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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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긴 책을 잘 못 읽는 나도 어렵지 않게 읽을 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의 영화, 드라마, 쇼, 대중음악 등 다양한 문화 매체에 드러나는 문제들을 지적한다. 미국식 실용적 글쓰기일까? 아주 효율적으로 줄거리와 메시지를 요약하면서도 논지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대중문화에 스며든, 아니 뿌리 박힌 여성 혐오 정서와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걱정하는 성폭력 뉴스 얘기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종 차별주의에 대한 자세하고도 진보적인 비판도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었다. 예를 들어 성공한 흑인이 '문화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성공해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고 설파하는 데 대한 비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노예 서사(기록적인 영화)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 요구 들이 그랬다.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들의 이슈는 한국인 여성에게도 별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성공한 여성 CEO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고 어린 여성을 몰아붙이는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완성한 위안부 기록 영화이니 부적절한 강간 장면을 문제 삼지 말자고 하는 일, 우리나라 상황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 책에 밑줄을 그은 부분은 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부분보다 동의를 표시하고 싶은 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저자의 포지셔닝에 의문이 들었다. 추천사에서도 이야기되고 책 전체에서 이해되듯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으로 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에는 몇 겹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먼저 저자 자신이 완벽한 이론가 또는 운동가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해서 더 많은 논의를 자유롭게 시작할 무대를 만든다. 이것은 좋은 전략이다. 독자들도 기꺼이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때로 이 가벼움이 문제 제기 이후 손을 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성 파트너의 폭력을 용인하는 여성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 그치는 것이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내용의 얼토당토않은 부분을 지적하느라 이 책에 열광한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을 덮는 것 등이 그랬다. 물론 나 역시 저자에게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슬로 테러 사건 때 노르웨이 국왕의 기품 있는 성명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연민이. 응답한다.'는 아름다운 문장을 쓴 저자가, 사건 이후 받은 신경을 거스르는 전화에 대해 '비극이. 부르면. 전화벨이. 응답한다.'고 스스로 비튼 것은 별로 재치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으니까. 그 밖에도 더러 꼭 필요하지 않은 재치를 만나곤 했다. 그래도 너무 딱딱하기만 한 책보다는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나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더 중요한 이유는 페미니즘이 완결된 하나의 이념이 아니며 페미니스트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는 걸 상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라는 게 있다 치고 그걸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물론 '완벽주의 또는 근본주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으므로 그들도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나도 제사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니까. 문제는 이런 저자가 자신이 왜 '나쁜 페미니스트'인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런 내가 멋대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니다니 진정 훌륭한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죄송스럽다."라면서 든 이유들. 그것은 자신이 독립적이기 원하면서도 가족에게 의지할 때가 있다는 것, 때로 여성비하적인 노래에 흥이 나고, 재미로 보그 잡지를 읽는다는 것, 차에 대해 모르지만 알고 싶지 않다는 것,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등이다. 이게 '나쁜/부족한' 일일까? 인간적으로도 그렇지 않고, 페미니즘적으로도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은 완벽한 게 아니라고 저자도 말했는데, 완벽하지 않은 자신은 왜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란 말인가? 아무래도 모순된다.


페미니즘은 모든 지점에서 평등을 지향한다. 이 큰 이념 안에서 대립되는 이념들이 있고, 합의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으며 꼭 합의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큰 틀의 합의는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페미니스트 개인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만,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고쳐가는 것은 결국 결국 완벽을 추구하는 길이다. 죽을 때까지 완벽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완벽하려고, 즉 모든 점에서 평등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밝혀진 바, 저자는 '나쁜/부족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한 명의 페미니스트'이다. 심지어 이 책을 쓸 만큼 훌륭한 페미니스트다. 그런 저자 자신을 나쁘다/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진짜 완벽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많은 리뷰가 있고, 나 역시 대부분의 평과 생각이 비슷하다. 확실히 좋은 책이다.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얘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가 어지간하게 만든 흑인 영화나 드라마에 만족할 수 없던 것과 비슷한 이유로 이 책에 만족하지 못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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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6-07-0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속이 시원해요, 네꼬님. 읽지도 않고서 평만 보고도 뭔가 이 책이 마뜩치 않았던 부분을 이렇게 속시원하게 써주시다니! 특히 마지막 문단은 달달 외우고 싶을 만큼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생각은 일치하면서 글은 절대 이렇게 못 쓰는 스스로에게 약간 자괴감 ㅠ)

네꼬 2016-07-08 09:22   좋아요 0 | URL
치니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생각할 것도 많이 있는 좋은 독서였어요. 읽으면서 생각한 걸 정리하고 싶어서 (왠지 좋은 책에 토다는 것 같아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적어 봤습니다. 이렇게 늘 격려해주시니 저는 늘 감사합니다. 흑흑.
 
