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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만나는 그림책
무라타 히로코 글, 테즈카 아케미 그림, 강인 옮김, 츠지하라 야스오 감수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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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름난 작가가 어린이들과 함께 저개발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동화를 읽었다. 이야기는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은 뜻밖에 마음에 남았다. 함께 간 어린이들이 봉사 여행을 통해 한층 성숙해졌다면서 아이들이 "이 나라 애들은 왜 이렇게 못 사는 거냐."며 눈물을 글썽거린 것을 그 증거로 내세웠고, 우리나라에도 도울 어린이들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까지 돕냐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 자신은 "한국전쟁 후 도움을 받던 나라가 이만큼 성장해 남을 도울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응수한다며, "우리 스스로 노력해 다른 나라에 가서 인종차별을 받지 않도록 능력을 키워야 된다"고 쓰여 있었다. 남을 돕는 선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말들에 숨어 있는 시혜적인 시선과 미묘한 열등감이 불편했다.

 

어쩌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감수성이 아닐까? 세계가 아주 넓고, 문화는 다양하며 사람들은 다 다르고 또 비슷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감각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이라면 특히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와 만나는 그림책』은 바로 그런 감수성을 키워주는 책, 여기에 흥미로운 정보들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여러 가지 나무가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여러 동물이 모이듯이, 세계에는 여러 사람이 살고 있어." 첫 두 장면에서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미리보기를 꼭 보세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전제와 비유, 이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 찬찬히 설명한다. 신체의 특징 -> 멋 내기 -> 민속 의상 -> 전통적인 집의 특징 -> 좋아하는 음식 -> 간식 -> 시장 풍경 -> 독특한 생활 용품 -> 운송수단 -> 놀이-> 운동 -> 음악과 춤 -> 종교 -> 언어 -> 인사법의 순서다. 세계의 삶이 비슷하게 현대화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TV 여행 프로그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옷맵시나 가옥의 특징을 전통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는 방식은 독자의 흥미를 확 끌어당긴다. 신체와 같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 추상적인 생활습관 쪽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것도 아주 효과적인 구성이다. 

 

 

 

(죄송하지만, 알라딘에 소개된 그림 갖고 왔어요)

 

 

그리고 그림이 적절하다. 간결한 선으로 대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보다 효과적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이렇게 단순한 선 덕분에 화가 자신의 특징(국적을 포함해서!)은 뒤로 숨고 객관적인 정보가 남는 것이다. 객관적이서서 오히려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을 따뜻한 색감이 보완해준다. 전략적인 그림인 것이다!  "놀이 방법도 여러 가지야. 그치만 놀기 좋아하는 건 모두 똑같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어." 이렇게 핵심을 잘 잡아낸 지문들과, 소소한 듯하지만 흥미로운 캡션도 좋다.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라면 큰 지문을 읽고 그림을 손으로 짚어가며 캡션의 정보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어린이라면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마지막 지문, " 함께 사는 지구. 서로 다르니까 더 재미있어." 서로 존중하자거나, 사이좋게 지내자거나, 도와주자거나 하는 군더더기없이, "서로 다르니까 더 재미있어."가 결론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이로써 충분하지 않은가?

 

TV와 인터넷 덕분에 오늘의 어린이들은 더 많이 '세계'라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다문화가정(대체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이 많아지면서 어린이들에게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노력도 많아졌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세계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책들은 "(약자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자"는 구호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결국 그 아이들을 타자화하거나, "세계는 넓다"는 것을 알리고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곤 한다. 그런데 다양성이란 게 뭔지 진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양, 즉 감수성이 전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세계를 이해하는 감수성이라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오히려 단순한 것이다. 세계는 넓고, 문화는 다양해. 사람들도 다 다르지만 어떤 것은 똑같아. 그게 재미야. 이 책과 함께라면 어른들도 그 감수성을 새롭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일단 나부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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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0-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문화 가정, 대체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네꼬님의 회색글씨에 격한 공감 누르고 가요..
초면에, 초절정 인기 서재에, 처음으로 첫댓글 남기려니 뒤통수가 뜨끈하네요.ㅎㅎ

네꼬 2013-10-16 22:57   좋아요 0 | URL
견디셔님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는 것은 처음이지만, 저도 견디셔님 알고 있었어요. (이런 닉네임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인기라뇨! *_*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생길 때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지만 요즘은 참 내키지 않아요. 다른 적절한 말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없어지든가!

