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 '이해의 선물' 완전판 수록
폴 빌리어드 지음, 류해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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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구독자였다. 거의 매달 빠짐없이 용돈을 절약하여 사 모았다. 두산동아에서 번역간 출판을 포기하면서 내 사랑도 막을 내렸다. 이후 간간이 영원 원본을 읽기는 했지만 맛이 나지 않았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는 오디오 북으로 먼저 접했다. 짤막하지만 늘 마지막에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었다. 듣는 내내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글들이 떠올랐다. 매우 상투적이지만 읽고 나면 감동을 받던 다양한 실제 경험담들. 이 책에도 어김없이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어린 시절 사탕을 먹고 싶어 내민 체리씨, 방충망 못질을 둘러싼 아버지와의 한바탕 소동, 죽을 뻔 한 고비를 농부 아저씨 덕에 넘겼지만 정작 슬픈 건 갖은 노력 끝에 얻은 낚싯대의 행방불명, 아이들을 싫어하는 옆집 할아버지와의 다툼 끝에 나눈 포옹 등.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이지만 읽고 나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진다. 마치 내 아이시절에 겪었을 법한 착각에 빠지면서.


참 희한하다. 10대 때는 나도 이런 스토리를 좋아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으면서 이런 억지 감정 짜내기와는 거리를 두었다. 스티븐 킹도 그랬지 않은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글들이야말로 쓰레기라고. 그러나 희한하게 나이가 들어보니 다시 찾아 읽게 된다, 복잡하고 자극적인 스토리보다 담백하고 이해하기 쉬운 톨스토이 단편류의 글들이 더욱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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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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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덜의 교언영색


한 때 정의 붐이 몰아친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덜 때문이다. 하버드 교수인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인기를 끌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강의내용을 모은 것이다. 그는 책머리에서 재난지역에서 생필품을 비싸게 파는 현상을 보고 개탄한다. 이게 과연 공정한 것이냐? 마이클 조던도 소환한다. 아무리 그의 농구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벋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 사이다 발언 덕에 그의 인기는 올라갔고 한국에서의 위치도 높아졌다. 매년 강연을 오고 최근에는 설을 맞아 티브이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까지 했다( 제이티비씨 차이나는 클라스).


이번에도 어김없이 장기를 발휘했다. 책 제목도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 신입생을 일정한 자격을 거친 선발자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하자. 선택된 사람은 자신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겸손해질 테고 떨어진 이는 운이 없었으니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지만 패널 중 한 명의 우스갯소리에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면 제비뽑는 학원이 생길걸요?


샌덜의 말과 글을 일컫는 한자성어가 있으니 그것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말 그대로 말을 교묘하게 하여 논리와 문장의 얼굴빛을 꾸미고 있다. 그의 자식 둘 다 하버드 대학을 나오고 한 명은 같은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이고 다른 이는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드러내지 않은 채. 마이클은 두 아들에게 경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 둘은 타고난 천재인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집안에서 태어난 덕은 아닌가? 차라리 드라마 팬트하우스의 등장인물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꼭대기에 오르려 치고받으며 싸우는 게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것 아닌가? 샌덜의 주장은 개천에서 잘 놀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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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변기, 쌤


누구에게나 악마의 순간이 있다. 그걸 드러내어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범죄자가 된다. 설령 들키지 않더라도 그 느낌은 남은 평생 뇌에 각인된다. 작가는 본인이 직접 겪지 않고도 머릿속의 상상을 글로 녹여낸다. 위대한 소설가는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다. 애드가 알란 포우가 그랬고 스티븐 킹도 이 반열에 합류했다.


유아살해가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도가 되었다. 지금도 이런 일이 국내뿐 아니라 다른 나라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의사표현 능력이 없는 아이를 간단하게 죽음의 길로 이끈다는 게. 그것도 두 자식을. 그리고 나서는 뻔뻔하게 인터넷으로 처벌 가능성을 검색한다. 인간이란 이다지도 어리석은가?


