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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 도시 여자의 촌집 개조 프로젝트
오미숙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먼저 밝히자면 나는 시골집에 살고 싶다는 로망이 전혀 없다. 출판사나 관계자들께 죄송하게도, 신간평가단 리뷰 도서로 이 책을 받아 들고 그래서 참 난감했다. 이 책이 싫다는 게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신간평가단을 하니...) 또 밝히자면 나는, '고쳐 쓰는 시골집'의 이데아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댁에 여러 차례 가 본 적이 있다. 존경해 마지않는 어느 예술가의 댁이었다. (누군지, 가서 어땠는지 너무나 자랑하고 싶지만 참고 있다.) 안에서 보면 내외분께 딱 맞는 아름다운 집이지만, 거창하게 공사한 게 아니라 살면서 조금씩 고친 집이라 담장을 제외하곤 영락없는 시골집 그대로였다. 집주인 내외는 거기서 쌀부터 블루베리까지 '진짜' 농사를 짓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작품을 만들면서 시골 주민으로 살고 계셨다. 충격적일 만큼 멋진 삶이었다. 그분들은 입 벌린 나를 보고 "네꼬 씨도 내려와 살아요. 여기 살면 돈 별로 안 들어."라고 꼬드겼지만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저는 몸 고된 거 싫어요." 어쨌든 이러니 어지간한 '아름다운 시골집'은 내게 어필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내 마음 어느 구석에는 몹시도 꼬인 데가 있어서, "시골집을 싸게 샀다."는 말을 그저 곱게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는 사람이 이득이면 파는 사람은 손해 아닌가? 나는 쓸데없는 대목에서 옹졸한 것이다... ㅠㅠ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 김에 거슬렸던 것부터 얘기하고 좋았던 걸 얘기하겠다.

 

염원이었던 '시골집 개조 프로젝트'를 완성한 기쁨 때문일까. 작가 소개부터 머리말을 거쳐 본문에 들어가기까지 팩트라 할 만한 정보 없이 감상적인 설명이 너무 길었다. 감상이 지나치기는 군데군데 카피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그래! 시골 가서 어디 한번 촌닭처럼 살아보자"라는 카피. 실제 내용을 보면 집을 아주 아름답게 꾸미고 꽤 세련되게 사시는 것 같은데 '촌닭'이란 표현은 좀 겉치레 같았고, 나아가 시골 사람들에 대한...(그만!) 장이 바뀔 때마다 책 속에 넣어 말린 꽃잎 사진이나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과 함께 또 감상적인 카피들이 있는데, "여학교 때...책갈피마다 꽃잎 끼워 말리며..." 하는 말이 나처럼 무덤덤한 독자에게는 좀 낯간지러웠다. 꽃 수가 놓인 침구를 두고 "새색시 시집온 듯 꽃물 들였다."는 것도... 정보서와 에세이를 겸하는 책이다 보니 본문 설명도 결이 들쭉날쭉하다. 개조를 앞둔 시골집은 문제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같다는 식의 표현은 편집하면서 좀 다듬을 순 없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드는 대목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투덜댄다 해도 이 책에는 단단한 강점이 있다. 바로 몸소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집을 뜯어 고치다 보니 끼니마다 인부들 밥 챙기느라 애먹었다는 얘기라든가, 공사를 하는 동안에는 주변 사람 백이면 백 모두가 지청구를 하지만 공사가 끝난 뒤에는 모두 덕담을 해준다며 중간에 흔들리지 말라는 조언 같은 것은 실제 경험이 있는 저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상세한 과정 사진도 앞으로 정말 시골집을 개조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용적인 정보가 될 것 같다. 나로서는 이런 사진의 캡션들이 팩트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쓰여 있어서 오히려 본문보다 흥미로웠다. 또 집안 인테리어와 빈티지 소품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집구경' 부분도 재밌게 볼 것 같다. 직접 만들거나 발품 팔아 구한 장식품들이 집주인의 취향을 엿보게 한다.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말 그대로 집구경을 하는 기분인데,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서 다행이다. 부러울 뻔했으니까. (응?)

