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작은 미덕들 흄세 에세이 4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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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기고한 느낌이 나는 글들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글의 수준이 고르고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 독특한 유머를 내재한 문체로 주제나 소재를 넘나드는 솜씨가 유려하다는 점에서 모처럼 멋진 작가를 만났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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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교육할 때 나는 작은 미덕들이 아니라 큰 미덕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약이 아니라 돈에 대한 관대함과 무관심을 가르쳐야 한다. 신중함이 아니라 용기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기민함이 아니라 솔직함과 진리에 대한 사랑을, 외교술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하는 법과 앎에 대한 열망을 가르쳐야 한다. 

사실 차이는 표면적일 뿐이다. 작은 미덕들도 우리의 가장 깊은 본능에서, 방어 본능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성이 말하고 판단하고 논의를 펼치면서 개인적인 안전을 변호하는 뛰어난 변호사 역할을 한다. 큰 미덕들은 이성이 말을 하지 않는 본능, 내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본능에서 탄생한다. 우리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그 말 없는 본능에 있다. 이성의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고 판단하고 논의를 펼치는 방어 본능 속에 있는 게 아니다.

교육은 우리와 아이들 사이에 우리가 설정한 어떤 관계이자 감정, 본능, 생각이 무르익는 특정한 분위기일 뿐이다. 지금 나는 작은 미덕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면 냉소주의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알게 모르게 커진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비밀은 적절한 때를 포착하는 데 있다. 

우리가 부자인데 우리 자녀들에게 소박한 습관을 갖게 하고 싶다면 그런 습관을 통해 절약한 돈은 모두 아낌없이 타인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그와 같은 습관은 탐욕이나 두려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유함 속에서 소박함을 자유롭게 선택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에게 낡은 옷을 입힌다고, 덜 익은 사과를 간식으로 먹게 하고 오래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자전거를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절제를 배우지는 않는다. 부유함 속의 절제는 순수한 허구이며 허구는 언제나 비교육적이다. 이런 식으로는 인색함과 돈에 대한 두려움밖에 배우지 못한다. 아이가 원하고 우리가 사줄 수 있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음으로써 아이에게 정당한 것을 갖지 못하는 데에 대한 좌절감만 안겨줄 수 있고, 현실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추상적인 원칙의 이름으로 아이의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 앞에서 암묵적으로 돈이 자전거보다 더 낫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아이는 자전거가 언제나 돈보다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곧 공부를 잘하면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은 실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고귀함이 없는 돈을 훌륭하고 가치 있는 것, 그러니까 배움과 앎의 기쁨과 뒤섞어버린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돈을 줄 때는 아무 이유도 없어야 한다. 무심하게 돈을 주어 무심하게 그것을 받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돈의 진정한 성격을 알게 하기 위해 돈을 주어야만 한다. 돈은 가장 진정한 욕구, 정신이 원하는 욕구를 만족시켜줄 힘이 없다는 것도 알려야 한다. 돈을 상, 도착 지점, 도달해야 할 목표로 격상시킴으로써 우리는 돈에 어떤 지위와 중요성과 고귀함을 부여하는데 돈이 아이들의 눈에 그렇게 비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돈이 노력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자 궁극적인 목표라는 잘못된 원칙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돈은 노력에 대한 대가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대가로, 그러니까 정당한 사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보상과 처벌을 약속하고 시행할 때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인생에는 보상과 처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개 희생은 어떤 보상도 받지 않으며 악행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악행이 성공과 돈으로 과도하게 보상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은 선행은 보상을 받지 않고 악행이 반드시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아는 게 좋다. 그렇기는 해도 선을 사랑하고 악을 증오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다. 

