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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위한 철학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랑코 미트로비치 지음, 이충호 옮김 / 컬처그라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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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그다지 건축과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철학에 대해 무지한 공학도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보인다. 다만 핀트를 조금 수정해서 이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건축이 아니라, 생각하고 사고를 '지어올리는' 과정에 대한 철학론과 역사에 대해 다룬 책.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김광현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이데거의 '짓기, 거주하기, 사고하기' 사람은 '짓지 않으면' 거주를 사고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이 인간 존재에 이렇듯 중요하다. 

 다만 여기서 '집'이라는 존재를 '개념'과 '생각'으로 해석한다면 이 책은 훨씬 더 받아들이고 요리하기에 좋은 책이 된다. 조금 더 나아가 적용하자면, 건축 및 건축 이론 문제에 있어 어떠한 철학적 마음가짐으로 해석해야 할 지에 대한 소양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무관한 믿음을 얻는 데 사용하는 합리적 논증과 이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견해, 즉 '사고'는 독립적일 수 있는 것일까? 

 

책 전반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에 집중한다. 즉, 사고는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언어가 현실을 조각해 우리의 사고 대상으로 빚어내는 것인가? 혹은 더 나아가, 우리는 모든 지식을 경험을 통해 습득하는가, 아니면 일부 지식은 선천적인가?  간단해보이지만 이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오래된 중요한 문제이다. 

 

이렇듯, 어떻게 사고가 유래하며, 우리가 사고를 지어올리는 과정에 대한 질문은 건축에 있어서 비슷한 맥락으로 전해진다. 건축 이론에서 존재론적 문제는 '건축 작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건축 작품에는 미와 같은 어떤 속성들이 있을 터인데, 그런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논의는 중반부를 지나면서 '개념'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우리가 생각함에 있어서 어떤 '개념'을 포섭하여 대상을 해석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대표되는 이 문제는 칸트에 의해 조명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어떤 것을 지각하면서 그것이 초록색이고 의자임을 인식한다. 다시 말해, 그 대상을 초록색이라는 개념과 의자라는 개념에 포섭하는 것이다. 하지만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미는 개인이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사물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어떤 개념과도 독립적이다. 따라서 그의 의견에 다르면, 개념은 사물의 미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의 판단은 순전히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칸트는 순전히 주관적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사전에 가지고 있던 이해에 의해 '항상 미리'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언어 속에 '거주'한다. 노르베르크-슐츠는 그의 저서 '건축에서의 의도'에서 건축 작품의 지각은 우리가 지각하는 사물에 대해 가진 기존의 지식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고와 생각의 근원에 대한 철학의 흐름에 따라 모든 건축 역시 순전히 그 자체의 시공간적 성질만을 바탕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져왔다. 즉, 건축이 그 시대에 적합한지를 판별할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10~20년 사이에 건축 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철학은 어떤 종류가 될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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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9mon 2013-04-2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a9mon 2013-04-28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구를 빼먹었네요!ㅠ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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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전집 4 - 국가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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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흰색 겉표지와 상당히 고급스러운 빨간 제본에서 묻어나듯이플라톤의 <국가>는 그 만큼의 철학서로서 위엄을 시각적인 요소로들부터 드러내고 있는 듯 했다고상한 겉모습과는 대조되게 이번 천병희 번역의 플라톤 <국가>는 안을 열어보았을 때 독자를 배려한 착한’ 흔적이 책 전체에 배어있었다그 동안 몇 권의 철학교양서들을 읽어오면서 전혀 교양서라는 이름답지 않게 어려운 전문용어들로 도배되어 있는 책들에 시달렸는데이 책은 원문의 온전한 번역서라기에는 초심자에게도 이해하기 쉽고심지어 재미있었다다음 장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어떤 논리를 펼칠까어떤 주제를 끌고올까 라는 호기심이 따랐고소크라테스가 그들의 제자들의 반박을 하나하나 물리쳐가는 모습들은 액션영화처럼 시원시원했다대화형식으로 전개되는 1권부터 10권까지의 각 이야기들에는 서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이 있었다또한저자는 친절하게도 책 서두에 이른바 스테파누스 표기를 붙여 책 전체를 요약하여 독자가 쉽게 전체를 개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0쪽의 짧은 요약에 한 권의 책이 모두 담겨있는 셈이다그럼에도 요약이 아닌600쪽 분량의 원문을 모두 읽어내려가는 것도 그만의 깨달음과 벅참이 있었다.

