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려 800매에 달한다. 

나온 지는 30년이 훌쩍 넘었다. 

제목은 잊혀진 부조리극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조금쯤은 해학적인 풍자를 기대하게 한다.  

작가는 아이큐 170 천재로 화학을 전공했다가, 동양철학을 공부했다가,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영작문을 가르치다가, 다시 철학을 공부하고,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전기치료 고문을 받아 기억을 약간 상실하는 고통을 겪은 뒤 이 책을 쓴다. 그리고 말한다. 122군데 출판사 중 121군데에서 거부당했지만 1군데에서 출간을 수락했고, 결국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단 한 군데의 출판사만 필요하지 않느냐고. 그러니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정신병원을 포함하는 약력에서 유추, 선병적 기질과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일 거라는 짐작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자신만만한 말투다.

이런 기본 지식을 덥썩 안겨주는 책을 읽기 시작하자, 과연 초반에는 예상대로 무언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잠깐, 이런 문장을 읽으면 일종의 자기계발서 중 별난 개인 경험과 철학 개론을 버무려 그 수준을 높인 책일 뿐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만일 당신이 무슨 일을 서둘러 처리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일에 더 이상 애정을 쏟을 만큼 관심을 갖지 않고 어서 다른 일로 옮겨가기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 64쪽

그런데 곧이어 유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서문에 작가가 조심스러우나 엄중하게 이 책 속의 나보다는 정신병원에 가기 전의 나였던 '파이드로스'가 사실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사회적이거나 반사회적인 경계는 - 정신병자는, 정말 미쳐서라기보다는 사실상 반사회적이라서 격리하는 경우가 많다 - 더 이상 긋고 싶지 않다는 식의 선언을 염두에 두게 하면서 머릿 속이 조금씩 뱅글뱅글 돈다.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이 책은 자서전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게 쓰여 있다) 

   
  자연의 볍칙이란 유령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명품이지. 논리의 법칙이나 수학의 법칙도 또한 유령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명품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게 다 인간의 발명품이지. 심지어 이 세상의 모든 게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라는 생각까지도 말이야. 인간의 상상력을 떠나 존재하는 세계란 그것이 무엇이든 있을 수 없지. 모든 게 다 유령인 셈이야. 고대에는 모든 게 다 그렇게 인식되었어.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바로 유령들이지.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면 바로 이 유령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야. 모세, 부처, 플라톤, 데카르트, 루소, 제퍼슨, 링컨 등등이 모두 다 그런 유령이지. 아이작 뉴턴은 상당히 괜찮은 유령이야. 아마도 최상의 유령 가운데 하나일걸. 우리들의 상식이라는 것은 바로 이같은 유령들, 수천수만의 유령들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아. 유령들, 그리고 더 많은 유령들의 목소리 말이야.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는 유령 말이야.  
  - 77쪽

이 때만 해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책은 사회로 돌아온 나로부터 점점 그 옛날의 파이드로스에게 기억을 집중하고 강연을 하면서, 파이드로스가 고대희랍의 철학을 배우던 당시 소피스트를 궤변론자가 아니라 진정한 수사학을 정립하여 결국 후대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철학가로 언급하는 부분에서 정점을 이루어 '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울부짖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플라톤의 철학을 비교한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비교한다. 그들이 수사학과 변증법을 가지고 놀았던 이야기를 한다. 문학에나 쓰이는 것이라고 경시되었던 수사학을 변호한다. 변증법을 미워한다. 변증법을 미워하는 논리는, 변증법이라는 자체를 또 변증해야만 하는, 그런데 그걸 변증할 도리는 아무 데도 없다는 원천적인 불가해 속에서 이론, 즉 합리화의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파이드로스는 '질 質'에 미쳐 있었던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질이란, 합리화나 이론과 상관이 없는 어떤 것이다. 아니 그걸 초월해야 하는 어떤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파이드로스는 그토록 변증법을 비롯한 모든 철학에서 합일하는 이론적 철저함을 기대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분개하는가. 이 모든 이론과 진술, 주장들이 결국 자신의 질을 망치고 세상을 퇴보 시켰다고 믿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어서 철학을 내팽개치지 않고 거기 앉아 무엇을 하고 있으며 여적 이런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 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 - 이딴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페이지마다 튀어나오니 도무지 내용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책이 나왔을 때 논란이 무성했다는 후문이 적혀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끄덕이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참으로 난감했다.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묘한 책이니. 일독의 가치가 있는가도 고민스러웠다. 글쎄, 나는 그저 피어시그만큼 머리가 유별나게 좋지 않아 미치지도 않고 더 파고들 지적 능력도 되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고 할 밖에.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rch 2011-04-0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얘기 한참 나올 때 제목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슨 책이 이렇대요~

