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스즈키 마사유키 감독, 기무라 타쿠야 외 출연 / 엔터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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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다쿠야는 명실상부 일본의 국민배우다. 물론 지금은 인기가 덜하지만 전성기때는 어마무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복제하여 볼 정도였으니. 그렇다며 그의 대중적 열광은 어디서 나오는가? 우선 SMAP라는 장수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이 한몫했다. 우리쯤으로 하면 신화와 비교할 수 있을까? 노래뿐 아니라 예능이나 영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개인과 그룹의 인기를 상승시켰다. 물론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은 기무라 다쿠야다.

 

<히어로>는 방송 드라마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물론 방영 당시에도 크게 히트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연기인듯 연기아닌 것처럼 대사를 읆는 기무라의 매력이 잘 발휘되었다. 뭔가 극적이고 자극적인걸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부산이 나오고 이병헌도 잠깐 얼굴을 비춘다는 점. 딱히 결정적인 장면은 아니지만 일본 영화에서 한국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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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도이 노부히로 감독, 이토 아츠시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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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에 편견이 심한 편이다. 일종의 틀이 딱 정해져 있다는 느낌이랄까? 사소한 갈등이 반복되다 모두가 해피, 해피를 외치는 게 억지스럽다고나 할까? 트랜디한 느낌때문에 좋아했지만 지금은 양념 과잉 상태라 피하고 있다. <블량소녀, 너를 응원해>도 극장에서 광고로 봤을때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전교 꼴찌가 게이오 대학에 입학한다는 누가 봐도 뻔하지 않은가? 우리 식으로 하면 부천쯤의 꼴통 공고생이 연세대학에 붙었다는 식일테니.

 

그러나 울었다. 사야카가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주던 그 순간. 어라, 내가 왜 이러지? 영화는 단순히 명문대에 들어간 고등학생의 고군분투만을 다루지 않았다. 정해진 규격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꿈이 있고 그 꿈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매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도 일본영화답지 않게 과격하다. 아버지가 야구선수의 길을 포기한 아들을 패고, 딸이 아빠를 영감탱이라 부르고, 엄마는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택배회사에서 알바를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사야카 역의 아리무라 카스미의 연기도 눈부셨지만 역시 압권은 학원 선생을 맡은 이토 아츠시다. 결코 장생기지 않았고 찌질한 분위기임에도 불량 소녀에서는 몸에 딱 맞는 옷처럼 귀신같은 열연을 보여준다. 드라마 <전차남>에서 보여준 역량이 과한 것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와 같은 학원 선생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배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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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프트
벤 노트 외 감독, 샘 워싱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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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이 되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마끝무렵이다. 수영복 대용의 짧은 반바지를 입고 래시가드와 물안경, 귀마개를 챙기고 계곡으로 출동한다. 평소에는 말라있던 물이 차오르면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오랜 가뭄이 있었지만 어김없이 비가 와주어서 신나게 헤엄을 칠 수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이런 계곡이 있다니 참 행복하다.

 

 

바닷물만 보면 뛰어 들고 싶어 환장한다면 당신은 이미 여름 사나이다. 하루종일 물속을 들락날락거려도 질리지 않다면 서핑에 도전해보라. 서핑이야말로 진짜 써머 스포츠 아닌가? <드리프트>는 서핑 영화다. 언뜻 미국이 서부 해안 혹은 하와이가 배경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호주다. 사실 호주야말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전국민의 90퍼센트가 해안가에 살고 있으며 멋진 파도를 밥먹듯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모두가 즐기는 레저가 비지니스가 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냥 취미정도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서핑을 산업으로 키우려는 형과 진정한 서퍼는 돈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서라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동생이 주인공이다. 바다와 파도를 벗삼아 펼쳐치는 형재간의 갈등과 사랑이라, 상상만으로도 멋진걸 같은데 정작 영화는 밋밋 그 자체다. 아주 잠깐 광고처럼 등장하는 서핑 장면을 빼고는 정말 심심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재료로 밍밍한 음식을 만들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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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주자의 고독
토니 리처드슨 감독,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외 출연 / 카누(KANU)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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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원초적인 감정이다.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더라도 푸른 평원에 서면 마구 뛰고 싶어진다. 그러나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다.

