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자는 한국말이 서툴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 마치고 스무 살 가까이 되어서 우리나라에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집에서 한국말을 했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등학교까지 죽 일본인 학교를 갔으니. 나는 오히려 그런 그녀가 좋았다. 선망과 비아냥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이며 거리를 두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성훈 상은 제가 어디가 좋아요?”


그녀는 언제나 내게 상을 붙여 말했다. 처음엔 ‘아차’ 하면서 ‘미안’이라고 했지만 나는 듣기 좋으니 괜찮다고 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럼 너는 내가 왜 좋아?”


혜자는 그럴 때면 고개를 살짝 돌리며 ‘ 뭐 그런 걸 다 물어보느냐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내심 기뻐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되묻는지도 모른다. 그게 벌써 8년 전 일이다.


* 순수 창작물입니다. 주인 허락없이 무단 도용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몬스터 트럭
크리스 웨지 감독, 제인 레비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들에게 자동차는 탈 것 이상을 의미한다. 면허증도 없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더이상 힘에 부쳐 운전대를 부여잡을 힘이 없어진 노인에 이르기까지 차는 늘 로망의 대상이다. 물론 여자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만. 

 

여기 기상천외한 트럭이 있다. 문어인지 낙지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차 안에 들아가 괴력을 발휘한다. 이런 저런 첨단장치로 무장한 팬시카에 질린 이들에게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험한 길을 달리거나 담벼락을 넘어 갈 때도 그 충격이 운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왜 이런 생명체가 생겨났는지, 괴물은 왜 트럭안에 자리를 잡는지, 운전자는 괴력을 지닌 생물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 알 재간이 없다. 딱 30분 정도 해괴망칙한 볼거리로 제공했다면 모를까 장편영화로 찍기에는 시나리오가 빈약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저씨, 제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어요?”

 

그 말만 벌써 수백 번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마치 중2 사춘기로 돌아간 것처럼. 그녀는 일어나서 길게 늘어선 줄을 피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시끄러운 댄스음악이 요동치는 가운데 아쉬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김빠진 콜라를 들이켰다. 이미 식어버린 감자튀김과 한입 베어 물고 남은 햄버거를 쓰레기통 투입구에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넌 정말 개새끼다.

 

사람들은 착각에 빠진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불멸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며 둘은 첫사랑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제대로 읽어보면 첫 장면부터 놀라고 말 것이다. 로미오는 실연의 상처를 가득 안은 젊은이로 나온다. 그래봤자 열여섯이지만. 첫 연인을 잊지 못해 방황하다 줄리엣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안나 까레리나>는 또 어떤가? 희대의 불륜녀로 보이는 그녀지만 소설은 오빠가 바람피우는 바람에 그 부인, 곧 시누이를 달래기 위해 모스크바로 달려가는 기차 안 풍경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스스로 부정을 저지르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마치 로미오가 두 번째 사랑에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세상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펼치는 한바탕 연극이다.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것은 동네 놀이터였다. 그녀는 그네에 앉아 울고 있었다. 담배를 피우며. 조명등 아래에서 얼핏 보아도 갓 중학교에 입학한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놀이터를 지나 늘 뛰곤 하던 코스에서 조깅을 삼십분 정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없었다. 담배꽁초만 모래밭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댄스클럽에서였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오후에 선생을 모시고 춤을 배우는 곳이었다. 시에서 운영해서 꽤 저렴했다. 수강생은 대부분 어린 소녀들이다. 한참 춤을 추고 싶을 나이다. 에어로빅으로 단련된 아주머니들이 맨밥에 콩처럼 있고 남자는 나 혼자였다. 달마다 수강을 하기에 아주 가끔 남성들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석 달 이상을 버티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남자들 속에서 여자는 더 잘 지내지만 여성들 사이에 남성들이 끼면 왠지 위축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게이? 그건 절대 아니다. 남다른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처음에는 참고, 두 번째는 정말인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세 번째는 어디 한번 하고 도전해본다. 춤도 그랬다. 아이돌들이 추는 춤을 보고 따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말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수차례 있었다. 심지어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금품을 받아 반 자체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럼도 불구하고 계속 춤을 추는 이유는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전교에서 발레를 가장 잘 추기로 유명한 그녀에게는 마약 쟁이 남자친구가 있다. 그는 매번 실수를 하고는 손이 발이 되기로 비는데. 그럴 때마다 화를 내다가도 정말 내가 곁에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용서를 하고 만다. 그러나 결국 남친은 또다시 마약에 절어 큰 사고를 저지르고 급기야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홀로 남는다. 발레복을 갖춰입고 연습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린다. 친구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었다.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발레 슈즈를 집어 던진다. 그렇게 며칠을 연습에도 빠지고 우울함에 젖어 있던 때 친오빠가 다가와 무심하게 한마디 던진다. 평소에도 대면대면하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다.

