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놓는다.


  • 사람의 영혼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 무한히 커질 수 있고, 그 비좁은 공간에 온 세상을 담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 정상에 선 사람은 세상을 제대로 내려다보지 못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은 남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법이다. 실제로 고생해본 사람만이 어떤 일에나 방심하지 않고,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렇게, 직감적으로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생기고 남보다 더 영리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 소문이란 늘 당사자에게 가장 늦게 전달되는 법이다.


  • 기억이란 아주 위험한 것이어서 우리는 원하는 것만 기억하게 마련이다. 무언가 잊고 싶다면, 비록 시간은 걸릴지언정 어떤 방법으로든 확실하게 잊을 수 있다.


  •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 어떤 물질이든 외부에서 가해지는 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갈 때 그 물질 고유의 임계점이 있다. 그 지점을 지나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 물이 끓는 비등점이 있고 쇠가 녹는 용해점이 있듯이, 정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행복감 역시 절정에 이르면 더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고통, 절망, 굴욕, 혐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릇에 물을 부을 때 가득 차면 더는 부을 수 없는 것과 같다.


  • 절망에 빠진 여자는 기회만 생기면 분노를 터뜨렸다. 소위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여자는 어떤 식으로든 억압된 마음을 풀어야 했다. 초라하고 작은 사무용 책상에 앉아 한 줌의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마을 사람들에게라도 분풀이하지 않고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하지만 ‘틀림없이’라는 것이 몹시 까다로운 열매 같은 놈이더군. 아무리 세게 흔들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를 않아. 세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많이 다르지. ‘항상 성실하라, 정직하라!’라고 배웠지만, 그런 세상이 단 한 번이라도 실현된 적이 있던가? 사람은 꼬리가 잘려 나가도 다시 자라는 도마뱀이 아니야. 자네가 말했듯이 내가 운이 좋아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열여덟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황금 같은 6년이 살아 있는 육체에서 잘려 나가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불구가 되지

    2023-11-10 17:34:14
  • 하지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절대 안 속을 거야. 내가 아직 사지가 멀쩡하고 목발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숨 쉴 수 있고 먹을거리 있으면 충분하지 않냐는 이야기, 그 정도면 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신도, 국가도, 삶의 의미라는 것도 믿지 않아. 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 권리를 찾지 못하는 한, 세상이 내 인생을 빼앗아 갔고 나를 속였다고 생각할 거야. 언젠가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내다 버리거나 토해낸 찌꺼기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낄 때까지 나는 계속 그렇게 할 거야.

    2023-11-10 17: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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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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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구구절절 남 일 같지가 않아서 흡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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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유럽은 1920년대에도 휴가를 14일이나 쓸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만 괜찮다면 자기 대신에 크리스티네를 보내서 열나흘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하겠다네요. 당신도 그 애를 알죠? 금발 막내 조카딸 말이에요. 당신도 전쟁 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잖아요. 지금 어느 우체국에서 일한다는데 아직 휴가를 제대로 가본 적이 없대요. 그래서 휴가원을 제출하면 곧바로 올 수 있다는군요. 

오메, 유럽은 1900년 이전에도 일반인이 권총을 소지할 수 있었어!

 그녀는 굴레를 벗어던진 말처럼 미쳐 날뛰며 권총을 들고 새로 개업한 싸구려 호텔에서 두 사람이 밀회를 즐기는 현장을 급습했다.  

실업급여도 있었네!

그런데 계좌에 돈이 한 푼도 없으니 6주 후에나 들어올 실업급여에 기대야겠지. 우리 복 받은 도나우 공화국의 30만 실업자들처럼 복지 기관에 가서 그 영광스러운 실업급여를 신청하고, 만약 그나마도 못 받으면 그냥 굶어 죽어야지 뭐.” 


그깟 대자연의 풍광 따위, 사진이나 유튭으로 봐도 그만이잖아, 라고 일갈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문장.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에 언젠가 열매가 열릴 씨앗을 심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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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0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이 책이 츠바이크 최고의 소설입니다!!

치니 2023-11-06 11:34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다락방 님 페이퍼 보고 담은 소설이에요! (감사감사)
초반이지만 벌써 흥미진진합니다.
 















헉, 첫 줄부터 전혀 몰랐던 거 나옴.


시간 늦추기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평지에서는 더 느리게 흐른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인터넷으로 천 유로 정도에 살 수 있는 정밀한 시계로 측정이 가능하다. 조금만 훈련하면 누구든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 실험실용 시계가 있으면, 몇 센티미터만 낮아져도 시간이 지연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계는 탁자 위에 놓았을 때보다 바닥에 두었을 때 솜털만큼 더 느리다.

알버트, 당신은....역시는 역시군요.

믿기 힘든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이처럼 시간이 지연된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무려 한 세기 전에 깨달았다. 심지어 정밀 시계도 없이 알아냈다. 그 위대한 인물은 바로 아인슈타인Einstein, 1879~1955이다. 

평지에 삽시다, 여러분.


평지에서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산에서는 덜 지연되는 이유는 산이 지구의 중심과 좀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평지에 사는 친구는 덜 늙는 것이다.

머리가 무거워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우리가 사는 지구의 표면에서는 사물이 자연스럽게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쪽으로 향한다. 해변에서 바다로 달려가면 발에 닿는 물의 저항력 때문에 앞으로 넘어지는데, 이때도 머리부터 파도에 처박힌다. 즉, 사물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아래쪽일수록 시간이 지구 때문에 느려지기 때문이다. 

비틀즈는 위대하다. 폴 매카트니는 천재이고.

우리 인간은 석양이 질 무렵 태양이 황홀한 모습으로 가라앉기 시작해 저 먼 구름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움직이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열정 가득한 지혜의 눈으로 지구에 대한 이 모든 것, 그리고 지구와 함께 우리가 뒤로 회전하면서 태양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러한 것들을 발견한 자들은 언덕 위에 올라선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1942~의 열정에 찬 두 눈●을 하고 일상에 찌들어 졸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상상 속의 세상을 볼 것이다.6


  


  ●한 남자가 언덕 위에서 지는 해를 보면서 세계의 회전을 본다는 폴 매카트니의 곡 ‘언덕 위의 바보The Fool On The Hill’의 노랫말. 

이 작가님은 예술을 즐기고 좋아하시는 분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즉, 시간은 첫 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 세상이 춤추는 생명의 여신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면 최소한 만 명의 여신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여신들의 춤은 마티스Matisse, 1869~1954의 그림처럼 거대한 군무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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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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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내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안 읽었는데...읽어보니 아직 1권 뿐이지만 내 취향은 아니긴 아님. 엔딩 전에 반전에 반전 거듭하는 스토리를 별로 안 좋아해서;; 게다가 군데군데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 묘하게 기분 나쁨. 회사에서 졸릴 때 읽기는 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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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3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우맨 과 치니님 왜이렇게 안어울리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니 2023-10-31 12:46   좋아요 0 | URL
그쳐 ㅋㅋㅋㅋㅋㅋ 뭔가 안 내킬 때는 세이다를 따라야 했는데 ㅋㅋㅋㅋㅋ 제가 또 이눔의 넘치는 호기심때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