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경우를 잘 안다. 나는 굳이 당부하지 않아도 가면 간다, 왔으면 왔다, 연락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상대로부터 연락이 한참 없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안 하게 되었다. 저자처럼 마음이 있어도 정신이 없으면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연락을 하는 내가 오히려 그들을 미안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남들은 대체로 내 일정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종종 내게,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꼭 직접 만나 인사하고 떠나달라는 이상한 당부를 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우정을 나누었는데, 이 도시는 너와의 추억으로 남겨질 텐데, 내가 왜 말도 안 하고 떠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어이없어하며, “당연하지!”라고 했다. 

그는 어떻게 예견했던 걸까? 그를 만나고 인사하는 그 당연한 일을, 결국 나는 잊었다. 합격 통지를 받고 파리에 집을 구하고 이사를 준비하는 엄청난 일들을 해내느라, 나는 그에게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다. 그가 다시 떠오른 것은 몇 개월 뒤, 파리의 수퍼마켓 와인 코너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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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거 아닌지. 어떻게 어머니 본인이 직접 부른 노래를 ㅠㅠ

이 선생님의 치료법 중 특징적인 것으로 초록색 페이스트를 전신에 바르는 치료가 있었습니다. 발가벗은 온몸에 미라처럼 붕대를 감고, 아마도 약초로 만들어졌을 초록색 페이스트를 그 위에 바릅니다. 그리고 나서는 위를 보고 누워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방사선 치료로 쌓인 독소를 디톡스하는 효과가 있다는데, 좌우지간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게다가 그 30분 동안 이어폰으로 선생님의 어머니가 직접 고른 음악을 강제적으로 들어야 했는데, 심지어 그 곡들 중에는 어머니 본인이 직접 부른 노래도 있었습니다. 그것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음악 안 좋아하니까 틀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좋은 사람들이었지만요. 

- 뭣이 중한디

이 결정에는 파트너의 설득도 한몫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냐리투 감독한테 직접 음악을 부탁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아? 암이 재발해서 죽어도 좋으니까 그냥 해”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참 잔인하죠. 

- 그렇죠!

애초에 제가 현역 예술대 학생이었으면 “학교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온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 그 수업에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은 그런 녀석들에게 볼 만한 점이 있게 마련이죠. 

- 연일 친구들이 올 필요는 없지만, 나머지는 따라하고 싶다.

베르톨루치는 연명 치료를 멈춘 후 마지막 한 달을 집에서 보내며 매일 원 없이 와인을 마시고 의료용 대마도 마음껏 피우며 무척 신나게 보냈다고 합니다. 연일 친구들이 놀러 왔던 모양이라, 그가 떠난 후 그의 아내인 클레어에게 “이보다 더 웃었던 적은 없다 싶을 정도로 실컷 웃다가 즐겁게 갔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명 행복한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 역시 범상치 않은 집안

사부로가 한 살배기 아기이던 시절, 그는 그릇이나 접시를 툇마루 돌바닥에 던지며 놀았다고 합니다. 부엌에서 식기를 슬쩍 꺼내와 깨뜨리고는 그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다고요. 사부로는 ‘쩌억’ 하는 굵직한 소리보다 ‘쨍그랑’ 하는 맑은 소리를 좋아했는데, 그런 소리가 나는 그릇들은 죄다 아리타 도기 같은 얇고 비싼 그릇이었다고 합니다. 더 대단한 것은 사부로의 엄마, 그러니까 제 외할머니의 반응이었는데, 보통은 아이가 그런 장난을 치면 혼낼 법도 한데 할머니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더군요. “아아, 저 애는 소리에 민감하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요. 할머니도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는 음악 애호가였습니다.  

