수하거나 잘못했던 사람은 곰발님이지, 신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과를 받아주었더니 이후, 곰발님이 하는 말과 행태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실수한 사람이 신지고, 곰발님은 마치 아무 잘못도 한 적이 없는 사람 같아요 ^^)


한수철은 신지다- 라는 둥 엉뚱한 주장을 하고

방명록에서 지인에게 농담으로 쓴 댓글을 캡쳐해서는, 신지가 이런 식으로 어이없는 말을 했다고 하지 않나, 

 

계속 막말하고 욕하고, 


(곰발님 블로그에 `신지`에 대한 글이 다섯 개나 올라와 있지만, 

그냥 모여서 욕이나 하자는 거지, 거기에 무슨 `내용`이 있습니까? )


흔히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더 크게 소리지르는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아서, 그게 첫번째, 재밌는 부분이구요.


두번째는, 


제 주장은 대부분 곰발님 같은 분들을 옹호하는 글들입니다.


대체로 입장도 평소 곰발님 주장과 비슷한 부분이 많구요.


그런데 (내용에는 전혀 관계 없이) 꼬박꼬박 신지의 반대쪽에다가 공감을 누르시는 모습이, 


(앞뒤가 맞지 않아서) 저에게는 재미있게 느껴졌던 부분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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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제가 곰발님에게 별로 뭐라 안 하는 이유는, 

곰발님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또 더러워서도 아니에요


저는 평소에 알라딘에서 글쓰는 입장이 아니고, 

거의 대부분 시간 동안 단순히 <독자>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곰발님의 개성 있는 `글`을 계속 보고 싶고, 단지 아끼는 마음이 있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전에도 지금도 곰발님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어서

곰발님의 글이 자주 올라오는 것이, 그냥 알라딘의 <독자>인 저에게는 더 좋은 상황인 것 뿐입니다.]






* (원래는 syo님에게 댓글을 쓰려고 했다가, 페이퍼를 쓰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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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와 소수로 나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아갈마 님)

http://blog.aladin.co.kr/durepos/9807676


아갈마 님 ㅡ오랜만~~ ^^ ㅡ은 왠지 편하고 친근한 맘이 드는데 너무 정중하게 글을 주셨네요. 이렇게 글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게 생각돼요. (저도 간혹 이런 식으로 다른 분에게 정중하게 의견을 말해보고 싶지만, 오해가 염려되기 때문에 이런 글쓰기는 저에게는 너무나 어렵더군요.)


서로 의견을 말할 때는 별거 아닌 것도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 제 방식대로 (분류해서) 말하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저는 알라딘을 볼 때 보통은 다른 사람의 글이나 주장을 읽고, <그냥 그대로_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냐면 우리는 각자 다른 경험, 다른 성격, 다른 사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사람들끼리 그것을 서로 하나하나 다 비교해 가면서 정리해야 할 필요는 없겠죠.


그러면 사실에 대해 말하거나, 오해에 대해 말하거나 ㅡ 저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말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글도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경험상, 개인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다보면 십중팔구 남의 말을 오해하게 되면서 논쟁이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갈마님에게 직접 답변을 하지 않고

아갈마님의 질문을 통해 그냥 제 말을 하겠습니다.

( 말투는 아갈마 님에게 하는 것 같은데, 실제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제가 말하는 대상은 아갈마 님이 아니라) 평소처럼 그냥 '불특정 독자에게' 입니다.


[문빠 현상은 아주 복잡한 것들이 모여있는 에너지 場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그에 대한 미안함, 10년간의 정치 퇴행, 이명박근혜 정권이 양산한 많은 문제에 대한 분노와 다시 정상화하고 싶은 희망, 억눌려왔던 자들이 드디어 현실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기회의 도래 등등등이요.

서민 교수의 "문빠는 미쳤다"는 발언의 제일 큰 문제는 일반화입니다. 주장이 늘 가지는 딜레마이자 한계죠. 어느 세력이든 단일 이데올로기와 목표로 모이지 않습니다. 위에 제가 언급한 것처럼 문빠의 場도 그것들의 취합이 모여주는 형성그림이지 단일체가 아닙니다. 어떤 부정도 용납지 않는 문빠에겐 그자체로 공격이 됐을 거고, 그 정도 문빠는 아닌 사람들에겐 싸잡아서 비난을 듣는 듯한 불쾌감을, 문빠를 공격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문빠 내부 분열을 부추길 좋은 떡밥 제공 등이 됐지요. 어떤 문제에서 이들의 이 점이 문제다가 되어야지 이들은 모든 걸 잘못되게 만든다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ㅡ>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서민 교수 글을 보면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서민 교수도 그 부분 사과했지요.


