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어요)


어릴 때 가끔은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 뿐일까, 혹시 내 부모가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아니면 모두 한번쯤은 그러는 걸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이 아이도 언젠가는 엄마의 존재를 귀찮게 여길 날이 오겠지, 이토록 밀착된 관계가 벌어지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 나처럼 차라리 고아였으면 하는 생각도 할까, 궁금을 넘어서 약간의 조바심을 가지고 아이를 불안하게 살핀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래서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볼까 말까 망설였다.

가장 치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면 어쩌나, 조금 무서웠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보다 무섭지 않았다. 내가 그 사이 조금쯤은 어른스러워진 건지, 지레 겁을 먹어서 또 지레 의연을 떨었던 건지 모르지만, 견딜 만했다.


영화 제목 그대로 주제는 '우리는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일 게다. 

그래,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런데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그 부모에 대해서 우선 얘기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명한 사실 - 부모 없는 아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니까. 심리학자들이 주창하듯, 아이의 성격이 유전적인 것 외에도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형성된다는 점에 대해서 얘기해보려면, 더더욱 부모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케빈의 부모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아니 본인들은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둘 중에서도 엄마는 유독 그랬다. 모험심이 가득해서 온 벽지에 지도를 붙일 정도로 세상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룻밤 낭만에 못 이겨 정사를 나누고 무책임하게(!!!) 아기를 갖고 낳는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자꾸만 오늘밤 해도 괜찮은 상황이냐고 묻는 남자의 대사를 넣는다. 그래, 나도 못마땅했다. 왜 자꾸 묻는가, 걱정되면 마땅한 준비를 할 것이지, 낳는 사람이 어미라 해서 어미만이 그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어쩌면 재앙은 이 때부터란 말이다)

영화는 출산 이후 케빈의 탄생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육체적으로 온통 구속되고 정신적으로 삭막해지기만 하는 엄마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도. 우리는 여기서 케빈이 걱정되지만, 그건 영화기 때문. 실제 상황에서는 하루라도 잠 좀 제대로 자는 날이 그리울 따름이란 걸, 적어도 부모 되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해본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다. 그래,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물론 엄마도 아빠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와 단 두 사람만의 케어에 온 몸과 마음을 의지해야 하는 아기라는 존재는 그걸 모른다. 이 지점이 바로, 부모 자식간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지점. 한껏 주의해야 하지만, 우리의 케빈 어머니는 그걸 알 수 없다. 똑똑하고 아름답고 전도유망하고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더더욱 모른다, 지독한 헌신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떠올릴 새 없이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사회는 그녀의 고통을 분담하는 장치를 많이 해두지 않았다.(기껏해야 어떻게 하면 애를 숨풍숨풍 잘 낳나 하는 효율성을 위해, 다들 모여서 배를 죽 내밀고 호흡법이나 배우게 하는 정도)


케빈은 갈수록 화가 난다. 갈수록 애정을 갈구한다, '제대로' 그리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쏟아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애정을. 케빈에게 필요한 모성은 아버지나 동생과 나눌 수 있는 모성이 아니다. 극도의 이기주의를 휘두르게 하는 결핍이 그에게는 뿌리박혀있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는 이미 총알이 나가버린 총처럼 그 결핍 앞에 무력하다. 이렇게까지 분노에 휩싸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세상을 버리는 것 외에는 없지 싶다. 그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분노의 대상을 없애버리는 것과 자신을 없애버리는 것. 케빈은 약하디 약해서, 자신을 없애지 못하고 세상을 버렸다. 케빈에게는 세상이라는 파도에 맞서 의연하게 헤쳐나갈 노를 쥐어줄 부모가 부재했다. 낳고 기르고 커서까지 똥을 싸는 케빈을 걱정하는 부모는 있었으나, 그의 심연에 쌓인 분노를 지워줄 사랑을 주는, 그리하여 그 사랑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이겨내라고 북돋아주는 부모가 없었다. 그는 사실상 고아다.


두려움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 '사실상 고아들'이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짚어 볼 때 뭉게뭉게 커진다. 우리는 그래서 늦더라도 자꾸만 케빈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하다가 말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계속,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또, 결국에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 방법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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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8-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고아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중얼거릴 때가 있어요. 지금도 말이죠. 그러니 어렸을 때는 말 할 필요도 없었어요.

주위에 영화를 본 분들이 꽤 많은데 반응이 좀 신기했어요. 다들 뭐랄까, 실재하는 엄마가 아니라 이미지로서의 엄마를 간직하고 있는 듯 싶었어요. 엄마는 뭐든 참아내고 뭐든 내어주고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 희생과 사랑의 상징같은 좀 과장하면 순교자같은.. 그런데 그런 부모가 실재할까요?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요? 어찌되었건 그래서인지 케빈의 엄마를 굉장히 손쉽게 단죄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부분이 영화보다 더 무서웠구요.

아참! 잘 지내시죠? 태풍피해는 없으셨나요? 가끔 걱정됩니다 ^____^

치니 2012-08-31 21:27   좋아요 0 | URL
네에, 지금도, 맞아요, 지금도. (와락! ㅠㅠ)

굿바이 님 주위 반응이 저 역시도 신기하네요. 저는 편협한 인간관계만 유지하고 트위터 팔로잉도 저랑 비슷한 성향의 인간들만 해서 그런지 ^-^; 그런 반응이 거의 없었거든요. 한편으로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반응이었는데...
같은 맥락에서, 영화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출연자도 에바가 일하던 사무실의 남직원이었어요. 자식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 에미가 얼마나 괴로울까, 되려 동정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저는 그리 생각했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을 암적인 존재라고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이렇게 쓰고보니, 제가 너무 어미 입장에서만 생각했나 싶기도 하고, 어미란 게 대체 무언가 다시 생각하게 되고, 역시 쉽지 않은 영화다 싶어요.

