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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선생님 - 남호섭 동시집
남호섭 지음, 이윤엽 그림 / 창비 / 2007년 1월
평점 :
"선생님, 우리 놀아요!"라는 뜻인 줄 알았다. <<놀아요 선생님>>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책 속의 시를 읽어보니 그게 아니라, 음악선생님, 국어선생님, 할 때의 놀아요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툭하면 "놀아요" 하니까 선생님이 스스로 하는 소리다. '나는 놀아요 선생님이다'. (놀아요) 그러니 이 시집의 제목은 얼마나 좋으냐. 공연히 어린이 입장에 서서 "선생니임~ 놀아요오~"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스스로 "에잇, 난 놀아요 선생님이냐?" 하는듯한 이 당당함은(!). 학교까지 가는 길에 시골 버스 할머니들의 입담에 빠져 더 듣고 싶지만 할 수 없이 내려서는 자기 없이 잘도 가는 버스를 공연히 원망하고 논길 지나 자운영꽃밭의 '함정'에서 넋을 잃을 때쯤에 시인은 아예 대놓고 말한다. "이쯤 돼서 솔직히 말하면, / 나는 학교도 잊고 학생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솔직히 말하면)
동시집의 우선 독자는 물론 어린이이다. 어린이덕분에 쓰인 시를 어른들도 읽을 수 있지만, 동시를 짓는 이라면 어린이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좋지만, 잘 보이려고 하는, 그래서 애써 어린이 흉내를 내고, 동심을 다 간직한 '척'하는 시인들은 정말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남호섭 시인의 이 솔직함은 반할만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 마음을, 나보다 어린이들이 더 잘 알아보겠지!
시인이 간디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쓴 시가 시집 앞에 한무더기 있는데, 골고루 울림을 주는 시들이다. 아이들이 싸준 김밥을 들고 등떠밀려 소풍을 가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을 먹었다"고 좋아라 하고(스승의 날), "교문 없는 학교에는 / 교문만 없는 게 아닌 걸 알고 /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든다"면서 (교문없는 학교) 은근히 학교를 자랑하는가 하면, 행동 느린 아이의 속내(한근이), 여름밤 별을 보며 자려고 침낭을 들고 나와 누워서는 "별들이 내려다볼 때/(...)/ 꼭 굼벵이 같아 보일 거야."(굼벵이)라고 속닥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아마도 학교에서 많이 멀지 않은 동네, 그러므로 아마도 시골에서 살고 있을 시인이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들도 아름답다. "우리 집 방충망에 / 달라붙은 / 매미, 풍뎅이, 태극나방, 사마귀야 // 안녕, / 우리 집 이제 / 불 끈다." (불 끈다 _전문) 처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시들이 읽는 이를 기분 좋게 한다. 능청스러운 소 그림이 함께하는 "똥"이란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풀 뜯는 소가 똥 눈다. // 긴 꼬리 쳐들고 / 푸짐하게 똥 눈다. // 누가 보든 말든 / 꼿꼿이 서서 / 푸짐하게 똥 눈다. // 먹으면서 똥 눈다." !! '푸짐하게 똥눈다"니, 여기까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난다. "먹으면서 똥 눈다"니 에그 더러워, 하면서도 왜 이렇게 마냥 기분이 좋은 걸까!
어디를 봐도, 순수한 어른인"척"하는 시가 없다. 내가 이 시집을 사랑하는 이유다. 화자가 어른이면 어떻고 어린이면 어떤가. 단순한 문장에 진심을 실어 보내는 것만큼, 동시에 있어 강력한 무기가 어디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린 사람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가늠할 수 없는 시, 그렇지만 누가 읽어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 '자전거 찾기'가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았다. (이 시를 읽자마자 책상 앞에 옮겨 두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마음과 되찾고 싶은 마음, 아울러 낡은 자전거를 훔쳐간 이의 마음까지 다 이해하게 하는 한 편의 동시를 여기에 옮긴다. (사실 좋은 동시의 힘이 바로 이렇게 '마음'을 이해하게 하는 것 아닌가.) 남호섭 시인을 생각하면 전문을 쓰기가 미안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이처럼 아름다운 시집을 읽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에서.
자전거 찾기
자전거 잃어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도
나는 잃어버린 자리를
날마다 찾아간다.
자전거 살 때보다
더 설레며 갔다가
잃어버렸을 때보다
더 기운 없이 돌아온다.
내게 길들어
내 몸처럼 편안했는데,
녹슬어도 찌그러져도
힘차게 달렸는데.
함께 달리던 길을
혼자서 걸어서 돌아오며
훔쳐간 사람한테 욕한다.
그러다 얼른 마음을 고쳐먹는다.
내일이라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던 그 사람이
영영 갖다 놓지 않을 것 같아
속으로도 욕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