그러나 분노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은 악마성이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는 한바탕 울분에 그치고 만다. 곧 또다시 사건이 일어나고 이 고리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방법은 자신 안의 악마를 어딘가에 쏟아 내야 한다. 매우 극렬하지만 엄청 안전하게 그 때 그 때 즉시. 글쓰기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이다, 라고 생각한다. 어떤 단어나 문장을 써도 상관이 없다. 글자들이 벌떡 일어나 내게 침을 뱉거나 칼을 휘두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끔찍한 일을 접할 때마다 늘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에게도. 만약 내면의 악마성을 깨닫고 어떻게 해서든 그걸 해소하는 장치를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예술은 가장 확실한 도피처가 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나 피가 범벅인 매드 무비가 왜 필요하겠는가? 삶이란 그저 평탄하고 안락하기만 한 낙원이라고 묘사한 예술작품을 본 적이 있는가? 만약 그런 걸 발견했다면 이미 인간은 타락하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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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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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냄새가 먼저 마중 나와서 내가 가야 할 반 지하 주택 앞으로 친히 안내했다. 전등은 켜지지 않았다. 요금 미납으로 인한 전기 공급 중단이라면 새삼스럽지 않다.” 


내가 죽고 난 다음을 상상해 보자. 이런 저런 골치 아픈 일들이 많겠지만 그 중에는 유품정리도 있을 것이다. 딱히 쓸 만한 물건들이 없다면 죄다 버리라고 하겠지. 돈이 아닌 이상 꺼림직하기도 하고. 유족은 대행업체를 부른다. 싹 다 치우세요. 직원인 그는 혹은 그 여자는 집안을 둘러보며 한마디 할 것이다. “참 지저분하군요. 책만 잔뜩 있고” 그리고 짤막하게 글를 써서 파일로 저장해놓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줏어들은 겉멋 잔뜩 밴 문장들을 인공양념처럼 첨가해서 언젠가 책으로 내야지. 김완의 글에는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없다. 변호사나 의사가 아니니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이렇게 밍자를 모욕하는 내용을 뻔뻔하게 써내다니. 특이한 소재에 이색 직업이라 팔릴 줄 알았겠지만 당신은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없어. 비록 죽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삶을 살았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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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배신 - 좌파 기득권 수호에 매몰된 대한민국 경제 사회 정책의 비밀
윤희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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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과 을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대부분은 공멸이다. 곧 같이 죽는다. 그렇다면 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갑과 싸워 이기는 수밖에 없는가? <정책의 배신>은 우리 사회의 금기를 다루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모두가 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웬걸 신규노동진입이 막히면서 아예 일할 기회조차 잡지 못하게 된다. 비정규직을 모조리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대통령이 한마디 하자 부랴부랴 그 말에 따랐는데 운 좋게 정규직으로 바뀐 사람들 말고 그 이후는 아예 신규직원을 뽑지 못하게 된다. 을을 살리겠다고 낸 정책이 도리어 을을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 


윤희숙은 재정, 복지, 분배를 함께 보기를 권한다. 이 중에서도 으뜸은 재정이다. 다시 말해 정부의 돈이 넉넉하지 않으면 복지고 분배고 소용이 없다. 재정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세금을 올리는 거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문재인 정부는 이 방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전국의 아파트먼트 값이 급등하면서 재산세와 종부세만으로도 몇 조의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금들이 비자발적이며 강제적이라는 사실이다. 장사가 잘되어 선뜻 낸 돈이 아니라 집주인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정책의 헛발질로 가격이 올라 울며 겨자 먹기로 낸 것이다. 이런 류의 세금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부른다. 예를 들어 조두순조차 기초연금과 주거급여 등을 합쳐 한 달에 백만 원 이상 받는데 어렵사리 집 하나 장만한 사람은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기초연금 자격도 되지 못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정책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가난해지기 위한 경쟁을 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과연 정책입안자들은 윤희숙의 말처럼 몰라서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저따위 정책을 펼치는 것일까? 만약 전자라면 무능력한 것이고 후자라면 극악무도한 무리들이다, 과연 문 정권은 어느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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