 

모든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태우는 사람들도 있고, 원치 않게 시골에 가서 집 꾸밀 여유 없이 침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룬 성과를 보면서 자기만의 방식을 고심해 본다면 한결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이 책의 자리가 그쯤 아닐까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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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2-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갑니다.

네꼬 2013-12-23 18: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3-12-2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와닿는 리뷰가 바로 이런 거네요. 네꼬님 리뷰 멋져요

네꼬 2013-12-23 18:15   좋아요 0 | URL
마... 마... ㅁ ㅏ 태우스님! (약간 덜덜) 아니 (얼떨떨) 오 오 ㅏ 와! 내 서재에 마태우스님 오셨다! 이제 저는 서재 라이프로서 다 이루었다인가요? *_* 고맙습니다. 우앙. (나 연예인 봤다! 하는 비슷한 마음!)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 -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정리와 배치의 기술 내 손으로 하는 풍수 인테리어 시리즈 1
이성준 지음 / 예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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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풍수 인테리어'라는 말은 어떤 잡지에서 처음 읽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외투와 모자, 가방 등을 바로 옷장에 넣지 말고 잠깐 밖에 걸어두어 바깥의 기운을 완화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읽고 그동안 내가 '풍수'를 막연히 기복신앙의 일종으로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외투에 묻혀 온 찬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을 적당히 완화하고 정리하면 쾌적하고 좋겠지! 생각해보면 일이 잘 되게 하려고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무언가를 두라는 내용일 텐데. 풍수란 그런 건가 보구나.

 

이 책의 부제 역시 풍수를 그렇게 설명한다.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정리와 배치의 기술'. 책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제다. 이 책은 다른 건 안 해도 이것만 이렇게 하면 돈이 굴러 들어온다거나, 이런 터에 자리 잡은 가게는 그냥 대박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집안이 잘되는' 정리와 배치의 기술은 꽤 종류가 많고 내용도 세세해서 오히려 잔소리에 가깝다. 그런데 그 잔소리는 다음의 몇 문장으로 요약될 것 같다. 집안을 계속 점검하고 돌봐라. 가족끼리 서로 바라보고 살면서 늘 챙겨라. 무엇도 너무 빡빡하게 하지 말아라. 유행보다 실용성을 따져라.

 

이를테면 늘 기가 통하도록 집의 중심 동선과 복도 등에 큰 물건을 두지 말라거나, 현관을 늘 깨끗이 유지하라거나, 식탁 조명을 밝게 하라는 것, 모서리에 화분을 두라는 식의 조언은 공간을 필요에 맞게 조정하고 물건을 있어야 할 곳에 두라는 말이어서 조언이라기보다 상식적인 말 같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계기로 집안을 둘러보면 구석구석 한 번 더 손이 간다. 쾌적하게 자야 하는 침실에 잡스러운 물건은 없는지, 어두운 기운이 모이기 쉽다는 벽장 앞에 자잘한 물건들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과한 장식품이 거실 분위기를 해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잘 신경쓰게 되지 않는 베란다 등에 풍경을 걸어 이따금 소리가 나게 하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집을 깨어 있게 하라는 말씀이군. 제목에서 드러나듯 큰 틀은 가구와 벽, 가구와 가구 사이 '10cm'의 틈을 두라는 것이다. 그것이 기의 흐름을 트기 위한 핵심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습기도 덜 차고 청소도 쉽고 보기에도 여유가 있어 보일 테니 다음 번 가구 배치 때 고려해봐야겠다.