[신지님의 논지에서도 비슷한 소지가 보이는데요. 님이 말하는 군중, 대중은 님의 종합화이지 단일화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손 의원이 말한 '문빠는 표준 지성'도 허상에 불과합니다. 세분화하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님의 논리 구도 : 다수-소수(약자), 악-선도 너무 이분법적이며 일반화가 느껴집니다. 상대만큼 자신의 합리화가 느껴지며 세심하지 못해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ㅡ> 제가 평소 알라딘에서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은 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라는 부분이에요. 아갈마 님하고 평소 생각이 비슷한 것이죠.


제가 말하는 대중/군중은 이것이죠.  ㅡ>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대중이다. 누구나 국민이고 시민이고 시청자고 소비자고 네티즌이다.(신지)"


불(火)은 고맙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반드시 "선"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제천 화재 사건이나 미국의 산불에서 보듯이 때로는 불이 재앙("악")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대중/군중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반화를 하거나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는 그것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이곳에서 자꾸 하고 싶은 것이죠 ) 우리는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보면 오히려 [문재인 지지자는 선 vs 박근혜 지지자는 악] 이런 식의 주장이 선악 이분법인 것이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누구 편이든, 누구의 지지자든 간에 그 사람이 ㅡ>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제 경우를 들자면, 제가 정신이 맑을 때는 좋은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그저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쁜 행동이 나오고. 또는 잘 하려고 하는데도 ㅡ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보면 ㅡ 나쁜 선택이었던 경우도 많고, 이건 틀림없이 좋은 일이야 라고 생각돼서 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욕먹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저는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다시 말하면 제가 정신이 맑고 실제와 사실을 제대로 보고(알고) 있으면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많아요. 그러면 저는 좋은 사람이 되겠죠. 반면 제가 어떤 사안이나 배경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거나 나쁜 결과가 나오겠죠. 그랬을 때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겠죠. 군중/ 대중도 저는 그렇다고 보는 것이지 <문빠/ 문재인 지지자>가 선이거나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에요.
제 글에서 제가 비판하는 대상은 <문빠/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라, 내 편이나 니 편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개인이 되기도 하고 군중이 되기도 하는데,
라인홀드 니버에 따르면, 개개의 그 인간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하며, 때에 따라서는 행위의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더욱 존중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입니다. 그들은 본성상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빠든, 박빠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누구 편이든 간에 우리들 개인은 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의 <집단>은 충동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자기 극복 능력, 그리고 타인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개인에 비해 훨씬 결여되어 있다는 겁니다. 흔히 보듯이 <집단이기주의>로 똘똘 뭉치게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이번에 서민 교수 논란에서 보듯이 집단 내에는 <내부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는 압력이 존재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이 각각 도덕적이어도 그 집단은 나쁜 방향으로 걷잡을 수 없이, 돌이킬 수 없이 나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집단 내에는 이율곡이나 정약용이나 갈릴레오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지만, 그 집단은 ㅡ> 전쟁으로 ㅡ> 식민지로 ㅡ> 천동설로 계속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죠.
일부 극렬 지지자들이 내부비판을 억제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구조적으로 집단 내에서는 그런 어리석음이 다 같이 공유되고 존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보이는 것이죠.
"개인으로서 사람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봉사해야 할 것과 서로 간의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그런데 인종적 경제적 국가적 집단으로서의 개인들은 스스로 그들의 힘이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한다. (라인홀드 니버)"



[정말 모든 문빠가 같은 뜻으로 움직입니까. 이건 같고 저건 다르지만 더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게 집중 조명된다면 더 크게 부각되겠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더더더요. 이런 역학에서 님이 말씀하시듯 곰발님이 다수로 통칭 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대결구도, 구별짓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집니다. 인간 삶의 지긋지긋한 특성이죠.]


