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감독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일본 영화판의 이단아답게 <갈증>도 앞뒤좌우 가리지 않고 폭주기관차를 몰아댄다.

 

야쿠소 코지, 이 남자의 변신 심상치 않다

 

고등학생인 딸이 며칠째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일반적인 가정 같으면 발칵 뒤집힐 뻔한데 조용하다. 따로 살기 때문이다. 결국 참다 못한 아내가 전화를 걸어온다, 이미 사이가 틀어져 남남인 사이지만 자식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이다.

 

이상하다. 전직 경찰로서의 촉을 따라 딸의 뒤를 캐면 캘수록 수상한 흔적이 발견된다. 그녀와 관계된 모든 남자들이 죽거나 불행해진다. 알고보니 딸은 동급생을 유혹하여 몸을 팔게 하고 자신이 좋아하던 남학생도 윤간을 당하게 만들어 결국 자살을 하고 만다. 이럴 수가? 천사같이 예쁜 우리 딸이 그럴 리가?

 

그러다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나 또한 딸을 사랑했다.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테츠야 감독도 차마 그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키스로 대신한다.

 

<셀 위 댄스>로 잘 알려져 있는 코지는 우리 식으로 하면 안성기에 버금가는 국민배우다. 충분히 이미지 관리하며 커피 광고나 찍으며 살아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텐데 이번 영화에서는 갈 때까지 갔다. 그럼에도 잘 어울린다. 얼핏 보면 최민수 같은데 단순히 거칠기만 한게 아니라 고뇌하는 마음이 절절이 전해져온다 그의 앞으로의 변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딸을 연기한 고마츠 나나 또한 완벽한 여신 이미지를 마음껏 뽐냈다. 1996년생이니 우리나이로 21세. 앞으로도 창창할텐데 왠지 고정된 틀로 소모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인적으로 <갈증>에서나 <바쿠만>이나 별 차이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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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드래프트 1순위 발표 현장.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팀의 운명이 갈리는 살떨리는 순간이다.

 

프로미식축구 팀 단장,

끝내주게 재미있는 극한 직업

 

한 때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캐빈 코스터는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언더월드>는 최악이었다. 더 이상 밑바닥이 없을 것 같았던 그이지만 이후에도 좀처럼 회복하지 못했다. 작품선정의 문제인지 아니면 본인 스스로의 슬럼프가 길어졌는지. 그렇게 서서히 잊혀질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던 그가 다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최근작 <히든 피겨스>에서 공학박사 역을 맡아 심각한 주제의 영화를 흥미롭게 이끄는 조정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었다. 그러나 주조연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살짝 가려진 측면이 있다. 그런 아쉬움을 가진 분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드래프트 데이>.

 

미국프로축구 신인선수를 선발하는 날. 각 팀 단장들의 머리는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어떤 플레이어를 뽑느냐에 따라 짧게는 일년 길게는 십 년 이상 팀의 성적이 좌지우지된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캐빈도 마찬가지 처지다. 유명 선수 출신 감독의 아들이라는 후광으로 단장자리를 꿰차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설상가상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 자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기껏 새로 모셔온 우승 청부사 감독과의 사이도 악화일로다. 게다가 이혼 후 직장에서 사귀게 된 여성 비서와도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간다.

 

드디어 운명의 날.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온다, 우선 구단주. 무조건 공격수를 뽑으라구. 감독. 왜 나와 상의를 안하는거야. 스카우터들. 분석자료를 읽어보시기는 했나요? 자칫 잘못하면 혼자 뒤집어쓰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즐겨야 한다. 끝내주게 재미있는 극한 직업인 단장직을프로선수 선발대회라는 단 하루의 일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간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코스트너도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린다.

  

덧붙이는 말

 

인천에서 살 무렵 나는 에스케이 와이번스 프로야구팀 팬이었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기왕 살게된 곳의 연고팀을 응원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아무튼 당시 깜짝 놀랄만한 드래프트가 있었다. 인천 동산고 출신의 류현진 선수가 지명을 받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부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고등학교 대표 좌완 투수였는데. 대신 들어온 선수는 이재원 포수였다. 물론 이재원도 좋은 선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국 스카우터들의 판단이 틀렸음이 드러났다.

 

한화 이글스로 간 류현진 선수는 첫 해부터 한국프로야구를 싹쓸이 하더니 급기야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다. 영화 <드래프트 데이>를 보며 만약 내가 당시 단장이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보았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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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전화의 구린 대기음도 바꿔라.