치니 2011-04-08 19:27   좋아요 0 | URL
글을 적고나서 또 생각해보니,
적어도 모터사이클 관리술 측면에서는 제목만큼 내용이 좋아요. 선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어흑.

파고세운닥나무 2011-04-0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꾹 참고 읽어대니 쫌 알것도 같던데요^^
물론 '꾹 참는' 독서법 때문에 완독은 아직 하지 못했네요^^;

치니 2011-04-08 19:16   좋아요 0 | URL
파고세운닥나무 님은 눈치 채셨군요, 제가 꾹 참고 읽었다는 사실을! ^-^;; 그러고보면 저는 참는 걸 절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자체가 이 책의 가치를 말해주는 듯도 해요. 결국 끝이 어떻게 되는가가 너무나 궁금했으니까 재미는 없었다고 할 수 없는 거죠.
님의 리뷰도 읽었어요. 물론, 저보다 훨씬 잘 이해하셨더라고요. ^-^; 부러웠습니다. 아 참, 올려주신 사진을 보니 피어시그는 심지어 션펜을 닮았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4-08 20:45   좋아요 0 | URL
작가의 근래 모습은 도인풍이던데 말이죠^^; 말씀하시니 정말 숀펜과 어슷비슷한데요?
리뷰에서도 철학 얘기를 하시던데, 이 책에 철학 얘기가 좀 많죠? 철학 전공한 여자친구에게 이 책 읽다 뭣좀 물어버려고 했더니 본인도 재미없다며 넌더리를 내더라구요. 저도 철학 얘기 따라가는게 고역이었어요~

turnleft 2011-04-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레테"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부분이었어요. 제가 이해하기엔 아레테라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에서 더 나아지기를 지향하는 자세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을 주체와 분리하는 소크라테스 식의 '진리'에의 추구 대신, 모든 것이 자신과 합일되는, 그래서 대상과 주체가 함께 발전하는 '질'의 추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거든요.

피어시그는 서구 문명의 기본이 되는 주체와 객체의 분리가 주체를 소외시키거나 거꾸로 객체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문제는 이러한 서구의 철학적 근본을 허무는 사유가 결국 그 문명 내에서 자라난 스스로의 토대 또한 허물고 있었던거고, 마침내는 일종의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었던게 아닐까 생각이 되더군요.

암튼 100% 이해했다고는 절대 말 못하지만, 저한테는 꽤 인상적이고 강렬한 책이었습니다 :)

치니 2011-04-09 14:27   좋아요 0 | URL
턴레프트 님의 이 짧은 댓글이 전체를 정말 잘 요약해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정리가 되었어요. 특히 마지막 부분, 결국 그 문명 내에서 자라난 스스로의 토대 또한 허물고 마침내 일종의 파열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 이 말이 정답이지 싶어요!

인상적이라는 말씀에도 동의! :)

네오 2011-04-0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책을 선택하게 됐어요? 표지부터 정나미가 철절 떨어지던데요~ 예쁘게 꾸며으면 스킵했을지도 모르지만~ 요네하라 마리 신간 어떨것 같나요^^

치니 2011-04-09 14:2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알라딘에서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선택한 듯한데, 그분이 아마 연랑 님이었던가? 지금은 헷갈립니다. ^-^;
표지는 저로서는 괜찮았는데요. 흐.