 

플라톤은 정계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기 위해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개설하고 얼마 안되어 <국가>를 썼다. <국가>에서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을 이야기에 등장하며 대화형식으로 그의 논지를 풀어나간다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상국가란 어떤 것이며그것을 통치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이며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지 차근히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와 불의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이 후 그들은 정의를 국가에서 찾고개인으로 점점 그 적용의 대상을 좁혀나간다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진리로부터체제 규모의 국가로그리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범위는 점점 좁아지지만 이상적이고 진리를 추구해야할 개인의 올바른 자세를 더 큰 체제의 국가로부터 추적해나간다는 점에서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것이다.

 

다만 그가 언급하는 형태의 '국가'는 다분히 당시의 문화와 종교, 신화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 그대로 이상향이라 추구하고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수호자에 대해 제한적이고 규율적인 도덕의 테두리를 '디자인'해나가는 모습은 마치 로이스 로리의 <The Giver>의 배경 세상같이 죽어있는 듯하기도 하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이상향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통제적인 상황을 디자인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의무적인 정의'라던가, '권위적인 도덕' 같기도 하다.

 

"그리고 전쟁이나 그 밖의 다른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권과 상이 주어져야겠지만, 무엇보다 여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하네. 그런 젊은이들한테서  되도록 많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일세. ~ 중략 ~ "우리 수호자 집단이 순수하게 남아 잇으려면 그래야겠지요" 

위와같은 대목은 21세기의 도덕으로 보자면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하지만, 플라톤이 당대 젊은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며 <국가>를 쓴 점을 감안한다면, 왠지 그가 생각하는 생각의 이상향의 종용이려니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이 후책에서는 국가(혹은 정체(政體))를 통치하는 이들에 대한 자질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그리고 책의 마지막 10권에 이르러서는 다시 정의에 초점을 맞춘다결과적으로 정의를 실현할 때 어떤 보답을 받게되고불의를 저지를 때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되돌아보고소크라테스는 혼의 불멸을 믿기를 당부한다혼의 불멸을 믿고 지혜와 정의를 삶의 목표로 삼자고 그의 제자들에게혹은 2500여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서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지난 철학사는 플라톤 <국가>의 각주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이어져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혹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드러나는 정체에 관한 철학론이 당시의 민주제참주제나 20세기 커뮤니티즘 등 역사에 적용되어 오면서 도움을 주기도악용되기도 했다하지만 그러한 부차적이거나 왜곡적인 결과는 제외하고 보더라도우리에게 플라톤의 <국가>가 주는 논리와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하다오늘날의 치자들은 과연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일까플라톤의 생각대로소크라테스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우리가 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은 한 집단을 특히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국가 전체를 최대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공산주의에 대입하여 제멋대로 해석하여는 안될 일이지만)이런 목표를 위해 현 상황에서 국가가 좇아야할 정의그리고 치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가장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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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안녕하세요, 알라딘 12기 신간평가단 인문사회과학예술파트의 셜키입니다.

3월 출시된 신간들을 대상으로 읽고싶은 책들을 골라보았습니다.

 

1. 필립 맥마이클의 <거대한 역설>

 

알라딘에서는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책을 소개한다. 개발의 렌즈로 본 자본주의 문명 비판서. 개발이 과연 무엇인지 100여년 전부터 다시 우리의 문명이 걸어온 길을 짚어간다. 20세기 중반을 넘어 냉전주의가 개발프로젝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면 그 바통은 곧 20세 말, 환경주의라는 거대한 문제작으로 전해지고, 현대의 지속가능주의에 이른다.

 

평소에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지구가 현재 어떤 문제를 안고있는지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국 그 판에는 경제와 정치가 깊숙히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도, 지구촌 전체의 꼬인 실과 같은 이해관계. '개발'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역사를 훑으며 자연과 문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이 책은 지금까지 환경공부에 창의적이고 새로운 창을 열어줄 듯 하다.

 

 

2. 앤디 메리필드의 <마술적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아직까지 자세히 모른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다. <기후변화와 자본주의>를 읽으면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옹호를 체험했다. 마르크스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에게 독일까, 길일까?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마르크스주의가 오래도록 유지하던 형식주의적 구속복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에 맞서는 대안 세계를 상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안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의 반자본주의 저항자들과 조우하게 함으로써, 21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지평을 연다.

라고 알라딘에서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개혁적 성격이 강한 책인듯 한데,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길과, 작가의 강력한 주장에 대해 어서 귀를 기울이고 싶다.

