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빠 어디가

주말마다 아침 저녁으로 보여주는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또는 연예인들이 옆집에 놀러가듯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고급진 음식을 먹으며 마치 그런 삶이 모든 사람들의 당연하고도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재밌고 좋은 정보를 주는 유용한 프로그램일 것이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줘야지 다짐하며 주말마다 좋은 곳으로 아이를 데려갈 것이다. 마음껏 보고 마음껏 좋은 것들을 누리렴, 나는 네게 뭐든지 다 해 줄께

그런데 실은 전혀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모들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친구들을 보며, 난 왜 침대가 없지?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작아, 아빠? 왜 우리 엄마 아빤 맨날 짜증만 내지? 쟤네 엄마 아빠들은 안 그렇잖아, 왜 우리는 저런 데 안 가? 나도 저런 거 해보고 싶어요. 우리도 저런 데서 살아요, 네? 엄마. 아마 속으로 이런 마음 드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철 없는 아이 때문에 시달리다가 부지중에 짜증을 내버리고 금방 미안해지는 부모도 더러 있을 것이다 .

#9.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대다수의 관객들이 벤이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시종 종수의 시선을 따라 종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기 때문이다.

관객이 종수의 자위, 무력감, 열패감, 알 수 없는 분노, 집착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그에게 동질감이나 연민을 느끼는 것은, 종수가 처한 삶의 조건들, 그의 내면,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정보들이 관객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스에 매일 등장하는 나쁜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나. 우리가 아는 것은 뉴스 공급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 남들에게 전해들은 소문뿐이다.)

[ 하루키는 소설가에 대해서 말하길, 소설가란 "어떤 물건이나 일에 대해 판단"을 '유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 해미나 벤의 내면상태는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표정이나 발화된 말 외에는 관객이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때문에 해미나 벤에 대해서는 그저 종수의 눈에 보이는 대로, 혹은 관객 자신들이 각자 보고 싶은 대로(고정관념으로) 그 사람을 보게 된다.

사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자신이 본 '선악'이 (망상이 아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 모든 것은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처음 해미의 방에서 종수가 보는 햇빛을 로맨틱한 코드로 읽던데 사실 그건 빛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거기서부터 수수께끼는 시작된 겁니다.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거죠. (이창동)]


#10 아무도 알지 못한다

종수의 상황에서는 ㅡ> 벤의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악으로 보여지고) ㅡ> 일련의 상황들은 꼭 그가 범인인 것처럼, 일어난다.

여기서 만약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본다면
세 주인공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봤을 법한, 그저 평범하고 매우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예컨대 (마녀사냥, 미우새에 나왔던)허지웅과 벤의 삶이 많이 다른가. 자신만의 독특한 취미, 결백증, 깨끗한 집에서 혼자 사는 것도, 많이 배운 듯하고 책을 좋아하는 것도, 직장이 아닌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것도, 외제차를 타는 것도 비슷하다.

TV만 틀면 나오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또는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들, 또는 우리가 매일 보는 드라마의 주인공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 홍대 같은 곳에 지나가는 행인들 대부분은 벤(또는 해미) 같은 사람들 아닌가.

겨우 스무살 남짓 아이돌 출신 연예인들이 얼마나 넓고 멋진 뷰가 있는 집에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전 국민이 속속들이 매주 보고 있고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들은 모두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이 없다. (그게 어때서, 이상해? 뭐가 문제지?) 이상하리만치 경계심이 없고 남의 눈치를 보지도, 볼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벤의 세계만이 정상인듯 보이는 세상에서 ㅡ 다들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면 여겼지, 누가 자기가 누리는 것들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여기겠나,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다수의 시청자들은) 실제로는 종수처럼 불안하고 삶에 무력감을 느끼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분노만 쌓여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것은 벤의 잘못도 아니고, 종수나 해미의 잘못도 아니다. 분명히 뭔가 잘못됐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상황, 아무도 답을 모르고 그 누구도 악인은 아니지만, 속으로는 각자 모멸감과 알 수 없는 분노를 간직한 채 서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조용히 우연한 계기로 비극이 일어난다. 비극은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게 아니다. 무엇 때문에,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수수께끼인 채 우리들은 늘 무심하기만 한 세상 앞에 각자 직면해 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은 작가의 의도대로 연극 속에 등장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든, 사라진 사람이든, 살아남은 사람이든 그들 모두 나름대로 행복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처럼 미래가 어떨지 도무지 모르는 채 주어진 배역을 온 힘을 다해 연기하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계획하고 늘 어딘가를 향해 분노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면 미래가 좋아지는지 나빠질지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요즘 세상의 모습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생각한다. 세계가 크게 변했다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랄까. 예를 들면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나아가야 할 방향이 분명했다. 뭔가 잘못됐으니 그것만 바로 잡히면 바로 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게 문제다'라는 것 자체가 모호해졌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노를 가지고 있다. 그게 일종의 세상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라고 여겼다.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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