마리 여사의 신간은 언제나 흥미 유발, 함 읽어볼 생각이에요. :)

에디 2011-04-1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특히 좀 직업적인 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추천하는 대가들이 꽤 있거든요) 보다보니 뒤로 갈 수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싶었어요. 그런데 첫번째 인용구는 자기계발적인가요? 저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 )

치니 2011-04-11 14:28   좋아요 0 | URL
직업적인 의식이요? 우와 그럼 에디 님은 설마 모터사이클 정비...사? ㅎㅎ
제가 아는 에디 님의 직업과 연관시켜보자니 언뜻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안 가요.
중반까지는 상당히 괜찮다 쪽으로 마음이 가다가, 후반에서 완전 헤매는 바람에 이 책 뭥미, 이래진 거 같아요.
자기계발적이지만 마음에 들어서 메모해두었던 인용구에요. ㅎ 근데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한단 생각이 들어서.

에디 2011-04-12 20:24   좋아요 0 | UR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와 이 책이 자주 오르내리죠. 앨리스가 압도적으로 많이 거론되지만...


치니 2011-04-13 13:42   좋아요 0 | URL
오륜서는 일단 모르는 책이니 패스하고,
앨리스가요? 흐음....어찌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책 속에서 앨리스를 언급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네요. 어후, 아무래도 이 책은 제가 오독한 부분이 많은 듯.

차좋아 2011-04-1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고, 라고 퍼뜩 떠오르는데 맞아요? 저 이책 읽어요 말아요 치니님??

치니 2011-04-12 13:53   좋아요 0 | URL
으음, 제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서도 ^-^;; 평소 차좋아 님을 보면 여러 방면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지라 한번 읽어 볼 호기심이 일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모터사이클 관리술 쪽에서는 아마도 저보다 훨씬 공감이 많이 갈 수도 있고요.
다만 이 책의 두께 때문에 들고 다니기에도 무겁고 누워 들기에도 마땅치 않고 책장이 잘 넘어가지도 않는다는 사실만 미리 알립니다. 그래도 읽으시겠다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부러 사시기엔 또 금액도 만만치 않으니. :)

차좋아 2011-04-12 17:51   좋아요 0 | URL
이히히^^ 좋아요 감사해요 치니님 선듯 보내준다하시고.

하지만 너무 두껍고 또 모터사이클은 관리는 아직 관심없고 그래서 안 보내 주셔도 돼요^^ 선물 받은 듯한 기분이에요 ㅎㅎ

치니 2011-04-13 13:42   좋아요 0 | URL
ㅎㅎ 넵, 나중에 관심 생기면 말씀하세요.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전반적인 공감 뒤에 남는 몇 가지 의문점들은 어떻게 해소할까, 내게 남은 숙제.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1-04-0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부제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제가 갑자기, 미친 바람이 불어,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겠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아요! 이런 의지는 중학교때 맥가이버아저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몰래 짐을 꾸리려고 했던 그때의 에너지와 매우 비슷하지요~!

갑자기 왜 이런 미친 생각을 했냐면요, 다 000국회의원 덕분이에요. 이분이 한국의 주택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러니까 주택을 무슨 기호품이라 착각하고 있는 정치인을 앞에 두고, 총기가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분에게 주택은 기호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기필코 혼내주리라고 다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책을 읽어야겠어요 ;)

치니 2011-04-01 14:15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의 진보 정당 소속인/진보 연하는 사람들/정치는 어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는 불만 투성이인 사람들/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저 - 까지,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에요.
한 마디로 시의적절한데, 짧고 작은 책의 겉모양 만큼 속이 깊지는 않다는 게 제 느낌.
강연과 자신의 칼럼을 모은 형식이라 한 권의 책을 오래 다듬어 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살짝 아쉽긴 했습니다만, 많이 읽혀서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해졌음 싶어요.

ㅋㅋ 근데 중학교 때 맥가이버아저씨는 왜 만나러 가려고 하셨어요? 한 수 배우려고? 아니믄 그분이 너무 멋져서?

굿바이 2011-04-01 16:27   좋아요 0 | URL
흐흐흐, 그러니까 제자가 되려고 했어요~ 그것도 수제자!!!!!

hanicare 2011-04-0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할 여유가 없다는 것.
일개 소시민인 제 귀에도 째깍째깍 지구 수명을 말하는 시계의 초침이 숨넘어가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는 것.