 

 

3. 존 헤밍의 <아마존>

 

'닥추'라는  말이 있다. '닥치고 추천'이라는 말로 무조건 추천하고 봐야한다는 말이다. 감히 이 책에는 그런 수식어를 붙이고 싶다. 단순한 환경이나 생태를 다룬 서적이 아닌, '아마존'의 역사와 모든것에 대한 '대하소설'같은 책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달까. 비록 추천신간으로 선정되지 못하더라도 꼭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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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
매튜 A. 크렌슨 & 벤저민 긴스버그 지음, 서복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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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는 정치권의 외곽으로 밀려나는 대중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의로 인한  의사표현 비참여가 아닌 타의로 인한 주변화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곧 '대중민주주의'에서 '개인민주주의'로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시민을 '고객'으로 혹은 주권자에서 '자원 봉사자'로 여기고 있으며 본래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개인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책 표지에는 'DOWN SIZING DEMOCRACY'라는 문구가 성조기 위해 적나라하게 새겨져있다.  세계 최강대국의 국기에는 긴 줄에 다섯 사람이 매달려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다른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제목 위의 작게 새겨진 '왜 미국 민주주의는 나빠졌는가'라는 문구는 이런 음울한 분위기에 외치는 작은 반향의 외침같다. 


미국정부의 '재창조'는 시민을 '고객'으로 재창조했다. 정부는 집단 동안보다는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으로, '이해 당사자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쉽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했다. 정부 자신의 기능만이 아니라 대중 자체를 개인화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치는개인민주주의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이라는 대목이 정말 흥미롭다. 민주주의는 유권자들의 투표로부터 성장해왔다. 그런데 현재 미국 정부는 이런 시민들의 참여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즉 에너지가 덜 드는 대안을 찾은 것이고, 시민은 '고객'으로 재창조 되었다. 정부는 고객에게 집단 행위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플랫폼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론 주도층' 주위로 시민들이 결집할 기회를 줄였다. 시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민주주의를 거치면서 형성된 '시민권'이 가지는 본질, 즉 피치자와 국가의 수직적관계를 넘어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묶어 줄 수 있는 혈연, 신념, 문화적 유대 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시민의 동의없이 시민을 '고객'으로서만 존재하는 플랫폼을 만들도록 놓아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근대 이후 시민에 대한 정부의 의존이 절대적으로 약해져왔다.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의 능동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에 의지하지 않고도, 전쟁을 수행하고 세금을 걷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열정적인 시민들은 도움이 아니라 장애가 되어 버렸다.
정말 무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이상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결집은 정부의 목적을 방해할 장애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니. 각자의 이익을 좇아 '개인'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그 국가 자신의 운영 이상으로 원대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개인민주주의는 시민권의 중요한 특성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더 이상,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기업같다. 다만, 단지 그뿐인것인가? 시민들은 개인화되고 있다기보다도 '주변화'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원제 <How America Sidelined Its Citizens and Privatized Its Public>처럼.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은 오히려 대중참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것이 통치를 위한 유일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옛날과 같이 시민군, 시민행정관, 시민 납세자의 협력 없이도 통치가 가능해졌다. 곧, 유권자의 표를 버리는 것도 쉬워졌다. 저자는 유권자의 입장 고려없이 미국의 양당이 충분히 서로를 공격하고 몰아낼 수 있었던 예시를 든다. 정말로 '유권자는 미국 정치에서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흔적기관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으로써는 '과세방법의 진화', '법원에서의 소송' 등의 무기가 있었다. 법원은 더이상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자리가 아니라 소송으로 얼룩지고, 정치는 협소한 이익을 좇아 소송으로 만들어진 공모된 거래로써 법원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저자는 대표 없는 과세의 중요 사례로서 담배 협정에 관한 속내를 생생히 보이고,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의 일부가 배제된 채 법적절차를 통해 승인된 것이라 지적한다. 의사결정의 외곽으로 밀려난 것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한때 정치투쟁을 위해 유권자 대중을 조직하고 활성화했던 정치 엘리트들이 불행하게도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수단을 발견해 왔다. 그들은 법정, 관료에 대한 특권적 접근권, '내부자' 이익집단 정치에 의존하고 있다.
책 전반에 계속해서 이런 주장이 숨어있다. 환경단체의 '개인화'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이상 환경단체는 대중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권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같은 추상적 이해관계를 다루는 환경단체 대표들, 대리인들이 의도를 왜곡할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문제는 물론 피고, 원고가 분명하지 않은 기근, 복지 등의 분야에도 해당되고 똑같이 이들을 대표한다고 자임하는 자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전체의 의견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과 의사결정이 결국 법원에서 소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환경, 교육, 미관, 종교 등은 중요한 '공적' 관심사이지만 대표자들은 소송에서 특수한 입장을 보여주기(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쉽다. '공익에 관한 이런 정의들은 자칭 대변인들과 판사 사이의 심의 과정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지난정부에서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인천공항 민영화, KTX 민영화 등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관심을 가지고 알아보아야겠다.)여론은 부정적인 입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의 업무를 시장으로 넘기는 한 방법이다. '민영화는 권력에 대한 특권적 접근을 얻게 해주는 도구이며, 일단 이런 접근이 허용되면 그 권력은 납세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행사되곤 한다.'라 걱정하는 저자의 말은 미국의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라기 보다도 정작 우리 정치에 대한 노파심같다. 책의 마지막 장 제목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하는가?>처럼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정치참여, 주변으로 밀려나는 대중이 다시한번 '누가 시민을 필요로 할지' 생각 해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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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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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이름 석자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바로 '시골의사'가 아닐까. 그처럼 책 중간중간 사진에서 보이는 그의 이미지는 수수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어울리는 허름하면서도 굳건한 모습은 딱 그리스의 모습을 그 스스로가 잘 담아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스는 최근에 재정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던 터라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저자가 그리스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지 되게 궁금했었다. 이 시점에 그리스를 다녀온 그라면 역사와 유적에 대해서도 사회적 문제를 엮어 그의 생각을 잘 솎아 설명해주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품고말이다. 책을 완독한 이후에는 그런 생각이 모두 깔끔히 접혔다. 그는 시종일관 담백한 문체로 그리스의 옛 역사를 되짚어 간다. 공간적 배경을 따라 이동하는 발걸음과 독자의 시각은 그의 역사해설과 신화이야기에 취해 옛 유적을 걷는다. 그리고 현지에서 역사와 유적을 지키는 이들과 의사소통하고 느끼는 생각이 여과없이 책에 담겨있다. 