 

 

나, 다이엘 블레이크

연대와 투쟁만이 살 길이다

 

 

켄 로치처럼 일관되게 자기 작품 세계를 이어간 영화 감독도 드물다. 어쩌면 지나친 반복 혹은 천편일률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회적 약자가 주인공이다. 그에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긴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마찬가지다.

 

심장질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다니엘. 그에게는 아무도 없다. 부인은 치매로 사망했고 슬하에 자녀도 없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구직활동을 해야 함은 물론 증명까지 해야 한다. 당장 이 짓거리를 그만두고 의료지원을 받고 싶은데 담당관은 직장을 구하는게 우선이라고 다그친다. 그는 실업자의 삶을 살면서 돈도 돈이지만 자존심이 점점 깎이고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하루를 견뎌내는게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 애 둘 딸린 미혼모를 만나 도와주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난다고 했던가? 둘은 친아빠와 딸처럼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지만 경제적 파국앞에서는 더이상 견뎌내기 힘들다. 결국 여자는 몸을 팔기까지 한다. 방송대를 다니며 다시 재기하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헛소리가 되고 다이엘은 무력감에 눈물을 훔친다.

 

로치는 참 잔인하다. 희망의 여운을 살짝 비치고는 당장 거두어들인다. 관객들이 원하는 따뜻한 결말따위는 있을 수 없다고 망치로 내려찍는다. 영화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임을 격렬하게 보여준다. 단 한번의 스트라이크로 주목을 받게 된 다이엘이 드디어 의료신청자 자격을 받게 되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 같던 그 순간에도 그를 심장마비로 쓰러뜨린다.

 

아마도 이 작품은 켄 로치의 최후의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칸에서도 이 사실을 미리 감지하고 일종의 공로상 자격으로 작품상을 안겨주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과거  연출과 달리 다소 밋밋하며 상투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사회성 영화가 반드시 관객의 피를 끓게 할 필요는 없다. 현실과 공감하게 하는게 우선이다. 

 

<나 다이엘 블레이크>는 켄의 경험이 잘 담겨있다. 그는 감독이라는 자유로운 직업때문에 실업수당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노조의 파업으로 직접 구직신청을 하러 다닌 적이 있다.  그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 듯 싶다. 마치 패잔병들의 집합소 같았던 그곳에서 실업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심사관 앞에서 굽실거려야한다. 쥐꼬리만한 돈을 받는 동안에도 2주에 한번씩 나와 이런 저런 구직활동의 증거를 들이밀어야 한다. 만약 취업이 안되었다면 왜 그런지도 취조(?)받는다.

 

물론 제도를 악용하여 돈을 타먹는 사람도 있다. 영화속에서 다이넬도 면접을 보라는 연락을 받지만 질환때문에 갈 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니엘처럼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 정말 실업수당을 타며 평생 놀고먹겠다는 사람은 단연코 단 한 명도 없다. 왜 그렇게 잘 아느냐고요?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정확하게 말하면 잘리고 직업안정센터를 찾아 그곳에서 요구하는 온갖 굴욕을 견딘 대가는 두 달 합쳐 오십 만원 남짓 되는 수당이었다. 언제가 이 경험을 기필코 글로 쓰겠다고 다짐했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인생은 리그제가 아니다. 노력한다고 승격하거나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누구라도, 그 어느 기관이라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돈 몇 푼 쥐어주며 인격을 짓밟고 '너는 게으름뱅이 쓰레기야'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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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근사한 사람이 되야지



작가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호칭이다. 꼭 신춘문예에서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지 않더라도. 그건 일종의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진짜 글쟁이는 자기 자신이 안다. 그럼 어떻게? 그런 순간이 섬광처럼 '팟'하고 온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어깨에 잔뜩 얹어진 눈을 터는데 그 눈이 단어나 문장으로 변하며 머리속으로 파고들어왔다.

 

거슬리는 것을 보고나 듣거나 느끼면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경향이 있다. 심할 때는 바로 고쳐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지 못하면 그 생각이 계속 남아 나를 괴롭혔다. 심지어는 가벼운 우울증 증세까지 생기곤 했다. 그러나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노릇. 내가 택한 방법은 회피였다. 곧 한번 찍어놓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같은 상황에 놓이면 자리를 피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심리학에서는 도리어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별게 아니라는 자각을 하는게 더 낫다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맞지 않았다.