- 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면 어떤 식사 자리에도 잘 어울림. 감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카게’에서 식사를 하는데 BGM이 자꾸 귀에 거슬리는 거예요. 브라질 팝부터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재즈 음악까지 마구 뒤섞어놓은 플레이리스트가 너무 식상하고 시끄러웠습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시간이 갈수록 더 신경이 쓰였고, 모처럼의 맛있는 음식을 음미할 수 없을 정도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저는 집에 돌아온 후 주제 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큰맘 먹고 오도 군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만드는 요리는 가쓰라 별궁처럼 아름다운데, 가게에서 나오는 음악은 트럼프 타워 같아”라고요. 그리고 제 마음대로 선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헐, 새소년에게 먼저 연락하신 거였어!?

그해 8월에는 또 다른 젊은 재능이라 말할 수 있는, 한국의 밴드 ‘새소년’과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기타와 보컬을 담당하는 여성과 베이스와 드럼을 연주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트리오로,3 밴드 이름은 한국어로 새로운 소년(新少年)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봄 무렵 뉴욕에서 방영된 한국 채널을 우연히 보게 됐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리더인 황소윤의 기타 연주가 어찌나 멋있던지, 한순간에 팬이 되어버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당시에는 인디 밴드여서인지 좀처럼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출연한 뉴욕의 페스티벌을 보러 갔고, 공통의 지인에게 소개를 받는 등의 경로로 친목을 다지게 됐습니다. 소윤은 무려 1997년생으로, 제 입장에서는 손녀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입니다. 하지만 뮤지션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은 눈높이에서, 마치 친구 같은 말투로 격의 없이 소통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같이 앨범을 만들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도 종종 나누면서요. 

- ㅠㅠ

20220320 내게는 음악이 마루턱의 찻집 같다/아무리 지쳐 있어도 그것이 보이면 달음박질하게 되고, 주먹밥 하나 먹고 나면 남은 절반의 등산도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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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도 '본인도 몰랐던 재능'이 펼쳐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은 이렇게도 적용된다. 당시 내게 닥쳤던 불운을 나는 수없이 나누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행운은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내게는 자존심 강한 엄마가 있었다. 그때까지 주부로만 살아왔던 엄마는, 가정이 깊은 수렁에 빠지자 놀라운 에너지로 분연히 일어나 뚜벅뚜벅 집 밖으로 걸어 나갔고, 본인도 몰랐던 놀라운 사업 재능을 펼쳐 보였다. 그렇게 가세를 일으키고 자식들에게 눈을 돌렸다. 한동안 집안의 희망이었으나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나는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프랑스로 떠났다. 젊은 시절 잡지에도 낼 만큼 사진을 잘 찍었으나 포토그래퍼의 꿈을 접고 결혼한 엄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내게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버지였다면 나는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 이건 영화에만 해당되는 게 아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존버가 언제나 최종 답인 것이야.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능을 내가 오해하고 있었음을. 영화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과 이야기 구성력, 독창성이 아니라 잘 버티는 능력임을. 

진짜 버티기는 생계의 문제다. 생계가 문제가 되지 않으면, 진짜 버티기가 아니다. 

- 흑흑, 나도 같은 타입임 (유학생활을 제주생활로 바꾸면 나머지는 다 같다).

나는 유학생활의 경험으로 스스로가 경제적 불안정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알았다. 나는 기분 좋은 어느 저녁의 충동적인 외식 한 번에도 은행 잔고 걱정에 새벽녘 잠이 깨는 종류의 사람이고,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면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기 전까지는 책을 읽어도 집중을 못 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어렵다. 가난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경제적 불안정에 영혼을 잠식당하는 상황이 두렵다.

그게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안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그 일을 하게 될 때가 진짜 시작이다. 

- 호기심은 습관이다.

세상에는 달지 않은 고구마를 푸념만 하는 사람과 왜 달지 않은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이해하려는 사람이 있다. 호기심은 습관이다. 살아남기 위해 절실하게 따라 했던 친구의 진지한 탐구 자세가 나를 살렸다. 

- 어떤 편견은 절대 안 없어진다, 나라 불문.

“놀랍게도 너무나 괜찮은 사람이었고, 그나마 엄마를 위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걸 언제 봤는지 모르겠어. 그 상태가 최대한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바람마저 들더라.”