ㅡ> 서민 교수는 “(...)그런 분들을 저는 ‘문빠’로 칭했고, 이 분들은 70%에 달하는 정상적인 지지자와 다른 분들"이라며 “본의 아니게 건전한 지지자들마저 환자로 모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사과했는데,
저는 사실 일부 극렬 문빠가 있다. 그들이 문제다. 나머지는 정상이다_ 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것은 이완용이 문제다. 히틀러가 문제다. 일제 전범이 문제다, 그러니까 나머지는 정상이다_와 비슷하잖아요? 대개 (서민 교수를 비판할 때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런 식의 (실제와 맞지 않는, 진실이 아닌, 편의적인, 관념적인) 주장이 많다는 것이 제가 말하는 논점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분리될 수 없다고 봐요. 그것은 타자를 악마로 지목해서 ㅡ> 자신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자신은 선이라고 믿으며 ㅡ> 나는 간편하게 빠져나와서 소고기 사먹고 TV를 본다, 는 방식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들이 항상 자기위주로 편리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주로 저는 "자기성찰의 필요성"을 느끼는 편이죠.


[서민 교수의 두 번째 문제는 '문빠'라는 현상만 손가락질한 일종의 엘리트주의 행동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이 독특한 심리, 행동에 대해 기생충을 연구하듯 합리적이고 치밀한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서 그도 이것을 소비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소위 지식인이고 공인 위치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됐지만 또 그걸로 설득 논리 하나 없이 자기 발언에 공신력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실망감과 비웃음, 공격을 받게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기숙 교수가 <왕따의 정치학> 을 쓴 것처럼 당신도 그 정도 보여줘야지 뜻이 아니라 최소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논거들을 댔어야 했어요. 이런 분쟁에서 늘 그렇듯 자기 주장을 위해 확증편향적 자료들을 가져와도 그만이겠죠. 박근혜 추종자들처럼 행동한 문빠들의 실태 1. 2. 3..... 무수히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결국 문제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삶이 참 비루하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대화와 논쟁의 무의미를 느끼게 되고요.]


.


[소수 의견이 늘 다수의 맹시를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지성이지 않습니다. 신지님은 소수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란 건 숙지하고 있습니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합리적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야지(이게 있어도 힘든 일이지만;) 요즘은 현상 열거, 손가락질로 넘쳐나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도 결과도 너무 많고요. 모두가 피곤해지고 외면하게 되며 해결은 요원해집니다. '사실'은 늘 주관적 사실이기 일쑤이니까요. 신이 있다-없다도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채 수 천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ㅡ>



말씀하신 것들은 잘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길게 언급하지 않는 것은 ㅡ> 이견(차이)이 아닌 부분에서는 말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그것이 <서민 교수 논란>에 대한 아갈마 님의 전반적인 감상이라면 제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혹시 제가 [ 소수는 선이고, 다수는 악이다 ] 이런 식의 논변을 한다고 보시지는 않겠지요.^^;
위에서 말했듯이 ㅡ 다수결은 곧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집단에 대해, 군중에 대해, 전체주의에 대해, 우리 안에 있는 파시즘에 대해, 이런 것에 대해 그게 누구든, 우리가 늘 자기성찰의 필요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 하루는 깨어있자고 늘 생각하지만, 30분만 지나면 또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다가 또 가끔은 자기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하는 말은 언제나 [나는 선이고 ㅡ 너는 악이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대한, 반대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하는 말은 예전에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웠던, 소크라테스가 했던가요. '너 자신을 알라, 인가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인가요- 문구 확실하지 않음 -', 대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선이라고, 남들은 악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지? >
다 이 궁금증에서... 나오는 말이지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갈마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 하는 일마다 항상 잘 되시길 바랍니다~~





* 추신: (근데 신지-한수철 vs 곰곰발 구도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누군가 말을 하면 그 말이 무슨 내용인가 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말하는 내용을 보지 않고 자꾸 지엽적인 것, 다른 것에만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도(2015.9.30) 제가 댓글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미 말했듯 저는 님의 질문을 회피하는 게 아니고요.

이와 같은 님의 질문과 지적들이 지엽적이고 너무나(!) 정곡을 벗어난 것들이어서, 정말로. 대답할 의욕이 안 생기는 겁니다.


만약, 신지가 존칭생략이 맞다면?

만약, 신지가 만화가 친구분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뻥이었다면?

