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있어서 집에 사진 작가가 왔다. 함께 온 어시스턴트는 귀여운 아가씨였는데 긴장한 얼굴로 사진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심부름을 했다. 조심조심 움직이며 실수를 안 하려고 애쓰는 눈치였고, 화장실 쓰고 싶단 말도 사진 작가가 대신 해주였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이 아가씨가 쭈뼛쭈뼛 나를 보더니 책장 한 구석을 가리키며 개미만한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한다.  



"저 책들... 저... 진짜 좋아해요."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

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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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6-02-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귀엽네요

네꼬 2016-02-02 16:28   좋아요 0 | URL
네 귀엽지요. 저도 그래서 그만 어깨를 안았답니다. (아가씨 죄송..)

moonnight 2016-02-0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그 마음 이해가 되네요. 귀여운 아가씨^^ 와 그런데 네꼬님 사진작가도 집으로 찾아오시는 유명인?@_@;

네꼬 2016-02-02 16:27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러는 문나잇님이 더 귀엽네요 ㅋㅋㅋㅋㅋ 일단 사진 작가는 누구나 (돈을 내면) 모실 수 있습니다... 저는 뭐 일하는 것 때문에... 아무튼 ㅎㅎㅎㅎㅎ 아 웃겨.

(정색) 혹시 제가 유명연인 된다면 이 정도로 하겠습니까. 동네방네.. 문나잇님 서재까지 가서 알릴 테니 그 전엔 걱정 마세요(응?)

하늘바람 2016-02-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네꼬님

네꼬 2016-02-10 17:10   좋아요 0 | URL
에엣 무슨 그런 말씀을.....!

뽈따구 2016-02-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 저도 사랑해요! ^^
귀여운 어시스트님이시네용. ㅎㅎ

네꼬 2016-02-18 12:32   좋아요 0 | URL
귀여운 사람들이 귀여운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하.
 

어린이들과 책을 읽을 때, 어떤 책을 좋아하는가에 있어서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어서는 남녀 차이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야기 책을 읽을 때보다 사회적 이슈가 담긴 책을 읽을 때 그 차이가 잘 보이는 것 같다. 결론은 같아도 도달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뜻이다.











『내가 라면을 먹을 때』를 읽을 때가 그랬다. 책 속에서 한 아이가 라면을 먹는다. 그러는 동안 옆에서 고양이는 하품을 하고 이웃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그 이웃 아이는 비데 단추를 누르고 그 이웃 아이는 바이올린을 켠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보통 아이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그저 이 일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데 흥미를 느낄 때쯤 이웃나라 아이들이 등장한다. 역시 ‘내가 라면을 먹는 동안’ 아기를 보고, 물을 긷고, 소를 몰고, 빵을 파는 아이들. 길에 쓰러진 아이 위로 바람이 불 때, 라면을 먹고 있는 나에게도 바람이 분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모두가 평화로운 ‘진짜 평화’를 추구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여자아이들은 책 속의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다.

“얘는 왜 아기를 업고 있어요? 엄마 없어요?” (재인)

“어떡해……. 불쌍해요.” (재인)

“얘 다쳤어요? 왜 쓰러져 있지? 배고픈가 봐요.” (은서)

돌봐줄 어른들은 죽거나 다쳤거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더 안타까운 얼굴이 된다. 한 번 더 읽어주겠다고 하면 “너무 슬퍼서” 싫다고 하는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은 일단 이상하다고 여긴다.

“이거 진짜예요? 어느 나라예요?” (진우)

“어린이한테 일을 시키는 건 불법이라던데.” (규진)

“얘가 파는 빵을 쟤(다른 나라의 쓰러진 아이)한테 사주면 안돼요?” (은호)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면 분한 얼굴로 “나쁜 사람들!” 이라고 주먹을 내리치는 남자 아이도 있다.












아이들 스스로는 남녀의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랑에 빠진 알콩이와 달콩이』는 남녀의 신체, 성향 차이와 연애, 가족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3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읽는 날, 각자 생각하는 ‘남자 아이’ ‘여자 아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려 보았다. 각자 작업을 했는데도 공통된 답이 많다.


