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더욱 열어야만 하는 이유

 

지난 주말 무한도전을 보면서 말히기보다 듣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평소 말이 너무 많기로 소문한 조세호씨는 월장사를 방문해 묵언수행을 하게 된다. 이런 저런 유혹에 시달리다 그만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게 된다. 그 벌은 백팔배였다. 사실은 천배를 해야 했는데 방송이니 사정을 봐주었겠지.

 

토요일 동네에서 벌어진 데모 소음 문제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반응이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우선은 공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조직된 소수가 흩어진 다수를 위협한다면 결국 우리도 뭉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뜻밖의 수확도 얻었다. 데모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고 조직적이라는 걸 알았다. 대부분 어떤 일이 터지면 속사정을 알기가 쉽지 않은데 그분 덕에 깊은 내막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더 나아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가 생긴 셈이다.

 

참고로 답글이 오고가는 과정에 나는 일체 개입하지 않았다. 곧 어떠한 댓글도 달지 않았다. 그 흔한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았다. 대신 귀는 활짝 열었다. All Ears.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었고 혹시 내 문제제기에 하자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의외의  비밀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진짜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내 의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용을 정리하여 제시한 후 논의과정을 아무 말 없이 쭉 챙겨볼 수 있어야 한다. 섣불리 의견을 한쪽으로 몰지 않고 차분히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덧붙이는 말

 

만약 인터넷 기사에 댓글 기능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은 특정 내용에 검열을 한다면? 상상이 어렵겠지만 불과 몇 년전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비일비재했다. 독재자나 할 발상을 버젓이 실천으로 옮긴 셈이다. 다시는 그런 악행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는 귀를 더욱 열어야 한다. 어떤 말이 참이고 거짓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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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야지

 

독서실에 산 적이 있다. 집에서 직장까지 편도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만약 일터가 평생직장이라면 이사도 고려해봤겠지만. 결국 그 곳에서는 정확하게 1년을 일했다. 고시원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햇빛을 잘 보지 못한다는 건 가장 치명적이다. 겨우 손바닥만한 창문이 있는 공간을 구했지만 어쩐 일인지 햇살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사방으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늘 축축한 기분으로 비몽사몽 눈을 뜨곤 했다.

 

영어 표현에 Rise and Shine이 있다. 일어나야지라는 뜻이다. 물론 Get Up이라는 말도 있지만 훨씬 더 자주 쓰인다.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반지하나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낡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장은 아침에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이 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아 아침이구나 햇빛을 보러 나가자라는 마음으로 일어난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만약 그럴 상상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는다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가볍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서 소리를 냅따 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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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열여섯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미국 대학 농구 소식을 듣다 SWEET 16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영미권에서는 열여섯이라는 나이를 굉장이 중요하게 여겨 파티를 연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이상 아이가 아닌 숙녀라는 의미에서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다.

 

농구 경기에서는 32강전에서 이겨 16강에 진출한 것을 숙녀파티와 비교해 달콤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이로 하면 고 2인데, 서양이나 동양이나 꽃다운 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의 열여섯살이 성인대접을 받으며 서로 축하하기 바쁜 반면 우리는 고3을 앞둔 바로 전단계라 전의를 불태운다. 그중에는 대학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는 친구들도 있을텐데 말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하는 사람과 우울하게 지내는 이들간에는 나중에 자라서도 행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다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말

 

매년 3월 미국에서는 전미대학농구선수권대회를 연다. 다른 팀과 달리 거의 모든 대학이 농구팀을 보유하고 있어 대학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응원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3월의 광란March Madness라고 부르겠는가? 흥미로은 건 정통의 강호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꼴지 시드를 받아 겨우 참가한 팀이 톱 시드킴을 무찌르기도 한다. 이런 이변이 더욱 흥미를 끄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올해 나는 조심스레 듀크대를 우승후보로 꼽는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팀웍이면 팀웍 뭐 하나 빠지는게 없이 탄탄하다. 물론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던 미시건 주립대학이 나가 떨어진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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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멍청이

 

듣기만 해도 기분좋아지는 단어가 있다. 영어 Nice도 그 중 하나다. 우리 말로는 멋진, 근사한이라고 할 수 있다. 둘다 상쾌하지만 아무래도 Nice의 어감이 더 산뜻하다. 그래서인지 나이스를 이름으로 한 회사도 많고 아이돌 그룹들도 제목이나 가사에 많이 쓴다. 세븐틴의 아주 나이스가 대표적이다. 노래도 타이틀만큼 신난다.

 

그러나 나이스의 어원은 뜻밖에도 멍청이다. 라틴어 Nescius는 아는게 없는, 무식한 이라는 뜻이다. 이 말이 영어로 넘어오면서 까다로운, 엄격한이라는 의미로 변형되어 쓰이다 지금의 풀이로 정착했다. 정말 백팔십도 변한 셈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가장 꼴불견인게 아는척, 잘난척, 있는척 하는 사람이다. 반면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면 왠지 배려받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기자들은 허름한 복장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는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그 이유는 취재를 받는 사람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일부러 초라하게 다니는 것이다. 요컨데 나이스는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어도 상대를 배려하여 귀를 기울이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덧붙이는 말

 

나이스가 가장 인상적으로 쓰인 이야기중에는 아기사슴 밤비가 있다. 친구들과 신나에 놀고 돌아온 밤비는 엄마에게 동무들의 단점을 말하며 투덜댄다. 그러자 어미는 정색을 하고 경고한다.

 

If you can't say somthing nice, don't say nothing at all.

근사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이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늘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 글을 쓰며 다시 끄집어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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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다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도리어 반말이 없다고 보는게 맞다. 아이건 어른이건 지위가 높건 낮건 평이한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건 아니다. 프랑스어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귀족은 영어를 천박한 언어라고 깔보았다. 평민과의 차별화를 위해 어려운 영어를 만들어 쓰거나 아예 불어를 구사했다. 이 흐름이 역전된 것은 귀족이 몰락하고 부르조아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누구나 차별없이 말하고 쓸 수 없는 쉬운 영어 Plain English 운동이 불어닥친 것이다. 그 결과 영어는 영미권 국가에서뿐분만 아니라 세계공통언어가 될 수 있었다.


쉬운 언어라고 해서 거칠거나 투박한 것은 아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데 어려운 말이 필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때문에 개발된(?) 대표적인 단어가 Please다. 우리 말로 하면 제발, 부디쯤 되는데 딱 맞는 풀이는 아니다.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하는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에게 "쓰레기 좀 버려줄래" 할 때조차  Take Out the Trash라고 하면서 끝에 반드시 Please를 붙인다. 만약 Please를 쓰지 않으면 매우 무례한 사람이 되고 만다. 아무리 가족간이라도. 집에서만 그런게 아니다. 아는 사람 혹은 모르는 이와의 대화에서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이 말이 들어가는 순간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편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괜히 Please를 마법의 언어the Magic World 라고 하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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