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교토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숨을 곳이, 마음 놓고 사랑할 도시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지난 봄, 치료가 되었든 치유가 되었든 어떤 위로가 필요했을 때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난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도 얻지 못했다. 사람이 많고 날이 흐렸다고는 하지만 벚꽃이 만발한 교토는 분명히 아름다웠고, 사람들도 여전히 친절했다. 그러나 나는 걸음마다 아팠고, 새벽이면 눈도 뜨기 전에 이미 울면서 잠을 깨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교토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대로 이 도시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끌림』은 어느 시인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지만 ‘산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한강 하류의 다리 공사를 보면서 그 일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던 시인이니, 그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무척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200여 도시를 여행하고도 그 기록을 그저 ‘산문집’이라 하다니, 그리고 ‘끌림’이라는 이 뜻밖의 제목을 붙이다니. 못 떠나는 사람이 주눅 들게 하지 않는, 떠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달콤하게 대리만족시켜 주지 않는 이 책이 나는 처음부터 좋았다.


책을 펼치면 속표지도 차례도 없이 곧바로 그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왜 떠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그가 도착한 도시가 어디인지 떠벌리지 않고, 당연히 그 도시의 역사며 문화적 발자취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주 가깝게(이것이 중요하다. 도시의 풍경을 담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깝게) 들이댄 카메라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길모퉁이와 과일과 술병과 옥수수와 빨래와 고양이와 자전거를 담아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먼 데를 구경하고 온 이의 모험담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고 말 없는 친구의 손에 끌려 정말로 그 도시에 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만난다.


거대한 어항 같은 도시 안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 때.... 깊은 밤 잠에서 깨어 통장 잔액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가져다준 신문 첫 장을 외면하고 싶을 때,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아플 적에 친구 고래가 아픈 고래를 수면까지 밀어올려서 숨을 쉬게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웅크린 채로 먼 길 가는 달팽이의 축축한 행로를 지켜보고 있을 때, .... 뭔가 가득 채워놓은 것이 쓰러져 엎어졌을 때, 이사 후 아무렇게나 기대 놓은 그림을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야 바로잡고 있을 때... 보름달 주기를 따라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던 마당의 꽃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할 때, 다시 또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024 나는 간다

 

이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틈틈이 꺼내 아무데나 펼쳐서 읽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를 따라가 멕시코의 청결한 이발사를 만나고, 자기 키만 한 액자를 들고 선 청년과 함께 빠리의 지하철을 타며, 런던의 택시운전사로부터 행색이 초라한 손님에게 팁을 받은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잔돈이 없어 여행자에게 그냥 옥수수를 내주는 순박한 페루 청년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수첩의 달력 칸칸에 베토벤, 존 레넌, 고흐, 아인슈타인을 적어 넣은 어떤 여행자의 수첩을 엿보고,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베니스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여행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끄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 도시가 나를 부른 이유를 깨달을 때까지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머물러야 한다. 걷고 보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도망가서는 안 된다. 도망해버리면, 돌아오는 길이 괴로울 테니까. ‘끌림’으로 떠나고, ‘끌림’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교토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도시가 나를 불러준다면. 그러면 가서 그곳의 공기를 꼭 안아주어야겠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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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공주 2007-06-1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옆의 고베도 네꼬님과 참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네꼬 2007-06-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넛님 / (아참, 공주님이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도넛님. 네, 고베도 좋았어요. (하지만 비가 오는 밤에 길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쿨럭.)

다락방 2007-06-1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저는 산문집도, 여행기도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나 여행기는 제게 그저 재미없는 책이예요. 이상하지요?

그런데 네꼬님의 이토록 아름다운 리뷰를 읽으니, 아뿔싸, 나는 그동안 너무나 편협하게 살았구나, 이토록 좋은것을 읽지도 못하고 이 세월을 보냈구나 싶어집니다.

진심으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멋져요, 이런 글을 쓰시는 네꼬님 :)

에디 2007-06-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조금 아닐지라도 ' 마음 놓고 사랑할 도시가 있다는 것' 이 부럽워요. : )
전 한 도시를 여러번 가보질 못해서.