 

어쩌면 직업적인 거부반응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작가란 자유재래로 감정을 꺼내어 조합하는 사람이다. 강박과 집착은 일종의 생계수단인 셈이다. 의자에 다시 앉았는데 책상위 연필의 각도가 내가 놓았던 것과 달리 살짝 삐뜰어져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인간 마음속 수억겹의 결을 헤치고 들어가 미묘하지만 확실한 그 무엇인가를 발견해낼 수 있겠는가? 소설가는 스스로에게 부여된 천형같은 성격을 결코 고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까지 그렇게 생활하면 두뇌가 터져버릴 것이다. 하루키가 왜 아침마다 10킬로미터 이상씩 뛰고 김영하가 글을 일정 정도 쓰고나면 요리하는데 몰두를 하겠는가?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키기 위해서다. 글씨기와 기타 시간을 철저하게 분리시키지 않으면 무너져내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도 또 병이 도졌다. 며칠전부터 꺼림직하게 여겨지던 현상을 재확인하고 몸 속 어딘가의 신경이 살짝 곤두섰다. 어떻게 할까? 확인하고 내가 기억하던 모습으로 되돌릴까? 아니면 무시할까? 결국 집안에서 간단한 실험을 해보았다. 그러다 '퍽'하고 터져버렸다. 계속 진도를 나갈까? 말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차마 다 말하기가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관점을 바꾸어 보자. 작가가 아닌 생활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미친짓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그런 짓을 하는게 아니지 않는가? 영화 <지랄발광 17세>에서 수업 내용중 작은 실수를 꼬투리 삼아 선생에게 충고입네 하며 지끌여대던 학생에게 선생은 말한다. 만약  지금 네가 이처럼 하찮은 일에 쏟아붓는 열정을 보다 중요한 일에 활용하면 어떻겠니?  

 

 깨달음이 왔다. 내가 행했던 쓸모없는 열정들의 결과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이라도 다행이다. 나는 어제보더 더 나은 작가가 되는 것 못지 않게 근사한 인간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뭔가 이상 증후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는 마음 속에 거울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하려는 행동을 미추어 보렴. 얼마나 추한지 바로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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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요일. 평소처럼 수영을 마치고 도서관에 들렀다. 책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몇 권을 빌렸다.동네 근처 공원에서 걷듯이 설렁설렁 30분 정도 뛰고나서 편의점에 가서 커피와 호빵을 사서 벤치에 앉아 먹은 다음 기독교방송을 들으며 다시 런닝을 한다. 기독교인이어서가 아니라 도진기 변호사의 '죄와 벌' 때문이다. 실제 사건을 예로 들어 이런 저런 상황을 법적으로 때로는 심리적으로 해석해주는데 매우 흥미롭다. 참고로 방송시간은 일요일 저녁 7시에서 30분 사이다. 이 코너를 듣고 나면 뜀뛰기를 멈추고 바로 집으로 간다. 근 석달동안 매주 일요일이면 같은 패턴으로 살고 있다.

 

오늘은 약간 예외가 있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다가 채널 돌리기가 귀찮아 저녁 8시부터 시작하는 <정유미의 에프엠 데이트>를 청취하게 되었다. 딱히 호불호가 없는 터라 별 기대없이 들었는데 디제이가 첫 멘트에서 내 생각과 같은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작가가 써 준 내용이겠지만. 사연은 이렇다. 주말에 연이틀 소개팅을 하게 된 여인. 두 남자 모두 괜찮은 외모에 직장도 번듯해 마음에 들었는데 왠지  들 중 한 사람에게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를 알고보니 토요일 남은 대화를 할 때 상대의 말에 호응하며 '그리고'를 자주 사용한 반면 일요일 남은 '그런데'를 남발하였다. 곧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의 느낌을 전해준 것이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직장 후배 여성이 말끝마다 '근데'를 계속 말해서 듣는 내내 괴로었다. 딱히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 뭐라 하기도 그랬다. 일종의 습관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조직생활에서 반대를 일삼는 표현을 일삼는 사람은 버티기 어렵다. 결국 그 여성은 사표를 냈다.

 

연예인들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개그맨 신동엽씨가 대표적이다. 재치있는 입담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솜씨가 빼어난 점은 인정하지만 그가 말할 때마다 붙이는 상투어 때문에 불편하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든 '아니, 그런데'라고 대꾸한다. 하도 심해 한 방송(수요미식회)에서 몇번이나 그런 말을 하는지 세어본 적도 없다. 결과는 세상에나.

 

본인은 화제전환용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나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느낌이 든다. 게시판에 직접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는데 고쳐지지 않는 것을 보면 무시한 듯 싶다. 아니면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든지.  누군가는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나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뭐 싫으면 안보고 안들으면 그만이지. 실제로 그가 나오면 바로 리모컨 버튼을 눌러 다른 채널로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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