다락방 2013-10-1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어제 했고 오늘은 이 댓글 달러 왔어요.

훌륭한 리뷰입니다!!!!!!!!!!!!!!!!!!!!

네꼬 2013-10-17 13:18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헤헤헤헤 (<- 이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꿀꿀페파 2013-10-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갑니다.

네꼬 2013-10-28 15:30   좋아요 0 | URL
꿀꿀페파님 안녕하세요? 이거 고맙습니다. (^^)
 
[피카이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피카이아
권윤덕 글.그림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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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보는 책이라고 해도, 어려운 지식은 어렵게 전하는 게 맞다. 오래 두고 고민해야 하는 내용을 간단히 전하려고 술수를 쓰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내가 해낸 거면 평생 잘난척하며 살 수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건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경전 삼아 곁에 두고 보는 책 『책 어린이 어른』(폴 아자르)에 나오는 얘기다.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는 것과, 손쉬운 설명으로 '아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피카이아』를 읽으면서 다시금 그 대목을 떠올렸다. 이 책은 어려운 이야기를 담은, 간단치 않은 책이다.

 

한국 그림책 작가중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권윤덕과 척추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생물 '피카이아'의 조합은 얼핏 신기하게 보인다. 그림책과 진화론이라니. 게다가 책도 두껍다. 아름다운 표지와 그림이 무게를 좀 덜어주지만, 저 멀리 고생대의 피카이아에서 인간의 기원을 찾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그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반추하는 책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작가는 차근차근 독자를 설득하고 때로는 질문하면서, 어렵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 어렵기 때문에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놓았다.

 

도서관에서 개 '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이 묵묵한 리스너 키스에게 각자 속얘기까지 털어놓는다. '폐지 145킬로그램을 모아서 13500원을 버는' 할아버지와 사는 상민이는 출발부터 불평등한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뜨개질을 좋아하는 미정이는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의 압박 때문에 올이 풀리듯 자기 존재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폭력적인 부모의 무관심에 성폭력에 노출된 윤이는 목소리가 사라지는 듯하고, 정리해고 위기에 놓인 아빠 때문에 걱정이 많은 채림이는 헤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기를 소망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강안이는 이따금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육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아이들에게 '피카이아'를 알려준 것은 혁주다. 혁주는 만난 적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다, 책에서 '피카이아'를 처음 알게 되었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생겨났던 많은 동물들이 5억 3천만년 전 갑자기 멸종했다. 어떤 종은 멸종하고 어떤 종은 살아남은 원인이 무엇일까? 훌륭한 가시를 가졌고 개체 수도 많았던 마렐라, 몸집이 크고 먹이를 부수어 먹을 수 있는 턱을 가졌던 최고의 포식자 아노말로카리스는 멸종하고, 왜 피카이아가 살아남았을까? 피카이아는 모양이 특별하지도 않고 개체 수도 많지 않았는데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어쨌든 그렇게 많은 동물들이 멸종한 시기를 피카이아는 이겨 냈고, 그래서 인간이 생겨날 수 있었다." (112면)  

 

피카이아가 그랬듯이, 남보다 뛰어나야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상민이는 어렴풋이 생각한다. 뜨개질이 그렇듯 경쟁보다는 협동이 좋기 때문에 미정이는 친구를 찾는다. 인간은 스스로 치유하기 때문에, 윤이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무리지어 사는 흑두루미를 보며 가족을 떠올리는 채림이도, 고기는 먹지만 '육식'이 무얼 뜻하는지는 생각하는 강안이도 각자 고민을 안고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다져간다. 역시 피카이아가 그랬듯이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이유가 된다. 어렵지만 놓쳐서는 안 될 생각이다.