태풍은 오지게 경험했지만 다행히 피해는 없었습니다. 자연 앞에 절대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사는 중. 흐, 걱정 감사합니다.

깐따삐야 2012-08-3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책도 읽지 않았는데 어쩐지 영화도, 책도 다 본 느낌이에요. 평론가 이동진이 쓴 리뷰도 보았고 다른 몇편의 리뷰도 접했는데 치니님도 엄마라서 그런가. 많이 와닿습니다.
소싯적에 어떤 여자였든 엄마는 그냥 엄마다운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저 자신을 보아도, 엄마가 된 다른 여자들을 보아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어른들이 혀를 차는 요즘 것들에 해당하는 젊은 엄마라서 반성할 점이 많은데 이 영화를 보면 좀더 긴장하게 될까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치니 2012-08-31 21:29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보기 전 스포일러 영향을 많이 받는 성정이라 아무런 리뷰도 제대로 읽지 못했어요. 예고편과 틸다 스윈튼만 보고 선택한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만듦새가 뛰어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

에혀, 엄마다운, 그것이 뭔지 아직도 곰곰히 생각하고 있어요. 풀리지 않는 숙제인 듯. ㅠ (반성하지 않아도 돼요, 깐따삐야 님, 그것만은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 ㅎ)

프레이야 2012-08-3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를 두 번 보고 책은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인데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 게 느껴졌어요. 케빈이 갈구하는 애정에 엄마의 냉정한 사랑이
미치질 못하는 것 같아요. 서점에 붙은 에바의 포스터 앞에서 붙박이로 서 있던 장면,
그러고도 엄마에게 붙박았던 시선을 인정하지 않지요.
부부는'섹스라는 배타적 행위'로 아이를 또 소외시키구요.
저 인용구는 책에 나오는데 영화에선 두어 번 그런 장면이 나오죠.
케빈이 자위하며 에바를 쏘아보던 그 눈빛, 끔찍했어요. 절망적이었어요.
케빈은 아빠 프랭클린을 속으론 혐오했고 못 견뎌했다는 것도 결말에서 드러난 셈이구요.
저도 큰아이 키우면서는 서툴고 힘들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었었나 돌아보게 돼요.

치니 2012-08-31 21:45   좋아요 0 | URL
우와, 두 번이나! 언제나 프레이야 님의 열정에 감탄합니다. ^-^
저도 책을 한번 읽어볼까 싶기는 한데...흐, 아직 읽을 책이 많아서리.
그러네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었어요, 정말.
저는 사실, 섹스할 때 들키는 씬 보면서 '어후, 나도 혹시 그랬나' 찔끔 점검했다능. ㅋ
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좀 클 때까지 아이를 끼고 자는 부부도 많은데, 어쩌면 그게 더 낫다 싶기도 하고요.(자연스럽게 성을 알게 한다고나 할까...ㅎㅎ)

여전히 서툰 부모 노릇, 무조건 잘하려 하기보다는 성찰하면서 키우는 게 중요한 듯해요. 아, 그 성찰이 또 잘못된 성찰일 수도 있지만. 쩝.
 

또 올레티비 타령이다. (네네, 영화관 가는 것조차 덥기도 하고 어차피 (여러 번 말했다시피) 제주 영화관에선 보고싶은 영화도 안 해주구요.)


<다른 나라에서> 이후로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로 영화보기에 맛이 들려서 어제는 <해피 해피 브레드>를 보고 오늘은 <시작은 키스>를 봤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시작은 키스>가 최고! 아,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들어간 감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가 한국이 프랑스와 걷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면,

<해피 해피 브레드>는 일본이 스웨덴과 걷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고,

<시작은 키스>로 말할 것 같으면...프랑스가 프랑스랑 걷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 하시는 분들은 <시작은 키스>를 보시라. ㅎㅎ

보면서 가장 크게 웃음을 터뜨린 장면이라서 비록 이 페이퍼 읽고 영화 볼 분이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 스포 발설하고 싶지 않다.


거의 모든 로맨틱코메디는 사랑의 서사 중에서 '시작점'을 모티브로 한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것 같이 능청맞게 범상한 줄거리를 엮었다. (잘 나가는 미녀가 남편을 사고로 잃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사내에서 못 생긴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야기)

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하지 않다! 말하자면 시작이 바로 끝, 끝이 바로 시작, 시작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시작이 키스였다는 아이디어는 물론 반짝이지만 절대 그게 다가 아니다. (아이, 그러니까 저는 아무래도 한국판 제목보다는 원제인 'Delicatess'가 좋다구요)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섬세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섬세함이 빠진다면 그 누구도 (아무리 잘 생겨도, 아무리 못 생겨도) 그 누군가를 사랑할 챤스는 오지 않는다고 영화는 내내 속삭인다, 그걸 알아들을 만큼의 최소한도 '섬세함'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릴 만큼 티 나지 않게.