...그러고 보면 저의 도시 취향은 참 formal 한듯. 너무.

베니스에 대한 커멘트는 기억해두었다가 앞으로 써먹을께요.

Mephistopheles 2007-06-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여행은 관광객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답니다. 그런 면으로 따진다면 여행은 제법 고된 행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되기 때문에 얻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겠지요..^^

마늘빵 2007-06-12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네꼬 2007-06-1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 저도 여행기는 너무 잘난척하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은 달라요. 시인들은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죠, 아직 안 해본 게 남았다는 게 좋지 않으세요? : )

주이님 / 저는 교토처럼 오래된 도시를 좋아해요. (경주도 좋아합니다, 물론) 베니스 얘기는 작가의 것이에요. 시인은 괜히 되는 게 아니더군요. -_-

메피님 / 맞아요. "훌쩍, 쉼을 찾아, 여유를 찾아" 라는 말은 어쩌면 그냥 하는 말일지도. -_- 발발발 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에너지를 동원해 느껴야겠죠.

아프님 / 응? 초콜릿 주게요?

비로그인 2007-06-1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행기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데... 네꼬님 리뷰때문에 끌리네요.
베니스는 정말 가봐야 아는 곳.
탄식이 절로 나오죠. :)

비로그인 2007-06-1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교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중 액자식 구조로 쓰신 것 같습니다만. 제겐 그렇게 보여요.
저 다른 색의 글자들의 모양과 서술이. (웃음)

네꼬 2007-06-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끌리셨다니 역시 이 책의 힘이로군요. 제목 참 잘 지었다 싶어요. : ) 책 속의 사진과 글을 보니 저도 베니스에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엘신님 / "돌아"간다고요? (오옷, 역시!) 에, 쓰고 보니 정말, 액자같네요. 하핫.

2007-06-12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도대체 뭘 쓰셨기에, 쑥스...? 궁금궁금 왕 궁금) 전 언제고 때가 되면 책이 사람을 찾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물론 고양이도 찾아오고요.)

비로그인 2007-06-1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네꼬님 저도 교토가고 싶어요~~

네꼬 2007-06-1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 / 자자, 유람단을 꾸려보아요~~

비로그인 2007-06-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서재, 무척 깔끔합니다.^^ '글을 아는 고양이'....문구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네꼬 2007-06-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우아아아앙---------- (미아보호소 버전.)
 
배우 수첩
멜리사 브루더 외 지음, 이용은 옮김 / 예니 / 1999년 9월
구판절판


배우는 '재능'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설사 재능이 있다 해도, 그것은 배우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재능이 실제로 있거나 없거나 그것에 상관없이 재능에 대해 걱정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연기에 필요한 유일한 재능은 연기하는 재능뿐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데 전념할 수만 있으면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의지만 있다면 누구라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고는 싶지만 재능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17-18쪽

마치 목수일처럼 연기도 정확한 테크닉과 도구가 필요한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테크닉과 도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의지력을 발휘해 결국 그 테크닉과 도구를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일단 그 테크닉이 몸에 익으면, 더이상 테크닉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 배우는 그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목소리 연습을 오랫동안 열심히 하고 나면 목소리를 내는 일보다도 장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에 더 편하게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된다.-18쪽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타인들과 단순하고 정직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만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존재의 진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극장이 있고, 극장을 떠날 때는 그런 종류의 의사소통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극장을 떠나는 관객은 기본적인 인간적인 가치들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시사받게 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내부에도 배우가 갖고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우의 이 강철같은 의지란 어떤 "대단히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아니라 배우 자신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가치로서, 이것이 바로 배우로 하여금 연기하게 하게 하는 힘이다. -18쪽

액션은
1. 신체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2. 하기에 재미있어야 하고,
3. 구체적이어야 하고,
4. 상대배우의 액션과 연결되어야 하고,
5. 메세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6. 어떤 신체적, 감정적 상태를 전제해서도 안되고,
7. 조작적이어서는 안되며,
8. 끝마무리가 잘 되어야 하고,
9. 극작가의 의도와 일치해야 한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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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3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기자 준비 하시는거에요? :)

네꼬 2007-05-31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 뭐, 못할 거 없죠. (으쓱)

네꼬 2007-06-01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하긴. 이렇게 걱정 없이 웃는 고양이는 참 드물죠. : )

stella.K 2007-06-1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정말??

