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모리 히로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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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는 고요함이 강물처럼 흐른다. 깊이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순수함이 뿜어져 나온다. 소위 선진국이란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남의 방해나 비난을 받지 않고 대접받는 사회를 말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그 지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위가 그 사람을 말하고 또 그렇게 믿는 인간들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위의 장벽을 더욱 높게 쌓아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관공서든 학교든 직장이든 하다 못해 동창회나 지역단체에 이르기까지.

 

기시마 선생은 지위를 둘러싸고 끼리끼리 나눠먹는 풍조에 펀치를 날린다. 오로지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 전산실 문이 열리기만을 줄을 서서 기다리다 오픈하면 일착으로 들어가고 보직 따위는 엿이나 먹어라 하고는 연구실을 떠나지 않는다. 당연히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은 그를 꺼리게 되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우리나라와 흡사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정신세계는 변함이 없다. 교수가 된 이상 연구가 본 업이며 그 외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연구와 행정 혹은 사교를 적당히 섞어 잘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헛된 짓거리다.

 

방법은 하나다. 타협은 없다. 제 갈길을 갈 뿐이다.

 

덧붙이는 말

 

인맥이나 지역색이 우리처럼 강한 나라도 드물다. 좋게 보면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이 누구나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흔히 법과 원칙이야말로 사회규범이라고 하지만 법과 원칙은 지배자의 통치수단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더우기 지도자의 인식에 따라 거꾸로 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보라.  단순히 강제적인 법과 원칙이 아니라 합의가능한 제도의 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 출발은 내가 받고자 하는 대접을 남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구 주체는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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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물학이다
에른스트 마이어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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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현재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렇듯 자명한 사실이 한때는 금기시되었다. 심지어는 감옥에 가기도 했다. 신의 영역을 감히 건드렸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암흑에 갇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임도 마찬가지다. 곧 사람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적응과정을 거쳐 변천해왔다.  조물주가 자신의 형상을 빚대 만들었다는 것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진화이론에 아직까지도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이 많다. 특히 창조설을 옹호하는 종교계에서 반발이 심하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지구가 둥근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진화의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생물학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물리나 화학같은 자연과학과 달리 부분과 전체를 함께 아울러야 하는 포괄적인 분야다. 곧 특정 물질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기만 해서는 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의 반응과 생태계의 변화를 같이 파악해야 한다. 나비의 날개짓 하나가 국가 전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생물학의 논의를 총망라하여 소개하고 있다. 초기의 적자생존론에서 종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생물학 연구의 변천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동시에 생물학의 취약성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전문분야로서는 다루는 영역이 넓어 물리나 화학처럼 연구의 계통이 엄밀하게 세워져 있지 않다.

 

그러하고 해서 생물학의 취약성이 인간이 진화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같이 진화해왔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진화론은 다윈의 연구성과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진리를 발견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의 발견이 시대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돈다'고 주장한 갈릴레오와 마찬가지로. 다윈은 연구결과룰 묻혀두고 사후에 공개할 것을 당부했다. 그의 처사는 현명했다. 진리는 영원하고 거짓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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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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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혹하는 사람이 있다. 김갑수도 그중 하나다. 어마무시한 오디오와 자신만의 작업실, 그곳에서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 커피머신을 들여놓고 농부들의 피와 땀이 어린 원두를 갈아 우아하게 마시며 매일매일 꽉찬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클래시컬 음악을 원판 엘피로 듣는다. 누구나 꿈꾸는 로망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방을 원한다. 오죽하면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소설을 썼을까? 독립된 공간이 보장되면 창의력은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면 사람들은 무언가 남다른 일을 하게 마련이다.

 

김갑수는 음악을 들었다. 그의 이력이 대단하다는 건 직접 간접으로 알고 있다. 많은 음악을 듣다보니 그 음악을 말하고 싶어지고 또 그 인연으로 방송국 디제이도 하게 되고 얼굴도 알려져 티브이 출연도 하게 되었다. 그의 이런 모습이 누구에게나 반가운 건 아니다. 남들은 힘들게 사는게 혼자 참 속도 편하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건 남을 위한게 아니다. 지극히 자기만족을 위해서다. 나도 한 때 내가 들은 음반을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적이 있었다. 나만 듣기 너무 아까워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건 과시욕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을 자랑하고 싶은. 지금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 잠시 멈추어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참고로 처음 알리고 싶었던 음악은 바하의 <마태수난곡>이다.  

 

덧붙이는 말

 

김갑수처럼 작업실은 커녕 변변한 내 방조차 없으니 <지구 위의 작업실>같은 책은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가 없다. 더불어 개인적인 이야기도 되도록이면 옮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든 과장되게 마련이라 역풍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저 반짝 호기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자서전에 쓰인 개인의 흑역사를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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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 특별 한정판 (3disc) - [2disc + O.S.T.]
정지우 감독, 박해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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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깨비> 열풍이 거세다. 늘 뒷북인 나는 종영이 되고 나서 다시 보기로 뜨문뜨문 보고 있다. 공유에 빠진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김고은이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좋아서다. 성차별 아니니 오해마시길.

 

김고은에게는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연기인 듯 연기 아닌 자연스러움이 장기다. <치즈 인 더 트랩>에서도 그랬다. 다소 황당한 전개와 원작인 웹툰과 스타일이 달라 미스 캐스팅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줍음과 활달함을 오고가는 김고은의 표정을 보기 위해 끝까지 달리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은교>에서도 그랬다. 두려움과 셀레임이 교차하는 은교의 복잡한 심정을 탁월하게 보여줬다. 다만 박해일의 연기는 아쉬웠다. 아무리 노인 분장을 했다고 해도 관객들은 주름 안에 숨어 있는 청년의 온기를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나이대의 배우가 연기했다면 더 좋았을 뻔 했다.

 

덧붙이는 말

 

김고은의 마력은 젊음에 기댄 측면이 크다. 교복을 입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여배우에게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김고은은 어머니에게 남들이 바라는 그런 여배우는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데 과연 어떤 계획인지 궁금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여전히 젊음을 무기로 남성 관객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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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 아웃케이스 없음
이수진 감독, 정인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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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모두 기준이 다른 것이다. 재미, 감동, 교훈(?). 내 원칙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한공주>를 보고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여자아이를 집단 성폭행하는 질풍노도의 남자 청소년. 그들은 놀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인형을 쓰고 그 짓을 했다. 그 장면이 내 머리속에서 사리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사람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우아한 부모밑에서 훌륭한 교육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모가 나기 쉽지 않다. 반면 매일매일이 전쟁이고 애들 교육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집안에서는 상식은 말아먹게 마련이다.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한공주는 그 틈새를 어떻게든 비집고 나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부딪친다. 그러나 울분을 토하면서도 합의금을 받아 챙기는 아버지와 쉬쉬 하기 바쁜 선생과 손가락질하는 친구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한공주는 죽어야만 용서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내가 왜,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왜, 내가 왜 죽어야 해.

 

덧붙이는 말

 

천우희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곡성>을 포함해서 다른 영화에서 맹활약하는 그를 보고 프로필을 보다 어, 하는 느낌이 들어 다시 보니 맞아, 천우희였어. 될성부른 떡잎 운운하지는 않겠지만 역시하는 감탄사를 숨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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