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콘델렉타리 시비-자신의 운동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
13세기 스코틀랜드의 스콜라 철학자 둔스 스코투스는 ‘콘델렉타리 시비condelectari sibi’를 예찬했는데, 그 뜻은 ‘자신의 운동에서 기쁨을 찾으려는 의지’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흐름flow’을 강조했다. 흐름과 관련된 모든 것이 그렇듯, 수영에는 본질적인 선善, 말하자면 리드미컬한 음악 활동이 내재한다. 그리고 수영에는 부유buoyance, 즉 우리를 떠받치고 감싸는 걸쭉하고 투명한 매질 속에 떠 있는 상태가 주는 경이로움이 있다. 수영쟁이는 물속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물과 함께 놀 수도 있는데, 공기 중에서는 그와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없다. 수영쟁이는 물의 역학과 흐름을 이모저모로 탐구할 수 있고, 손을 프로펠러처럼 휘젓거나 작은 방향키처럼 조종할 수도 있으며, 작은 수중익선hydroplane♦이나 잠수함이 되어 흐름의 물리학을 몸소 체험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에게,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였다. 의사들에게 꿈은 왕도가 아닐 수 있지만, 예기치 않은 진단 및 발견, 그리고 환자의 경과에 대한 뜻밖의 통찰로 가는 샛길이다. 그것은 매력이 넘치는 샛길이므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예배와 시각화visualization( 《성경》에 묘사된 인물과 사건의 디테일을 매우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라는 그들의 수련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녀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회중은 마음의 눈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을 연습한다. 그들은 이 상상된 경험에 실제 사건의 기억에서 가져온 감각적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런 강렬한 수련을 통해, 일부 회중의 마음은 조만간 ‘상상’에서 ‘환각’으로 도약한다. 이제 회중은 신과 나란히 걸으며, 신을 듣고 보고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음성과 비전이 지각적 실체를 부여받는데, 그 원리는 환각의 경우와 동일하다. 즉, 뇌의 청각 및 시각중추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신의 음성과 모습을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 음성, ‘존재감’은 강렬한 기쁨·평화·경외·계시의 감정을 수반한다.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 한 번만 한다. 그러나 신을 단 한 번만 경험하더라도, 실제적 지각의 압도적인 힘으로 충만하므로, 평생 동안 신앙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종교적 성향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명상이나 강렬한 집중을 통해 지적·감정적 차원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 누구와 사랑에 빠지든, 바흐의 음악을 듣든, 양치식물의 복잡성을 관찰하든,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든….)
환각은 그 내용이 계시적이든 평범하든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며, 인간의 의식과 경험의 통상적 범위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적 생활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개인에게 커다란 의미를 제공할 수 있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믿음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환각이 여하한 형이상학적 존재나 장소의 존재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것은 환각을 창조하는 뇌의 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정통 유대교도들 사이에는 특이한 것을 발견했을 때 축복을 하는 관습이 있다. 그들은 창조의 다양성 때문에 신을 찬미하며, 기이한 일에 깃든 경이로움 때문에 신에게 감사한다. 오늘날 자신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투렛증후군 환자들을 바라보는 라크리트 주민들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투렛증후군을 성가시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겨 부정적 반응을 보이거나 무시할 대상으로 배척하지 않고, 섭리의 절대적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는 기이함과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전두엽은 뭔가를 억제하거나 제한하는 역할도 수행하는데, 그 대상은 파블로프가 말한 “피질하의 맹목적인 힘”, 즉 억제하지 않고 내버려둘 경우 우리를 압도할 수 있는 충동과 열정이다. (유인원과 원숭이는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지능을 보유하고 있고, 사전에 생각할 수 있으며,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그러나 전두엽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잠깐 멈춰 심사숙고를 하기보다는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충동성은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에서도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