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멍으로 통량갓을 굴려 낼 놈!
[속담사전]에서 본 말입니다. 푸핫. 어쩌면 이런 표현이 다 나왔을까요.
담벼락에 옹색하게 뚫린 개구멍으로 갓을 굴려 내보내다니,
거참 기술이 좋아야겠네요.
통량갓이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통량-갓(統凉@-)「명」통량을 단 좋은 갓. ¶단천령이 훌륭한 창의를 벗고 꾀죄죄한 두루마기를 입고 통량갓과 탕건을 벗고 헌 제량갓을 쓰니….≪홍명희, 임꺽정≫§
‘통량을 단 좋은 갓’이랍니다. -.- 그럼 통량은 무엇이냐?
통량(統凉@)「명」경상남도 통영에서 만든 갓의 양태.
양태는 갓의 바깥쪽에 두르는 둥글넓적한 부분을 말합니다.
통영갓이 명품이라더니, 그러니까 통량갓은 통영갓을 말하는군요.
돈이 썩어나서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니라면
명품 갓을 개구멍 사이로 내보낼 생각을 하겠습니까.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쩌라구요.
명품 갓을 찌그러뜨리지 않고 멀쩡하게 개구멍으로 굴려 보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한 사람이라면, 참으로 재주 뛰어난 사기꾼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 말은 왜 생겼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양태가 넓은 갓은 양반 남자들만 썼겠지요.
서생들이 밤드리 노니다가 새벽에 몰래 집에 들어온다든가
아니면 몰래 밤나들이 나갈 적에
개구멍으로 기어나가기도 하지 않았겠어요?
서민들이 쓰던 패랭이는 테가 넓지 않아,
패랭이를 쓰고 개구멍을 통과하거나
일단 패랭이를 벗어 먼저 내보낸 다음 몸이 빠져나오기도 쉬웠겠지만,
넓적한 갓을 쓴 양반은 이도저도 못하고 난처했겠네요.
갓을 쓴 채로 구멍을 기어나가려면 갓이 찌그러질 게 뻔하고,
벗어서 굴려 내보내기도 쉽지 않고.
그런 난처한 상황도 너끈히 해결할 만큼 수가 좋은 사람,
바로 “개구멍으로 통량갓을 굴려 낼 놈”이네요. ^^
한술 더 떠서 쥐구멍으로 통량갓을 굴려 낼 놈이란 말도 있습니다. ㅎㅎ
* 표준국어대사전의 “통량갓” 예문에 ‘제량갓’이란 말이 나와서 그건 뭔가 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제량-갓(濟凉-)「명」제주도에서 만들어 내는 품질이 낮은 갓. ≒제량. ¶단천령이 훌륭한 창의를 벗고 꾀죄죄한 두루마기를 입고 통량갓과 탕건을 벗고 헌 제량갓을 쓰니 의복이 날개란 말이 빈말이 아니어서 청수한 얼굴까지 갑자기 틀려 보이었다.≪홍명희, 임꺽정≫§
제주도 말총이 갓 재료로는 으뜸이었다고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정작 제주에서 만든 갓은 하품 취급을 받았나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