 

작가는 진중한 주제, 어쩌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여러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독자 역시 피하지 않기를 주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옥죄지 않는 것은 차분한 톤의 아름다운 그림 덕분이다. 독특한 글 텍스트 배열 방식도 독자가 숨을 고르며 읽어갈 수 있게 한다. 책 뒤에 실린 작가 인터뷰와 참고 그림도 작품 이해를 돕는다. 다만 군데군데 어려운 서술이나, 어린이들의 대사에 작가의 목소리가 묻어나는 점이 아쉽다. 

 

이렇게 '어렵고 두꺼운 그림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 작가의 말에 힌트가 있으니, 이 책은 읽어주는 그림책이 아니라 '읽는' 그림책, 어린이와 어른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이다.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도 수준도 다를 것이다. 어린이가 혼자 읽는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아름다운 것들이 종종 그렇듯, 어렵기 때문에 문득 더 아름다운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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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9-2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리뷰는 오늘 내가 하루종일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이에요. 네꼬님이 신간평가단을 해서 무척 좋아요. 어쨌든 정기적으로 글을 꾸준히 써줄테니까. 다음에도 꼭 신간평가단 해주도록 해요, 알았죠?

나도 읽어볼래요.

네꼬 2013-09-25 23:52   좋아요 0 | URL
다락님, 좋은 책인데 리뷰 쓰기가 어려웠어요. 으아 나 똑똑했으면 좋겠다. 내 지식과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잠깐 절망했다가, 에이 뭐 그럴 것까지야, 하고 씩씩하게 마무리해보았어요. 근데 다락님이 좋다니까 좋군요. 껄껄껄.

레와 2013-09-2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맙소사.. 이 리뷰 정말 좋잖아요!!
네꼬님 나 이 리뷰에서 위로 받았어요. 어디라고 콕 찝어서 말 할순 없는데. 읽고나니깐 뭉쳐있던 뭔가가 툭툭 터졌어요. 고마워요.^^


네꼬 2013-09-30 20:58   좋아요 0 | URL
이거 참.. 이럴 때 의연하게 껄껄 웃고 말고 싶지만... 이런 칭찬을 받으면 저도 모르게 상모를 돌리며 꽹가리를 치게 된답니다.
 
[참 쉬운 한그릇 요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참 쉬운 한 그릇 요리 - 간편해서 좋아
함지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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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차림은 보통 밥과 국, 김치를 포함한 밑반찬을 바탕으로 한다. 나의 경우 국을 생략하고 찌개를 올리거나 고기나 생선을 주재료로 한 요리를 더하거나 경우에 따라 밑반찬만으로 밥을 먹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먹는 때가 많아서 밑반찬은 고사하고 감자나 떡으로 대강 '때우는' 때가 많아 서럽던 차. '한 그릇 요리' 컨셉의 책이 일단 반가웠다.

 

이 책은 차리기 손쉽고, 어느 정도 포만감도 주는, 또 맛도 있는 한 그릇 요리들을 소개한다. 사실 이 책을 구해서 보는 사람들은 이미 요리책을 몇 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 역시 그렇다. 이전 요리책들이 주로 밥, 국, 찌개, 반찬 등의 구분으로 요리를 소개하는 것이 비슷비슷하다면 거기에 비해 이 책은 '한 그릇 요리' 컨셉에 충실하게 밥, 죽, 면, 탕 등 비교적 간소하게 차릴 수 있는 메뉴와 맛탕이나 핫도그 같은 간식거리를 소개한다. 이제는 요리책의 필수요소처럼 된 '육수 내기' '계량하기' 등 요리 초보자들을 위한 기본 정보와 군데군데 소개한 팁들도 충실히 담긴 편이다.

