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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인지도 기억 나지 않지만 하여간에 혼자서 속독법을 익혔다.
언제인가는 기억 나지 않는데, 왜 인지는 기억이 난다.
책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읽고 싶어서였다.
왜 이렇게 책에 대해 욕심을 부리는 지는,
왜 산에 올라가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나 같다.
책이 거기 있으니까, 이다.
책이 있으면, 아니 책이라는 껍질을 갖고 있으면 읽어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 시절에 속독법을 익혔을게다.
요사이 내가 섣부르게 익힌 속독법이 미워지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요는, 한번 읽어서 소화가 안되는 문장들이나 표현들을 곱씹고 또 곱씹는 태도를 익혔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감이 자꾸 든다는거다.
평생 수학자로서 뭔가 떠오르면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연필을 꺼내들었던 겸손한 박사처럼,
나에게도 겸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저, '읽었다'라고만 할 수 있는 겉핥기 이외에 메모하고 기억해야 할 ,
아니 꼭 그러고 싶은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데,
나는 소화하지 못한 음식을 그저 쌓아두고만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하다.
눈물이 찔끔 났던 만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그래서 내가 경솔하고 빙충이 같은 짓을 할 때 떠올리고 싶은 게 분명히 있다면, 이제는 메모지와 연필을 꺼내어 적어두고 자주 읽겠다는 소망.
좋은 책을 읽어서 이런 사소한 내 버릇을 고치는 것도 꽤 기분 좋은 일이니까.
옆에서 딩굴던 아이에게 박사가 루트에게 내준 문제를 내는 바람에,
두어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는 아이의 고통을 희희낙락 놀릴수도 있었다.
지난번 여행길에도 암산하기 장난을 치고 놀았는데.
아이와 취미도 공유할 수 있는 선물을 준 책이다.
권해주시고 보내주시기까지 한 수단님에게 여러모로 감사.^_^
(수단님, 유사가족은 저도 별로에요, 그렇게까지 해서 만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인간애는 아직 애착을 못버렸어요. 유사가족이든 유사연애든 유사우정이든, 만들어서라도, 인간에 대해 진실을 바라고 인간과 진실을 나누는 것에 대한 집착. 못버렸어요. 이런 제가 바보 같다고도 생각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