네꼬 2007-06-1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정말 드물죠. 하핫.
 
새빨간 미술의 고백 -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 미술에 대한 다섯 답안
반이정 지음 / 월간미술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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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는 중에도 ‘현대미술’은 어딘가 친숙하지가 않다. 세기와 국경을 초월한 옛 미술보다 ‘현대’의 미술이 오히려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만 그런가?) 게으른 성격 탓에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만, 현대 미술을 설명하는 글과 책의 도움을 받으려고 몇 번 시도해보았는데 대부분 허사로 돌아갔다. 그들의 입장은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지나치게 심오한 의미를 주어 거부감을 느끼게 하거나,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세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하고 이렇게 쉬운 걸 ‘모르는 나’를 무안하게 하거나.


<<새빨간 미술의 고백>>은 그런 점에서 반가운 책이었다. 저자는 “관념적 용어로 작가의 천재성을 추켜세우”지도 않고, 현대미술은 그저 만만한 것이니 걱정 말라고 무작정 안심시키지도 않는다. 저자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다섯 개의 창은 ① 패러디 ② 적극적인 사회비판 ③ (소재의) 경량화 ④ 옥(미술관)외 예술 ⑤ 타 장르(특히 미디어)와의 교류다. 이 다섯 항목에 따라 차근차근 2000년 전후의 다양한 작품 60여 편을 소개하는 저자의 설명은, 다정해서 마음이 놓이면서도 감상자가 알면 더 좋을 포인트들을 집어주어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무엇보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의문을 가지거나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슬쩍 꼬집어, 이 미술평론가도 내 편이구나 하는 웃음을 짓게 하는 것은 저자의 특출한 장기였다.




안규철 <흔들리지 않는 방> 2003 (사진은 다른 데서 갖고 왔다. 물론 책 속 도판이 더 좋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기물들을 각목으로 엮어서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흔들림에 대한 저항은 불안전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반영하며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다.” (125면. 이건 저자가 인용한 ‘작가의 해설’이다.)


이 꼭지 말미에 저자는 덧붙인다 : 이 작품은 인생의 잠언을 담고 있지만 주재료가 각목인 탓에 제작비는 얼마 안 들었겠네요. 그렇지만 인건비와 노동량은 장난 아니었을 듯하죠?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이 반영”된 게 맞는 듯. 예술도 삶도 이처럼 영원하고 지루한 막노동인지도 모릅니다. (127면)


(아무래도 작품 창작자보다도 저자가 작품에 대해 더 잘 아는듯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소년 마네킹 셋을 목매단 작품,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목매단 아이들>에 쏟아질 비난에 대해 저자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음의 상처는 어쩔 거냐”고요?

만인의 마음에 위안과 안정을 기약하는 것은 더 이상 현대미술의 과제가 아닙니다. (152면)


나처럼 눈이 어두운 사람도 현대미술의 경향을 짐작하게 하는 책, 아니 그보다, 적어도 현대 미술에 거부감을 덜어주는 책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 

별을 하나 뺀 이유는 : 편집에 대한 서운함 때문이다. 늘 설명이 먼저 나오고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데 좀 방해가 된다. (물론 매 꼭지마다 신경 써서 작품을 먼저 찾아봐도 되겠지만, 독자를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 서운함이.) 그리고 전시장의 조형물인 경우 아마도 미니어처로 추정되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도 아쉽다. 이게 작품을 찍은 사진인지, 아니면 사진 자체가 작품인 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이 정도 작품들은 유명하니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고양이들은 모르고) 작품 옆에 이런 저런 정보를 싣는 게 보기에 예쁘지 않았다면, 책 뒤에 목록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왕이면 작가들의 국적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걸. 뭐, 고양이들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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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3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미술은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많아서 놀라게 되요.
그래서 아마 더 친해지지 못하는것 아닐까요.
이 책 한번 보고 싶네요.

