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박 인터뷰'에 출연한 황석영 선생은, 작가가 정치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는 PD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아주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직업 윤리"라는 내용이었는데, 역시 중견 작가의 배포인가, 여하간에 그 당당한 모습은 멋져 보였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데는 그 인터뷰의 힘이 컸다.

바리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은 단숨에 이루어졌다. 짧지만 힘있는 문장, 정연하게 정리된 문단, 소설 속의 인물들이 내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대화 등, 작가의 역량에 새삼 놀랐다. 바리가 컨테이너에 실려 밀항하는 장면에서는 나까지 처참한 기분이 들었고, 딸을 잃기 전 "그날따라 이불이며...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발견했다"하는 대목쯤에서는 나 역시 그녀의 불행을 예감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도, 탈북 소녀 바리가 중국을 거쳐 영국까지 건너가는 여정은 개인의 삶이 세계사와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의 장편 소설들이 사회에 경도되어 개인의 삶을 너무 등지고 있다고 여겨온 내 생각은 여기서 바로잡혔다. 그래, 소설이 관심을 갖는 사회는, 개인이 살고 있는 사회다.) 현실의 전쟁과 지옥도는 작가의 손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바리가 서사무가 속의 바리데기처럼 산 자와 죽은 자를 위로하는 여신인 것은, 그녀가 여행길에 만난 피투성이의 영혼들을 위해 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이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실감하고, 그 고통의 의미를 알기 위해 온몸으로 함께 괴로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녀가 찾는 생명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이 생각에 힘을 실어준다. "내가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으면서 걷다가 돌아보니 알리도 울고 있었다." 전쟁과 기아의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를 바로잡은 일은 요원해보인다. 한두 사람이, 한두 나라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물론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같이 울어주는 데서.

문학계에서 '장편소설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릴 들었다. 호흡이 짧아 장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게 부흥운동으로 되나? 예술에도 자연도태가 있는 법이지, 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여타의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 장편의 힘을 믿게 된다. 책장을 덮은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내내 감동이 떠나지 않는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urnleft 2007-08-09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님을 참 좋아하고 이 책도 여기저기 좋은 평을 많이 읽었는데, 마케팅이 너무 요란했어요 -_-; 그러니까 책이 어쩐지 싸구려 소설 같이 느껴져서 손이 안 가더라구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지나야 읽어볼 것 같네요.

비로그인 2007-08-0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가의 이름을 보는 경우도 많지요.
제목만 들었을때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황석영이라니 반전되는 상황이요.
리뷰 잘 읽었어요.

네꼬 2007-08-0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회전님.
(매번 이렇게 부르는데, 턴레프트님보다 이게 좋아서... 괜찮으시죠? ^^)
아, 마케팅이 그랬던가요? (저도 광고가 싫어서 안 사는 제품이 간혹 있으니, 그 심정 압니다만. ㅋㅋ) 널리 알리고픈 마음에 그랬던 게 아닐까요? -_- 하지만 아무튼 작품은 좋으니 나중에라도 꼭 읽어 보세요. 저는 참 좋았습니다.

민서님.
저도 제목은 좀 의아했어요. 혹 억지스럽게 갖다 붙이면 어떡하나 걱정도 약간. 그런데 역시 굉장한 소설가구나, 싶어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 이음새들이란!

마노아 2007-08-1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울어주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말에 희망을 봅니다. 저도 네꼬님과 같이 울래요.

2007-08-10 0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8-1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때로는 같이 울어주는 게 어디 비할 수 없는 힘이 되기도 하지요. 저는 같이 울어주는 마노아님 덕분에 웃습니다. : )

비밀님.
흠--- 믿어줄까요 말까요? ㅋㅋ (휴-- 그래서 그랬다니 다행이다. 난 또!)

2007-08-10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못읽었지만 네꼬님 리뷰에 추천^^

네꼬 2007-08-1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님.
말씀 드린 대로예요. ㅠ_ㅠ 정말 사람들에겐 다양한 관점이 있는 걸까요?

혜경님.
앗, 감사합니다. ^^ 언제 기회되면 책도 꼭 보시어요. : )

라로 2007-08-1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읽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첫째 제목이 그랬고
둘째 마케팅이 요란하다보니 제목에 대한 반감에 가 되서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다 님처럼 역시!라는 말을 하더군요.
리뷰 감사합니다.

네꼬 2007-08-1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나비님 서재를 들락거렸는데 ^^ )
황석영 선생이 살짝 무서워질 정도였어요. 아니, 헛것을 보는 바리의 묘사가 얼마나 실감나는지요. 개인적으로는 오래간만에 몰입이 되었던 소설입니다. 자자 외적인 것들은 모두 잊으시고--

2007-08-11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1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7-08-1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이 소설을 읽어볼까 어절까 고민했는데 (저도 제목에서 걸려서요..) 네꼬님 리뷰를 보니 보고싶어 졌어요.