  그 말들을 들으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카트린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럴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올리비에 같은 남편을 두고’라는 생각부터 했을까? 왜 일흔의 나이는 삶을 정리하는 시기라고 생각한 걸까? 무엇보다, 60대의 부부도, 70대의 부부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 가슴 서늘한 이별을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도 꿈꿀 수 있다고, 나는 왜 헤아려 볼 수 없었을까?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는 것, 의지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고, 누군가에게는 절망이 된다. 

- 음, 나도 이 영국인처럼 생각한다.

언젠가 한 영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상적인 말을 들었다. 내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을 이야기하자 그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진심으로 사람들이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금 지구상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거 알지? 나는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 맞아요 맞아요 다 맞아요 ㅠㅠ

매일 밤 우리는 자기 전에 모든 탁자 위의 깨질 만한 물건은 다 치워 두고, 밤새 로미가 배고프지 않도록 자동 급식기에 사료를 채워 두며, 욕실과 서재의 문을 닫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고가 있었다면, 그건 물론 인간인 우리가 부주의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의사를 묻지도 않고 한 생명체를 집에 데려와 운명을 결정해 버렸으므로, 우리는 그를 무조건적으로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



  로미가 내 삶에서 변화시킨 부분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동안 내가 인식해 온 세상이 인간 중심의 편협한 관점이었다는 깨달음이 가장 큰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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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과 일한 지 어언 20년이 넘지만, 백인 남성이 한국에 일하러 와서 한국어 배우려고 하는 꼴은 한번도 못 봤다. 그나마 프랑스니까, 미국인이자 백인인 남성이 프랑스어를 쓰기는 하는 모양인데, 그런 그도 작가랑 대화할 때는 영어로 말하다 잘 안 통하자 결국 짜증을 냈다고...어떤 상황인지 그림처럼 그려져서 너무나 씁쓸하지만, 작가의 마지막 말에 동의한다.

사람은 각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법이다. 나는 그를 나의 변두리 세계관으로 끌어와 헤아려 보았다. 나와 같은 변방의 사람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별것 아닌 이유로 그들은 쉽게 포기하고 스스로를 놓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너무나 쉽게 그 잘못을 타인에게 돌릴 수 있겠다고.


  외국어를 배우고, 나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온 이들은 늘 변방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외국인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고,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이를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영어를, 프랑스어를 못하는 본인 탓이라고 여기며 어떻게든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 변방에서 치열하게 일어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상황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서 모르는 언어로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야 할 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모든 상황을 예민하게 감지해 나가며 목적에 이르는 정신적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정신승리라 할 수도 있겠지만, 힘든 변방인의 삶에도 이런 강점은 있어야 좀 덜 억울하겠다.


  세상은 제1세계의 논리와 문화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 영향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스민다. 비록 그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기 쉽지만, 그들의 특권과 차별을 의식하고 이야기하는 일은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 

- 이것은 작가가 한때 약자였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약자였을 때 겪은 경험을 결코 잊지 않는 마음의 소유자라서 나온 말. 약자로 살다가 강자가 된 뒤 돌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때 약자였던 경험과 당연하지 않은 배려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능력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자주 상기한다. 세상에는 자신도 언젠가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차이가 세상을 가르는 본질일 수도 있다. 

- 아, 이거 진짜 레알임 ㅋㅋㅋ 나도 똑같은 경험을 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걔네한테는 그저 아시안일 뿐이여 그것도 북인지 남인지 모를...이상한 분단국가에서 온 아시안.

여성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쁜 외모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남들에게 예쁘지 않다고 비춰질 스스로의 외모가 고통스러운 채로, 프랑스에 왔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분홍색 발바닥과 빛나는 털은 고양이들 사이에서나 기준이 될 만하지, 강아지 무리에서 고양이는 그저 고양이일 뿐이다. 그런 기분이었다. 눈에 쌍꺼풀이 있거나 없거나, 피부가 하얗거나 아니거나, 그들에게 나는 그저 먼 곳에서 온 다른 사람이었다. 