'베이컨김치볶음밥', '스팸달걀밥'처럼 "요리"나 "레시피" 같은 단어를 쓰기엔 좀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한 메뉴부터 '단호박해물찜', '애플타르트'처럼 요리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도전해볼 만한 복잡한 메뉴까지 무려 123가지나 되는 요리가 소개된 것도 장점이다. 꼭 이 책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더라도 딱히 요리할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좋은 참고가 된다.(사실 이 책을 받은 날 바로, 맨처음 소개된 새우양파덮밥을 내 맘대로 해서 먹었다.) 또 한 가지, 완성접시들이 예쁘고 장식도 세련되어서 사진을 보는 것만도 눈이 아주 즐겁다.

 

그런데 책을 넘겨 보는 동안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제목을 비롯해 표지 어디에도 이 책이 '가족이 있는 사람'을 전제로 했다는 내색이 없는데, '한 그릇 요리'라는 명확한 컨셉이 오히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것 같은데, 정작 본문은 '남편 입맛에 꼭 맞춘 한 그릇 요리' '아이가 잘 먹는 한 그릇 요리' '나를 위한 한 그릇 요리' 등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즐기는 특별한 요리' '주말 낮에 즐기는 간식거리' 챕터도 있지만 이미 가족이 컨셉으로 들어와 있는 셈.) '강된장부추비빔밥'과 '떡갈비쌈밥'은 남편을 위한 요리로, '소시지볶음우동'은 아이를 위한 요리로, '가지덮밥' '꼬마 김밥'은 나를 위한 요리로 꼭 나누어야 했을까?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혼자 사는 사람(특히 남자) 독자들에게는 좀 당혹스러운 구성은 아닐지, 왠지 정말 왠지 나는 그런 게 마음에 걸렸다. 또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왜... ㅜㅜ) 계량 단위에 '꼬집'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나로선 내키지 않았다. 한번 들으면 딱 아 얼마큼 넣으라는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꼬집'이라는 단위는 참 귀엽고 직관적인 단어다. 그렇지만 꼭 책에서까지 이 말을 써야 했을까? 어차피 일러두기에 "꼬집, 조금, 약간 : 소금이나 후춧가루 등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은 정도를 말해요."라는 설명을 붙일 것 같으면, '꼬집'이라는 단어는 안 써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로 이 뜻에 대응하는 우리말로 '자밤'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으면서부터 끊이지 않는 고민.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귀찮은 고민이 바로 '뭘 해 먹을까?'다. 이 책은 메뉴 정하기의 참고서로, 이만하면 혼자 먹더라도 해보자 싶은 요리들의 안내서로서 의미가 있다. 자격증 없는 요리사 레벨을 1~5로 나눈다면(5가 높은 것) 자기가 최소 2레벨은 된다고 생각하는 요리사들이 보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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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3-09-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리뷰 참 좋다..! ^^
'자밤' 잊지 말아야지. 헤헤

네꼬 2013-09-12 09:39   좋아요 0 | URL
레와님아 나 지금 빙긋 웃으면서 댓글 달고 있소. 사실은 흐흐 소리가....
뭐 저도 순우리말 애호가는 아니지만 '자밤'은 쓸모가 많은 말이라 안 까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흐흐.

Mephistopheles 2013-09-1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표현도 있더군요 1아빠숟갈, 2아빠숟갈....소금은 소큼소큼 뿌리고 후추는 훗주춧~뿌려줘야 한다고

네꼬 2013-09-12 09:38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아아악 메피니이이이임! 왜 그런 말을 제 서재에 쓰시는 거예요. 혼자만 아시지 왜왜왜왜왜 (귀 막고 외침)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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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정기용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적의 도서관들을 설계했고, 회자되는 건물들도 지었다 하니 아마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은 적은 있을 텐데도 그랬다. 한때 서현 선생의 건축 관련 책들을 좋아했던 것 말고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책이 있는 것도 몰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일기 : 정기용 아카이브전'을 본 친구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고 주말 나들이 삼아 미술관에 가기로 결심했고, 그 참에 정기용 선생 관련 책들을 찾아보느라 이 책을 알게 됐다. 친구가 올린 사진은 선생의 스케치 일부였다. 거기엔 이런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산 큰 하늘 큰 빛 큰 바위를 보고 살게 하자.'

