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선장과 포도 행성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5
제인 욜런 글, 브루스 데근 그림, 박향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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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첼로 곡은 몇 백 년이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악보가 헌책방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게다가 그 주인공이 카잘스였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그럼에도 카잘스는 흥분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더 한 끝에 비로소 온전한 첼로 연습곡을 발표했다.


토드 선장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경험이었다. 아파트먼트 쓰레기 처리장에 누군가 버린 책무더기에서 처음 보고 왠지 모를 기분에 집어 들었다, 개구리가 주인공인 것 같은데 토드 선장이라니, 삽화는 더 기가 막혔다. 중간 중간 킬러도 있었지만 대부분 흑백이었다. 마치 그리다 만 것처럼. 참 성의가 없구나.


그러나 시간이라도 때울 마음으로 들추어 보다 그만 반해버렸다. 기괴하면서도 황당하고 기쁘면서도 서글픈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 테면


그래도 가끔씩은 심심합니다. 

우주선 밖으로 보이는 것은 넓고 깜깜한 우주와 멀리서 빛나는 별들뿐이니까요.


세상에나? 이게 아이들 책에 나올 글인가? 알아보니 시리즈였다. 당장 나머지 다섯 권을 모두 구입했다. 그럼에도 아쉽다. 왜 여섯 권밖에 안 나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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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 일반판 (2disc)
한재림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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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을 다시 보았다. 처음 관람했을 때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박시백의 조서왕조실록을 다 읽고 나서 접하니 더욱 흥미로웠다. 미처 몰랐던 역사적 디테일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영화에서는 김종서와 수양대군, 곧 세조와의 대결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픽션에 해당하는 관상쟁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어찌 보면 곁가지다. 이 둘은 업치락 뒤치락하며 세력을 과시하지만 정사에 위하면 수양의 힘이 막강했다. 당장 왕권을 차지해도 상관이 없을 만큼. 그러나 한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힘만 세서는 안 된다. 명분이 필요하다. 어린 단종이 스스로 넘겨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열쇠가 되는 건 황포정사다. 김종서가 미리 노란색으로 관리가 될 사람을 표시해두면 왕이 지명하는 식이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해도 이는 명백한 국기문란이다. 영화는 이 사태를 교묘하게 뒤틀어 단종의 몰락을 부추기는데. 여하튼 완결성을 두고 보면 매력적인 상상임에는 틀림없다. 더욱이 세조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명회의 비하인드는 압권이다. 목이 잘려 죽을 것이라는 예언에 두려워하던 그는 무사히(?) 숨을 거두게 되어 안도하는데. 그러나 그는 결국 훗날 부관참시를 당한다. 이 묘사는 두 번째 보면서도 여전히 전율에 휩싸인다. 굳이 영화에서 관상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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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
J.C. 챈더 감독, 데미 무어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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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곧 돈이 중심이다. 공기처럼 자연스레 느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섬뜩하다. 모든 것을 사고파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나가 떨어져야 한다. 마진 콜은 거대한 자본이 사실은 사탕발림임을 고발한다. 온갖 미사여구로 주식을 팔아치우지만 사실 대부분은 쓰레기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도 책임을 떠넘긴다. 리만 브라도스 사례는 대표적이다. 영화는 배드 캅과 굿 캅을 내세워 인간적인 고뇌를 내비치지만 그렇다고 결론이 변하지는 않는다. 진짜 피해자는 외면한 채 정리해고의 대가로 두둑한 보상을 챙기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진짜 애도의 대상은 암으로 죽은 강아지다. 그렇다면 막스의 말처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할까? 정직하게 말해 이건 차선을 택하려다 최악을 만나는 형국이다. 사람은 꿈꾸는 동물이다. 헛된 희망인줄 알면서도 왜 복권을 사겠는가? 사회주의는 이 꿈을 현실에서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단 그 로또 당첨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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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왕생 1
고사리박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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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처럼 죽음을 외면하는 나라도 드물다. 물론 사건사고에 의한 사망은 연일 발생한다. 그러나 이 또한 주변 이야기일 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단지 숫자나 미스터리에 그칠 뿐이다. 사실 사망은 확률싸움이다. 누구라도 죽을 수 있다. 그저 눈감고 피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고인의 유품마저 죄다 태워버린다. 그 원인은 오랜 유교문화탓이다. 종교를 배척하는 유학은 현세를 중시한다. 곧 죽음 이후의 세계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늘 있게 마련이다. 불교만큼 이 세상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종교도 없다. 다른 교리가 심판에만 매달려 있다면 불교는 우선 업경대를 통해 자신이 지는 죄를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곧 누군가가 아니라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더라도 최후의 보루가 있다. 바로 지장보살이다. 수많은 업보에 쌓인 중생들을 가여운 눈으로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끝까지 구원하려 애쓴다. 부처되기를 포기한 채. 만화 극락왕생은 이러한 불교 세계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한다. 다시 한 번 딱 1년 동안만 살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업을 풀고 오겠는가? 문제는 그 시기가 고3이다. 이 난제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 보는 내가 다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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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거장이 만난 거장 6
엑토르 베를리오즈 지음, 이충훈 옮김 / 포노(PHONO)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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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말이나 글은 무시한다. 직접 현장에 뛰어 들 능력이나 재능이 없는 이들이 주변을 맴돌며 내뱉는 헛짓거리다, 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친절한 길 안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독설이 자신들의 무기라는 착각을 버려라.


그러나 때로는 예외도 있다. 평을 하다 필드에 나가는 경우다. 대게는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변명도 조잡하지만, 드물게 성공하는 사례도 있다. 베를리오즈도 그랬다. 음악평론으로 먹고 살다가 스스로 작곡에 나섰다. 그게 빅히트를 쳤다. 이쯤 되면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볼만 하지 않을까?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은 평소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베토벤하면 떠오르는 미치광이 작곡가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는 배제한 채 철저히 음악에만 집중한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비평가들은 합창교향곡을 무시무시한 광기 혹은 천재의 마지막 미광微光(아주 희미하고 약한 불빛)으로나 볼 뿐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 앞서 이미 여덟 편을 썼다. 그가 관혁악법에서 썼던 수단으로 다다랐던 그 지점 너머로 나아가려면 남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성악과 기악의 결합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다. 제대로 된 평로이란. 평소 내 생각과 일치해서 더 짜릿했다. 베토벤이 미쳐서 작곡한 게 아니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제발 부탁이니 엉터리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많이많이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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