네꼬 2007-05-2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 별로 부담을 갖지 않고 읽어도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더라고요. 전 친해지는 것은 좀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흥미는 갖게 되었어요. : )

2007-05-26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5-2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어머나, 이렇게 찾아주시다니, 당황스러운 한편 고맙습니다, 정말로요.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저는 독자로서 불만이라기보다 서운하다는 뜻입니다. 그냥 제 생각에, 그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 ) 좋은 책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정말이에요. : )
 
Music and Lyrics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 O.S.T.
Various Artists 노래 / 워너뮤직(WEA)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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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OST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되는 것, 영화가 내 일상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라고 전에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음악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음반은 예외였다.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놓치는 바람에 영화음악을 먼저 듣게 된 것이다. 나는 휴 그랜트의 목소리를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부른 노래마저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화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대략적인 구도, 그리고 휴 그랜트가 맡은 역할이 80년대 인기그룹의 3인자라는 것 정도였다. 휴 그랜트는 원래 노래를 그다지 잘 하는 편이 아닌데 이 영화 때문에 연습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다. 노래를 썩 잘 해서가 아니라, ‘3인자였던’이답게 조금 허술하게 그러나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Pop! Goes my Heart>><<Meaningless Kiss>> 같은 노래들을 듣고 있자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쩜 이렇게 그 옛날 노래들의 공통된 특징을 잘도 잡아서 보일 듯 말 듯 개성을 덧붙였을까, 분명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일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마치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80년대의 유행가를 듣는 듯하다. 광고에 많이 쓰여서 귀에 익은 <<Way into Love>>는 역시 데모 버전이 좋다.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소곤거림과 웃음소리가 들어간 이 곡의 데모버전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 역시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그런가 하면 신나는 ‘요즘 곡’들도 함께 실려 있어서 음반 한 장 다 듣기가 지루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휴그랜트의 바로 그 목소리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곡 <<Love Autopsy>>가 끝나면 아쉽기까지 하다.


아예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거나, 유난히 아름다운 삽입곡들이 많아서 “OST로 기억되는 영화”들이 있다. 아직 보지 못한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은 그런 영화는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이 OST는 나에게 소박한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80년대의 화려한 팝을 사랑했던 이들의 소박한 마음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감동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못 보았다고 해서 묻어 두기엔 너무나 아까운 앨범이다. DVD의 출시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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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4-2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저랑 같아요. 저도 Way into love 는 데모버젼이 훨씬 좋아요.
[Pop! Goes my Heart]랑, [Meaningless Kiss] 도 정말 좋구요. 후훗. 영화도 꼭 보세요. 음악만큼 사랑스런 영화예요. :)

비로그인 2007-04-23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안봐서 아쉽~ ^^;

네꼬 2007-04-24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 데모버젼 간주 때 드류 씨의 웃음소리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따라 웃는답니다. 영화도 꼭 보고 싶어요. 염장 지르는 연애 얘기가 아니라 뭔가 따뜻한 게 담겨 있을 것만 같아요.

체셔고양2님 / DVD 나오면 우리 꼭 보아요. =^^=

도넛공주 2007-05-0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VD 나오면 좌아악 뉴스를 뿌려주세요! 저도 당장 살거랍니다. 전 드류 배리모어는 싫고 휴 그랜트! 호호호.

네꼬 2007-05-02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넛공주님 / (앗, 나타나셨다!) 네네, 온동네 소문 내고 다닐게요. 전 드류 씨는 세모고, 휴 씨는 세 겹 동그라미예요. =^^=
 
로큰롤 보이즈
미카엘 니에미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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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는 성장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표지가 이런 책은 읽지 않을 수가 없다. 까만 레코드판이 절반을 채우고 있다니. 이건 ‘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위협에 가깝지 않은가 말이다. 난 이미 충분히 자란 어른인데, 남의 성장담-그것도 저 먼 스웨덴의 시골 이름도 어려운 ‘파얄라’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라니 과연 내가 동화되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거의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첫머리를 추억담으로 장식하지 않고, 이제는 어른이 된 내레이터가 산 속에서 곤경에 처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거의 죽을 뻔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상쾌하게 그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린다는 것이, 멋지다.