 

이 책은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는 별칭을 얻은 정기용이 10여 년 간 전북 무주를 오가며 말 그대로 한 지역을 설계한 기록이다. 책 뒤에 실린 좌담에서 농담처럼 얘기 되었듯이 정경유착이라든가 건축가의 전횡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낮은 수준(짐작컨대 손해 수준)의 비용을 받는 대신 건축가의 열정과 사랑, 실험을 고스란히 쏟아 부은 독특한 프로젝트였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시대와 사회, 특히 농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발언하고 운동해온 건축가다운 행보이기도 했다.

 

영세민의 집값을 낮추기 위한 방책으로 흙건축을 연구하던 정기용은 그 인연으로 진도리마을회관을 지었는데, 그 상량식에서 당시 무주군수를 만나 무주 프로젝트의 싹을 갖게 됐다고 한다. (마을회관 상량식에서!) 이후 십여 년, 정기용은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치하면서 무주의 여러 공공건축을 설계했다. 무주가 작은 군이니, 공공건축이라 해도 대형 경기장이라든가 시청 신축 같은 일이 아니다. 면사무소, 청소년회관, 농민의 집, 된장 공장, 요양원, 버스정류장 등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보통의 건물을 설계한 것인데, 각각을 지을 때 에피소드들이 다채로우면서도 정직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설계할 때 건축가의 이상과 실험정신보다 주민의 삶과 요구를 우선으로 한, 그러나 완전히 고집을 꺾지도 않은 정기용의 성품이 소박한 문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테면 면사무소를 지을 때 주민들은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 주지." 라며 심드렁했단다. 평생 농사로 안 아픈 데가 없는 마을 노인들이 몸 뜨끈히 담글 목욕탕이 없어 옆 동네까지 차를 빌려 가야 된다는 말에,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마련한 이야기는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홀수날은 남탕으로, 짝수날은 여탕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군내 행사 때 주민들이 하도 참여를 안 해 고심하던 군수가 이른바 VIP석에만 차양이 있고 주민들은 뙤약볕 아래 스탠드에 앉기 때문임을 알고 등나무를 심은 이야기도 있다. 정기용은 이 등나무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박한 지지대를 했다. 이제 등나무 넝쿨이 우거진 공설운동장은 산책 코스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한다. 리노베이션으로 주변이 정리된 군청이라든가 풍경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간결하게 설계된 버스정류장 이야기도 좋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이 책이 프로젝트의 성과만을 기록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노인요양시설을 침대마다 독립된 방 비슷하게 꾸민 것은 사생활을 존중하는 설계였으나, 요양원 운영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침대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결코 이전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한다. 청소년수련관은 청소년 수가 적어 취지와 달리 잘 활용되지 않고 있고, 감리를 하지 못한 식물원은 오히려 주변 경관을 해치듯이 자리 잡아 버렸다. 또 완공 이후 임의로 덧댄 공사가 건물을 망친 경우도 있다. 정기용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듯 늘어놓지 않고, 지나치게 겸손한 언어로 포장하느라 옆길로 새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후학과 사회를 위한 것이지만, 마치 혼자 있는 방에서 쓰인 결연한 일기 같다.