네꼬 2007-08-11 17:58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이 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인데, 읽고 보면 딱 맞는 제목이긴 해요. 보세요 보세요.(부채질~)

2007-08-11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7-08-1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저는 바리데기 소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아마 작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옆지기가 책을 사서 다 읽고 읽어보라 서재실 한켠에 놨두었는데 잘 눈이 가질 않습니다. 근데 네꼬님 리뷰 읽어보니 읽어볼까 하네요. 뜨거운 여름 잘지내고 계시죠.

산사춘 2007-08-14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오래된 정원 읽고 좀 그래서 쉬고 있었는데,
네꼬님이 이리 써주시면 읽을 테야요. 아자!

네꼬 2007-08-1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저도 몇 개 단편밖에 읽은 게 없어서 그간은 잘 몰랐어요. 뭔가 '이야기'가 읽고 싶다 생각해 시도한 건데 그러기엔 참 좋았습니다. 근데... 엉뚱한 얘기지만... 부러워요. 옆지기님이 사서 읽은 책, 좀 읽어보라고 서재에 둔다.... 멋져요. (쓰고 나니 정말 엉뚱한 소릴..)

산사춘님.
전 작년에 "오래된 정원" 영화에 뜨악. 어찌나 클리셰가 넘쳐나는지. 최악의 대사 :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뭔데?" -_- 하지만 이런 대사도 있었죠. : "(시가) 아주 의젓하네" 그후로는 "의젓하다"는 단어를 즐겨 쓰는 네꼬라 한다. 춘님 흉내. =3=3=3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의적으로 사야 할 것 같은 책이 있다. 꼭 읽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책은 사줘야지, 싶은 책. 자연에 관한 책, 또는 누군가 공들여 만든 책 들이 그런 경우인데 처음에 이 책이 그랬다. 전국의 오래된 나무에 대한 책이면서, 저자가 9년간 기록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하니 어쩐지 사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들고 앉아 읽진 않겠지만 뭐 어쩌면 여행 다닐 때 한두 그루 쯤 설명을 들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샀다가 나의 교만함이 완전 부끄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땅과 하늘 사이에서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신령한 생명체라고 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가.


저자가 소개하는 나무 여행지는 모두 52곳. 9년 동안 다닌 여행지치고는 별로 많지 않잖아? 했는데 웬걸! 말이 52곳이지 각 여행지마다 대표적인 나무 한 그루, 그 근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 네 그루를 소개한다. 실제로는 260곳인 셈인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분명히 걸어서 얻었을 상세한 정보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이건 무슨 나무 저건 무슨 나무 하는 도감이나 안내서가 아니라, 예천 어디 주막 뒤의 나무, 경주 어느 서원의 향나무, 삼월삼짓날 전후로 막걸리를 마시는 절집 소나무 등 풍상과 풍류를 모두 아는 노거수(老巨樹)를 찾아 나선 여행이다 보니 곳곳에 사연이 있어 소설책 읽듯이 꼼짝없이 앉아 읽게 된다. 처음엔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나무부터 보러 가려고 포스트잇을 붙였고, 그다음엔 생김새나 사연이 아름다운 나무를 보러 가려고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거의 모든 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게 됐다. 어디서부터 찾아갈지, 이제 색깔로 구별해야 할 지경이다.

 

본문의 모양새가 얼핏 봐서는 백과사전처럼 빼곡하게 정보를 나열한 것 같지만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남원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룡산성의 숲길을 올라야 선국사로 갈 수 있다. 이 길 곳곳은 우리의 옛 음악인 ‘창(唱)’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백제 때 쌓은 산성인 교룡산성을 따라 오르다보면 창을 연습하는 예인들이 기거하는 작은 집들이 숲 사이 곳곳에 있는데, 사시사철 그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선국사에는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있다. 나무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큰북이 걸린 대웅전 왼쪽 앞에 서 있는데, 그 앞에 7층 석탑과 어우러졌다. 대략 5백 살쯤 되어 보인다. 마치 석탑을 휘감아 돌 듯 비틀리며 솟구쳐 올랐는데, 결코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242면)


이런 글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실려 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빨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니 제목 참 잘 지었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대표 나무 외의 네 그루 나무들은 사진이 작아서 아쉬운데, 단점이란 뜻이라기보다 내가 궁금해 애가 탄단 뜻이다. 작은 틀 안에서도 나무마다 다른 자태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건 이 나무를 멀리서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들여다본 사람이,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고 찍은 사진들이다. 그래서 특별한 기교 없이 찍은 사진들인데도 충분히 아름답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나무들 또한 그렇다는 당연한 사실에 새삼 감동했다.