 

20년간 품어온 꿈을 실현할 때의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꿈이라하면 사람에따라 입장과 요구치가 많이 다를  수 있겠으나, 진정한 의미로써의 꿈이란 과연 박경철의 그것이 정말로 이상적이다. 진정한 꿈이란 죽기직전 침대에 누워 생각할 적에 정말로 하지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가득차게 되는 그런 일이 아닐까. 죽기 직전에 어렸을 적 꾸었던 동경과 그리스 땅을 밟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할지언정 외제차를 타거나 100평짜리 집에 살아보지 못한것에 대한 후회를 짚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를 읽던 20여년 전의 전율을 서두에서 전한다. 덧붙여 '이 여행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인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라며 그에대한 무한한 신뢰와 여행의 절실함을 설명해준다. 그는 스스로 지천명의 나이를 넘은 늦은 시기라 많은 아쉬움이 든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3자의 시각에서는 부러울 뿐이고 그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존경하는 대문호의 삶을 되짚어보고 현지땅을 밟는 것이 나의 소망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저 '인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꿈을 잊지않고 좇아갔다는 것은 3자에게도 행복의 풍만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나도 그런 꿈을 잊지말고 품고 살며, 결국엔 좇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행복 역시 전해진다.

 

한껏 시위를 먹인 활 줄을 놓듯 자신 앞의 운명을 도끼로 쪼개며 나아가는 영웅의 용기에서 영감을 얻는 조각가의 끌로, 미술가의 붓으로, 시인의 펜으로 영웅은 영원히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책 전반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우리는 공간의 이동을 따라 발을 옮겼을 뿐인데, 어느새 2000년의 시간을 건너왔다. 신화는 고대그리스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는 그들을 유적에 더해 감상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당시의 예술가들이 조각으로, 미술로, 글로 신화와 현대를 이어준다.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는 매끄러운 인과관계의 이상이다. 그리스 역사와 신화는 유적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현대사회의 우리는 그 사이 예술가들의 노력없이는 그리스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라 신전은 역사를 품고 제자리에서 2600년을 굳건히 지켜왔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니케상의 몸매의 관능성으로 부터는 이미 신이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스파르타 중앙광장은 더이상 예전같지않고 황량하며 전사상의 무릎꿇고 한 쪽 방패로 몸을 가누는 모습으로부터는 연민만이 느껴진다. 

 

'모든 선의를 베푸는 것이 친구다.' 저자 박경철은 끊임없이 책에서 니코스와 소통하며 그의 묘소에 도착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라고 새겨진 그의 묘비는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저자는 낯선 외지땅에서 그의 인생멘토에게 한국식 존경의 의미로 절을 올린다. 이 기이한 광경을 지켜보는 현지인에게 'He's my hero'라는 짧은 대답만으로도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낯선 여행 속에서 낯익은 우정을 발견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여행기라 하면 김훈 작가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이 가장 마음속에 크게 들어 차있다. 그는 자전거로 전국각지의 자연을 누비며 역사를 짚고 가장 한국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의 문체는 사족이 없으며 깔끔하고 칼칼하다. 처음으로 진정한 여행의 의미와 소망을 품어본 계기가 되었는데, 박경철의 이번 책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준 또 하나의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문체는 비유가 짙고 담백하다못해 느끼하기까지 하지만 그리스의 감성을 잘 담아낸 그는 앞으로 그리스 여행기를 계속 써갈 예정이라고 한다. 400여쪽의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긴 여정의 서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현지의 어떤 모습을 들여다 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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