 

건축가의 이런 태도 때문일까. 책을 만든 모양새도 그렇게 성실하면서 객관적이다. 설계도면과 메모, 완공된 사진들이 적절한 캡션과 함께 잘 정리되어 실렸다. 책 뒷부분에는 이 프로젝트의 성과와 한계를 짚는 좌담이 실렸다. 2007년말 희망제작소에서 진행된 이 좌담에는 강내희, 박원순, 홍성태 등 각계 연구자들이 함께했는데, 이들의 발언들에 밑줄 그을 부분이 많다. (2007년말....) 사람과 사회, 지역, 특히 농촌을 향한 건축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한편,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드러난 문제점도 조목조목 짚었다. 이어 이유주현 기자가 실제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도 실렸다. 새로운 건축들이 주민의 삶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은 것인데, 다른 면사무소까지 번진 '목욕탕문화'에 대한 칭찬뿐 아니라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얇아 역할을 다 못하는 전통시장 천막에 대한 불만, 인기에 비해 너무 작게 지어진 천문대에 대한 아쉬움 등 생생한 주민의 목소리를 솔직히 담았다. 나는 무엇보다 정기용의 설계도를 들고 동분서주한 사무실의 실무자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무주라면 치를 떨고 도망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선생의 스태프라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그 인터뷰가.

 

*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2011년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도면과 관련 자료들로 꾸며졌다. '국립' 미술관이면서도 외곽 산 밑에 자리잡아 찾아가기 어려운 곳, 심지어 놀이동산이 옆에 딱 붙어 있어 어수선한 곳. 모르긴 몰라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건축은 우선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 '공간'과의 감응에서 시작한다고 했던 선생이 생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는 아파트가 국토를 점령하고 농민에겐 여전히 땅이 없는 이 나라를 어찌하면 좋겠냐는 선생의 강의를 영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기증받은 것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지만 그 양이 방대해 관람객을 압도하는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복잡한 도면, 감정이 느껴지는 드로잉과 스케치, 꼼꼼한 메모들은 관람자에게 '감응'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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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9-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큐.."말하는 건축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을 보며 드는 생각은...짧고 굵게 살것인가. 아니면 길고 가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앞섭니다. 이 분의 단명 이유는 단하나겠죠. 체력이 열정을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네꼬 2013-09-06 12:2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안 그래도 리뷰 쓰면서 메피님이 한말씀 해주시겠구나, 했어요. (^^)
정말 돌아가시기 얼마 전 찍은 영상들을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도 있다니 찾아봐야겠어요. 우앙. 훌륭한 분.

마늘빵 2013-09-0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네꼬님 나도 이거 샀는데. 이분 전시회 보고서. 건축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참 다양하게 했더라고요.

네꼬 2013-09-06 12:26   좋아요 0 | URL
아아 아프님도 갔었구나! 그쵸. 모형(? 이렇게 말해도 돼요?)만 봐도 멋지고요. 자료들도 남기신 것의 극히 일부라는데도 그만큼! 책도 (의외로) 정독하게 되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13-09-0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려구요.
도심의 주요 건축물이 서양건축가들의 작품으로 뒤덮이고 있어 아쉽고,(뭐 건물에 국적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좀 건물만 너무 튀는듯도 하고) 꼭 기억해둬야 할 사람들이 평가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아쉽고 그렇네요..

[이렇게 말하지만 제 기억에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건물이 지금은 없어진 옛조선총독부(그러니까 제가 방문할 당시엔 박물관?)였어요. 초등학교 때 아주 맑은 봄날 방문했는데 마당 자판기에서 핫도그를 뽑아 먹으며 보던 그 건물의 당당함과 안에 들어섰을때의 환함이 아직도 생각나요.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처음본 궁궐은 기억에도 없네요 =.= 대학생때 유럽에 가서 신전안에 들어갔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역시 어린시절 만큼은 아니었어요..]

네꼬 2013-09-06 12: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 건물 기억해요.....예.. 예뻤어요... ㅠㅠ 슬픈 일이지만 매우 인상에 남는 건물이었어요. 흙. 저도 소풍으로 갔었는데!

전 도시에 살아야 한다면 아파트가 어쩜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에요. 그나마 모여 있고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자연에는 덜 해가 되지 않을까. (체념.)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나 도시 근처에 몰려 살려면 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여튼 생각이 복잡했어요. 튀는 건물들에 대한 유감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저 서울시청만 해도.. 아아 그만할게요. 아아.. 아아..