어느 시대나 위기였겠지만 지금은 그 급이 다르군요.임금이 누군들 뭔 상관~이라며 격앙가를 부르던 시절은 정말 전설시대였나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치니 2011-04-02 22:05   좋아요 0 | URL
hanicare 님, 토요일에도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시다니! ㅎㅎ 시간에 놀랍니다.

네, 이렇게 전국민을 긴장시키는 정부도 드물어요. 기껏 데모나 하다가 학교 졸업하면 어물쩡 취직이라도 잘 되던 우리 때보다 훨씬 더 한 위기감이 하루가 다르게 엄습하니 말예요.

네오 2011-04-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하고 싶네요ㅋㅋ
부제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강의인데 아직도 그러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나보네요?^^ 그냥 투표나 열심히 할래요~

안티크라이스트 4월14일 개봉한다고 그러는데 개봉관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미 이 영화를 봤지만 개봉하는 순간 초스피드로 물불안가리고 달려가서 표를 끊고 영화를보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왜냐라고 물으신다면(궁금하지도 않겠지만요ㅎㅎ)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최고'의 영화이기때문이죠~ 또 왜냐고 물으신다면 멋지게 편지형식으로 써드릴께요~

그런데 이 영화, 여성분이 보시기에는 정말 짜증스러운 스토리이죠~
어떻게보면 아이를 잃은 여인의 슬픔을 최대치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고 싶지만 라스 폰 트리에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튼 그냥 올해의 영화를 선정해볼때 2008년 베스트 파라노이드 파크, 2009년 베스트 안티크라이스트, 2010 베스트 블랙스완 이렇게네요^^

치니 2011-04-03 15:14   좋아요 0 | URL
저는 원초적으로 재미있어야 책은 그 가치를 최고치로 올릴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이 그렇진 않아요.
부제에 충실하면서 읽자면 어느 정도는 얻는 것이 있고요. 엄밀히 말하면 소위 진보파에 속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개선 사항들을 일일히 지적하는 수준이라고 할까요, 크나큰 대안이 확 나올 리야 없습니다. 답답한 심정에 집어들게 되는 책인데요, 읽다보니 저는 딱히 어느 파는 아니지만 평소 생활상에서 찔리는 부분은 많더라고요. ^-^;

안티크라이스트, 호오, 말씀을 들으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라스 폰 트리에는 애증의 감독이어요, 제게는. 아유, 아직도 어둠 속의 댄서 때 하필 맨 앞자리에 앉아서 멀미가 너무 심해 고생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도 낭만적인 사람이 못 되는데 멀미는 싫어하기 때문에;;; 약간 두렵네요. ㅎ

네오 2011-04-06 18:32   좋아요 0 | URL
안티크라이스트 이동진이 '걸작'이라고 칭하더군요^^(사실 저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김혜리는 어둠속의 댄서를 봤을때의 치니님처럼 멀미로 고생했데요~

남성과 여성의 평가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있는데 사실 저도 이부분 좋아하지 않아요(왜 하필이면 이렇게까지라며 분노했죠^^)

그런데 이번의 개봉판이 미국상영판이던데 거기서 몇초가 삭제된답니다

그런데 그 몇초 삭제장면 정말 충격이죠(미루어 짐작컨테)아마도 그 장면을 삭제했을꺼예요~

궁금하죠? 그 장면ㅋㅋ 아~제가 남성의입으로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민망해서요^^

대신에 프롤로그는 어떠한 영화들보다 굉장히 좋았습니다~레알 so cool

아~ 혹시 궁금한건데 주위친구분들중의 라스폰트리에를 좋아하는 사람있나요? 내 주위여성분들에게 그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면 거의 분개해서요^^

치니 2011-04-06 19:0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보지 않고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겠어요. ^-^;
제 주변에서 라스폰트리에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니 젊은 남성이 있고, 여성 중에는 그닥 없는 것 같아요. 흐음.