사실 학교는 자녀들에게는 부모 없이 혼자 처음 전투를 치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학교가 전쟁터이고 부모는 아주 가끔 사소한 도움 이외에는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일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는다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는 계속 오해를 받고 과소평가되고 부당한 처사의 희생자가 될 것을 예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스스로가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차츰 커가면서 우리의 성공과 실패, 기쁨이나 걱정을 아이들과 똑같은 크기로 공유한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자신의 재능을 공부에서 최대한 발휘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공부의 길에 들어서게 했으니 그저 앞으로 가는 게 아이들의 의무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학교가 아니라 좋아하는 다른 일, 가령 딱정벌레를 수집하거나 튀르키예어를 공부하는 데 발휘하고 싶다면, 그것은 자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불만이라는 표시를 할 어떤 권리도 없다. 자신들의 재능을 지금으로서는 아무 데도 쓰고 싶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고 몇 날이고 책상에 앉아 연필만 씹고 있어도 우리는 그들을 크게 꾸짖을 권리가 없다.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보기에는 빈둥거리는 듯해도 사실은 내일이면 결실을 맺을 상상을 하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실패로 인해 슬퍼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에 있어야 한다. 실패로 인해 좌절한다면 용기를 주기 위해 그곳에 있어야 한다. 성공으로 우쭐한다면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그곳에 있어야 한다. 학교가 협소하고 낮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곳에 있어야 한다.  것은 아

미래를 저당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는 간단한 도구들을 제공하는데 아이들은 그중에서 내일 이용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선택할 수 있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아이들이 삶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외롭고 소심한 아이라도 삶에 대한 사랑이 없고 삶의 두려움에 압도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소명을 따를 준비에 몰두해 있을 뿐이다. 삶에 대한 사랑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인간의 소명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 곁에서 그의 소명이 잠에서 깨어나 구체화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이의 행동은 두더지나 도마뱀과 유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은 곤충의 냄새를 맡고 있으며 돌연 곤충에게 달려들 것이다. 그의 옆에서 조용히,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아이의 정신이 도약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천재, 예술가, 영웅, 성자가 되기를 요구하거나 바라서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가 더없이 뛰어난 인생을 살거나 아주 평범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한다. 

소명을 찾고 발전시키는 데에는 공간이 필요하다.공간과 침묵, 그러니까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침묵이다. 우리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생각과 감정을 활발하게 주고받아야 하지만, 깊은 침묵의 구역도 그 안에 존재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여야 하지만 그들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침묵과 말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중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우리를 조금만 좋아해야지 너무 좋아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우리와 똑같이 되고, 우리의 직업을 그대로 따라 하고,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선택할 때 우리 이미지를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친구 같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우리에게는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친구를 찾고 연애를 하고 종교 생활을 하고 직업을 탐색하는 일은 침묵과 그림자에 둘러싸인 채 우리와 떨어져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면 자녀들과의 친밀감이 거의 사라진다고 내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과의 관계에는 종교 생활, 지적인 생활, 애정 생활, 인간에 대한 판단 등 모든 게 간결하게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단순한 출발점이 되어주고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한다. 구조가 필요할 때 구조를 위해 거기 있어야만 한다. 자녀들은 자신들이 우리에게 속한 게 아니라 우리가 자신들에게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든 이용 가능하며 모든 질문과 요청에 대해 우리가 아는 대로 대답할 준비를 한 채 옆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소명이 있다면,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았다면 자녀들이 우리 외부에서 소명의 싹과 존재의 싹이 요구하는 공간과 그늘에 에워싸여 조용히 싹트게 내버려둘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이 소명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 소명을 갖고, 그것을 알고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할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삶에 대한 사랑이 삶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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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뜨거운 속을 지닌 나라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동감.

영국은 결코 저속하지 않다. 순응적이지만 저속하지는 않다. 슬프다고 거칠어지는 일도 없다. 저속함은 거칠고 오만한 데서 기인한다. 영감과 상상력에서 나오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쇳소리 나는 여자의 목소리나 날카로운 웃음소리에서, 짙은 화장이나 헝클어진 누런색 머리에서 저속함이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이 나라 어디에서든 우울이 저속함을 압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사실 영국인의 대화만큼 슬픈 대화는 어디에도 없는데 언제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피상적인 이야기에 머무르고 말기 때문이다. 신성한 사생활을 침해해서 이웃을 불쾌하게 하지 않기 위해 영국인의 대화는 모두에게 극도로 지루하지만 아무런 위험이 없는 화제 주위를 빙빙 맴돌 뿐이다.

영국 점원들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다.

그렇지만 그 멍청함에는 냉소, 무례, 오만, 경멸이 전혀 없다. 멍청함에는 저속함이 담겨 있지 않다. 점원은 천박하지 않고, 그래서 불쾌하지 않다. 영국 점원들의 눈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는 양들의 눈처럼 깜짝 놀란 듯 고정되어 있고 공허하다.