홋카이도 홀리데이 (2015~2016년 개정판, 휴대용 맵북) -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10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11
인페인터글로벌 지음 / 꿈의지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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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서, 특히 여행서는 찾아보기 편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홋카이도의 큰 그림을 그린 점(볼 것, 할 것, 먹을 것)과 여러 가게를 직접 방문해 특징을 서술한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데 홋카이도는 무척 넓은 섬이고, 지역별 특색도 다른데 그에 해당되는 페이지가 적거나 없다. 기차 여행객이 많은 곳의 여행서인데 전체적인 기차 맵이나, 지역별 이동 시간 등이 안내되지 않아서 불편했다. (예를 들어 하코다테에서 노보리베츠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혹은 하코다테에서 오타루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가늠할 길이 없음.) 설령 책에 이런 정보가 자세히 있었다 해도, 여행서인 만큼 누구든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도록 편집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혹시 출판사에서 업데이트할 때 참고하실까 싶어 적어두자면 하코다테 야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는데 지도 어디에도 표시가 없었다. (전차 역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설명 뿐. 실제로는 전차역 근처 어느 골목에 있었음.) 책에는 늘 실수가 있게 마련이지만, 캄캄한 저녁 낯선 골목을 헤매야 하는 여행객에게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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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숲 2016-06-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저도 이 책 보고 계획 세우고 있는데 기차맵이 없는 게 진짜 이상해요! ㅠㅠ 저 떠나기 전에 한번 만나 주세요, 네꼬님?

네꼬 2016-06-23 14:28   좋아요 0 | URL
그럽시다. (저스트 고가 역시 최고인 듯.. ㅠㅠ)

moonnight 2016-06-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카이도 못 가 봤어요@_@;;; 지금은 다녀오신건가요? 네꼬님이 홋카이도 책 한 권 내주세요. 그거 완독&암기하고 다녀오고싶어용^^

네꼬 2016-06-27 11:2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제가 여행기를 쓰면 먹는 애기 잔 얘기 술 먹은 얘기 밖에 없을 거예요. 필요한 정보는 하나도 없는 여행기라니. 음. 쓰고 보니 그런 쓸모 없는 글은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플레이 볼 높은 학년 동화 34
이현 지음, 최민호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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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는 야구를 좋아한다. 나는 야구를 모르지만 동구가 하는 야구 역시 좋다. 이제 막 6학년이 된 동구의 야구는 좋아서 하는 야구이지만 취미로 하는 야구는 아니다. 동구는 지금도 야구 선수고, 최동원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 어린이의 꿈이라고 해서 귀여운 것도, 창대한 것도 아니다. 대회 일정이 나오면 대진표를 복사해 방에 붙여 놓을 만큼 동구는 진지하다. 그게 멋있어서 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에게는 야구가 인생의 전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동구는 꼴찌 롯데의 열혈 팬인 엄마 덕분에 태어나기 전부터 야구를 알았고, 아기일 때부터 야구공을 가지고 놀았으며, 돌 사진도 사직구장에서 찍었다. 이 소년의 마음 가득 야구를 채워 넣은 것은 엄마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동구는 스스로 야구를 선택했다. 엄마는 동생을 돌보느라 동구를 챙길 사정이 안 되고, 엄마와 헤어져 서울에 사는 아빠는 동구의 야구를 반대한다. 고만고만했던 동구네 팀은 새 감독님의 지도로 실력을 쌓으면서 이기는 감각을 배워가고 있다. 져서 못 나간 경기를 보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며 경기장을 찾아가고, '분루를 삼키다'라는 말을 배우고, '제발 좀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던 동구에게 이길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열심히 훈련하고 팀을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을까? 이기면 모든 갈등은 봉합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동구는 배워간다. 팀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신뢰받던 주장 동구는 우승을 위해서라면 선수들이 파격적인 라인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부적인 감각을 가진 영민에게 자신이 자리를 내놓게 되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늘 함께 했던 친구 푸른이는 이제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평정을 잃은 동구는 실수를 하고, 경기장 밖에서 야구를 다시 생각해야 될 처지가 된다. 