아무튼 일단 함 보겠습니다! :)

네오 2011-04-09 13:49   좋아요 0 | URL
정치의 발견 굉장히 얇은 책이네요~ 아 그런데 이책 한나라당 국회의원중의 홈피의 이주의 책하면서 추천하는 바람에 김팍 새버렸어요^^

치니 2011-04-09 14:33   좋아요 0 | URL
얇고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듯. 약간은 겉핥기 식 대안을 보여주는 듯해요.
한나라당이 저도 밉긴 하지만, 이런 책을 굳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만 않는다면야, 그분들도 읽어보면 좋죠 ~ ㅎ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이 진정으로 반영하는 것은 관객이지 삶이 아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에 열렬히 감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천재성이 아름다움보다 오래 지속된다는 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거든. 우리 모두가 교육을 받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몹시도 애를 쓴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존재를 향한 거친 투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어리석은 희망 속에서 쓰레기와 사실들을 정신에 가득 채워넣는거지. 지식으로 완벽하게 똘똘 뭉친 사람 -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이상이야. 한데 지식으로 완벽하게 똘똘 뭉친 사람의 정신은 얼마나 끔찍하겠나. 그건 마치 온갖 잡동사니와 먼지로 가득 찬 데다, 모든 물건에 적정한 가치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 골동품 상점과 같아.  
   

위대한 작가일수록, 단 한 줄의 문장, 단 한 권의 책으로 독자에게 수많은, 끊이지 않는, 답이 없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저 위 두 가지 인용문을 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첫 번째는 7페이지, 서문에서부터 나오는 문장, 두 번째 역시 27페이지 초반부터 나오는 문장이다. 서문은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말이고, 초반에 나오는 저 대사는 냉소적인 지식인으로 분한 책 속의 헨리 경이 읊은 말이다.
초반에 나는, 당연히 헨리 경의 저 대사에 저자인 와일드의 주장이 녹아 있으려니 믿고 다음을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헷갈리기 시작했다.
헨리 경의 경구 식 대사는 가끔 치명적인 오독을 불러 일으키고자 일부러 써버린 듯한, 그러니까 반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강하게 질문을 제시하는 느낌을 주었으며, 헨리 경에게 줄곧 반론을 펼치는 인물인 도덕적인 지식인 바질 경의 대사를 읽고 있자니, 냉소하는 헨리와 훈계하는 바질 중 어느 쪽이 오스카 와일드의 본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옮긴이의 해석을 보면 이 책이 나오던 19세기 당시 와일드는 탐미주의 혹은 유미주의라고 불리는 기조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고, 그의 예술에 대한 주장은 지식이나 이성 보다는 아름다움과 감각 쪽으로 완전히 편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는 줄곧 헷갈렸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발하는, 바로 그 질문들 자체가 내게는 버거운 것들이라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 그러니까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반면 이 모든 혼돈 속에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써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도리언 그레이' 경은, 내게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악의 상징,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자면 악의 꽃 같았다.
와일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 결국 악이라는 - 그리고 이 악은 이성 따위로는 애초부터 통제되지 않으며 오로지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때만 우리들을 해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도리언 그레이 같은 천부적인 미를 소유한 사람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이므로 변치않는 아름다움이라는 목표를 충족하고자 인간으로써의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고통받고 자멸하니, 결국 인간이란 예술 - 그 쓸모없는 감각적 쾌락의 끝에 있는 무언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는 바보같은 존재이고 예술가 역시 이를 조장하는 무리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혼돈은 계속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도 이젠 더이상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제 만난 십대 소녀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을 때 내가 말렸다는 것. 그러니까 이 책을 어린 영혼이 읽으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생겼다는 것.
좀 더 생각해보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11-03-1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으로 어린시절 이 책을 읽었던 분의 말에 의하면, 청소년용은 이렇대요.

"나쁜짓을 했더니 초상화가 늙었어요" --> 착하게 살자, 뭐 이렇게 결론 내게 하는? ㅋ
오스카와일드가 땅을치겠죠? ㅋㅋㅋㅋㅋ

치니 2011-03-14 22:32   좋아요 0 | URL
앗, 청소년용이 따로 나왔군요? ㅎㅎ 고전이라는 범위 안에서 그런 기획이 있었나부네요.
어떤 식으로 가지를 쳤는지 급 궁금해집니다. 전체 내용의 호러성은 둘째 치고, 와일드가 쓴 어떤 문장들은, 실제로 이 작가가 사악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자주 품게 만들던데, 흠흠.