이제 겨우 도로가 들어오기 시작한 스웨덴의 시골 마을, 마티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비틀스를 듣고 음악에 빠져든다. 물론 처음에는 헛간에서 록가수를 흉내 내며 입만 뻥긋거릴 뿐이었지만 마침내 입을 벌려 소리를 내게 되고, 친구와 함께 펼친 발광에 가까운 공연이 뜻밖에 호응을 얻으면서 음악을 향한 마티의 질주는 계속된다. 그러는 가운데 순박하고도 억센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결혼식에서 집안의 담력을 자랑하기 위해 사우나를 견디는 어른들은 미련스럽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고(승자는 뜻밖에도...), 어른들 못지않은 허풍으로 몰래 술마시기대회를 여는 소년들의 담력(!)과 주정도 생동감 넘치는 묘사에 힘입어 마치 ‘우리 시골’에 있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유령과 마녀 이야기처럼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도 열에 들뜬 사춘기 소년들의 것이어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마을의 변화와 소년이 자라는 것, 광란에 가까운 퍼포먼스가 ‘음악’이 되어가는 것이 어딘가 닮아 있다.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몸이 커지고 생각이 성숙해지는 것이 자라는 것의 전부는 아니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마음’이 자라는 것. 점점 세계를 알게 되는 데 있다. 그리고 기꺼이, 세계 속의 내 자리를 잘 알고 그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세계로 나오는 것. 파얄라도, 소년들도, 그들의 음악도 그렇게 자라고 있다.

 

"크느라고 고생이다." 이 말은 사실 이 책이 아니라 성석제의 <<궁전의 새>> 나오는 말이다. <<로큰롤 보이즈>>를 읽는 내내 성석제의 소설이 생각난 것은 우연일까? 비틀스를 처음 듣고 “피를 흘리며” “얼이 빠진 채” 정신을 놓았던 마티처럼, 어린 원두도 기타 소리와 그 (말도 안 되는) 연주자에 매료(혹은 매수)되어 곳간의 쌀을 훔쳐낸다. 그런 원두에게 뜻밖에 관대한 처분을 내린 할아버지가 혼잣말하듯 하신 말씀. “크느라고 고생이다.” 이따금 어려운 일을 겪거나 상처를 입은 날 잠자리에 들 때면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마티와 그의 일당이 열에 들뜬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조금씩 자랄 때마다, 역시 이 말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다 컸다고 생각한 나도 아직 자라는 중인지 모른다. 당신도 이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개의치 말고 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시길. 예나 지금이나 여기서나 저기서나 누군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 자라는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

 




* 참, 낭기열라 씨, 보내주신 북다트 잘 받았어요. (누군가 손으로 쓴 메모까지 넣어주시다니, 이러면 정말 ♡.♡) 하지만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고 해서 리뷰를 쓴 건 아니에요. (흠, 뭐 아주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좋은 책 내주어서 나도 고맙습니다. 낭기열라 씨, 앞으로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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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4-2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제 보관함에 담겨있는 책인데요. 이 책은 그러니까 어느 쪽에 가깝나요? [시계태엽 오렌지]쪽, [호밀밭의 파수꾼]쪽. 이도 저도 아니면 독창적으로 참 재미있나요? 일단 땡스투예요. 정말 읽고싶은 책이었어요. :)

네꼬 2007-04-2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 (땡스 투라니, 처음이에요. 고맙습니다, 꾸벅.) 제가 써놓은 걸 보니까 중요한 얘길 안 한 것 같아요. 이 책은 무엇보다, 웃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아마도 위의 두 권과는 구별될 듯^^) 한 대목 읽어드릴까요?

"그레게르 선생님이 때때로 우리 연주를 듣고서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선생님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엄청난 참을성이었다. 우리에게 동시에 연주를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준 그 점심시간 때처럼. 선생님은 우리에게 몇 번이고 카운트를 해주었지만 나는 매번 셋에서, 니일라는 넷에서 시작했다. 잠시 반대가 되기도 했다. 마침내 우리가 둘 다 넷에서 시작했을 때, 선생님은 하나에서 시작해야 하는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다락방님, 우리집 앞에 복숭아꽃이 피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