그러니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은근히 무리하게 들이댔던 '사랑=용기'라는 공식은 영화에서 당연히 깨진다. 용감한 남자가 미녀를 차지한다고? 개뿔, 아니 아니 아니다. 또 다시 말하지만, 사랑=섬세함이다. 그 사람이 살았던 어릴 적 숲에 가서 '아, 내가 이런 미녀와 사랑하게 되다니' 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욱을 들여다보면서 그녀가 슬퍼했을 자리를 지그시 밟아보는', 바로 그 섬세함이다. (그러면, 정말로 손만 잡고 자도 행복하더라 - 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스포)

또한, 신데렐라 되기 공식도 당연히 깨진다. 부러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영화 속 남녀 간 사회적 관계는 여성이 남성의 상사, 이 여성을 사귀게 됨으로서 뭇 사람의 질투와 시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때로는 부담스러워하고 때로는 자랑스러워 한다. 게다가 그런 남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여성이 더 높은 사람과 맞장 뜨고 싸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남녀가 바뀐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 유명한 드라마 대사 - 왜 내 남자라고 말을 못해?!가 여기서는 왜 내 여자라고 말을 못해?!, 딱 그렇다.) 뭐 대단한 페미니스트여서 눈여겨 본 것이 아닌데도 느껴지는 이런 신선한 설정, 아니 신선한 게 아니라 21세기에는 당연한 설정이지만 다른 로코 영화에서 별로 못 본 설정이, 로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마다 어딘지 거북해지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니 안그래도 흥미진진한 극 전개, 더 코를 바싹 들이대고 흠뻑 몰입하게 해준다.


나 혼자 재밌다고 흥분해서 과도하게 예찬한 리뷰는 그만두고, 이제 그냥 수다 몇 줄:

- 우리에겐 그토록 칭송받는 이케아, 여기선 안습. 무뚝뚝하고 실용만 내세운 허접 가구로 상징되니, 이 역시 뭔가 통쾌해!

- 오드리 토투가 저렇게 날씬했던가, 아멜리에선 몰랐는데. 어떤 옷을 입어도 원래 그녀를 위해 만든 옷 같다. 으, 살 뺴야겠어!

- 제대로 된 남자인가 알아보려면 친구보다는 할머니에게 소개시켜야 한다. 한 번 안아만 보고도 척, 할머니의 연륜을 믿자!

- 다락방 님이 그토록 사고 싶다던 핸드백이 어떤 건지 알았다. 이쁘고도 실용적이네요. :)

- 그러니까, 유머감각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잘 생겼는데 유머감각 없는 남자보다 안 잘 생겼는데 유머감각 있는 남자가 훨씬 우세한 무기를 지녔다는 데 500원 건다. 근데...여자도 그런가? 적어도 한국에선 아직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안 예쁘면 유머감각 연마해도 가능성이;; 쫌 슬프다. 쩝.

- 프랑스 영화를 보고나면 늘 일 따위로 고민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쓰잘데기 없는 느낌이 든다. 일중독자가 알콜중독자보다 더 하대 받는 듯?

- 사장에게 대들어도 해고 당할까 봐 겁나기 보다는 성희롱으로 쳐넣어주랴로 응수할 수 있는 사내 분위기, 캬 - 이거 진짜라면 프랑스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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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0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핸드백 이백만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치니 2012-08-03 21:28   좋아요 0 | URL
이백이면 뭐, 명품 치고 안 비싼 거죠? ㅋㅋㅋ 막 이래.
혹시 ppl 인가 싶을 정도로 주구장창 그 백만 들대요. ㅎㅎ

라로 2012-08-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이 영화 좋았는뎅!!!근데 올레티비는 또 뭐야??지난번에도 그거 얘기하더니,,,앱이야??
이케아 미국에서도 싼 가구 취급받던데,,,,여기선,,ㅎㅎㅎㅎ
글구 오드리가 입고 나온 옷 다 넘 귀엽지 않았어????>.<
나도 살 빼야해,,,ㅠㅠ
근데 자기는 뺄 살이 어딨다구!!!!힝

치니 2012-08-06 00:52   좋아요 0 | URL
네, 아이패드 앱이에요. 흐, 이거 맛들이니 티비까지도 안 가고 맨날 침대서 봄. ㅋㅋ
오드리 패션 다 맘에 들어요. 근데 다 날씬(정도가 아니라 완전 말라야)만 멋스러운 옷들이라는 게 함정. ㅠ

프레이야 2012-08-04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 '시작은 키스' 보고
예전의 오드리가 보고 싶어 다시 '아멜리에'를 봤어요.
어쩜 그대로더라구요. 말라깽이지만 거긴 풍만한, 얼굴도 사랑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사차원스러운 ㅎㅎ
더위에 잘 지내시나요, 치니님? 전 지금 제주 와 있어요.

치니 2012-08-06 00:53   좋아요 0 | URL
아멜리에 보고 충격 받았던 1인입니다. 저렇게 특이한 배우가 또 저렇게 보편적으로 사랑스럽다니!
제주로 휴가 오신 거여요? 오, 잘하셨어요! 짝짝짝. 헤헤
 

유아기 이후 이렇게까지 책을 안 읽고 산 적이 있었던가 싶게 독서를 안 하고 있다.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이야, 라고 하기엔 스마트폰 쓴 지가 너무 오래고, 이게 다 더워서야 하기엔 덥기 전에도 이미 책은 안 읽기 시작했고, 이게 혹시 제주살이 때문인가 하기엔 서울살이랑 다를 바 없이 지내고 있으니, 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다.