남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남자아이들은 ‘활발하다/장난을 많이 친다/운동신경이 좋다/물건을 좋아한다/체육을 잘한다/뛰어노는 것을 좋아한다/여자애들을 놀린다’고 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힌다/힘이 세다/많이 먹는다/자존심이 세다/힘으로 해결한다/장난이 심하다/꾸미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반대로 여자아이의 특징에 대해 여자아이들 스스로는 ‘미술을 잘한다/남자애들을 싫어한다/인형을 좋아한다/그림을 잘 그린다/자주 싸운다/섬세하다’고 했는데 남자아이들 눈에도 비슷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예민한 애들이 많다/미술을 좋아한다/운동을 못한다/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아이 엄마가 보면 서운하시겠지만 ‘공부를 잘한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단 것을 좋아한다/음악을 좋아한다/줄넘기를 열심히 한다/친구를 좋아한다/놀기를 좋아한다/사람이다’란다.


“힘이 센 여자아이도 있을 걸? 예민한 남자아이도 있고.”

내가 묻자 재잘재잘 답이 쏟아진다. 얼굴도 예쁘고 말수가 적어서 새침해 보이는 재인이가 구름사다리에서는 제일 무섭게 논단다. 많이 먹기로는 날씬한 은서를 따를 아이가 없다. 은호는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는데 상어를 아주 진짜처럼 그린다. 놀이터의 대장 진우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싶어서 양쪽 귓불을 뚫었다. 좋아하는 색이 “핑크”여서 음료수도 꼭 핑크색 빨대로만 마신단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다르다. 그렇지만 현준이, 재인이, 은서, 진우, 규진이, 은호, 현아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가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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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2-0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잘재잘 아이들과 네꼬님의 책읽기가 그려집니다^^ 네꼬님과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울 것 같아요. 우리 조카아이들도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네꼬 2016-02-02 16:29   좋아요 0 | URL
저는 문나잇님과 만나고 싶군요! 많이 배운다기보다 많이 놀고 가요; 뭐 노는 것도 배우는 거니까. 라고 쓰지만 부모님들은 이 댓글을 안 보시길 바랍니다...

뽈따구 2016-02-1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꼬님. 우리 어린이도 네꼬님께 보내고 싶어요! ♡♡♡

네꼬 2016-02-18 12: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하트가..)
 












2학년 은규는 유난히 옛이야기를 좋아한다. 나와 만날 때면 꼭 한두 권씩 옛이야기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고, 듣는 동안은 아예 양말도 벗고 배를 깔고 누워서 그 시간을 만끽한다. 옛이야기 모음집『살려 줄까 말까?』는 몇 번을 읽었는지 셀 수도 없다.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일본 옛이야기 『두루미 아내』를 읽을 때면 저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는다. 고요하고 슬픈 그림에 압도당하는 모양이다. 그림책에 빠진 은규 표정은 대여섯 살 아이 같다. 남다른 느낌이 있어서 은규 엄마에게 말씀 드렸다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은규가 영어유치원을 다녔어요. 딴 건 몰라도 영어는 꼭 필요하고 일찍 시작하면 아무래도 좋을 테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우리나라 옛이야기 책을 읽어주진 않아서 그런 그림책을 좋아하는가 봐요.”

영어유치원에 이어 해외 캠프까지, 영어 조기교육을 열심히 하는 효과가 있어서 은규는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놓치는 것도 있게 마련,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무의식을 건드리는 옛이야기의 매력을 느낄 사이는 없었던 것이다. 역시 아이들은 자라는 단계에 맞게 채워야 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진우 엄마는 스포츠 조기교육에 관심이 많다. 진우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니 일찍부터 재능을 발견해서 선수로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몸으로 하는 건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면서 수영, 야구, 스케이팅 등을 가르치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지 1년을 넘기는 종목이 없다. 그만둘 때마다 엄마는 “이제부터 이건 취미로 하면 된다”고 하지만, 진우는 관심이 뚝 끊긴다. “그거 재밌어 보이잖아요. 근데 엄청 힘들어요.” 운동에 대해 얘기할 때 진우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진우를 따라 얼떨결에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한 예준이는 3년째 전문 코칭을 받고 있다. 재미삼아 시작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니 우선 좀 더 해보겠다는 게 엄마 생각이다. 예준이는 엄마가 “애가 파이팅이 없어요.” 하고 농담할 정도로 승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엄마에게 “나갈 수 있는 경기는 다 나가고 싶다”고 하더란다.








