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유안 쉥의 파르티타 모음집


사치의 정의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사치하면 떠오르는 삶이란 멋진 고층 아파트먼트에 고급 승용차, 그리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식사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생을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진짜 사치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거다. 아무리 럭셔리하게 꾸몄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역꾸역해야만 한다면 그것이 지옥도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최소한 먹고 살 돈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일이란 생계와 관련이 되어 있다. 막말로 땅을 아무리 파도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얻기 힘들다. 이 말은 금수저가 아닌 이상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해결방법은 두 가지다. 분모를 늘리거나 분자를 줄이거나. 곧 돈을 많이 벌어 최대한 하기 싫은 일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돈으로 만족하며 살거나. 둘 가운데 정답은 없다. 그러나 기한을 정하면 선택이 편해진다. 곧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최소한 먹고 살 돈을 마련하기 전에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되 그 이후에는 마음먹은 대로 산다. 윤여정도 60이 넘어 겨우 이 경지에 이르렀고 필립 글라스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쉽다. 문제는 조절을 하지 못할 때다. 돈을 차고 넘치게 벌면서도 노예처럼 일하거나 당장 굶어죽을 지경인데 찬밥 더운밥 가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인간들은 사치의 정의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저 겉모양이나 남들이 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치가 아니라 진짜 사치, 곧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사치는 유튜브로 유안 쉥이 연주하는 바흐 파르티타를 들으면서 누구의 방해 없이 이 글을 쓰는 거다. 이런 사치를 누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간의 전기료뿐이다. 물론 다른 돈버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린 시간의 값어치는 엄청나게 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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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소개되면서 더욱 인기를 끈 나의 아저씨. 

아이유는 자신에게 걸맞는 맞춤형 옷을 입었다.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편이 아니다. 한두 편으로 끝낼 이야기를 구태의연하게 질질 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시청률을 잡기 위해. 그러나 늘 그렇듯이 예외는 있다. 날을 잡아 나의 아저씨를 감상했다. 사일 정도 걸렸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한창 화제에 오를 때는 아예 모르다가 뒤늦게. 사실 주연 두 배우에 대한 비선호도도 한몫했다. 이선균은 목소리 개성으로 버티는 연기자이며 아이유는 가수 활동 쉬는 짬짬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내 주관적인 평가다. 정직하게 말해 이 둘의 연기를 다 본 지금도 내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둘 다 정형성(고정된 이미지)이 너무 강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적역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실존 인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녹아들었다. 시종 일관 지치고 맥 빠진 종신형 노예 같은 표정을 보여준 이선균과 서늘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어둠이 짙게 배인 아이유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사실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작가다. 어떻게 이런 소재로 극을 쓸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 사실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걸며 끝까지 긴장감을 유발했고 그 사이사이 직장 내 정치, 불륜, 도청 등 자극적인 주제를 적절히 배치하여 다채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형제애와 가족 간 우애까지 곁들여 다양한 연령대를 시청자로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물론 드라마 자체로서는 허점도 많았다. 부정을 저지를 배우자를 모른 척 한다거나 휴대폰 도청을 들키지 않는다거나 법적인 문제가 아무 일 없듯이 해결되는 건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어색했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단점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메시지다.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면 감사함을 표시하기에 앞서 잘사는 게 갚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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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녀로 데뷔한 윤여정. 

50년 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공로상


나는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다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절실하지는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는 아니다. 그냥 낯설었다. 죽을 각오로 뭔가를 한다는 게. 어차피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 그렇게까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허무주의에 빠진 건가?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작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싹쓸이 하는 바람에 감탄이 살짝 줄어들었지만 놀라운 건 분명하다. 물론 영화자체는 완벽한 미국자본이 참여했지만 윤여정은 토종 한국인 아닌가? 게다가 본인 대사 대부분을 우리말로 했다. 그런 역할을 한 배우가 오스카를 수상하다니?