나는 전형적인 활자형 인간이고 텍스트로 된 것이면 뭐든 읽어치우려는 경향까지 있어서 활자중독인가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런 형의 인간이라고 스스로 한때나마 생각했다는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매일이다시피 '책 좀 읽어야 하는데' 라면서 '소송'을 옆에 두고 있는데 딱 한 달 전까지 읽은 지점에 그대로 있다. 물론 카프카 씨가 별로라서 그런 건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카프카 씨가 조금쯤 이해가 되네, 예전에 읽었던 '변신'은 아무 것도 아니네, 그런 생각도 한 참이다. 왤까 왤까, 나는 왜 책을 집어들지조차 않고 있나, 그러다가 또 하루가 지나려는 저녁에 문득, 영화라도 보자 싶어졌다. 눈으로라도 뭔가를 읽고 싶다는 맘이 든 모양.


제주에 와서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면 - 고통,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양심도 없구나, 정말 - 보고싶은 영화를 못 본다는 것인데,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올레티비나우에 가입해서 홍상수 씨의 <다른 나라에서>를 봤다.


깔깔깔 웃으면서까지 봤던 장면들이 많았지만, 이자벨 위뻬르와 권해효, 문소리의 아래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확치는 않으나 대충 옮겨보면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권해효 - 인간은 책임지려고 애쓰면서 살아야 한다. 거기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은 없다.

위뻬르 -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이란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책임지게 생겨먹었다. 그 이상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다.

문소리 - 아니, 권해효 말이 맞다. 인간이란 무조건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위뻬르 - 후, 그런가? 나는 아무래도 못하겠지만 그렇다 치고, 이 과자가 참 맛나구나.


이 간단한 대화 속에 거창한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영화 본 이후 내내 머릿속에 남는 화두이긴 하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위뻬르 쪽에 다가서 있다. 그 편이 솔직하다 생각하기 때문인데, 모두다 위뻬르처럼 생각할 때 과연 세상이 엉망이 안 될지에 대해선 또 자신이 없다.


그나저나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긴 캐릭터가 유준상인지, 문성근인지, 김용옥인지, 우열을 가려내기 힘들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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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2-07-3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왈왈! 치니님은 그동안 너무 많이 읽었으니까 좀 쉬어도 돼요. 대신 그 활자에 대한 열의가 나한테 좀 왔으면.. =_=(풀죽..)

치니 2012-08-02 15:45   좋아요 0 | URL
아녀, 아녀요. 그동안도 턱 없이 작은 독서량이었는데, 더 더욱 이렇게...ㅠ
아무튼 네꼬 님에게 (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뿅 ~ 보내드리고 싶사옵니다 ~

당고 2012-07-3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하-
저도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
이렇게도 살겠어요 ㅎ

치니 2012-08-02 15:46   좋아요 0 | URL
이게 정말 어찌 된 영문인지 몰겠어요. 눈알이 빠질 것 같아도 읽어대던 시절이 있기나 했었나 싶고. ㅎ

라로 2012-07-3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믿기지만 뭐~~~그렇다니까 그런 줄 알겠음!!
근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맞아???
언제 서울 안 와?????
레이니랑 함께 얼굴 좀 보자,,,맛있는 거 사줄께.(이런 말에도 유혹을 못 느껴???)

치니 2012-08-02 15:47   좋아요 0 | URL
언니, 믿어 믿어요, 증말이라니까요. 쩝.
서울엔 몇 번 갔지만 늘 일이 있어 그 일만 보고 오느라 미리 연락할 새가 없었어요.
9월에 한 번 갈 터인데 그때도 역시 부모님 행사 차...맛있는 거, 으암, 유혹 느끼긴 하는데 으암, 헤.

2012-08-02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02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사인 기사에 누군가 썼다. <은교>는 그렇고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하다 하다 이제는 70대 노인네랑 10대 고딩하고까지 에로로 엮는, 그렇고 그런 상업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많은 좋은 영화가 그러하듯, <은교>에는 인생이 있다고, 동경과 질투와 사랑과 증오와...아무튼 그 모든 것이 인생이라면, 그게 있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고. 오독이 있었겠지만, 내가 읽은 바로는 글을 쓴 이의 감상은 이 정도, 그렇고 그런 영화로 오인받는 게 무지 속상했던 듯하다.


그럼 나는?

<은교>는 그렇고 그런 영화다. 소설을 먼저 읽어서 이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렇고 그런 대목이 있다. 그런데 말이다, 역설적으로는, 그 '그렇고 그런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고, 그러니 <은교>에 인생이 있다고 한 그이의 말에는 또한 공감이 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소설이라는 쟝르 안에서만 용인될 것 같다고 미뤄 짐작하여 싹둑싹둑 잘라내고 다른 잎을 붙인 가지들이 약간 거슬린다 해도, 영화 <은교>의 시각 역시,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게, 젊음이란 게, 늙음이란 게, 정말 '그렇고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모두 칠십 먹고도 십대와의 사랑을 꿈 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쯤에서 제목 그대로 '차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린다. 아마도 소설이나 영화나 공히 내가 흥미로워하는 어떤 인생의 지점에 대해 보여주기 때문일진대, 그거 보여주는 거, 말로는 이러쿵저러쿵 해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미리 말하건대) 분석하고자 이런 글을 끄적인다기보다는 작가와 감독의 예술행위에 대한 감사를 담아 잡설을 쓴다.


다른 요소들에 우선하여, 책 속에 그려지는 이적요(박해일 분)의 집이라는 공간은 무척 중요한데 영화를 보면서 그 집이 내가 상상한 딱 그 집이라서, 그리고 어설프게 세팅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그대로 어딘가 섭외를 해서 마련한 집으로 보여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케이, 시작은 좋고 ~


다음은 등장인물들.


