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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김영옥 외 지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 / 봄날의책 / 2020년 3월
평점 :
3년전 처음으로 엄마 병수발을 들게 되었다.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나는 너무 힘에 부쳤다. 나는 너무 나약해서 아픈 사람 앞에서 힘든 티를 다 냈다.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웠다.
건강했던 엄마의 한 쪽 다리가 뼈만 남을 정도로 앙상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간호할 사람이 딸인 내가 되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엄마가 나를 키워준 만큼, 나도 엄마의 노후를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예행 연습 시간이 예고도 없이 너무 갑작스럽게 왔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사람을 돌보는 일,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해 내가 너무 무지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것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체력은 떨어질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돌봄이란 것은 상호작용이고 매뉴얼대로만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더 사회적으로 발화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돌봄 노동은 여성이 주로 하는 젠더 기반의 직업이 되어있다. 여성의 노동이 가치절하 되어있는 부분 중 이 돌봄 노동도 들어간다. (하긴, 여성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 받는게 뭐가 있겠느냐만... 출산정도일까?)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야 하고, 그 분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돌봄의 노동을 남성들에게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개인들 사이의 돌봄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돌봄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개인은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취약함, 삶의 우연성, 육체의 유한성,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개념은 결국 젊고 건강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될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개념은 언젠가 젊고 건강한 이들 또한 반드시 배신할 것이다.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무엇보다 인간의 취약함을 사유하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용변 처리를 할 수 없는 몸 상황을 ‘차라리 죽는 게 나은‘비참함으로 경험하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규범이 강제한 ‘해석된 경험‘이며,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새롭게 ‘재해석되어야 할 경험‘이다.
약함을 수치스럽고 혐오스러우며 경멸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다치거나 아프거나 늙는 일은 단순한 불편이나 손상 이상의 두려움이 된다. 물론 아무리 다치고 아프고 늙어가는 일이 모든 인간의 존재조건이라 해도, 그것이 구체적인 나의 일, 내 몸이 겪는 일이 될 때 두려워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간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여겨져왔던 건강한 몸, 독립적 개인, 개인의 소유물로서의 권리라는 관념들을 비판적으로 되짚어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전제하는 사회보다, 모든 사람이 취약함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는 사회가 더 ‘현실적‘이다.
‘몸이 없기를 요구하는 경제‘에서 병자, 노인, 장애인은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짐일 뿐이다.
독립과 의존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배체제를 지속시키는 허구적 프레임인 것이다.
권리를 박탈당하고 자원이 없는 이들이 독립에 도달하지 못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의존과 돌봄 없는 독립은 불가능하다.
아픈 사람들은 이미 아픔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다해다. 문제는 나머지 사람들이 질병이 무엇인지를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느냐다.
우리는 흔히 권리를 소유물처럼 말하곤 한다.("10대에게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다"). 하지만 권리는 소유하는 것이라기보다 발휘되는 것이다. 관건은 권리가 발휘될 수 있는 관계의 맥락과 사회문화적 조건이 존재하는가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책임이다.
권리는 ‘쓸모‘를 입증하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고, 각자가 기여한 만큼 돌려받는 등가교환도 아니다. 권리는 인권과 존엄성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고, 의무는 어떻게 공유되고 분배될 때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돌봄은 희망할 만한 것, 머무를 만한 것, 마땅히 배워야 하고 깊이 경험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장애는 손상에 따른 자연적 상태가 아니라, 손상을 입은 몸들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 관습과 환경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다. 동일한 맥락에서 치매 역시 인지‘손상‘이 인지‘장애‘가 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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