그는 다채로운 말솜씨로도 화제에 올랐다. 영국아카데미상을 거머쥐고서는 거만한 영국인들에게 받아 더 감동이다, 독립영화인줄 알고 고생하겠구나라고 했다는 등 사실을 말하면서도 유머를 담아 재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아들의 잔소리 덕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트로피는 엄마가 힘들게 일한 성과다라고 단언했다.(그러니 잔말 말라는 뜻)


그렇다면 윤여정은 왜 이렇게도 스스로를 강하게 다루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이혼녀에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경력 단절녀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그야말로 도둑질 빼고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노출연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몸 팔러 다니는 할머니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어쩌면 이번 여우조연상은 일종의 공로상 성격이 짙다. 아무리 자신들은 모르는 한국의 여배우라고 할지라도 데뷔 50주년을 맞은 그의 필로그래피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이라도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물론 드문드문 온 에너지를 불사른 경우는 있다. 그러나 그 때뿐이었다. 또다시 안이함의 틀에 갇히곤 했다. 지금은 그러기 더욱 좋은 환경이다. 나이도 들었고 몸도 아프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도 없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마인드다. 이런 생각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본인은 물론 사회를 위해서도 어떤 기여를 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나만의 절실함이 무엇이며, 그걸 꾸준히 유지시킬 방법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시간을 두고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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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별별 경험을 다 하게 된다. 좋든 나쁘든. 시간이 지나면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혹은 빛이 바래지기도. 그러나 신체에 남긴 상처는 늘 괴롭던 순간을 상기시킨다. 내게는 빠진 이빨이 그렇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치아 때문에 고생했던 터라 그러려니 할 것 같지만 매번 힘들다. 유전적인 영향이라 달리 방법도 마땅치 않지만 일단 치과에 가기가 싫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중간쯤 부러진 앞이빨을 빼고 의치를 해 넣었는데 빠져 버렸다. 본격적인 치료를 하기 전부터 이 모양이니. 결국 다시 가서 끼워넣었지만 매번 조심스럽다. 또 빠질까봐. 특히 음식을 앞에 두고서는 늘 엄숙해진다. 지난번에도 사과를 한 잎 베어물다가 그만. 최대한 앞 이빨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가며 먹지만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양 쪽 어금니도 없으니 도무지 씹을 수가 없다. 참고로 이곳에는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뭔가 먹으려면 긴장을 하게 된다. 최대한 조심조심하는데 문제는 누군가와 겸상을 할 때다. 혼자야 아무리 천천히 식사해도 상관없지만 남들과는 그럴 수 없다. 결국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코로나 덕에 딱히 이상하게 바라보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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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메밀면


무심한 듯 심심한 맛의 비결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신간도서를 구경하고 나서 짬나면 안국역 근처 프랑스문화원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유림분식에서 모밀을 먹고 집에 오곤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제 일 같지만 사실은 까마득한 과거다. 그런 적이 있었던지조차 가물가물하다. 그 시절 청계천은 복개 전이었고 광화문에도 광장이 없었고 지하철도 1,2,3호선이 전부였다.


주중에 짬을 내어 시청 근처를 다녀왔다. 어머니가 하도 갑갑해하셔서 서울시립미술관을 예약하고 찾아갔다. 웬일로 미술관을 가고 싶어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중이고 코로나 여파도 있어 한가했다. 인원제한을 둔 덕도 크다. 온 김에 정동길을 조금 걷다가 유림면에 들렀다. 예전에는 분식집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미슐랭 식당이다. 그 덕에 가격은 더 올랐다. 


이 집의 시그니처는 뭐니 뭐니 해도 모밀. 이름은 메밀국수로 바뀌었지만 맛은 여전했다. 면은 무심한 듯 심심하지만 진짜 맛의 비결은 따로 있다. 바로 육수. 멸치와 한약재를 첨가한 간장 소스다. 파를 듬뿍 넣고 겨자를 살짝 버무리면 아주 근사한 국물이 완성된다. 여기에 면을 푹 담가 그대로 입으로 직행. 어찌 보면 단순한 음식인데 그래서 더 제대로 맛을 내기가 힘든지도 모르겠다. 냄비국수도 별미다. 쫄깃한 우동면발과 유부튀김, 그리고 특이하게 반숙계란이 어우러져 질리지 않는 풍미를 자아낸다. 혹시라도 이 부근을 지나시거든 짬을 내어 한번 들려보시기를 권한다. 아차 깜빡 잊을 뻔 했다. 이 집 단무지도 별미다. 직접 담아 맛도 좋지만 큼직하면서도 어슷하게 썰어져 나와 시각적으로도 침샘을 자극한다.


사진 출처 : 덕수궁 + 유림면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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