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느리게 읽기 (토성의고리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ocopresso</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많이 사고, 느리게 읽고, 어쩌다 쓰는 게으른 북로그</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12 Jul 2026 17:11:41 +0900</lastBuildDate><image><title>토성의고리</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9036178162020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chocopresso</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토성의고리</description></image><item><author>토성의고리</author><category>느린 리뷰</category><title>해석으로 가둘 수 없는 -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ocopresso/17377247</link><pubDate>Mon, 06 Jul 2026 18: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ocopresso/173772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593&TPaperId=173772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85/coveroff/89320455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593&TPaperId=173772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a><br/>김언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달걀 속에서 / 주르륵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 엄청나게 큰 고기만두를 먹는다 / 운동장만 한 접시 위 / 잘린 닭발들이 트랙을 돌고 있다 / 도저히 돌아누울 수 없는 1인용 석쇠 / 한쪽 뺨이 다 타버린다 / 진물 흐르는 문둥이가 된다 / (중략) / 정화조로 가는 길은 / 변기 구멍밖에 / 없을까…… 변기 속에서 나는 / 젖은 티슈처럼 풀어진다 비명도 / 고통도 없다 나는 / 포기한다 고로 / 나는 / 존재한다 // 할는지도 / 모른다<br><br>
- &lt;달걀 속에서 주르륵&gt; 부분 -<br>많은 사람들이 김언희 시인을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읽는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 이미지가 다루어지는 전복적인 방식 때문일 것이다. 좁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꽉 막힌&nbsp;출퇴근 도로 위에서 핸들을 으스러지게 쥐고 있을 때, 종일 단내나게 뛰어 다녔어도 어김없이 야근이 기다릴 때, 단물 빠진 껌처럼 되어 퇴근을 해도 쉴 수 없을 때, 여자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거나 적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심지어 관행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 당할 때, 태어난 것 말고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기회조차 얻지 못할 때, 약자라서 맞을 때, 웃음도 안 나올 때, 그런 때에, 이 모든 짓이 내일도 똑같이 반복될 거라는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은 때에, 도망칠 수 없을 때에, 그 말로 할 수 없는 기분을 말로 표현해 주는 시가 이 시인의 시라고 생각한다.&nbsp;<br>앉아 있는 기계가 되고 / 똥 만드는 기계가 되고 믿기 어려운 / 믿을 수 없는 기계가 되고 / 망상에 끄달리는 기계가 되고 미쳐버리고 싶은 / 미쳐지지 않는 기계가 되고 헛소리 헛소리 / 헛소리로 조작되는 기계가 되고<br>- &lt;990412&gt; 부분 -<br>비가 내리고 / 정신없이 / 칼을 / 찾고 있지 비가 / 내리고 투명한 벌레들이 / 실실이 내리고 손아귀에 칼이 / 돋아 있지 유리창에 / 벌레들이 / 주르르 / 미끄러져 내리고 정신없이 / 정신없이 칼 / 버릴 데를 / 찾고 있지<br>
- &lt;FA&gt; 부분 -<br>세상이 내게 침을 뱉는데 싸워봤자 이길 리가 만무하다 싶은 날이 있다. 바보짓을 강요당하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되는 날. 다 포기하고 싶은 날. 왜 태어났나 싶은 날.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혼자 그러안고 불면하는 날이 있다. 나 자신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이대로 두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싶은 날이 남자든 여자든 누구에게나 있다.&nbsp;정확하게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나를 대신해 세상에 빅엿을 날려주는 시가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nbsp;시간이 흘러도 인간 세상의 '개같음'은 변하지 않는다. 무려 26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복간되는 시집의 힘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br>"내 개는 나를 / 제 개라고 / 소개한다 길에서 만난 개에게 // 한 손에 꽃을 들고 한 손에 칼을 들고 / 한 번 웃고 한 번 우는 / 오늘의 운세"<br>- &lt;피치카토&gt; 부분 -<br>"거울의 / 집요한 농담 / 거울의 꽉 잠긴 웃음소리 / 면도날을 갈아 끼우며 아침마다 그것이 / 그것의 낯가죽을 벗긴다 / 낯가죽 아래 / 낯가죽은 / 자꾸 / 생긴다"<br>- &lt;그것을 누르면&gt; 부분 -






<br>시를 어떻게 읽느냐는 각자의 몫인 바, 내게 이 시들은 어떤 이즘(-ism)으로도 해석 불가능하며, 해석 자체가 무용한 듯하다. 그저 읽고, 느끼고, 어느 싯구에선가 걸려 시선을 고정한 채 몸을 한 번 부르르 떤 다음, 정신이 번쩍 든 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게 전부다. "길러서는 안 되는 짐승을 기르면서, 으적으적 // 대가리부터 씹히면서, 환희의 / 피눈물을 흘리면서,"(&lt;밀롱가 2&gt; 中) 웃고 있는 사람처럼, 말해져선 안 되는 주문을 들어버린 사람처럼, 한계까지 밀어붙여진 신경을 기타 줄처럼 튕기는 데 맛들인 것처럼, 이 미끌거리고 난자하고 흥건한 칼춤의 현장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집의 해제를 맡은 평론가가 결국 해설에 실패하고 말았음을 고백하는 말로 글을 마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nbsp; &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85/cover150/89320455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9855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