1. 이적요

이적요를 소설에서보다 잘 그려내기란, 애당초 무리였지 싶다. 이적요는 위대한 시인이면서 노인이고, 우리들 누구와도 비슷한 욕망 덩어리이면서 (멘탈로는)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서 쉬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분명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제대로 그려내기란, 후 - 아무래도 어렵다. 박해일의 첫 발성에 풉 하고 웃음이 나버렸던 것도 그때문이고 말이다. 그리고 소설에서 이적요가 개탄하는 우리 문학계의 흉물스러운 본 모습은 또 어떠한가. 건드리기도 예민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2시간 짜리 영화 속에서 잘 표현하기도 부담스럽다. 감독은 그 부분을 걷어내버렸다. 그저, 시인이 조금쯤 괴팍하고 소신이 강해서 대중 앞에 서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 시인이란 호칭을 아주 싫어한다 정도로 갈무리.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적요가 지닌 내면의 젊음, 이것은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 이 영화의 소재 - 즉, 노인과 십대의 사랑, 이라는 자극적 설정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하니까, 어려워도 꾹 참고 많은 부분을 할애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책에는 있지도 않았던 <은교>라는 단편을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장면은 젊은 이적요의 마음을 피상적으로만 보여주었고, '마음만 젊어서는' 도저히 이 사회에서 욕망을 표출하기 어려운 늙은이일 뿐이라는, 그 아프고 당연한 깨달음을 얻는 사건 - 은교의 남친이라 사칭한 젊은 남자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부분을 빼버린 것은 더욱 아쉽다.

기실, 소설에서의 이적요는 자기 글을 훔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서지우에게 아무런 질투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멍청하다고 생각할 뿐, 이런 정서가 캐릭터 상 잘 어울리건만, 영화에서는 앞서 말한 젊은 남자로부터의 모욕을 빼버리고 서지우가 이상문학상을 탄다는 설정을 넣어버려서 마치 이적요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욕 때문에 서지우를 죽이려 하는 것처럼 오인된다. (아니, 오인이 아니라 감독은 이 편이 더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만) 이러한 오인이 야기하는, 모짜르트 대 살리에르 구도가 나는 식상하고, 소설 속에서 '비록 사소하지만 한 사람의 전부를 파괴할 만큼' 강력한 예의 젊은 남자 모욕 건과 은교와 데이트하러 간 카페에서 내쫓기듯 나오게 되는 사건이 훨씬 현실적으로 설득력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카페에서 내쫓기기는커녕 젊은이와 어우러지며 '헐'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젊은 박해일을 노인인 이적요로 분하게 하기, 이 부분은 뭐, 당연하다 싶다. 보수적인 관객 층까지 이 사랑에 관용적 태도를 지니고 보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까.


2. 은교

위 이적요라는 인물보다는 훨씬 영화에서 그리기 좋지 않았을까 싶다. 우선 소설에서 이미, 은교는 제 3자일 뿐, 순전히 이적요의 젊음에 대한 욕망의 상징으로 그려진 경우가 더 많았기에 막상 은교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이적요와 서지우를 바라보는지는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설에서 그러한 선택은 당연했다. 나이 든 남성 작가라는 정체성을 이왕 가지고 있는데도 마치 십대 여자 사람인 은교의 심리를 잘 아는 것처럼 쓰려했다면, 오, 그것 역시 아무래도 무리였을 듯.

그러나 감독 정지우는 아무래도 소설에서 은교의 심리 묘사가 너무 적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고교생이 할아버지라고 호칭되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고, 아저씨 뻘인 남자와 과감하게 성 행위를 하는 장면을 그리려면, 관객들이 자연히 묻게 되는 '왜'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소설에서보다 훨씬, 은교는 단순하고 평범하게 그려진다. 동시에, 자신만의 욕망, 즉 시 쓰는 멋진 남성에 대한 동경이 유독 강한 아이로 나온다. 나 자신, 역시 은교의 심리가 소설을 읽는 내내 궁금했으므로 이런 식으로나마 은교에게 집중해준 영화가 싫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쯤은 더 신비함을 부여했어도 좋았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서지우

소설과 큰 차이 없게 그려진 인물. 제 주제도 모르고 멍청하게, 그러니 또 찌질하게 파멸로 이르는 인물은 수도 없으니 뭐, 더 바꿀 만한 부분도 없다. 이무열이던가, 김무열이던가, 이 분의 얼굴은 죄송하게도 그런 인물에 잘 어울렸고. (진중권도 닮은 듯? ㅋ)

그런데, 한 가지 내내 불편했던 부분은, 영화 속에서 서지우의 문학적 감수성 부족 원인을 모두 '공대생'인 탓으로 돌린다는 점. 으아, 물론 나는 공대생 출신 아니지만서도, 이건 정말 억울할 것 같은데. 공대생이라고 문학을 모르거나, 문학을 못 하거나, 사람 사이의 오묘한 감정도 모른단 말인가! 대체 이 무슨 어거지? 하지만 이조차도 너그러워지는 건, 역시나 영화라서, 그것도 2시간 짜리라서 그랬겠지 싶어서다. 어떻게든 서지우가 그 모양인 이유를 설명은 해야 하는데, 소설에는 그 이유 같은 건 안 나오니까.