 

너 뭐하냐, 발레 안 가냐, 이제 뚱뚱해져서 포기했나 보지?”

여전히 비아냥댄다. 아무 소리를 하지 않고 째려보기만 했다.

잘하는 게 그거 밖에 없잖아. 발레 빼면 뭐 내세울 게 있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남들 신경 쓰지 마. 그냥 시선을 즐기라구. 그러지 못하겠으면 그냥 무시하든지.”

 

다음날 다시 연습실 앞에 섰다. 깊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연다.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은 어떻게 감히 네가 이곳에로 일치된 듯하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면 토우를 고쳐 신고 평상시처럼 바에 다리를 올리고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 , 트루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피엔딩

  

어때, 근사하지?”

글쎄... 살아봐야 알지.”

슬쩍 눈치를 보니 내심 마음이 누그러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사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화를 내서 뭐하냐라는 생각도 있겠지만. 새삼 아내가 고마웠다.

뜻밖에 맞이한 조기 퇴직.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으로 호기 있게 프렌차이즈 가게를 열었지만 돌아온 것은 피곤과 짜증뿐. 결국 본전만 겨우 건지고 발을 뺐지만 본격적인 불행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더 이상 사업은 하고 싶지 않아 친구와 함께 맡긴 펀드가 반 토막 나는데는 석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때라도 그만두었다면 서울은 힘들어도 경기도 끄트머리에서 연금이나 저축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성질이 발목을 잡았다. 친구는 앗 뜨거라하고 발을 뺐지만 나는 오기가 생겨 있는 대로 조각난 돈을 긁어모아 주식에 올인했다. 정말 죽고 싶었다. 왜 한강다리를 서성이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하고 복학을 앞둔 큰 아들과 아직도 고등학생인 딸을 쳐다볼 면목도 없었다. 그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다행히 자식들은 앞가림을 잘하고 있다. 아들은 직장을 잡고 제 몫을 다하고 있고 딸도 프리랜서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 와이프가 숨겨두었던 돈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고작 사업 하나 망하고 주식에서 실패했다고 폐인처럼 지내며 밥이나 축내는 남편이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까? 자식들 때문에 참은 건가?

남들은 철이 들어도 벌써 들었을 나이인 예순이 되어서야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건 귀농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라고는 여행이나 연수 말고 가보지 못한 내게는 정말 낯선 도전이었다. 어쩌면 도피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귀농학교를 다니면 차근차근 준비하기를 5, 드디어 장소를 선정하고 집까지 마련하여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아내는 죽기 살기로 막았다. 정 가겠다면 혼자 가라고. 몇 번이나 함께 가보자고 졸라도 소용없었다. 아이들도 죄다 말렸다. 정말 이러다가는 이혼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구. 그렇게 반대하던 아내가 서너 번 내려와보더니 혼자 사는 모습이 꼴사나워 인다고 말하곤 했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아내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함께 살기로 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였다. 딸은 아들내외 집에 잠시 얹쳐 있기로 했다. 며느리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침부터 기분이 들떴다. 아내에게 이것저것 보여줄 생각에 흥분되었기 때문이다. 퇴직이후 단 한 번도 기를 펴보지 못한 내 어깨도 한결 우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들어 드디어 농사유통업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내심 자신이 있었다. 농사의 문제는 작물이 아니라 유통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곧 중간마진을 없애고 직거래처를 잡으면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은행에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도 한몫했다. 일종의 재테크 상담을 해주면서 거래처를 늘려나갔다. 사실 시골에서 변변한 은행상담 한번 받기 어려운 처지에 나 같은 사람은 단비같은 존재였다. 한번 물꼬를 트자 타지인이라고 대놓고 싫어하던 태도가 확 달라졌다. 마누라와 애들 버리고 혼자 도망친 탕아취급에서 구세주까지는 아니어도 믿고 의지할만한 한동네 사람이 된 것이다.

