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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은 소중한 시간

 

영어를 공부하다보면 우리 말로 잘 옮겨지지 않는 단어나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Quality Time도 그렇다. 직역하면 질적인 시간인데. 이건 참 난감한 번역인데. 양과 대비되는 뭔가 근사한 말이 없을까? 고민끝에 고른 단어는 뜻깊은 시간이다.

 

그러나 영어의 Quality Time의 의미를 완벽하게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잠들기 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주말에 가족과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하거나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 목청을 돋우는 행동 모두를 영어에서는 Quality Time이라고 부른다. 양적인 시간과 대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체가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과연 우리는 이런 시간을 그렇게 부를까? 그중에는 자발적이 아닌 의무감에 억지로 참석한 경험도 있지는 않을까? 내일 모레가 설이다. 모두가 반갑지만은 않다. 올해도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오고가는 길에 싸우고 시댁에 가네 처가에 오네 하며 신경전을 벌일까? 방송과 언론에서는 화목을 마치 지상과제인양 강조해대지만 현실은 그다지 밝지많은 않다. 오래만에 가족과 친척이 만나는 명절이야말로 뜻깊은 소중한 시간이 되어야 마땅한데도. 집단이나 단체에 속해 푸근함을 느끼는 건 전근대적인 유물이다. 개인이 기쁘지 않은 모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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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다

 

아내는 잠들기전 머리를 묶었던 끈을 아무데나 놓는다. 자신의 것이니 상관은 없지만 문제는 어디 두었는지 몰라 나한테까지 물어본다. 항상 같은 곳에 두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 내가 아예 전담이 되어 머리끈을 고정된 곳에 두는데 끈을 풀때마다 신경질을 내니 이건 뭐.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잊는 성격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밴 습관 덕이다. 이를 테면 다음날 학교가기 전에 준비물이나 책이나 공책을 가방에 넣고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는 식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준비성이 더욱 필요하다. 뇌세포가 아무래도 늙어가니 깜빡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 있다. Everything Has A Place. 우리 말로 하면 모든 것에는 자기 자리가 있다. 단지 물건만이 아니라 사람도 자신의 위치를 잘 지키는 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버스운전사는 핸들을 잡고 지하철 기관차는 레버를 조종하고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고 글쟁이는 글을 쓴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새삼 아담 스미스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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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세로

 

한글은 소리 글자다. 뜻이 없다. 그래서 배우기 쉽다. 다만 의미를 담기 어렵다. 한자는 그 대용이다. 그러나 한자를 배우는 건 또 다른 고난이다. 영어는 소리문자임과 동시에 뜻글자다. 어원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단어를 보고 뜻을 유추하기가 용이하다. 

 

Understand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말로 하면 이해하다이다. 그렇다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이해는 한자말이니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한다.  다스릴 이에 풀 해. 뜻은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또는 깨달아 앎이다(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뭔가 알쏭달쏭하다. 그냥 안다고 하면 안되나? 한자가 왜 지배층의 언어인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어떻게 해서든 어렵게 표현해야 권위가 선다.

 

그렇다면 같은 의미의 영어는 어떤가? Understand는 Under와 Stand의 결합어다. 직역하면 낮은 자세다. 울림이 있지 않은가? 곧 남의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한단계 낮추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단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진짜 뜻은 권위적이기만 한 이해보다 얼마나 쉬우면서 확실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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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느 나라 언어든 배우는 과정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글쓰기다. 듣고 말하는 건 어느 정도 한다는 사람도 막상 글짓기를 해보면 엉망이다. 연예인 강남을 봐도 그렇다. 사실 모국어라 해도 누구나 글을 잘 쓰는건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 나도 골머리를 앓았다. 영작이 너무 어려워서다. 방법은 단 하나.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 또 반복. 영작 책 한 권을 정해 일주일에 한번씩 죄다 외워 썼다. 그럼에도 틀린 문제는 반드시 또 틀리곤 했다. 마치 수학의 오답처럼. 원인이 뭘까 고민하다 알게 되었다. 사고가 완전히 다른거다.

 

여하튼 내가 가장 힘들었던 문장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의 영작이었다. 매번 Thank you for 로 시작하며 헤매곤 했다. 분명히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물론 언어가 숫자처럼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영어 표현은 "We Had A Great Time"이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감사한 것과 굉장한 시간을 보낸게 어떻게 연결되지? 그러나 곰곰 생각하다보니 어느 순간 앗하는 깨달음이 왔다. 좋건 싫건 헤어지는 건 힘든 일이고 다시 보게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불분명한 상황에서 과연 마지막에 어떤 표현을 해야 서로가 만족할까? 그것은 나와 네가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는 말이어야 하지않을까? 설령 아픈 기억이 있었을지라도 그 또한 언젠가는 그리워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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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세요?" 와 "내가 아는 사람입니까?"

 

영어를 공부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발음이나 문법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우리처럼 두리뭉실하게 말해도 알아 듣는게 아니라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늘 "나"가 있다. 나와 우리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집단에 속해 개인을 비난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약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영어를 익히다보면 혼란을 겪게 된다. Do I Know You?도 그런 예다.

 

우리 말로 하면 내가 널 아니라는 뜻인데 선뜻 와닿지 않는다.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다고 말 할때 우리는 저 아세요?라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상대를 배려하는 말같지만 사실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곧 실제 내가 모르더라도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니 대충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나 영어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아는채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인지하는지가 핵심이다. 사실 이 표현이 정확하다. 만약 상대가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할 때 "(혹시) 저 아세요?"라고 묻는 것과 "내가 아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요컨대 그 순간 더이상 이야기를 끌지 않고 맺음을 지을 수 있다. 혹시 나중에라도 아는 사람임이 밝혀져도 크게 무례는 아니니까.

 

그러나  잘 모르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면 그 자체도 피곤할 뿐만 아니라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냐면서. 미투운동도 사실은 처음부터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추근거린다고 해보자. "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나 지금 당신한테 성추행당했거든요"라고 말할 것인가? 해결방법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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