마노아 2013-09-0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는 건축가 아주 인상 깊게 보았어요. 이 책도 같이 궁금해지네요. 사람이 먼저인 건축가, 참으로 아름다워요!

네꼬 2013-09-06 12:30   좋아요 0 | URL
응 마노아님도 그 다큐 보셨나 보네요.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사실 책은 원래 사진이랑 캡션만 보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꽤 정독하게 됐어요. (저 같은 사람조차!) 마노아님이라면 더 꼼꼼히, 더 많은 감동 받으면서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moonnight 2013-09-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면사무소 + 목욕탕 이야기 신문에서 읽었는데 이 분 이야기였군요. 이미 작고하셨다니 아쉽고 슬프네요. ㅠ_ㅠ

네꼬 2013-09-06 23:0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나 아까 문나잇님 서재 갔었는데. 혹시 그새 새 페이퍼 쓰셨나 하고요! 아까는 새 글이 없어서 (-_-) 털레털레 돌아왔는데, 혹시 그새 쓰신 거예요? *_*

책 읽어봐 주세요. 감동이 있는 책이었어요. 마지막엔 글쎄 약간 울 뻔..;;

네꼬 2013-09-06 23:04   좋아요 0 | URL
엇... 가 보니 아직 새 페이퍼는 안 쓰셨네..... =_=

moonnight 2013-10-01 18:50   좋아요 0 | URL
앗 미안해요. ㅠ_ㅠ;;;;
 
꼬마 할머니의 비밀 - 초등학교 저학년 동화 동화는 내친구 55
타카도노 호코 글, 지바 지카코 그림, 양미화 옮김 / 논장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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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노인은 통한다고들 한다. 어린이들은 세상의 잣대를 아직 다 알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놀라운 통찰력을 보일 때가 있다. 반대로 (어떤) 노인들은 오랜 세월 세상의 잣대에 다치기도 하고 그것과 싸우기도 하고 지키려 애쓰기도 하면서 마침내 자유로워져서 지혜와 진짜 통찰을 얻기도 한다. 멋진 일인 것 같다. 


84세 에라바바 선생님은 옷 연구가로, 옷 만드는 방법이나 젊어 보이는 차림새를 연구하고 가르쳐서 아주머니 할머니 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에라바바 선생님의 진짜 연구는 바로 진짜로 젊어지는 옷을 만드는 데 있었고 어느 날 한 겹 입을 때마다 한 살씩 젊어지는 옷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얇고 투명한 속옷을 여러 벌 겹쳐 입으면 원하는 나이로 돌아간단 말씀. 에라바바 선생님은 점찍어 둔 제자 효코르 할머니(68세)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모험을 시작한다. 효코르 할머니는 한 오십살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에라바바 선생님은 단호하다. "한 번 더 아이가 되어서 마음대로 놀 수 있는데, 물구나무 서기 하나 하지 못하는 중년 아줌마가 되는 걸로 좋다니, 바라는 게 그렇게 작아서야 원, 뭐가 제대로 되겠어요?"(27쪽)


이렇게 해서 여덟 살로 돌아간 두 할머니는 겉으로는 교양 넘치지만 허영뿐인 아주머니들을 골탕먹이기도 하고, 아이들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무섭게 합창 연습을 시키는 선생님을 혼내주는 등 소동을 벌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할머니가 두 꼬마가 되어 어린시절을 다시 한번 만끽하는 것이다. 다시 어린이가 되자마자 "조금 전까지 그러고 싶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31쪽)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폴짝폴짝 뛰게 되고, 서로 간지럽히고 꺅꺅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면서 별것 아닌 일에 웃음을 터뜨리는 두 꼬마는 바로 보통 아이들이다. 길을 걸을 때도 가만히 지나가는 법이 없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역할극을 하고 저희들끼리 깔깔거리는 어린이들, 작가는 그런 것이 어린이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공원에서 실컷 놀던 두 어린이가 인형극을 보러 들어간 장면을 나는 되풀이해서 읽었다.


