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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지음 / 사계절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방학이 좋은 점은 여유가 어느 만큼 있다는 점일게다. '바쁘다 바뻐'라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평소에 보고싶었던 책들을 쌓아놓고 이것 저것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노태돈 교수의 고구려사 연구는 오랫만에 다시 펼쳐보았다. 2001년에 구입하였고, 중간중간 본 흔적이 있는 것으로보아 그 사이 조금씩 살펴본 듯 한데, 이번 기회에 백제사에 이어 고구려사도 한권 훑어보게 되었다. 적잖은 분량임에도 일주일여의 기간을 두고 집중적으로 본 편이다.
사료의 시간성에 대한 파악을 일차적인 중점을 두고 1부 '주몽설화와 고구려 초기의 왕계'에서는 1c말-2c초에 새로운 중심으로 등장한 태조왕 세력을 현 왕실의 시조로 하는 왕계 의식을 지니고 앞시기의 추모왕계의 왕들과 그 시기에 있었던 사실들에 관한 전승이 4c 수반 부여의 동명설화를 일부 차용하여 주몽의 북부여출자설화를 포함한 건국설화를 정립하였으며, 6c후반이후 동부여 출자설화를 덧붙인 것이 현전하는 삼국사기의 주몽설화와 부여 관계 기사들이라 하였다. 2부 '초기의 정치체제와 사회'에서는 3c전반까지 부는 왕권의 일정한 통제아래서 상당한 자치권을 지니고 있던 단위정치체였다고 보여지는데, 왕권과 중앙집권력이 강화됨에따라 중앙귀족이나 관료로 전신하여 수도에 거주하게 됨에 따라 방위명 부가 고구려 지배층을 이루게 되었으며, 고국천왕 사후 왕비 우씨와 연우, 발기에 얽힌 취수혼의 문제는 선호혼으로 행해지고 있던 사회에서 성적관계에서의 집단적인 성격과 혼납금의 갹출과 분배에 따른 친족원 사이의 상호 부조와 결속, 인족과의 집단적 결연관계 유지 등 친국 구성원간의 공동체적 성격이 강하였음을 밝히며 예맥족계의 문화적 특성으로 정리하였다. 3부 '영역국가 체제의 형성과 대외관계'는 가장 집중력있게 지명과 지도를 찾아보면서 읽은 장이다. 5부의 자치력이 약화되면서 하위단위인 곡을 대상으로 지방관이 파견되었고, 4c에 들어서서 영토의 확장에 따라 성을 축성하고 지방통치를 널리 시행하였다. 6c중반 이후 중앙정계의 큰 변화로 귀족연립정권 체계가 성립하였고 군과 수사라는 명칭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대신 욕살, 처려근지, 루초 등이 새로운 지방관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병렬적인 존재였다. 고구려 말기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광역의 지역별 방어체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욕살의 성을 중심으로 다수의 성들을 통괄하는 보다 광역의 핸정군사 구역이 편성되는 경향을 보였다.(예-남생의 국내주) 고구려인의 천하관에 대해서는 1차적 찬하는 고구려왕의 은택이 직접 미치는 대왕국토(천손의식), 2차적 천하는 고구려왕의 권위 하에 종속되어 있는 또는 있어야 된다고 여기는 주변국들을 아우른 지역공간(守天의 주체, 부여.신라. 백제와 상하의 조공관계), 3차적 천하는 당시인의 세계로서 동아시아 전역이며 이는 병존적인 몇 개의 천하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4부 귀족연립정권의 성립에서는 6c중반이후 백제-신라의 침공과 돌궐과의 대립상쟁 그리고 잦은 정변으로 인하여 큰 변화를 겪은 것을 연개소문 가문을 통해 밝히고 있다. 신흥귀족으로 6c중반 이후 두각을 나타낸 연개소문 집안(동부욕살)을 통해 공병과 공조직에 바탕을 두고 세력을 확장했으나 귀족연립정권의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밝히며 고구려사의 시기 구분을 정치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봉상왕/미천왕-안원왕/양원왕-보장왕의 3시기로 나누어 보았다.
교과서의 틀에 박힌 대로 읽거나 해석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학문이 역사임을 망각하지 않도록 사료를 보고 논문을 읽고 그리고 많이 읽고 생각하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기를...... 카이스트 도서관에서 늦은 시간에 올리다(22시 3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