4. Q 변호사

소설에는 화자의 존재로 꽤 여러 면에 걸쳐 나오지만 영화에선 싹 뺐다. 어차피 문학 판에 대한 비판을 쏙 뺀 데다가 미스테리한 느낌을 주는 (소설에서는 변호사가 이적요에게서 받은 노트의 상황을 역 추적하고 은교를 만나고 하는 추리소설 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다) 부분도 쏙 뺐으니, 이 인물이 영화에 굳이 등장해서 어지럽힐 필요는 없다. 다만, 만약 이 인물이 들어갔다면, 누가 했을까, 욕심 있는 조연 배우라면 아무도 안 했을 만큼 밋밋하다 싶다. 흠, 그러고 보니 그래서 뺐나? ㅋ


아무튼 볼 생각조차 안했던 <은교>에 책으로도 영화로도 흠뻑 뺘져 본 요 며칠, 나로서는 늙는 일에 대해 고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적요와 달리, 사회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이룬 게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는 늙는다고 뭐 그리 서러울까 싶기도 한데, 흠, 두고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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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5-15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우 감독 작품이니 볼까 했다가 그거 그런 영화란 말에 말까했는데
봐야겠어요~

치니 2012-05-15 11:53   좋아요 0 | URL
별 기대 없이 봐서 그런지, 저는 좋았어요, 나름. 아치님 감상이 궁금해요 ~

nada 2012-05-1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어제 궁금해서 보고 왔어요.
치니님의 비교를 읽고 나니, 더욱더 책을 읽고 싶어져요.
박해일 목소리 연기가 어색하다는 얘기를 많이 봐서 맘의 준비를 하고 가서 그런가.
점점 적응되던데요.
그래도 박해일이니까 그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목소리 말고 표정, 몸짓 등등은 자연스럽더라구요.
저는 이적요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모독 때문에만 서지우를 죽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이적요는 분명히 그렇게 단순한 인물이 아니죠.
은교와 서지우의 정사를 훔쳐보고 나서 순수가 파괴되었다는 데 절망을 느낀 것도 같았고, 자기 작품을 훔쳐서 은교의 환심을 산 서지우에 대한 분노도 물론 있었을 테고, 저 아둔한 녀석이 죽어버리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나름의 정의감(?)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
정의감이란 단어가 좀 웃기지만, 충동적이지 않은 이적요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는 뭔가 더 큰 이유가 있어야 마땅할 것 같았거든요.
제 눈에는, 박해일이 그런 입체적인 인물을 나름 열심히 표현한 것 같았어요.

저는 영화가 본질적으로 절대 완벽할 수 없는 매체라고 생각해서,
영화를 보러 갈 때 적당히 즐기려는 기대 정도만 갖고 가요.
여러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고, 자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상업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고...
홍상수처럼 배우들 개런티 안 주고 최저예산으로 찍는 사람이나 제 맘대로 찍을 수 있는 거지, 그 외 모든 영화는 자잘한 타협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영화 <은교>에 만족했어요.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시각적 즐거움도 충분히 만끽했고요.
녹음에 둘러싸인 이적요의 집, 책들이 가득한 호사스런 서재.. 그 공간을 눈으로 훑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아주 즐거웠어요.
섬세한 심리 묘사와 인생에 대한 성찰은 문학의 특기니까,
결론은, 책을 꼭 읽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당.

젊은 박해일의 모습이 어찌나 싱그럽던지.
정사 장면, 몹시 슬펐어요.


치니 2012-05-15 12:53   좋아요 0 | URL
오오, 꽃양배추 님은 책을 읽지 않고도 이적요의 실체를 잘 파악하셨네요! 역시 혜안이 남다르심. 하기야, 관객이 오인할까 봐 노심초사한 건 제가 오만해서일지도 몰라요. 다들 잘 알 텐데, 괜히. ^-^;;
네, 저도 박해일 목소리 처음에만 그랬지 차차 괜찮아졌고, 나름 열심히 표현, 정말 그랬다 생각해요. 그치만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이긴 한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그런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던 듯. 이건 책을 먼저 읽어서인 게 분명해요.

정사 장면은 개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박해일의 상상도, 은교와 서지우의 그것도. 특히 은교 역할을 한 그 아가씨, 대단하던데요, 신인인데!

영화에 대해 그렇게 적당히, 저도 꽃양배추 님처럼 마음 먹을 때도 있는데 가끔은 진짜 죽이는 영화 보고 싶다는 바람이 너무 간절해져요. 요새 씨네큐브도 못 가고 제주에서 한정적인 영화만 봐서 더 그런가 봐요. 하아, 영화 보러 서울 가야 하나, 한 1초 정도 그런 생각도 했어요. 배부른 고민이죠? 헤 -

책 읽어보시면, 또 감상 얘기해주세요 ~ 이런 수다 너무 재밌어요 ~ :)

nada 2012-05-15 13:15   좋아요 0 | URL
저도 지방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제 상업적인 영화에 적당히 만족하는 법을 터득한 거죠.-.-
간절함 때문에 슬퍼지지 않으려고요.
전에는 두어 달에 한 번이라도 서울 가면 씨네큐브 들리고 그랬는데,
요즘은 거기 가기까지 거쳐야 할 지하철+버스+인파의 난관이 더 두려워요.
그래도 제주는 독립영화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라스 폰 트리에 새 영화 소식 보면서, 치니님 생각 났는데.
그러고 보니 안티 크라이스트, 아직도 못 봤네요.
지금 계절엔 절대 안 어울릴 것 같고,
나중에 우중충한 겨울에 졸 우울할 때 우울감을 증폭시키고 싶을 때 봐줘야겠어요.ㅋ




치니 2012-05-15 14:42   좋아요 0 | URL
으항, 씨네큐브 가는 길, 맞아요, 이젠 정말 엄두가 안 난다능.
제주 독립영화관은요, ㅠ 제가 생각한 그 그림이 아녀요. 일반 영화관에서 안 해주는 영화를 뵈주는 편이긴 한데, 다아 옛날 영화들, 제가 이미 본 것들,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관람할 만한 것들로, 무료 상영회가 열리는 곳. 앞으로 좀 달라지길 기대는 하지만, 아직은 갈 길 멀어보여요. 일단 그런 쪽 고객층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ㅠ

라스폰트리에 새 영화가 나왔어요? 오 - (정말 서울 가면 영화만 왕창 봐야겠구나 싶어짐)

노이에자이트 2012-05-1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씨 소설은 그동안 영화로 꽤 여러 개가 만들어졌는데 '은교'가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죠.작가도 영화에 만족한다 했고요.책도 잘 팔려, 영화도 관객 많이 들어와...정말 이런 즐거움을 누리다니...작가로는 대단한 행복이죠.