-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시급한데...이런 희망이 비현실적인 건 알아.

프랑스에서는 집주인이 마음대로 세입자를 쫓아낼 수 없고, 월세를 인상할 수도 없다. 법적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경우는, 집을 매매해야 하거나(세입자에게 구매 우선권이 있다), 본인이 입주해서 살아야 할 때뿐이다. 매매하는 경우 임대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고, 본인이 입주할 경우 최소한 6개월 전에 예고해야 한다. 세입자에게 법적으로 커다란 잘못이 있을 때는 계약 정지가 가능하나, 그런 경우에도 겨울에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두었다. 월세 인상은 1년에 한 번 임대계약서에서 정한 기간에만 가능하다. 프랑스 통계청은 실제 월세 인상률을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는데, 2012년부터 2021년까지의 비율을 살펴보면 0퍼센트인 경우를 포함해서 아무리 높아도 2.2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 그러네, 정말

집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집을 소유하는 거라는. 사고 나면 이후에는 집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수십 년을 빚 갚기에 맞추어 사는 삶이 과연 자유로운가? 그런 낙관은 시간이 무조건 내 편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게 아닐까? 삶의 불안정성과 시간의 냉정함을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변화하지 않을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은 건 아닐까? 집도, 함께 빚을 갚는 상대와의 관계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니, 변하지 않도록 내가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의 자기방어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하,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진짜 있다고?

그로부터 3주 후, 계약서를 쓰기 위해 만난 부동산 중개회사의 대표가 말했다. 다수의 지원서를 놓고 고민하던 집주인이 의견을 물어 왔을 때, 비교적 안정적이지 않은 재정 상태에도 우리를 추천한 것은 모두 지원서 때문이었다고. 모두들 그 집의 투자 가치와 가격 조정 가능성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만이 그 집에서의 일상과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었다고. 덕분에, 자신들의 일이 그저 ‘상품’이 아닌 누군가의 ‘삶의 장소’를 다루는 일임을 상기하게 됐다고. 누구보다 우리가 그 집에서 잘 살 것 같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도와주고 싶었다고. 대표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사무실 여기저기서 각자 일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공감

집이 무슨 잘못인가. 그 안의 내용물인 사람이 문제고,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게 사람 아닌가. 글이 안 써져서 이사를 간다니, 그럼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집과는 상관이 없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하지만 형식은 내용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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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08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볼래요!!

치니 2023-09-09 00:24   좋아요 0 | URL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
 














- 조빔의 음악이 낙천적이고 아름답게 들리는 이유

고향 브라질의 자연을 깊이 사랑한 조빔은 환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회담에 곡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을 사랑한 만큼 아마존 열대우림이 벌목되는 것을 누구보다 크게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런 조빔이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신이 이토록 어이없이 아마존에 있는 300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게 두는 것은 분명 다른 곳에 그 나무들을 다시 자라나게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는 원숭이가 있는가 하면 꽃이 있을 테고, 맑은 물이 흐를 것이 틀림없다. 나는 죽으면 그곳에 갈 것이다.” 

- 웃기지들 말라고!

생물학계나, 철학계에서 ‘동물에게 감정이 있는가?’ 하는 논의를 하곤 하는데, 만약 제게 묻는다면 단 한마디로 일축해버릴 것입니다. “웃기지들 말라고, 있는 게 당연하잖아!” 

- 역시 부르즈아였어 ㅎㅎ

저는 열네 살 무렵, ‘나는 드뷔시의 현신이 분명해, 나중에는 파리 16구에 살면서 불로뉴 숲을 산책할 거야’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던 엉뚱한 아이였습니다. 

- 아무나 이게 되냐고요

저는 예전부터 피아노 연습을 싫어했습니다. 본 공연에서 관객들 앞에서 치지 않는 이상 진정한 연습이 아니라는 것이 제 지론이기 때문에, 자랑은 아니지만 리허설도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다른 뮤지션들을 봐도 이 가설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뮤지션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람들 앞에 설 기회가 줄어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잃어갑니다. 정말 잔인한 일이죠. 배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연기할 때 비로소 프로로서의 얼굴이 만들어져요. 집에서 아무리 연습을 해본들 의미가 없습니다. 