우리가 상점에서 나올 때는 깜짝 놀란 듯하고 공허한 점원의 눈이 우리를 좇지만 거기에는 우리에 대한 어떤 평가나 생각도 담겨 있지 않다. 우리가 그 눈동자에 잠시 머물다 떠나자마자 우리를 즉시 잊어버리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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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매우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났다! 야호.


우리의 친구는 도시에서 소년처럼 살았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살았다. 소년의 하루처럼 그의 하루는 길고 길었으며 시간이 넘쳤다. 그는 공부하고 글을 쓰고 생활비를 벌고 자신이 사랑하는 거리에서 한가하게 빈둥거리기 위한 시간을 찾는 법을 알았다. 게으름과 부지런함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는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부지런히 일해야 할지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했다. 그는 수년 동안 특정한 직업을 갖고 정해진 시간에 일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사무실 책상에 앉기로 결정하자 꼼꼼한 직원이며 지칠 줄 모르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게으름을 피울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식사를 할 때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웠으나 거의 먹지 않았고 눈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는 때때로 몹시 슬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성인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그런 슬픔에서 벗어나리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의 슬픔은 우리 눈에는 소년의 슬픔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현실에 발을 디디지 않았고 무미건조하고 고독한 꿈의 세계에 사는 소년의 관능적이고 무기력한 우울 같았다. 그는 이따금 저녁이면 우리를 찾아왔다. 목도리를 두른 채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서 머리카락을 손에 돌돌 말거나 종이를 구겼다. 그는 저녁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뭐라고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서 외투를 집어 들고 가버렸다. 그러면 모욕을 느낀 우리는 우리와 같이 있는 게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닌지, 우리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집이 아니라 우리의 집 불빛 아래에서 조용히 저녁을 보낼 생각이었던 건지 서로에게 묻곤 했다. 

게다가 그가 기분이 좋아 보일 때도 그와 대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아도 그와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일 수 있었다. 우리는 그와 만나며 훨씬 똑똑해졌다. 우리 안에 있는 보다 뛰어나고 진지한 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우리는 진부함과 부정확한 생각들, 그리고 모순을 던져버렸다.


  우리는 그 친구 곁에서 종종 굴욕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처럼 절제를 할 줄도, 겸손할 줄도, 너그러울 줄도, 이타적일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인 우리를 퉁명스럽게 대하고 우리의 결점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고통을 받거나 아플 때는 갑자기 어머니처럼 자상해졌다. 원칙적으로 그는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뜻밖의 사람, 어쩌면 어딘지 모르게 비열해 보이기도 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너그러워지고 다정해졌으며 서슴없이 많은 약속을 잡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우리가 그에게 그 사람이 많은 면에서 호감이 가지 않거나 비열해 보인다고 말하면 그는 자기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뭐든 전부 다 아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해주면서 기뻐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로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친밀하게 행동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대해 마땅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않는지를 설명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 이유를 결코 알지 못했다. 가끔 그는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그를 자주 만났다. 어쩌면 그 사람을 자신의 소설에 이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교적인 세련된 태도나 습관을 판단할 때 그는 실수를 하곤 했다. 병 밑바닥을 수정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아니 이런 면에서만 그는 아주 순진했다. 그는 세련된 태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신이나 문화의 세련미로 말하자면 그는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악수를 할 때 인색하고 조심스러워서 손가락 몇 개만 내밀었다가 빼내곤 했다. 그러고는 소심하게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아껴가며 파이프를 채웠다.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느닷없이 무뚝뚝하게 우리에게 돈을 건넸다. 어찌나 갑작스럽던지 우리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자신이 가진 돈을 몹시 아끼며 그 돈과 이별하는 게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단 사라져버리면 곧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편지를 쓰지 않았고 우리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답장을 보내도 단호하고 차가운 문장 몇 개가 전부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멀리 떨어진 친구를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친구들의 빈자리로 인해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당장 자신의 생각 속에 친구들을 묻어버렸다.