만약, 신지 = 한수철이 맞다면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데 그러십니까?

이야기의 본질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곁가지 말꼬리들만 자꾸 붙들고 있으면 뭐가 나오기라도 하는 것인지.


혹시, 곰발님이 보시기엔, 그게 무슨 의혹이나 비리인 것인가요?

(그것을 밝히면 신지= 나쁜 사람, 맞나요? ^^


어떻게 되는 것인지가 정말 궁금...)


ㅡ신지]





그게 중요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러는 것을 보니 

(왜 무슨 말을 하면  ㅡ> 그분은 그런 구도로 몰고 가는 걸까요? )


제가 볼 때는 왜, 바둑 두다가 불리해지거나 짜증이 나면 확 흐트러버리고 싶은, 그런 심리 같아요. 그러면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잖아요. 


이번에 저는 서민 교수 논란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하면서
대표적으로 단순히 곰곰발 님의 <주장> 하나를 인용해 온 것이지
그를 언급한 적도 없습니다.
제 글에는 하나의 <의견>이 있고, 그에 대한 <이견>이 있을 뿐인데
곰곰발 님은 <의견>을 마치 <사람>인것처럼, 말하고 대화하는 것을 무슨 <싸움>인 것처럼, <대결>인 것처럼 여기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니가 나한테 덤벼? 이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누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 나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_고 스스로 애써 상상하지만 않으면
실제로 제 글에는 그냥 <의견이 다름> 그거 밖에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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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시선


폭력을 당하는 아이에게는 가해자의 단순한 말이나 행동도 끔찍하고 항거할 수 없는 악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나 가족이 자기 때문에 해를 당할까 두려워 한다. 심령으로부터 덮쳐오는 고양이의 발톱 앞에서 생쥐는 물먹은 솜처럼 옴짝달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교폭력과 같은 사건에서 내가 보기에 이상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남자는 그쯤은 이겨내야 한다.


아이 때는 그럴 수도 있다. 


사내 아이들은 다 그렇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강해야 한다. 




좋은 생각이지만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질상 약한 아이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왜 자살하는 아이들은 그토록 괴로우면서도 끝내 부모에게 의논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은 '못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은 듯하다. 


부모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 맞았어? 너도 때려야지/ 왜 암말 못하고 가만 있었어?/



왜 니가 양보하니, 너 바보니? 겁쟁이니? /


 

친구들이 너를 안 좋아하니?



부모는 은연중 아이들에게 '다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따돌리는 그룹은 아이들이 보기에 '정상'이다. 그들은 강하고 '다수'이기 때문이다. 소수가 되는 아이는 아이들이 보기엔 '비정상'이다. 아이들은 '비정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서로 다른 아이를 따돌린다.


아이가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부모들은 속상하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는 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부모의 '실망'처럼 무서운 게 있을까 싶다.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끙끙 앓면서도 부모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이 '못난 아이'인 것이 죄스럽기 때문이다.


그게 전적으로 부모들의 탓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가장 무서운 폭력은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사회적 시선인 듯해서다.


강해야 생존에 유리하므로 아이가 강하게 크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그렇다면 충분히 강한 사람들, 스스로 약자면서도 강자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떨까. 문제는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의 시선이다. 약자를 멸시한다. 아이들은 그것을 답습한다.


민주주의 시대임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육체적, 남성적 가치가 더 존중받는 권위주의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듣고 배우기로는 수천년 동안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전쟁(싸움)을 잘하는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강하고 우월한 '영웅'들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누구에게 좋은 세상일까? 인류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전쟁과 폭력은 고통스러운 것일 텐데 말이다.


이상한 건 이런 거다.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영웅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문화 말이다. 나도 모르게 약하면 '병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양보을 하면 꼭 '병신'처럼 느껴지는, 끈적끈적한 사회적 무의식이 있는 듯하다. 잔인한 사회가 이득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러다 보니 남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남자들은 자꾸만 자신과 타인의 힘을 비교하는 데 열중한다. 그렇게 해서 호전적이고 잔인한 사회는 고래 심줄처럼 유지된다.