 

<장거리 주자의 고독>은 타이틀을 보면 왠지 고독한 느낌을 주는 육상영화같지만 사실은 사회성 짙은 드라마다. 공영주택에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의 아버지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변변한 직업도 없이 친구와 동네를 돌아다니는게 일의 전부다. 그러다 빈 자동차에도 손대고 급기야는 공장의 현금을 털기에까지 이른다. 범법자로 가는 지름길에 올라선 그는 결국 경찰에게 걸려 소년원에 보내지고 그곳에서 뜻밖에 달리기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다. 체육 특기생을 내세워 출세하려는 소년원장은 그를 주목하고 드디어 사립 고등학교 학생선발팀과 중거리 경주를 하게 되는데.

 

쭉 줄거리를 늘어놓고 보니 조금 장황한 느낌이 든다.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직접 보면 적절한 플래시백으로 긴장감을 높여간다. 마치 내내 나 또한 달리고 있는 느낌이 든달까? 그 이유는 직접 달려본 사람이면 안다. 달리기에 자신이 붙으면 러너스 하이를 느끼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무중력 상태와 같다. 온갖 잡생각, 주로 나를 괴롭히는, 이 마구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모든게 사라지고 진공으로 빠져든다. 아무리 주변이 시끄러워도 고요함과 평온만이 나를 지배하는. 이 영화는 달리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내고 있다. 알고 보니 원작도 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어떻게 러너들을 묘사했는지 보고 싶어 미치겠다.

 

아, 마지막 번전은 정말 놓치면 후회한다.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직접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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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화윤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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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말하기보다 천만배쯤 어렵다. 해 본 사람은 안다. 빈 공책을을 펼쳤을 때의 공포감 혹은 노트북 한글 프로그램의 껌뻑이는 커서를 보며 느낀 중압감을 아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해서 글로 푼다면 낫지 않을까? 대담집은 바로 글보다 말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물론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이른바 좀 유명해야 한다. 문제는 말은 잔뜩 풀어놓았지만 그롤 옮기고 보니 횡설수설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경우다. 머릿속에 든 게 없으면 말이든 글이든 엉망진창이니까. 그럴 땐 각색을 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책이 대부분 그렇다. 굳이 박근혜 씨를 들먹이지는 않겠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다치바타 다카시가 죽음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대화로 풀어 쓴 책이다. 글이란 아무래도 서론, 본론, 결론 식의 논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지만 대답은 평소 궁금한 것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훨씬 이해가 쉽다. 따라서 이런 류의 책은 대답하는 이보다 물어보는 사람이 요령있고 재치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질문자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했다.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부터 죽음의 실체와 마음가짐까지.

 

죽음은 하나의 과정이다. 아무리 즉사를 하더라도 혹은 자살을 하더라도 일정한 단계를 밟게 마련이다. 의식이 흐려지고 호흡이 느려지며 심장이 멎는다. 암환자도 마찬가지다. 죽음의 순간은 어떤 경우든 비슷한 패턴을 되풀이한다. 물론 이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없어지면 사망을 인식할 주체가 사라지니 걱정이나 고민은 죽음 직전까지만 유효하다. 곧 죽고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의 단계에 들어가지 전에 믿음직한 사람에게 자신의 사전 혹은 사후처리를 맡겨야 한다. 기약없이 식물인간상태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중병일 경우 치료보다는 치유를 선호한다. 곧 고통없이 남은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례를 포함한 사후관리는 최대한 단순하게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장후 산 나무밑에 뿌려주기를 희망한다. 굳이 무덤을 만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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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2017-09-1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당신은 죽음에 대해 대체적으로 미화 하셨군요.

카이지 2017-09-1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죽음은 무(없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답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