박해일이 아닌, 진짜 노인배우가 이적요 역을 했다면 관객들 반응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치니 2012-05-15 14:45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전 <은교> 외에는 본 영화가 없어요.
보면서 작가가 저 바뀐 각본을 맘에 들어할까 궁금했는데, 만족한다 했다니, 호오. 너그러우신 거 같기도 하고. ㅎㅎ

노인배우, 글쎄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조금은 더 어려웠지 않았을까 해요.
한다면 누가 있을까 떠올려봤는데요, 흐음, 김갑수 정도? 하지만 그건 너무 안이한 캐스팅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누가 있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12-05-16 13:42   좋아요 0 | URL
김갑수 씨는 노인이라 하긴엔 좀...김갑수 씨가 화낼 것 같아요.

진짜 70이 넘어 배는 불룩 나오고 주름 투성이에 팔다리는 가느다란 남자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면 안 될 걸요.그게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이죠.진짜 노인이 여고생을 품는 장면을 영화로 보고 싶은 사람은 남자도 여자도 없을 겁니다.

치니 2012-05-16 13:44   좋아요 0 | URL
하긴 노인이라기엔 무리가 있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훨씬 자연스럽기는 해요. :)

프레이야 2012-05-15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서지우 역 배우 진중권 닮은듯?,에서 빵 터졌어요.ㅎㅎ
꼼꼼한 비교 재미나게 읽었어요. 저도 박범신 소설은 '은교'가 처음이었어요.
원작에 비교, 영화적 장단점이 적절히 드러난 작품으로 전 봤구요.
그나저나 제주 생활은 어떠세요? 저 요새 부쩍 그런 곳에 훌쩍 가서 살고파요~~ㅠ

치니 2012-05-16 13:4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도 보셨구나 ~ ㅎㅎ 진짜 진중권 좀 닮지 않았어요?
어서 리뷰 올려주세요, 자세한 감상 궁금하네요.

제주 생활은, 아주 좋습니다. 어느덧 익숙해져서 그 좋은 게 실감이 안 난달까 그렇지만 아주 좋은 건 확실해요. :)

프레이야 2012-05-16 20:25   좋아요 0 | URL
이미 페이퍼 썼어요. 근래 것 찾아보심 있어요.ㅎㅎ
김무열, 그러고보니 안경 쓴 태가 진중권 좀 닮았어요.ㅋㅋ
제주 생활 아주 좋으시다니 정말 궁금궁금 부럽부럽^^

치니 2012-05-17 11:59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왜 그 페이퍼를 놓쳤을까요?! 지금 가서 읽고 왔어요. 역시, 역시, 대체로 저도 비슷하게 느꼈는데 프레이야 님처럼 단정하고 명료하게 쓰지를 못했네요.
저는 정지우 감독의 작품 중엔 <사랑니>가 가장 좋았어요, <해피엔드>는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었던 기억. :)

프레이야 2012-05-17 22:48   좋아요 0 | URL
헤헤~ 저도 '사랑니'가 젤 좋더라구요.

웽스북스 2012-05-2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이 글 읽으려고 나 은교 읽었어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주인공들의 모습을 영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치환해서 상상력이 제한되는 듯한 느낌이 아쉬웠지만... 책이 생각 외로 좋네요. 정말.

치니 2012-05-20 13:20   좋아요 0 | URL
으헷, 이 글 읽으려고 은교 읽었다고 하는 웬디양, 고마워요 ~ :)
저도 그랬어요,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책을 읽었기때문에 아무래도 주인공 모습을 박해일로 상상하며 읽게 되더라고요. 은교 역의 신인배우도 그렇고.
어디선가 읽으니 박범신 작가도 젊은이를 이적요로 분하게 해야만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는다는 상업적 측면은 아무래도 아쉬웠던 모양, 김갑수 씨나 다른 노장배우를 거론하시던데...음, 우리나라에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배우가 있었다면? (아니 있는데 모르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저 역시 아쉽긴 해요.
생각 외로 좋다, 이 부분이 (제가 100자 평에 쓴 것처럼) 좀 죄송했어요. 작가라면, 역시 좋다, 이렇게 감상이 나올 때 훨씬 기쁘실 터인데 말이죠. ^-^;;
 














영화로 나오니 개정판이 또 나온 건지, 개정판이 나오고 영화도 개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2006년 판 화차를 읽었다.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보았다.

알라딘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심미안이 가장 탁월하다고 (나 혼자) 믿는 탑 5 알라디너에 속하는 MD님의 권유가 그러했기 때문에.

그분의 의도는 적중했다. 책을 먼저 읽었으면, 아마도 나는 영화의 압축성에 대해서 조금쯤 볼멘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었을 듯한데, 그 반대의 순서로 감상하고나니, 거꾸로 그 압축성이 꽤 괜찮았구나 싶고 책은 조금 더 깊게 소화했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책과 영화가 다른 부분에 대한 간단 비교 감상.