그래,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강하고 남보다 우월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아, 남들보다 약한 것은 죄가 아니야, 그런 것 때문에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아이가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하면 또 병신이 되기 때문에, 문화 자체가 그렇게 되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내가 손해보고 말지, 라고 해도 억울하지 않은 문화, 좀 비정상이어도 더 많이 관용할 수 있는 문화가 가능할까. 사회 구성원들이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 말이다.



ㅡ2012.02.15. 신지





아직도 많은 남자들은 정치/ 의사소통과정을 여전히 <전쟁>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며 남을 조롱하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은 대개 남자들이니 말이다. 오직 남자들만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ㅡ결과적으로 지배, 공포, 배신으로 대표되는 잔인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강화할 뿐, 페미니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FORGETTABLE' 글을, 

곰곰발 님이 내렸기 때문에 

#4~#7 중에서 

#7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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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수와 소수로 나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from 공음미문 2018-01-01 06:23 
    안녕하세요.신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데없이 등장하셔서 또 생각거릴 잔뜩 주시네요^^;신지-한수철 vs 곰곰발 구도는 알라딘 서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할 논란거리일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 분이 만나실 거 같지도 않고 해서. 제가 뭔가 말을 해도 이 분쟁은 나아질 거 같지 않아 잘 풀리길 바란다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제 이 글을 쓰게 된 건 서민 교수-문빠에 대한 님의 의견을 보고 생각해 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제 깜냥에서 할 수 있는 말을
.






#1.


만약 곰발님의 글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면 가장 아쉬운 사람중 하나가 나일 것이다. 

알라딘에는 토론이 별로 없기 때문인데, 

그래도 자기 주장을 가장 활발하게 개진하는 사람이 그이기 때문이다.

잘쓴 글에 감탄할 때도 자주 있고, 당연하지만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이번 <서민 교수 논란>이 있었을 때 그는 서민 교수를 연이어 비판했는데 

나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내시며" 자기를 디스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면 자기는 서민 교수를 디스한 것인가?


평소 자신은 남을 디스한 적이 없나?)



나는 그와는 달리 서민 교수의 이번 발언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그가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내 생각을 말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저 사람 왜 저렇게 말해? 짜증나, 싫다,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알라딘엔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단순하게 내 생각을 나름 성의껏 말했다.


이번에 내가 쓴 글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처음 알라딘을 할 때부터 줄곧 말해왔던 것이어서 

나에게는 알라딘에서 누가 서민 교수를 비판했는지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서민 교수를 비판하는 <의견들>에 대해서 ㅡ> 다만 이견이 있는 것 뿐이다.




#2.


이번에 서민 교수 논란에 대해서 발언하면서 

누가 나를 싫어하거나 욕을 먹더라도(수정 1.4) 결과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내가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곰발님이 내게 보이는 반응이 참 별스럽다고는 생각했지만, 내게 별다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하지 않고) 나중에 나는 내가 하던 얘기를 계속 하려던 참이었다.



#3.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밖에서 알라딘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


아주 오래 전 알라딘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하이드 님과 포게터블 님을 두어번 본 적이 있다. 포게터블 님은 대학을 갓 졸업했던가, 어디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고,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했던 어리고 귀여운 여성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그분은 <한수철= 신지>라는 계속된 억지스러운 오해가, 두 사람을 직접 만나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척 답답하고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두 분의 글 안좋아하시는 건 알겠는데 전 그 두 분과 다 아는사이거든요. 몇 번 직접 뵙기도 했구요. 물론 따로따로요. 이거 말씀 드렸던 것 같은데 아직 못받아들이셨나봐요. 

유언비어를 자꾸 퍼뜨리시는 것 같아 사실 교정을 위해 덧글 답니다. 두 분 다른 사람 맞습니다.


ㅡ 포게터블 님이 곰발 님에게 댓글]



뭔가 오해가 있다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라딘에서 누구라도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고, 

나에게는 이 댓글이 알라딘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의사소통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곰발 님에게는 이 댓글이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보이는 건가?


혹시 이 댓글이 다른 분들이 보기에도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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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서민 교수가 << 문빠는 미쳤다 >> 라는 글을 올리자 논란이 이빠만빠 퍼졌다. 친애하는 이웃이자 그에게 책 선물도 잔뜩 받은 나로서는 유감이다. 그는 문빠라는 프레임을 사용해서 문빠와 박빠를 동일선상에서 취급하지만 문빠와 박빠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은 박근혜를 숭배해야 되는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은 문재인을 수평적 관계로 인식한다.