 

금전운을 좋게 하려면 주방의 매트를 초록색으로 하고 침실을 노랑과 금색을 꾸미라거나, 화장실은 흰색과 겨자색을 쓰고 공부방에는 빨간색이 적절히 있어야 한다는 식의 색채 조언들도 있다. 얼핏 보면 앞서 말한 '기복신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색채 심리'나 마찬가지다. 초록색을 보면서 안정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공부할 땐 빨간색에서 약간의 자극을 받고 하는 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식탁은 가급적 둥근 것으로 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일수록 마주보고 밥을 먹게 하고 아이가 아프면 잠자리를 먼저 살피라는 등 가족에 대한 부분도 많다. 그런데 몇 군데에서는 저자가 독자의 오해를 피하려 복선을 깔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부장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남편)'을 중심으로 기술된 부분, 집에서 기운이 가장 넘치는 잠자리를 남편에게 주라거나 '집사람'이라는 말도 '집 사랑'으로 볼 수 있지 않냐거나 하는 대목들이 그랬다. (읭..) 풍수학도 좀 현대화해야 되지 않을까? 또 본문에 예로 제시된 인테리어 사진들은 풍수 지침에는 맞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다;;; 예시들이 예뻤으면 독자들의 '집 정리' 의욕을 더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새롭게 집안을 꾸밀 때, 생활에 의욕이 떨어져 새 기운을 찾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정리정돈' 지침서다. 더불어 이렇게 하면 정말 복이 올까 하는 기분 좋은 기대를 가져보는 것도 재밌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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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네꼬 2013-11-25 12:5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3-11-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이 책소개 잠깐 보고 잊어버렸는데 리뷰봤을때 우리집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네꼬 2013-11-25 12:50   좋아요 0 | URL
으앗. 네, 집 정리하실 때 한번 참고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하늘바람 2013-11-1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우리집좀 바꿔야겠어요

네꼬 2013-11-25 12:51   좋아요 0 | URL
저는 많이 바꾸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참고하기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z1 2013-11-1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네꼬님이 잠깐 언급하셨던게 인상에 남아서 주문은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포스팅 보니까 읽고싶은 욕구가 다시 막 샘솟네요 ㅋㅋ

네꼬 2013-11-25 12:52   좋아요 0 | URL
스피드퀴즈님 안녕하세요? 으왕, 근데 왠지 제가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으아,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이거 두근두근. ((보셔서 아시겠지만 본문이 아름답진 않아요 ㅎㅎ))
 
[나쁜학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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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 슬금슬금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때, 이누이트 소녀 올레마운은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너무나 궁금했다. 학교에 다녀본 언니는 그곳에 가면 머리카락도 잘라야 하고 허드렛일도 해야 하고 무릎 꿇고 회개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올레마운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배워서 스스로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당시에 언니가 읽어주던 책은 공교롭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고, 마시지 말라는 약을 마셔서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괴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겁에 질리지 않고 모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 특히 어린이의 본성이다. 글을 배우는 일은 어떤가. 글자를 익히는 것 자체도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글자는 넓은 세상(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해서)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강력한 도구다. 아빠가 '외지 사람들은 살코기 보관하는 법도, 생선 다듬는 법도, 파카나 카믹(신발)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이누이트의 풍습을 버리게 한다'며 허락하지 않아도, 올레마운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19쪽)

 

가까스로 아빠의 허락을 얻어 찾아간 기숙학교는 처음부터 쌀쌀맞게, 아니 모질게 올레마운을 맞이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물론 옷과 신발도 그들의 것을 착용하게 하고 학기 시작 전까지 고된 일을 시키며 기도를 강요한다. 이름도 바꾸고 영어만 써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여건이 나빠져 올레마운을 보러 올 수 없고, 올레마운은 검문 때문에 사정을 솔직히 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집 센 올레마운을 미워하는 '까마귀 수녀'에게 학대를 받을수록 올레마운은 더 이누이트다워진다. 까마귀 수녀가 우스꽝스러운 스타킹을 신게 해 '뚱뚱 다리'로 놀림받게 되자, 올레마운은 아무도 모르게 스타킹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런 올레마운을 눈여겨보고 따뜻하게 대해준 맥퀼런 수녀 덕분에 위기를 넘긴 올레마운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맥퀼런 수녀에게 선물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품에 안고서.