"신 나게 뛰어논 뒤에 아담한 홀에 들어가 줄을 맞추어 의자에 앉으니 마음이 따스했습니다.(...) 마침내 인형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이 '치콜의 모험'인데, 씩씩한 남자 아이 이야기였습니다. 사건이 연이어서 일어났습니다. 숨고, 발견되고, 거의 죽을 뻔하다가, 촐랑대다 실패하고, 나쁜 사람과 만나고, 도망치고, 붙잡히고, 이제 희망이 없다고 실망하고.... 그때마다 모두들 손에 땀을 쥐고 응원했습니다. 무서워서 눈을 가리다가, 배를 쥐고 웃기도 했습니다. 날이 저물고 해가 뜨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치콜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치콜과 같이 긴 모험을 했습니다. 나쁜 사람을 전부 물리치고, 보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길고 즐거운 모험이 끝나자, 모두들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부풀어 오른 기분은 박수 소리가 되어 바깥으로 흘러넘쳤습니다."(121-122쪽)


얼마나 따뜻한 광경인가. 아이들은 이야기에 빠져서 자기도 같이 모험을 한다. 제 모험이기 떄문에 주인공이 지치지 않는다면 자기도 지치지 않는다. 이런 공감 역시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폐장 위기에 놓인 극장을 구하기 위해 두 꼬마가 그런 어린이의 본성을 이용(?)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스포일러니까 밝히지 않겠어요)


에라바바 선생님이 만들어낸 옷이 '마법의 옷'이 아니라 본인 설명 대로 '발명한 옷'이라면, 이 책에는 어떤 마법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린이가 된 두 할머니가 벌이고 겪는 모험들은 모두 자기들 힘으로 해내는 것들이다. 고심해서 편지를 쓰고, 적당한 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필요할 땐 '삽질'을 해가면서 자기 몸으로 사건을 만들고 돌파한다. 


"오늘 대작전은 할머니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고 싶었지만, 손수레를 끌고 가야만 했습니다."(148쪽) 


모험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고단한 대작전 끝에 두 할머니에게 조그마한 마법이 일어난다. 할머니들이 모르는 사이,  비밀 옷을 입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처럼 즐겁게 말하고 거리낌없이 행동하게 된 것이다. 조그마하지만 더없이 따뜻한 보상이다. 이따 다시 만나서 놀 약속을 잡는 두 할머니를 보여주는 엔딩에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 나는 동화책에 대한 더 좋은 찬사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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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07-2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랑 뮤지컬이나 영화를 보러 가면 애가 완전히 몰입해서 주인공이 되어 소리지르고 안타까워하고 까르르 웃느라 넘어가고 하던 게 생각나요. 나도 이럴 때가 있었을까 싶어지지요. 따스해요. 이야기도, 네꼬님의 글도요. ^^

다락방 2013-07-23 16:4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2월~6월까지의 책정리는 안해주실건가요? 네? 문나잇님 서재는 1월이 땡이라구욧!!!

네꼬 2013-07-23 17:05   좋아요 0 | URL
다락님 말이 내 말이에요. 문나잇님은 이 댓글 쓸 시간 아껴서 얼른 책 정리를 하시오! (약간 버럭)

moonnight 2013-07-25 17:10   좋아요 0 | URL
아..앗... ㅠ_ㅠ;;;

다락방 2013-07-2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리뷰에서도 다 티가 나요.
:)

네꼬 2013-07-23 17:05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 안 밝혀서? ㅎㅎ (아이 참, 왜 그래요 삼겹살 먹고 싶게..)

다락방 2013-07-2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싸.
네꼬님 신간평가단에 뽑혔다. 이제 지금보다 더 자주 글을 올릴 수 밖에 없겠네요.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네꼬 2013-07-23 17:06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 "도배"가 뭔지 보여 드리지. 하하하하하하

서니데이 2013-07-2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저도 잘 읽고 가요. 이 책 이야기, 재미있었어요.

네꼬 2013-07-24 20:49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책 보시면 더 재밌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