전자는 노예의 복종이고 후자는 친구의 우정에 가깝다. 그렇기에 문빠와 박빠를 동일한 서정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http://blog.aladin.co.kr/myperu/9790081


2) 박빠와 문빠는 성질이 다르다. 박빠는 왕정을 복원하려는 자의 욕망이 반영된 집단인 반면에 문빠는 공화정 시민으로서 공화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집단이다. 문빠는 문재인을 동료, 동지, 친구, 멘토와 같은 수평적 관계로 인식할 뿐이지 그를 섬겨야 할 왕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빠가 왕정의 유령 집단이라면 문빠는 공화정 시민이 뭉친 집단이다.


http://blog.aladin.co.kr/myperu


3) "서민 교수가 문빠를 미쳤다고 하고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문빠라는 사실이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아서 이렇게 커밍아웃을 한다. 나는 문빠다."

ㅡ곰곰생각하는발]



ㅡ>


<나는 문빠다-선언>이 요즘 잇따르고 있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70~80%를 육박하고 있으니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우리 편'은 사랑스럽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건 그렇고, 그것과는 별개로,


그렇다면 70~80% 중 상당수는 이전에 <안철수 열풍>이 엄청나게 불었을 때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 그 이전 2002년에는 또 <노무현 열풍>이 불었었고, 참여정부 말기에는 <지금의 안철수 인기>처럼 그 열풍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들 욕하기 바빴지 않았나.



["군중은 갑작스럽게 생겨난 것처럼 갑작스럽게 와해된다."17 ]




그러니까 정치인에 대한 인기, 팬덤 현상은 

우리가 <단지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즉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본질적인 속성이 같다는 것이다. 


굳이 애써서 오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원래 서민 교수가 비판하려 한 것은 본인 스스로 여러번 밝혔듯 팬덤 현상이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맹목성, 그리고 어떤 파괴적인 속성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군중의 가장 현저한 특성은 <파괴욕>이라고 지적된다. 어떤 나라, 어떤 문화에서나 군중의 파괴욕이 발견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



ㅡ엘리아스 카네티, 군중과 권력]



게임이나 스포츠 경기에서 보듯, 김연아 vs. 손연재, 또는 연예인 팬클럽 현상에서 보듯, 


전쟁의 발발은 원초적으로 두 군중의 분출이다. 이 두 군중은 일단 형성되기만 하면, 각각 신념과 행동을 통해 그 존재를 지속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다. 교전중인 군중은 그 군중을 이탈하면 모두 죽는 것처럼 행동한다. 수많은 전쟁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도 새로운 전쟁을 맞을 때마다 번번이 그같은 <환상>에 또다시 사로잡혀 버린다. 72


양편은 서로 수적인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적의 수효가 증가되기 전에 적의 약점을 찾아 내어 십분 이용하려 든다. 적군을 더 많이 죽이는 편이 이긴다.68 


학살, 도륙, 궤멸이라든가 최후의 한놈까지,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든지, 강물이 선혈로 물들었다든지, 사지를 찢어 죽였다든지, 이런 말들에서 보듯이 한번 전쟁의 심성에 사로잡혀버린 군중의 마음에는 결코 관용이 있을 수 없다.68 한 쪽에서 살아 있는 전사로 계산되는 자들이 다른 쪽에서는 잠재적으로 죽은, 즉 죽었으면 하고 여겨지는 전사에 속한다.71


전쟁 군중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무엇이 매순간마다 이 무시무시한 응집력을 만들어 내는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갑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버릴까? 자기 편 사람들 사이에 호전적 분위기를 고취시킬 필요가 있을 때, 쌍방은 항상 "를 선으로 여기고 상대를 악으로 표현한다(신지)". 또한 자기 편이 협을 받고 있다는 허구 날조하려 든다.72


 



["적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심장의 박동이 있다 " 97 



"전쟁은 일정 기간 동안 사람들이 군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이 점은 전쟁이 가지는 인기의 무시 못할 이유 중의 하나다." 73]





같은 말이어도 


니편, 내편, 이렇게 안경을 쓰고 보면 ㅡ> 옳게 들리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바른 말인가, 틀린 말인가 하고 보면 ㅡ> 일리가 있네, 라고 생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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