예준이와 『피아노를 쳐 줄게』를 읽은 날이었다. 피아노 모양 음악상자를 좋아하는 캐시에게 엄마는 진짜 피아노를 사주고 음악 선생님을 모셔 온다. 음악 선생님은 캐시에게 재능이 있다면서 연주회 참가를 권하는데, 연습을 반복할수록 캐시는 점점 재미를 못 느낀다. 연주회 무대로 나아가는 캐시는 사막의 모래를 걷는 기분이다. 결국 연주회를 망치고 피아노를 멀리하던 캐시는 우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다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정말로 아름다운 연주를 시작한다. ‘좋아서 하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연주회 때 캐시 기분은 어땠을 것 같아?”

“진짜 무섭고요, 하기 싫었을 것 같아요.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잖아요.”

“엄마는 캐시를 위해서 그런 건데.”

“캐시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잖아요.”

물어보지도 않고! 어른으로서 나까지 뜨끔해졌다.


“근데 저도 아이들 앞에서 리코더 불고 그러는 거는 너무 떨려요.”

“그럼 스케이트 대회는 어떻게 나가? 그때는 안 떨려?”

“안 떨려요.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잘하는지, 제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요.”

그 자세를 칭찬하면서 예준이는 나중에 스케이트 선수가 되어도 좋겠다고 했더니 대답이 신선하다.

“저는 나중에 뭐가 될지 아직 안 정했어요. 오래 살아야 되니까 뭐가 될지는 잘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아요.”


예준이 엄마도 아이의 진로는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예준이는 스케이트를 배운 덕분에 “열심히 연습하면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 무조건 빨리 가면 넘어지고 균형을 잘 잡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허벅지가 딴딴해져서” 오래 걸을 수도 있게 됐다고 한다. 예준이는 쉬는 시간에 얼음으로 장난치는 것, 운동 끝나고 컵라면 먹는 게 좋단다. 그래도 제일 좋은 시간은 훈련 시간이다.

“달리면 시원하고 기분이 뻥 뚫려요.”

정말 좋은 조기교육은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아닐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가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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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2-0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어보지도 않고! 정말 뜨끔하네요ㅠㅠ 공감합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네꼬 2016-02-10 12:29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요.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답 정해놓고 너 이거 좋아하니까 해봐, 하고 밀어붙이는 경우도 많고요. 어쩌면 저도 그렇게 책 권하는지도 몰라요. ㅜㅜ

Mephistopheles 2016-02-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예로 강남8학군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명분대를 졸업 후 미국 아이피리그에서 박사까지 딴

30대 중반의 한국 남자 중년이 박사학위를 딴 후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 엄마. 나 이제 뭐해? ˝

네꼬 2016-02-10 12:31   좋아요 0 | URL
하하... 네, 웃기지만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네요. 부모도 불행, 아들도 불행... 알면 알수록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저로선;;

뽈따구 2016-02-1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정말이지 이게 중요하죠. 저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노력할래요.

네꼬 2016-02-18 12:33   좋아요 0 | URL
저는 잘 모르지만, 옆에서 보니까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양육자의 마음이 앞서는 경우가 많지요. 뽈따구님은 잘하실 것 같아요.
 











『그래, 책이야』는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23주 연속으로 오른 책이다. 노트북은 능숙하게 다루지만 ‘책’은 전혀 모르는 동키와 느긋이 앉아 책을 읽는 몽키의 간결한 대화가 재미있다. 책을 두고 “마우스는 어디 있어?” “스크롤은 어떻게 해?” 엉뚱한 질문을 쏟아내는 동키도, 뚱한 얼굴로 대꾸하다 “책이라니까.” 하고 살짝 성을 내는 몽키도 우습다. 무엇보다 ‘책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다. 이런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니, 스마트기기니 뭐니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직 책이 매력을 잃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세준이가 한마디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니까, 컴퓨터 하지 말고 책 보라는 거죠?”