이 동화는 '훈련 끝에 이기는 감동 스토리'가 아니다. 동구에게 야구는 즐기면서 하면 그만인 느슨한 게임이 아니라, 이번에 지면 다음 경기에 못 나가는 냉정한 세계다. 가족 걱정과 친구 생각, 앞날에 대한 불안 등으로 마음이 어지럽지만, 마운드에 선 동구는 침착하게, 결연하게 경기에 임한다. 이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당당히 지는 것을 배우면서 동구는 생각한다.


좋아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멈출 필요는 없다. 마음껏 좋아할 수 있다. 그건 만루 홈런만큼 짜릿하고, 최동원 선수가 되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본문에서)


이기거나 지거나 동구는 계속 야구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만둘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동구를 '응원'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겠다. 대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동구가 좋다. 동구는 정말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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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6-1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구가 좋네요.ㅜㅜ 좋아하는 동구를 더 알고 싶어서 책을 주문해야겠어요. 좋아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가 배우는 게 짠하고 뭉클해요ㅠㅠ

네꼬 2016-06-14 15:55   좋아요 0 | URL
팬클럽 결성! 네 인생의 쓴맛을 보기 시작... 그래도 잘 해나갈 것 같아요. 동구 멋있어요 *ㅅ*
 
루카 루카 풀빛 동화의 아이들
구드룬 멥스 지음, 미하엘 쇼버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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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다 알아들었지, 파니?"

(..) 끝에 물음표를 세 개나 찍은 것 같은 그러니까 끝없이 긴 푸딩처럼 길고 말랑말랑하고 달콤하게 '파니???'라고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 소리는 내 귀에 아주 부드럽게 들리면서 자꾸만 나를 빙긋이 웃게 했다.

엄마가 미체 아줌마한테 전화 좀 하자고 했다. 나는 내 방으로 갔다. 그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래야 '파니???' 하는 소리가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39-40쪽)

 

이제 파니에게 루카는 학교 친구지만, 남자 친구 '루카-루카'이기도 하다. 물론 둘 사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밀이다. 학교에서는 보통 때처럼 행동하지만 학교 밖에서는 시간을 정해 통화를 하고 놀이터에서 만나 서로 손을 꼭 잡는다. 이따금 서로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기도 한다. 루카-루카가 파니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주 빠르게. "빠른 것은 금방 다시 가버렸지만 촉촉한 것은 조금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촉촉한 것은 사라지고 없지만 빠른 것은 여전히 거기 남아 있다.

 

초등학교 4학년 파니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어느 순간 루카가 루카-루카가 되었고, 그 다음부터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 전화기 앞에서 안달하며 벨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 질투하고 괴로워하는 파니를 응원하면서도 아니 자존심도 없냐 너무 그러면 안돼, 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 놀랐다. 자존심을 내팽개쳐서가 아니라, 그런 걸 아예 떠올리지를 않아서 파니의 사랑이 진행된다. 어린이의 사랑이 어른의 사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 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린 작품은 흔치 않다. 게다가 어린이의 사랑이라고 해서 귀엽게, 기특하게, 풋풋하게 그리지도 않았다. 파니의 엄마 아빠는 간섭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으면서 파니의 사랑을 지켜본다. 파니의 사랑에 닥친 위기가 다른 이성 친구가 아닌 것도 좋다. 사랑의 외연이 얼마나 넓은가. 작가는 어린이의 세계를 존중하고 있다.

 

파니의 이별도 이렇게 존중받는다. 파니의 슬픔은 그저 밥을 먹기 싫거나 엄마랑 말하기 싫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아빠가 파니를 위로하기 위해 서커스에 데려갔을 때 남들은 모두 깔깔 웃는 장면에서 파니 홀로 눈물을 흘린다.

 

아빠는 무척 당황하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난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팠다. 온통 다 아팠다. 그러나 그 말을 아빠에게 할 수는 없었다.