  그는 아내도, 자식도, 자기 집도 없었다.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했던 결혼한 누나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도 평상시처럼 퉁명스러웠고 소년이나 이방인같이 행동했다. 그는 자주 우리 집에 들렀고 얼굴을 찡그린 채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의 아이들과 우리가 이룬 가정을 면밀히 살피곤 했다. 그 역시 가정을 이룰 생각이었지만 그러기 위해 떠올린 방법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더 꼬이기만 했다. 너무나 꼬여 있어서 간단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가 가면서 그는 복잡하게 뒤얽히고 냉혹한 사고와 원칙의 체계를 구축했는데, 그것은 가장 단순한 현실도 구체화할 수 없게 그를 가로막았다. 단순한 현실이 금지되고 불가능해질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그 현실을 정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깊어지면서 복잡하게 뒤얽혔고 숨 막히게 이리저리 꼬인 식물처럼 가지를 뻗었다. 때때로 그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고 우리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동정의 말을 꺼내거나 위로의 몸짓을 하기만 해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마지막 몇 해 동안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볼이 홀쭉해졌으며 뒤얽힌 생각들 때문에 피폐해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소년 같은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렇다고 소심하게 행동하는 습관이나 겸손한 태도, 매일 정확하고 세심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지니고 있던 겸허한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유명해져서 좋으냐고 우리가 물으면 거만하게 냉소를 지으며 항상 예상했던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종종 영악하고 거만하게,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심술궂게 냉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얼굴에서 일순간 번득이다 사라졌다. 하지만 항상 예상했던 일이라는 말은 이미 성취한 일이 그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무엇인가를 얻으면 곧 그것을 즐기고 사랑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문학을 속속들이 알았기 때문에 문학에서 찾을 비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학이 전해줄 비밀이 없기 때문에 그는 이제 문학에 흥미를 잃었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우리 친구들 역시 그가 찾을 비밀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로 인해 그에게 우리는 완전히 따분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를 따분하게 만든다는 말에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안다는 말을 그에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일상의 현실을 정복하는 일이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난공불락이어서 그는 현실에 대한 갈증과 혐오를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그는 끝없이 멀리서만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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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프랑스인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한 프랑스인 가족이 “뉴욕 메츠New York Mets”라고 적힌 캡 모자를 맞춰 쓰고(아마도 그들은 그게 관광객들이 더 흔히 고르는 뉴욕 양키스 팀의 모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뒤를 이어 들어오자 아다의 눈이 가늘어진다. 

- 오, 좋은데. 우리나라 미술관도 이런 스케줄 가능한지 궁금하다.

금, 토, 일, 화, 열두 시간, 열두 시간, 여덟 시간, 여덟 시간. 좋다. 긴 근무일이 평범해질 거고, 보통 근무일은 짧게 느껴질 거야. 오버타임 근무를 선택하면 3일째에는 무조건 쉴 수 있어.  

- 점점 읽을까 말까 망설여지게 하는 이런 식의 단정적 화법이 거슬리고. 아직 너무 초반이니 조금 더 읽어 보자.

누구도 메트Met(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애칭과도 같은 약칭–옮긴이)를 처음 방문했던 때는 잊지 못한다. 

- 역시 예상대로 좋은 아버지를 두신 문화 금수저.

아버지는 일과가 끝난 후 집에 있던 업라이트 피아노를 몇 시간이고 연주하곤 했다. 그는 피아노를 사랑했다. 한동안 자동차 범퍼에 “피아노”라고만 적힌 스티커를 붙여놓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 으음, 또 궁금하네. 어떻게 어디서 온 이들인지 다 아는 거지...방명록 같은 데다 쓰나?

이른 아침이지만 영국, 일본, 미국 중서부 등에서 온 관광객 몇 명이 그림에 경의를 표하러 왔기 때문이다. 

- 와, 수습 떼자마자 휴가 시기부터 이렇게 미리 말해주다니. 미국도 노조 있으면 유럽 못지 않구나.

새로운 병가와 연차 수당 기준은 바로 반영될 거고 급여는 1년간 근속을 해야 인상될 거야. 내년 봄쯤 첫 휴가 일정을 잡을 무렵에 자네를 다시 부를 텐데, 휴가는 그다음 겨울, 2월 정도로 계획하고 있으면 될 거야. 휴가 주간은 선임자가 무조건 우선 선택권을 가지니까 후임들에게 돌아가는 건 보통 그 정도야.  

- 와우, 500명!?

밥은 500명이 넘는 경비원들의 이름을 모두 아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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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저와는 안 맞네요. 4장까지 읽고 gg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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