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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보이즈
미카엘 니에미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는 성장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표지가 이런 책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까만 레코드판이 절반을 채우고 있다니. 이건 ‘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위협에 가깝지 않은가 말이다. 난 이미 충분히 자란 어른인데, 남의 성장담-그것도 저 먼 스웨덴의 시골 이름도 어려운 ‘파얄라’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라니 과연 내가 동화되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거의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첫머리를 추억담으로 장식하지 않고, 이제는 어른이 된 내레이터가 산 속에서 곤경에 처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거의 죽을 뻔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상쾌하게 그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이, 멋지다.
이제 겨우 도로가 들어오기 시작한 스웨덴의 시골 마을, 마티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비틀스를 듣고 음악에 빠져든다. 물론 처음에는 헛간에서 록가수를 흉내 내며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지만 마침내 입을 벌려 소리를 내게 되고, 친구와 함께 펼친 발광에 가까운 공연이 뜻밖에 호응을 얻으면서 음악을 향한 마티의 질주는 계속된다. 그러는 가운데 순박하고도 억센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혼식에서 집안의 담력을 자랑하기 위해 사우나를 견디는 어른들은 미련스럽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고(승자는 뜻밖에도...), 어른들 못지않은 허풍으로 몰래 술마시기대회를 여는 소년들의 담력(!)과 주정도 생동감 넘치는 묘사에 힘입어 마치 ‘우리 시골’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유령과 마녀 이야기처럼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도 열에 들뜬 사춘기 소년들의 것이어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마을의 변화와 소년이 자라는 것, 광란에 가까운 퍼포먼스가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 어딘가 닮아 있다.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몸이 커지고 생각이 성숙해지는 것이 자라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마음’이 자라는 것. 점점 세계를 알게 되는 데 있다. 그리고 기꺼이, 세계 속의 내 자리를 잘 알고 그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세계로 나오는 것. 파얄라도, 소년들도, 그들의 음악도 그렇게 자라고 있다.
"크느라고 고생이다." 이 말은 사실 이 책이 아니라 성석제의 <<궁전의 새>>에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 보이즈>>를 읽는 내내 성석제의 소설이 생각난 것은 우연일까? 비틀스를 처음 듣고 “피를 흘리며” “얼이 빠진 채” 정신을 놓았던 마티처럼, 어린 원두도 기타 소리와 그 (말도 안 되는) 연주자에 매료(혹은 매수)되어 곳간의 쌀을 훔쳐낸다. 그런 원두에게 뜻밖에 관대한 처분을 내린 할아버지가 혼잣말하듯 하신 말씀. “크느라고 고생이다.” 이따금 어려운 일을 겪거나 상처를 입은 날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마티와 그의 일당이 열에 들뜬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조금씩 자랄 때마다, 역시 이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다 컸다고 생각한 나도 아직 자라는 중인지 모른다. 당신도 이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개의치 말고 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예나 지금이나 여기서나 저기서나 누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 자라는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 참, 낭기열라 씨, 보내주신 북다트 잘 받았어요. (누군가 손으로 쓴 메모까지 넣어주시다니, 이러면 정말 ♡.♡) 하지만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고 해서 리뷰를 쓴 건 아니에요. (흠, 뭐 아주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좋은 책 내주어서 나도 고맙습니다. 낭기열라 씨, 앞으로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