 

호기심을 따라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꼬박 두 해를 보내고서 돌아왔다. 이제 나는 하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93쪽)

 

책 뒤에는 역시나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동생들을 위해 올레마운이 그들과 함께 다시 학교에 가는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호기심 때문에 학교에 가 보았지만 역시 우리 민족이 최고다, 하는 결말이 아니라, "우리 이누이트는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처에 대한 회복력이 강했다."며 동생들과 동행하는 결말인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탄압받는 소수민족문화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혜적인 시선 없이, 어린이책답게 어린이의 본성에 주목하고 주인공의 열망과 좌절, 용기와 성장에 대해 씩씩하게 써내려간 동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처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동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은 실제로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을 가진 마거릿 포키악 펜턴이 며느리(!) 크리스티 조던 펜턴과 함께 쓴 것이다.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 실제 올레마운(아마도 작가?)의 옛 사진들이 실려 있어, 읽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 이누이트란 어떤 사람들인지, 왜 그들에게는 학교가 없었는지-추위를 견디며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웠으니까!), 외지 사람들이 왜 캐나나 몰렸고 어째서 그런 학교를 지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도 있다.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올레마운처럼 기숙학교에서 학대받던 아이들은 이누이트의 생활 감각을 잃어버리고 이누이트 사회와 외지인 양쪽 모두에게 소외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용기를 내어 지난 일을 알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새로 배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고통받던 당사자뿐 아니라, 이제라도 거기 귀 기울이는 이들이 진정한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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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11-1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도 상처에 대한 회복력이 강했다. " 찡하네요. ㅠ_ㅠ 올레마운이 씩씩함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저도 어느 아이에게 맥퀄런 수녀가 되고 싶어요. ^^

네꼬 2013-11-17 23: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대목이 좋았어요. 올레마운이 외지 사람들을 다 미워하기만 했다면 이해는 하더라도 속상했을 것 같거든요. 이누이트다운 저 의지!

문나잇님은 분명 그런 좋은 어른일 거예요. (수녀는 되지 마시고...)

꿀꿀페파 2013-11-1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갑니다!

네꼬 2013-11-25 12:52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리뷰들 많이 읽으셔야 해서 힘드실 것 같아요;;
 
방학 탐구 생활 -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5
김선정 지음, 김민준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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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이한 석이는 학원에나 다니라는 아빠 말을 따르는 대신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신 나게 놀고 잠도 자고 경비를 마련해 무인도로 떠나고 유명해진 다음 스타를 만난다는 것. 석이는 우연히 아이돌 팬클럽 운영자인 아저씨를 알게 되어 스타를 만나기도 하고, 아빠 만두 가게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경비를 마련해 동생 호와 함께 작은 섬으로 떠난다. 그곳은 칠금도로, 만두 가게에서 일하는 한수 형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다. 가는 길, 배에서 잘못 내리는 바람에 만난 반 친구 경성이까지 합세해 세 아이가 모험을 시작한다.

 

일단 큰소리부터 치고 수습하느라 애먹는 석이, 겁은 좀 있지만 매사에 야무진 호, 까칠한 것 같지만 속은 순한 경성이 등 세 아이는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는 점에서 믿음직한 주인공이다. 이들을 가로막는 아빠와 부추기는 한수 형, 아이들을 귀찮아하면서도 친손자처럼 대해주는 할머니 등 어른들도 실제 모험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모험을 떠날 때 있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교통편과 묵을 곳 등을 얼버무리지 않고 오히려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거짓말 같은 모험을 ‘실제 사건’으로 만든 작가의 뚝심도 보기 좋다. 떠나기 전까지 약간 지루한 부분을 지나가고 나면 모처럼 숨통이 트이는 모험, 살이 까져 피가 나고 쫓기고 고립되고 성취하는 모험을 함께할 수 있다. 유머와 감동을 눈치 채려면 고학년 어린이들이 읽어야 하겠고, 이야기를 따라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중학년 어린이들도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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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11-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 덕분에 갑자기 떠올랐어요. 방학동안의 특별한 모험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는 걸요! ^^

네꼬 2013-11-10 20:09   좋아요 0 | URL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모험이라면 질색하던 어린이. 어려서부터 불편한 거 딱 질색이었어요. ㅋㅋ 근데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그런 걸 즐겨서 귀엽고 기특했어요.
 