아빠는 내가 울도록 내버려두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한테는 내 울음이 너무 크고 너무 길었다. 아빠는 자꾸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나가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나가고 싶지 않았다. 걸으면서는 잘 울 수 없으니까. (130쪽)

 

아빠는 서툰 방법으로나마 사랑을 담아 파니를 위로한다. 파니는 마침내 배 속의 '돌멩이'가 없어진 것을 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관계를 마무리하고 마침내 루카-루카가 아닌 루카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파니가 서커스의 우스꽝스러운 부분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도 같이 울었다. 파니는 아빠 덕분에 울음을 그쳤지만 나는 조금 더 울었다. 좋은 어린이문학이 그려내는 세계는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고 그 일을 해내는 너를 이해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 이번에는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너는 잘해낸 거고,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말을 쓰면서 나는 또 주책없이 울고 있다. 어린이의 눈물인지 어른의 눈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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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물이ㅠㅠ; 남들은 모두 웃고 있는 장면에서 홀로 우는 파니가 너무 ㅠㅠ;;; 어린이의 사랑과 이별을 존중하는 이야기 참 좋아요. 저도 읽어볼래요. ㅠㅠ

네꼬 2015-08-11 17:50   좋아요 0 | URL
ㅠㅠ 눈물 난다오. 나중에 파니가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때 얼마나 뭉클한지요. ㅠㅠ

다락방 2015-08-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아요. 남들이 웃는 장면에거 나 혼자 우는 거요. 제가 그걸 해봤어요. 저 이거 읽어볼래요!

네꼬 2015-08-11 17:50   좋아요 0 | URL
이런 사랑 얘기는 다락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모쪼록!

뽈따구 2015-08-1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가족들을 찐하게 사랑하는데도, 사랑은 왠지 낯설어서.
리뷰를 세 번이나 읽고서야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PS. 뽈따구는 대학교때 별명인데 닉네임으로는 희소성이 있어서 편하게 쓰고 있어요. ^^

네꼬 2015-09-16 18:12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제 답글이 늦었지만 (왜 이제야.. ㅠㅠ) 사랑은 언제나 두근두근입니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군요...) 그런데 정말이에요. 이 책 읽으시면 두근두근하실지도!
 
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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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할머니가 되고 싶다. 어쩌면 어려운 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동네 어린이들이 만만하게 보고 집에 놀러올 수 있는 할머니. 그런데 주변에 그런 할머니가 없다. 그래서 꽤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런 할머니가 되는 것에.

 

사노 요코 할머니는 최초의 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노인이라 롤 모델 같은 건 없다면서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암에 걸린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수술한 다음 날 집에 와서 담배를 피우고, 이상한 요리를 하고, 한류에 빠졌다가 나오고, 관공서 사람들과 싸우고, 친구네 놀러 간다. 한편으로는 문득문득 치매의 전조 때문에 공포에 빠지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에 낙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요양원의 엄마를 찾아가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결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성격 나쁜 사람일 거라면서 자기와 절교하고 싶어하고, 까다로운 친구에 대해 불평하고,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자꾸 주눅 들게 하는 한국인 친구와 절교하고(자신도 이제 40여 년 압제를 견뎠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는 걸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할머니이기 때문에 전철에서 온갖 사람들을 보며 저들도 식구가 있겠지, 그 식구에게도 엄마가 있겠지, 그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연민을 느끼면서 피곤해할 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182쪽)

 

품위와 재치는 같이 가질 수 있다. 통찰력과 호기심도 같이 가질 수 있다. 솔직하면서 예의 바를 수 있다. 사노 요코 할머니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가 하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니 기운이 난다. 지치지 말고 싫증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다 보면 좋은 할머니가 될 수도 있겠지. 사노 요코 할머니보다는 좀 덜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겠지만, 각자 생긴 대로 살자는 게 할머니 말씀,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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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3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좋다. 이 리뷰 좋으네요 네꼬님. 저도 읽어볼게요. 어휴 세상엔 왜이렇게 읽고 싶은 책이 많은거에요? 네?

네꼬 2015-07-30 15:39   좋아요 0 | URL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요. 어제도 오늘도 나는 고기가 먹고 싶어요. ㅠ ㅠ

치니 2015-07-30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좋다 2. 이 책은 당장 읽고 싶어집니다.

네꼬 2015-07-30 15:40   좋아요 0 | URL
우앙 치니님 좋다.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웽스북스 2015-07-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꼬님땜에 이책 사야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사는게 뭐라고? 이책. ㅋㅋㅋ

네꼬 2015-07-30 15: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저는 제목 뒤에 자꾸 ˝우리가 ~ 모였으니까 ~˝ 맥주 광고 생각남. 우리 어떡하죠.

프레이야 2015-07-3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요거 자꾸 끌리는 책인데 질러야되는 거 맞죠? ^^

네꼬 2015-08-03 22:58   좋아요 0 | URL
지르셨어요? 저는 너무 좋아요 이 책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