우선 러브라인이 상세한 영화에 비해 책은 소재 정도로만 쓰이는 건조한 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데, 이 점은 개인적으로 책이 더 마음에 든다.

사랑이란 것에 목숨 거는 남자가 적어진 현대 사회 어쩌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살인자인 주인공에게 영화에서처럼 사랑이 강조되면 이야기가 아무래도 산으로 갈 것 같아서. 그 점에서 변영주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새로 만들다시피 한 이선균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그러나 러브라인이라는 구체적인 상업성을 지우고, 경선의 인간관계만 놓고 보자면 책보다 영화가 더 경선이라는 인간의 심리에 밀접하게 가닿는 것 같다. 아버지를 사랑했겠지만 증오하게 된 경선, 가족이라는 게 울타리가 아니라 굴레만으로 느껴지는 경선, 처음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은 남자에게 차마 배신이라고도 못할 짓을 당한 경선, 세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으므로, 그리하여 행복하려면 세상 속의 나를 바꿔야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선, 거기에 끝까지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남자가 있어서 좋기 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경선 -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 놓은 폼새는 영화가 책보다 쉽고, 영화의 그런 쉬움은 곧 대중성으로 연결되니, 감독은 충분히 영리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원작을 마구 난도질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아서, 내가 원작자라도 만족스러웠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미미여사는 대만족이라고 했다지).

화차 같은 작품을 가지고 괜스레 멋을 부려서 난해하게 해놨다면, 개인적으로 놀랍다기 보다는 재수없다고 생각했을 듯.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형사.

원작에서의 형사는, 내용상 키를 쥐고 있기도 하지만 경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균형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어서 작품에 전반적으로 크나큰 안정감을 주면서도 인간적이고 작품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보여주는 데 최적이다. 반면 영화에서의 조성하는, 어째 전체적으로 참 힘 빠진달까, 심하게 말하면 이선균 꼬붕에 일상에서는 사회부적응자 같기만 하다. 마지막 씬에서 차를 놓고 뛰는 장면도 모양 빠지고. 부러 그렇게 했을 것 같은데, 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형사의 성격이나 주변상황은 그냥 원작 그대로 가고, 주인공과 이선균만 부각해도 되지 않았을까.성격 선명한 캐릭터가 세 개 나오니까 결국 하나가 죽는데, 그게 조성하가 되어버린 것 같다. 


경선이 살해한 피해자는, 책에서는 개인사가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어쩌면 이 점이 영화와 원작이 가장 다른 부분이겠다. 나로서는 둘 다 괜찮았다 싶다. 물질만능주의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는 마치 샴 쌍둥이처럼 같았던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를 조명한 원작도 좋았지만 영화에서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 상 혹은 영화 매체라는 특성 상 과부하가 걸릴 만하니까 경선에게 집중한 전략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싶어서.


고로고로, 급 결론.

영화 개봉으로 책까지 다시 선방하게 만들면서도 자기 몫도 챙긴 변영주 감독, 축하합니다. 이모저모, 응원하고 싶었는데 작품 활동이 없어서 아쉬웠던 차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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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2-03-2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에 불필요한 컷이 많이 보였고 기대했던 것보다 별로였어요. 형사의 아내가 잠깐씩 등장하거나 이선균과 김민희의 관계를 보여주는 부분, 다음 타겟을 예고하는 부분도 너무 평이하달까.
'파주'의 틈은 영화의 분위기상 적절해보였지만 화차는 뭔가 꽉 들어차있을거란 생각을 했거든요. 물론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 형식으로만 본다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관점이 다른건가. 김민희의 과거가 나온 부분에서 몰입했다가 그 뒤부턴 이야기가 느슨해졌어요. 이선균 발음도 신경쓰이코(안돼, 안 돼)

치니 2012-03-21 15:21   좋아요 0 | URL
'파주'를 함 봐야겠어요. 꽃양배추 님도 그랬고, 아치 님도 파주와 비교하시니 점점 궁금해지네요. ^-^
응응, 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스릴러 보다는 드라마 형식 쪽에 가까웠던 듯해요, 영화가. 아우, 김민희가 택시에서 내리는 장면은, 정말 가슴 한 쪽이 와르르. (이 장면은 책에서보다 훨씬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 저는 개인적으로 그 장면에서 가장 경선에게 몰입했어요.
이선균 발음 문제는 정말! 아우우우, 영화 찍을 때 설마 아무도 지적 안 한 건 아니겠죠? 그랬담 다들 반칙!

Arch 2012-03-21 15:40   좋아요 0 | URL
파주는 제가 안 쓰던 영화 리뷰까지 올렸지만 호불호가 애매해서.. 추천하기 애매합니다^^

chaire 2012-03-21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장안에 화제군요. 저도 보고 싶은데, 왜 이리 몸이 무거운지. 누가 같이 보자고 좀 꼬셔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도 없고. 흑흑.

치니 2012-03-21 20:19   좋아요 0 | URL
이런! 제가 서울 살았다면 꼬셨을 터인데, 안타깝군요. 쩝쩝.
카이레 님의 명품 리뷰, 기대됩니다 ~ 함 보셔요. :)

2012-03-21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22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3-2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저도 원작을 읽어야겠어요.
영화로만은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요.
초반을 비롯 몇몇 시적인 장면 좋더군요.

치니 2012-03-23 14:01   좋아요 0 | URL
네, 프레이야 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이 영화는 사람마다 장면에 대한 해석이 유독 많이 다른 영화인 듯해서, 프레이야 님의 감상이 더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