유머 속에 감춰진 주제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 책은 책만의…… 좋은 점이 있다는 거지.”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어른들의 걱정은 비슷한 것 같다. 아이들이 첨단기기보다 책의 세계에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테니까. 다행히 세준이는 이어서 읽은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에 금세 푹 빠졌다. 책을 펼치면 또 다른 책이, 그 안에 작은 책이 여러 겹 이어지는데, 아름답고 정교한 구성과 독특한 제본 덕분에 말 그대로 책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만질 수 있을 때 더 잘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스마트기기의 세계와 한편으로는 통한다고 할까.













많은 어린이들이 이미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있다. 태인이는 취학 전부터 최고급 스마트폰을 가져서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게임 개발자인 아빠가 ‘어려서부터 감각을 길러야 된다’며 사주신 덕분이다. 3학년 예진이는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입력해 스스로 일정을 관리한다. 바쁜 엄마 아빠와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는다. 예진이가 스마트폰이 생겨서 제일 괴로운 사람은 단짝 지은이다.

“예진이가 단톡방에서 다른 애들이랑 얘기할 때 정말 정말 저도 갖고 싶어요.”

궁금한 게 있을 때 스마트폰으로 척척 정보를 찾는 것도 부럽단다. 그러나 지은이 엄마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절대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남자아이들은 단연 게임 때문에 스마트폰을 원한다. 4학년 윤호는 스마트폰 게임 시간 때문에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다.

“애들 다 학원 다녀서요, 같이 놀 시간이 그때밖에 없어요. 근데 애들이 다 모이는 데만도 30분은 걸리는데 엄마는 한 시간만 하래요.”


2학년 성원이는 스마트폰이 생길 때까지 스마트워치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통화는 할 수 있지만 메시지는 보낼 수 없고 결정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어서 답답하단다.

“그런데 이 시계가 좋은 점도 있어요. 게임이 없다는 점이에요.”

“게임이 없는 게 제일 안 좋은 점이라면서?”

“게임 중독에 안 걸리잖아요.”

스마트폰을 쓰면 게임 중독에 ‘걸리기’ 쉽다는 어른들의 협박 아닌 협박 덕분일까? 아이들은 스마트 기기를 갖고 싶은 만큼 거기 따르는 책임에도 부담을 갖는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애가 타는 지은이, 성원이도 “잃어버리지 않고, 망가뜨리지 않고, 게임도 시간 정해서 하려면” 4학년 정도가 스마트폰 갖기 적절한 때라고 한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를 읽은 날이었다. 사과를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이게 사과의 껍질을 쓴 다른 물건은 아닐지, 자라서 집채만 해지는 건 아닐지, 심지어 외계인은 아닐지 등 자유롭게 상상해보도록 하는 책이다.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은 다음, 사과를 모티프로 상상한 것을 그려보았다.

“이 사과는 시한폭탄일지도 몰라.” 세준이는 미운 사람한테 주는 복수용 사과를 그렸다. 사과하는 척하면서 주는 사과가 폭탄인 것이다. “이 사과는 화가일지도 몰라.” 지은이는 정물화 속의 사과가 스스로 화가가 되어 자화상을 근사하게 그리는 상상을 했다. 역시 창의력을 자극하는 데는 책만 한 게 없지. 그건 책 고유의 영역이라고! 나는 싸우지도 않고 이긴 기분이었다. 연우의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사과는 스마트폰일지도 몰라.”

한입 베어 먹은 사과, A사 로고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새겨진 바로 그 사과가 연우의 사과였다. 이번엔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기분이었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여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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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6-02-1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 사과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싸워보지도 못하고 진 네꼬님. 그래도 화이팅이에요!!! ㅎㅎㅎㅎ

네꼬 2016-02-18 12:34   좋아요 0 | URL
망연자실 @_@
 

연우와 지은이는 1,2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물론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방과후 활동도 함께 하는 게 많다. 제일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아직 저학년이니 성적에 의미를 두긴 어렵지만, 학습능력은 확실히 뛰어난 편이어서 부모님은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꽤 기대를 하고 있다. 특히 연우 부모님은 일찌감치 대학입시까지 청사진을 그려 연우의 학업을 관리하고 있다. 영재원을 비롯해 각종 학원 일정이 꽤 빡빡하지만 연우는 “어려운 걸 배우는 게 좋아요” 하면서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는 소감을 물었을 때 연우 대답이 심드렁했다.

