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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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젠가 반드시 멸망한다. 헛된 망상이 아니다. 확인된 사실이다. 이미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는 살아남는다. 이 또한 과학적으로 옳다. 단 조건이 있다. 태양계가 버티고 있는 한. 사실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혹은 조금이라고 알게 되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이 덧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라질 건데. 차라리 외면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굳이 허망한 일에 몰두할 필요가 있을까? 브러이언 그린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확신에 찬 과학자가 아니다. 늘 회의적이다. 과연 이게 맞는 일일까? 역설적으로 그의 회피적인 태도 덕에 우리는 방대한 지식을 쉽게 얻게 되었다.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않고 여러 의견을 두루두루 알려주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의 주 전공이 된 통일장 이론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근본적인 의문을 달고 산다.


통일장이론과 우주론에 깊이 빠졌다가도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이 무거웠고, 그럴 때마다 시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는 시간이야말로 물리학의 핵심 개념임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끝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시간은 우리가 떠올리는 시계가 아니다. 우주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리는 개념이다. 문제는 개인의 죽음은 훨씬 가까이 다가오지만 지구 혹은 우주의 멸망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브라이언은 후자에 속해 있었지만 연극 관람 후 토론회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멸망은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저 사라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만약 내가 사망선고를 받게 되면 무수한 선택지에 놓이게 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병원을 다닐까 아니면 삶을 내려놓고 정리할까? 갑자기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은 가족들이 내 장기를 기증할까? 아니면 거부할까? 이처럼 지구나 우주가 경험하지 못할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게 개인이다. 우리는 시간의 황혼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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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난 무한한 시공간으로의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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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이나 어린 시절 이후 처음 방문한 동네를 대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반면 거의 멈춰 있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군 입영 통지서를 받고 보충대에 들어간 첫 날 밤이 그랬다. 마치 시계가 멈춰버린 듯 한 적막감에 다들 한숨을 삼켰다. 정말 시간은 어떨 때는 빨리 다른 경우는 느리게 가는가? 정답은 맞다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상대적이다. 당장 무슨 말도 안 되냐고 반발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시계는 왜 있는가? 그건 편의적인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저 정의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초단위 시계는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혹은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다면? 이런 말같지 않는 소리를 하는 과학자가 있다. 주인공은 카를로 로벨리. 그는 과학은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 세상과 동떨어진 전문 용어가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곧 어제와 오늘, 내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통속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속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사라진다. 오로지 입자들만이 서로 부딪칠 뿐이다. 이 세계가 바로 양자역학이다. 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 이해한다. 과학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깰 때 비로소 문을 열어준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이 길을 함께 할 유용한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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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네버랜드 클래식 37
쥘 베른 지음, 김주경 옮김, 레옹 베넷 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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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어린 시절은 늘 추억의 대상이다. 희한하게도 그 때 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른바 성인이 되고나서는 시간이 로켓처럼 흐를 뿐 딱히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지 않는다. 이 말은 어렸을 때 풍성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경제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다양한 경험이 자산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 이런 호사를 누린 이들은 극히 드물다. 독서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무던히도 많은 책들을 읽었다. 특히 방학 때는 밀린 숙제를 하듯 쌓아놓고 독파했다. 그 때의 습관은 아직도 남아 여전히 책을 곁에 두고 있다. 물론 옛날처럼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가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다. 80일간의 세계일주도 그렇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영화도 보았고 만화로도 보았다. 그만큼 인상적이었다는 건데 뜻밖에도 완연복은 읽지 못했다. 


다시 찾아보니 만약 아이였다면 꽤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길고 책이 하드카버라 무겁다. 반대로 어른에게는 딱이다. 특히 포그에 대한 자세한 사전 설명이 마음에 든다. 그거 왜 무모한 세계여행을 계획했는지 초등학생 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나아가 들어 제대로 알아보니 꽉 짜인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다만 그답게 시간에 맞춰. 어쩌면 포그는 삶에 찌든 어른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약간의 활극과 로맨스를 결들여.


덧붙이는 말



지금까지 나온 판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일단 완역이고 초판본의 삽화까지 곁들여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하드카버라 소장가치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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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 안준범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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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존재했다. 구체적으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피케티는 역사적 탐험을 거쳐 그 기원과 작동원리를 파헤친다. 핵심은 소유권이다. 다시 말해 희소한 자원을 누군가나 집단에게 귀속시키는 장치가 있다. 자본주의라고해서 다를 바는 없다.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 뿐. 주인공은 기업이다. 오랜 국가주의의 전통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선 대기업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주인공이다. 능력지상주의로 무장한 채. 이제 곧 막스의 예언대로 가진 자들 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자본주의는 붕괴되어 무산자들의 세상이 될 것인가? 글쎄, 난 회의적이다. 만약 그런 시간이 온다면 그건 새로운 중세다. 개인주의와 경쟁은 사라지고 소수의 집단에 복종한 채 겉으로만 평화로운 암울함의 터널. 비약이 아니다. 중국을 보라. 시장의 날개를 달라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자유는 시궁창에 처박아두고 있다. 공산당에 충성맹세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거대한 국가주의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뭉쳐 만들어낸 괴물이 과연 자본주의의 대체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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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천재들 - 전 세계 1억 명의 마니아를 탄생시킨 스튜디오 지브리의 성공 비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이선희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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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히트 친 영화나 드라마의 속사정을 털어놓는 내용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중에는 뜻 깊은 의견도 있으나 대부분은 가십이다. 주인공이 바뀔 뻔 했다거나 작가가 교체되었다거나. 유명세에 기댄 짜내기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예외도 있다. <지브리의 천재들>도 그렇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된 미야자키 하야오는 물론 그와 쌍벽을 이루는 다카하타 이사오,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빛나는 별들이 총출동한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거대한 작업을 해낸 스즈키 도시오다. 아사히 잡지의 만화책 출판에 관여하면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읽는 내내 놀라움을 자아낸다. 마야가 수다쟁이지만 작업만 들어가면 진중해진다거나 지브리 스튜디오를 빚을 얻어 출범시키고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무용담은 마치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연상시킨다. 하야오 팬들뿐 아니라 성공한 기업의 깊은 내막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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