굿바이 2011-03-1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인용문에 두들겨 맞는 기분이네요.
실은 제가, 작가는 전혀 모르겠지만, 오스카 와일드를 살살~ 피해다녔거든요. 뭐랄까, 정답은 아니어도 뭔가 발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될 것 만 같은, 노파같은 그런 심정으로다가 --;
그나저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뭣일까요...참말로....

치니 2011-03-15 13: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피해다녔다는 그 말씀, 노파같은 심정, 완전 이해가요. 그런 게 있어요, 이 양반. 쫌 무섭슴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같은 범인은 천재가 하는 양만 봐도 재미나기 땜시 읽었습니다만, 굿바이 님은 영 안 내키면 안 읽으셔도 무방할 듯. 뭐허러 피하던 걸 굳이. ㅎㅎ

네오 2011-03-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곧 예술인가" 의 질문의 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도 이젠 더이상 모르겠다"라고 정의를 내리신 건가요? :D, 제가 난독증이 걸려서 그런지 글의 정리가 안되네요~ 이번의 태그도 생략하시고~ 이번의 예담에서 새롭게 출판을 했나보져? 전 펭귄클래식판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리고 혹시 "사랑해 파리"라는 옴니버스 영화보셨나여? 에피소드중의 오스카와일드가 소재인 영화가 있져, 그의 무덤이 파리에 있다는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여~ 그리고 그 여주인공 완전 오스카 와일드 팬이던데, 그거때문에 남자가 괴로워하는것을 보고 참나~(여자는 아주 멋지게 오스카 와일드식으로 프로포즈를 원하는데 남자는 그런방식을 싫어허죠) 오스카 와일드같은 감수성을 보통 남자들이 지니기 힘들져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치니 2011-03-15 18:40   좋아요 0 | URL
네오 님은 정말 모르는 게 없으셔요! ^-^
그렇습니다, 글이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ㅋㅋ 난독증 때문이 아니라 제 글이 문제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토록 유명한 책이었는지도 몰랐어요. 예담이 출판을 했다는 것도, 네오 님이 말씀하셔서 다시 봤고. 아무튼 번역은 꽤 성실한 편이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사랑해 파리"를 열광하면서 봤죠. 제게는 나름 추억이 서린 도시라;; 그런데 이런, 오스카와일드가 소재인 영화는 아주 어렴풋하게 기억나네요. 그게 와일드였다는 건 까맣게 잊었고 그의 무덤에 찾아가는 장면은 기억을 애써 되살리니 조금씩 조금씩...에고, 이러니 뭘 보고 읽어봐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차좋아 2011-03-1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도 읽을래요. ㅋㅋㅋㅋㅋ 모임 책이었는데 읽지도 않고 모임도 안 나갔어요. '에잇 안 읽을테다!'(뭐 잘했다고 에잇이냐!) 마음 먹은게 엊그제 같은데 치니님 리뷰를 보니 궁금해서 읽어야겠어요.

치니 2011-03-16 18:44   좋아요 0 | URL
모임 책이었는데 안 읽고 나가는 거 - ㅋㅋ 기시감이 듭니다. 예전에 저도 자주 그랬던 기억이;;; ㅋㅋ
시간이 되신다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차좋아 님이 어떻게 느끼실까 궁금하거든요. :)
 
여명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읽어보려던 내가 바보스러워졌다. 콜레트에 대한 기분좋은 패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오 2011-03-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가니 문학동네의 신간이 우수수 쏟아져 있더라구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참 맘에 들져?

치니 2011-03-15 18:41   좋아요 0 | URL
^-^;; 역시, 문학동네 전집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읽었습니다. 저의 허술함을 매번 들키네요.

stillyours 2011-03-1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기 전에 한수철 님과 같은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1에서 2로 갔던 것 같아요.

치니 2011-03-18 18:55   좋아요 0 | URL
그져그져, ^-^ 읽다 보니 2로 가는 거 같더라고요. moon 님 덕분에 몰랐던 콜레트의 세계를 만났어요. 놀라운 세계.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나에게는 원래 곰스크가 없었다,기뻐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쯔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3-1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치니님, 저에게도 곰스크는 없는 것 같아요.

치니 2011-03-12 14:31   좋아요 0 | URL
아앗, 그래요? 나만 없는 줄 알고 약간 침울해졌었는데. 히히, 왠지 위로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