“교과서를 새로 받았을 땐 좋았는데요, 펼쳐 보니까 수준이 너무 낮아요. 수업도 지루하고요.”

교과서는 원래 학년에 적절한 내용이니 ‘수준이 낮다’는 것은 맞지 않고 ‘나한테는 쉽다’ 정도가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걸 어떻게 설명하시나, 친구들은 무얼 궁금해 하나 살펴보라고 다독였지만 아직 어린 연우가 “시시한”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은이의 소감은 사뭇 달랐다.

“긴장되고요, 설레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요.”

“교과서 되게 많다면서. 공부하기 어떨 것 같아?”

“저는 과학이 좋은데 이제 아예 수업 시간에 배우잖아요. 기대가 돼요. 새로 배우는 과목들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회…… 뭐지? 과부도? 그런 책도 있던데 그게 좀 걱정이에요. 엄청 두껍고 지도만 많거든요. 그것 빼고는 좋아요.”


학교에서 새로운 과목을 가르쳐주신다는 것은 네가 그것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그러니 낯선 ‘사회과부도’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지도에도 숨은 원리 같은 것이 있으니 공부하면서 찾아보라고도. 지은이는 “어떤 일의 원리를 아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줌을 연구하자』를 읽을 때 지은이는 똥과 오줌의 차이, 오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는 것만큼 질문 그림표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오줌을 둘러싼 온갖 질문을 엮은 일종의 마인드맵인데, 지은이는 이 책을 읽은 뒤로 종종 낙서하듯 그림표를 그린다. 『아씨방 일곱 동무』를 읽은 날도 연습장 가득 질문을 적었다. “바느질 상자에는 또 무엇이 들어가지?” “왜 요즘은 인두를 쓰지 않을까?” “일곱 동무, 일곱 난쟁이, 일곱 색깔 무지개, 일곱 마리 아기 염소.”









지은이는 아직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지은이 엄마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는 한 보내지 않을 생각이라 하신다. 예습 정도를 넘어선 선행학습 역시 시키지 않겠다고. 그런 엄마의 원칙과 지은이가 학교 공부를 재밌어 하는 것,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인과 관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국어사전 활용법을 공부한 날, 지은이는 살짝 들떴다. 사전 찾는 방법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된소리의 자리, 이중모음의 자리 등 단어 배열의 체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한 순간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전을 뺏어가서는 “선생님, 진짜진짜 복잡한 단어 불러 주세요!” 한다. 단어를 찾기 전에 짐작해 적고 사전에서 풀이를 찾아 비교하는 활동도, 풀이만 듣고 단어를 맞히는 활동도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다. 힌트도 사양하고 답을 골똘히 생각하는 걸 보니 요 작은 머리에 무엇이 가득할까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냐고 묻자, 지은이는 자기가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면서 쑥스러워했다. 그래도 계속 비결을 물으니, 공부를 재미있어 하면 된단다.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제 생각인데요, 공부가 재미있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앗, 그럼 지금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공부가 재미없어서 계속 못할 수밖에 없어?”

왠지 내가 속이 상해서 따지자 지은이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든지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잖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면 잘하게 돼요.”

공부 잘하는 요령을 캐물으면서 ‘열심히 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던 나는 뜨끔했다. 땀 흘리지 않고 득만 보려 하는 사람을 불한당이라 하던가.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여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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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숲 2016-02-05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전 찾으면서 좋아했던 아득한 어린시절이 떠오르네요.... 지은이는 아마 지도도 좋아할 거야!!

네꼬 2016-02-10 12:28   좋아요 0 | URL
네 지도의 기호가 의미하는 걸 알고 엄청 좋아했어요. (8방위도요.) 똘똘한 소녀를 보는 것은 언제나 벅차요. 뭔가 똘똘한 소년보다 다섯 배쯤 좋아요. (소년들 미안...)

뽈따구 2016-02-1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한당 네꼬님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은이가 참 이쁘네요. ^^

네꼬 2016-02-18 12:34   좋아요 0 | URL
어울리죠! 저랑 불한당! 언제나 되고 싶습니다, 불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