어제만 해도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데 보일러를 봐주겠다고 왔다. 배기통에 문제가 있는지 가스가 가끔 스며들어 아예 떼지 않고 대신 난로를 피웠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오기 전에 에이에스 신청을 해두었는데 시골이라 그런지 기사가 제 때 오지 않았다.

뭘 기사를 기다려. 내가 기술자여, 기술자.”

내심 찜찜했지만 하라는 대로 두었다. 시골에서는 남이 베푸는데 거절했다가는 완전 의절이다. 일단 고치게 하고 따로 센터 사람이 보게 하면 되지 뭐. 우리 마을에서는 만능 손으로 통하는 김 씨 아저씨는 한때는 잘나가는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던 중소기업 사장이었다고 한다. 아이엠에프로 한순간에 가세가 기울자 에라 모르겠다 싶어 고향으로 낙향하여 전파상을 운영하고 있다. 

, 다 고쳤으니까 오랜만에 마누라 궁뎅이나 두들기면서 단잠 자보더라구.”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딴 방 쓴지 오래돼서.”

그럼, 쓰나. 아무리 원수 같아 등을 맞대더라도 부부는 한 방에서 자야지.”

, 네네

아내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래도 이젠 사람 사는 집 같기는 하네.”

나는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렇지?”

정말 이제는 더 이상 와이프 고생시키지 말고 대접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오늘 저녁은 기념으로 읍에 나가서 먹자구, 아주 고기 잘 굽는 집이 있어.”

뭐 쓸데없이 돈을 써요. 집에서 해 먹어요, 오다가 농협에 들러 장도 다 봐왔어요. 이젠 정말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지.”

아니 뭐 매일 살 건데 오늘은 그냥 바깥에서 ...”

아내는 딱 잘라 말했다.

이제 제가 왔으니 집주인은 당신이 아니라 나예요. 여기 명의도 당장 내 이름으로 바꿔요, 알았어요?”

나는 기뻤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차갑기만 하던 방에 보일러를 떼니 잠이 솔솔 왔다. 그날 밤 신혼이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팔베개를 해주며 이대로 죽으면 진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었다. 정말 여한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챔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우리 아버지는 영화를 그다지 즐기는 분이 아니셨다. 가족끼리 영화관에 간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반면 어머니는 영화광이셨는데, 어릴 때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을 자주 찾곤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피는 어머니를 물려받은 것 같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극장에 갔을 때 일이다. 가족 모두가 영화관에 가다니 드문 일이었다. 중앙극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제목은 <챔프>였다. 아버지를 복서로 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

소년은 눈물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영화상영 내내 극장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아버지. 당연히 울지 않았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아마도 졸음에 못 이겨 나온 하품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극장을 다녀오면 어머니는 한바탕 평론을 하신다. 연기가 어떻고 의상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영화보다 더욱 극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묘사하곤 하신다. 그럴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다. 한참을 이야기에 몰두하던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갑자기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당신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예의상 물어본 것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머니는 이러저러한 장면이 감동적이었다고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으셨다. 그날 저녁 우리는 들었다. 아버지가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는지를.

나는 아이가 울고불고하는 장면에서는 전혀 눈물이 나오지 않더란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거 왜 있잖아. 아이를 부자 집에 맡겨놓고 놀이동산에서 시간을 때우던 남자주인공이 사격경품으로 큰 인형을 상으로 받잖아. 그 인형을 아이에게 주려고 하는데 이미 아이는 근사한 선물을 받았더구만. 차안에 타고 있던 그 남자 슬그머니 차 밖으로 곰인형을 버리던데, 그만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더라구. 참 나이 들어 주책이지 뭐야. 영화관에서 눈물을 다 흘리고.”

안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와 내 동생은 잠에 빠져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