할아버지의 방 미세기 고학년 도서관 7
남찬숙 지음, 홍정선 그림 / 미세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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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화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화작가가 하는 말이니까, '동화'작가가 하는 말이니까 독자들이 당연히 믿어줄 거라는 전제로 무책임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은 순수한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 듯, 혼자 정의의 수호자가 될 때도 있다.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작품, 「착한 아이」에서는 달랐다.

 

동화작가인 '나는' 남편의 사업이 잘 안 풀리는 바람에 어린 시절 살던 동네로 집을 좁혀 이사 왔다. 그리고 딸 지원을 위해 이웃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아파트 아줌마들 사이에도 왕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민주 엄마가 피곤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민주 모녀를 집 안에 들이지만, 우악스러운 민주와 눈치 없는 민주 엄마는 은근히 나의 신경을 긁는다. 그보다 곤란한 것은 민주 엄마가 옆에 붙어 있으니 다른 엄마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는 민주 엄마가 바로 어린 시절 친구였던 미순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정신이 멍해진다.

 

어린 시절 형편이 어렵고 입성이 바르지 못했던 미순은 아이들 사이의 왕따였다. 전학생이었던 나는 잠깐 미순과 친하게 지냈지만, 인기 있는 아이들 그룹에 초대받아 그들과 어울리면서 미순을 멀리 했다. 그런데 나는 유복한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빚쟁이들이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던 날 미순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는 수치심을 느낀다. '미순이 같은 아이한테 동정을 받다니.' 나는 미순에게 못된 말을 내뱉고 얼마 뒤 다시 학교를 옮겼던 것이다.

 

동화작가도 아니고 '지원 엄마'도 아닌, '김민경'인 나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과 같은 갈등에 놓인다. 왠지 나를 불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없게 하는 왕따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삼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달라진 것 같지만, 사실 많은 것이 그대로다. 나는 딸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문을 닫아 걸려고 하지만, 오래전 혼자 중얼거렸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는 착한 아이가 돼 주겠지.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이번엔 미순이와 친구가 되는데 꼭 착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놀이터에 혼자 앉은 미순의 딸에게 다가간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얘들아, 나는 지금 민주 손을 꼭 잡고 어릴 적 내 친구 미순이에게 가고 있단다."

 

엄마뻘인 주인공이 지난 날 풀지 못한 매듭으로 갈등하는 장면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모르긴 해도 이 솔직한 고백에 용기를 얻는 어린이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왕따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남은 문제,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는 그 숙제는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미순을 다시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더 도망치지 않고 문제에 직면하기로 한다.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딸에게 묵은 갈등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어렸을 때보다 더욱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가 민주, 어떤 의미에서 어린 미순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에서 나는 오래간만에 희망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은 고학년 어린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집으로, 세 편의 중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할아버지의 방」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손녀 이야기로, 구성은 다소 단순하지만 낡아가는 큰 집과 텅 빈 방이 할아버지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로 읽힌다. 「비엔, 엄마의 이름」은 베트남인 엄마가 십 년만에 친정에 가는 일화를 그렸는데, 엄마를 수동적인 인물로 그린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아이가 당당하게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점은 좋았다. 조금 냉정한 것 같지만 그만큼 정직하게, 조금 감상적인 것 같지만 그만큼 따뜻하게 세상을 보려고 한 작가의 노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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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11-1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남은 문제,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는 그 숙제는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찔려요. 찔려요. 찔려요. ㅠ_ㅠ 제게도 가시처럼 남아있는 숙제가 있네요. ㅠ_ㅠ

네꼬 2013-11-10 20:10   좋아요 0 | URL
우앙... 맞아요. 찔려요. ㅠㅠ 그게 참 어떻게 안 되지요.

저는 이 작품에서 어른 주인공이 그걸 고백하고 이제라도 풀려고 해서 좋더라고요. 어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동화 중에서도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