- 어머님 대단하신 분이네

지금이니까 털어놓는 것이지만, 사실 20대 초반에 잠시 오누키 씨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다른 사람이 생기는 바람에 그 집을 나와버렸어요. 정말 너무했죠. 나중에 오누키 씨와 친하게 지내던 저희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그동안 신세를 졌다면서 그녀를 찾아갔었던 모양이에요. 오누키 씨에게 “어머님께서 단아한 진주목걸이를 주셨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그럼 그렇지

모자 디자이너였던 어머니는 패셔너블했고, 이탈리아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 영화가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의 〈길〉이었어요. 어릴 때 영화관에 가서 엄마의 무릎 위에 앉아 흑백의 스크린을 올려다보던 생각이 납니다. 정작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거기서 들었던 ‘다~리라리라~’라는 여주인공 젤소미나의 테마곡만은 오래도록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 한국인은 참지 않긔

어떤 날은 시장을 둘러보다 일본식 튀김 같은 것을 파는 노점상이 보여 무심결에 “덴푸라네” 하고 중얼거렸는데 “당신네들 부모가 들여와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버럭 화를 내길래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멈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억압한 사람들은 금방 잊지만, 억압 당한 사람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잊지 못하는 법이죠. 

- 팬들도 멋지다

여담이지만 모어 트리스와 관련해, 2017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해 생일, 해외에서 예상치 못한 나무 심기 증서가 날아왔습니다. 중국의 팬들이 돈을 모아 제가 태어난 날인 1월 17일의 숫자를 따서 총 1,170그루의 나무를 내몽골의 사막지대에 심어준 것입니다. 사전에 저희 사무실과 연락해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이름을 쓰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은 후 저에게는 비밀로 하고 계획을 진행했다고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그 팬클럽은 다음 해에 중국의 빈곤 지역에 제 이름으로 음악 교실을 세우고 악기를 기증하기도 했죠. 처음에는 그저 입 밖으로 내뱉고 본다는 느낌이었는데, ‘No Nukes, More Trees’의 메시지가 이렇게까지 세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ㅠㅠ 남일 같지 않다

할머니가 “후쿠시마 복숭아 달고 맛있어. 애들은 안 먹는 게 좋지만”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내부 피폭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복숭아를 파는 그녀의 모습에서 기쁘면서도 슬픈,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나이 든 사람들은 먹어도 괜찮아”라고 덧붙이더군요.

- 여복이 많으신 듯 / 뭐야 집에 스타인웨이앤선즈 있으면 연습할 수 있었네? ㅎㅎㅎ 

파트너가 말하길, 집에 피아노가 없다는 핑계로 연습을 전혀 안 하는 저를 보다 못해,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도록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못 이기는 척, 거실에 놓을 수 있는 조금 작은 크기의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를 골랐습니다. ‘연주 기술은 실제 콘서트 현장이 아니면 늘지 않는다’는 주의였지만, 선물까지 받은 이상 평소에도 피아노를 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영향을 주었던 외삼촌에게 갈색 피아노를 물려받았던 이래 처음으로, 60세의 나이에 저만의 피아노를 갖게 된 셈입니다. 

- 음악의 힘

9·11 사건 직후, 한동안 음악을 만들기는커녕 들을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던 저는 맨해튼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이름 모를 스트리트 뮤지션이 연주하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를 들은 것을 계기로 비로소 음악과 다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 오, 몰랐어

생각할수록 지구의 구조는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대륙판이 움직임에 따라 아이슬란드는 매년 몇 센티미터씩 넓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재생 가능 에너지의 최선진국이 된 아이슬란드는 수력 발전으로 총에너지의 70퍼센트, 지열 발전으로 30퍼센트를 조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합치면 100퍼센트 자연 에너지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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