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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에서 2001년 12월 나옴.
이미 널리 알려지고, 좋은 평을 많이 받은 책에 대해 쓰는 건,
뒷북 치는 것 같아 좀 쑥스럽네요.
하지만 제가 지금 읽은 걸 어떡해요. --;
이 책을 산 건 2002년 1월이네요. 1월 17일에 제 손에 들어왔다고
면지에 적혀 있어요. 이것저것 욕심 내서 사놓고는
(사실 그것도 사고 싶은 것의 1/3 정도밖에 못 사는 거예요)
쌓아뒀다가 한 2년쯤 지난 뒤에야 읽곤 합니다.
알라딘을 통해 산 이 책은
표지 제목 글자를 검은 박으로 입히고(전문 용어로 '먹박' ^^),
글자를 안으로 새기듯 눌렀는데(전문 용어로 '형압'이라 합니다),
제작 공정에 실수가 있었는지 먹박 형압이 두 겹 겹쳐져서 나왔어요.
바꿔달라면 바꿔주겠지만, 제목이 두 겹일 뿐 다른 건 문제가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습니다.
결함이 있어 반품된 책은 폐지공장으로 팔리는 수밖에 없는데,
표지를 볼 때 눈이 잠깐 어지러울 뿐 독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책을
폐지로 만드는 건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이 책에 담긴 내용,
지은이와 편집자의 노력, 아름다운 그림,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이 책의 가치가 순식간에 폐지 몇십 원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바라던,
비전문가를 위한 역사책, 교양서는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5, 6년 사이 "그림 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모두 그림 감상자의 눈으로 안내할 뿐
이 그림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게 해주진 않았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긴 하지만 그 시대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이끌어주진 못합니다. 그 그림이 그 시대에 왜 의미가 있는지,
머리로 "그렇겠구나" 생각은 하게 되지만 정말로 공감하진 못합니다.
사실 책이나 화면에서 유럽의 명화라는 것을 보면,
저게 어째서 그렇게 훌륭하다는 건지 궁금증이 다 풀리질 않습니다.
서양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아르놀피니의 약혼>이란 그림도
저게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습니다.
원화를 못 본 탓도 있겠지요(복제화로 수십 번 본 그림도
정작 원화 앞에 가면 그 감동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혜원 신윤복(1758-?), 하면 국사 시간에 조선 후기의 3대 화가라고
외웠던 기억이 있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치지 않고,
그의 그림이 과연 어떤지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3대 화가라고 이름만 무작정 외우게 하다니,
정말 무식한 교육이었어요.
이 책은 미술책이 아니라 혜원의 그림을 통해
당대의 생활사를 알리는 책입니다.
혜원의 풍속화 30장을 엮은 <혜원전신첩>이란 화첩의 그림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그 그림 속 인물이 입은 옷, 머리에 쓴 것 등등을
통해 이들이 어떤 인물일지 알게 해줍니다. 어떤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그림일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림만으로 정확한 모양새를 파악하기 어려운 옷차림은
실존하는 유물 사진이나 알기 쉽게 새로 그린 그림으로 다시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통해 혜원의 그림을 다시 찬찬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혜원은 왜, 무슨 마음으로 그렸을까,
혜원, 그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 기생의 풍류에 대해
좀 낭만적으로 생각하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생은 아무리 미화해도 남성중심주의 계급사회의
피지배계급 여성이죠. 양반의 풍류는 우리 선조의 멋이긴 하지만
그들이 풍류를 누리는 방식은 자신들이 천하게 여기는
기생과 광대를 불러 춤추고 노래하게 하고,
여자 주무르는 것이었어요. 목숨보다 지조를 중시해야 한다면서
여자에게만 수절을 강요하는 게 그들의 윤리학이었지요.
해학과 에로티시즘 속에 이런 걸 보여준 혜원,
그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교정에 단점이 있다면 그림 설명 부분에서 간간이
그림의 왼쪽 오른쪽을 헷갈리게 한 경우가 있고,
편집디자인에 대해 말하자면
한 작품의 일부만을 따서 보여줄 때는 정말 그 부분만 따로 보여줄
분명한 이유(해당 부분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이유.
특정 인물상의 옷차림이나 표정 따위를 따로 이야기할 때라거나)가
있어야 하는데, 물론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장식적인 목적으로 그냥 그림의 인물상 하나를 따서 앉힌 경우도 꽤 되네요.
그림은 전체로서 이해돼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일부만 발췌하는 건
훼손에 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전체 그림를 보여준 다음에
그림의 일부를 따서 보여주는 거니까 괜찮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장식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국보 135호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혜원이 그린 그림 30장을 화첩으로
엮은 것인데, 처음에 누가 엮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위창 오세창 선생이
다시 사들여서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답니다.
오세창 선생은 일제시대에 사재를 털어, 국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모은 분으로 유명하지요. 그분이 모은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간송미술관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