더운 게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포스트잇이 이미 무색해졌지만 한 그루씩 어서 만나보고 싶다. 소개하는 곳들이 모두 서울경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당황했지만, 하긴 그만큼 나무를 밀어내고 세운 도시에 사는 처지이니 오히려 미안해하며 다녀야 할 것이다. 아니 근데 이렇게 사람 마음에 불을 질러 놓고, 별책 부록으로 지도라도 끼워줘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아니다. 저자가 9년 동안 모은 정보에 변동이 있을까, 일일이 다시 답사하며 업데이트해준 ‘나무 찾아가는 길’ 꼭지만 해도 고맙다. “여기서 좌회전하고 곧바로 나눠지는 감애삼거리에서 왼쪽길로 진입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펼쳐진 논밭 가장자리에 우람한 나무가 보인다”거나 “향교 앞까지 자동차가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급한 경사를 곤두박질하듯 내려가야하니 조심하자” 이런 안내를 하는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책날개의 저자 사진을 보니 그 참, 참-, 나무처럼 생긴 아저씨 한 분이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착하게 웃고 계시다. (그리고 지적인 얼굴이시다. ♡) 저자를 포함해 책의 평점을 매기자면, 별 다섯 개가 박할 정도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7-08-0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리뷰는 그야말로 최고예요. 이보다 더 최고일순 없어요. 어쩌면 이렇게 리뷰를 맛깔스럽게 잘 쓰실까요. 리뷰 자체로 한편의 멋진 글이라 읽을 맛이 난답니다. 게다가 네꼬님의 리뷰를 읽으면 분명 이 책의 판매율은 급상승할거예요.

그래서 생각해봤는데요,
언젠가 제가 책이란걸 쓰게 된다면, 네꼬님이 리뷰써주세요. 베스트셀러 되게 말이죠 :)

turnleft 2007-08-0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추천. 보관함에 하루에 한두권씩 책이 계속 늘어나네요 =_=

비로그인 2007-08-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짱꿀라 2007-08-0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제가 요즘 부쩍 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리뷰 잘 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07-08-0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귀염성 리뷰에 추천이에요.
저자의 미모에도 별다섯개 주신 네꼬님^^
표지부터 시원한 녹음이 느껴지네요. 저도 도의적으로 담아가야할 것 같은 책..

네꼬 2007-08-0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왜 그러시와. 부끄럽게. =_= 에... 음.... 제가 좋아하는 책 얘기만 써서...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요? 다락님 데뷰만 하시와. 이 서점 저 서점 중복 안 되게 리뷰를 날려 드릴 테니. 다락님의 글이라면 제가 얼마나 하트 뿅뿅뿅이겠어요?

좌회전님.
앗! 앗! 앗! 그분이시다! (반갑습니다.^^) 저는 운전할 때 좌회전을 제일 좋아하는데, 가끔 그 생각할 때면 좌회전님 생각이 났더랬죠. (실은 훔쳐보고 있었어요. 흐흐.)

한사님.
으아아앗!! 반가워서 눈이 반짝! *_*

산타님.
안녕하세요? (호호.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하는데.... 혹 산타님 서재에 노란 고양이털 한두 가닥 떨어진 거 보고 오신 거 아니에요?) 저도 철이 철인지라 나무가 남달라 보여요. ^^

혜경님.
이상하게 혜경님이 뭐라고 하시면 전 꼬리가 흔들려요. 강아지도 아닌데. 킁-

mong 2007-08-03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제가 나무를 좋아하는 우드스톡이자나요
사주에 나무가 많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는데 여튼 저도 보고 싶어요!

nada 2007-08-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며칠 게릴라성 폭우 때매 글쎄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뽑힌 거예요.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이 소식을 전했더니 엄마 역시 놀라서 맨발로 뛰어나가셨죠.
그러고 다시 들어오시더니 쓰레빠로 제 머리를 딱!
"니 눈엔 해바라기가 나무로 보이냐."
해바라기는 나무 아닌가요? 웅..
암턴 결론은 저도 나무 좋아하고 아낀다는 거요.^^ 완전 추천이에요.

Mephistopheles 2007-08-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책 한권으로 네꼬님이 완벽하게 "바람"이 차버리신 거군요..^^
이런 바람이라면야 엄청 권장하고 권유해야 합니다..^^

네꼬 2007-08-0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나무가 많은 사주"라, 어쩐지 근사해보이는데요! 곧고 그윽한 풍미가 있으실 듯하군요. 우드스톡이라면 얼른 올라가 앉고 싶을 나무들이 아주 많은 책입니다.

섬사이님.
신문에도 소개가 되었군요. 저는 처음에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걷기여행"을 읽고 이 시리즈를 알았답니다. 두 권 다 좋았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부끄럽고 좋아라.♪)

꽃양배추님.
댓글에서 이렇게 박진감 넘치기가 쉽지 않은데... 크하하하하. 배추님, 와락이에요. 저는 배추님을 좋아하고 아껴요. 댓글을 추천하고 싶군요, 정말!

메피님.
제가 또 원래 쉽게 넘어가는 고양이잖아요. 자자 온누리에 "나무바람"이 들도록 서로 권장해보아요. : )

책속에 책 2007-08-1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꼬님 덕분에 보관함에 책이 한권 더 늘었네요^^

네꼬 2007-08-1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리머님.
앗, 오셨다! (^^) 보시면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 )
 
나비 때문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7
이원수 지음, 이태수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동물이 의인화된 동화를 참 좋아한다. 물론 억지로 동물을 사람처럼 만든 부끄러운 동화나(그런 걸 읽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독자를 바보로 알고 ‘얜 말할 줄 아는 동물이야. 정말이야’ 하고 강요하는 유치한 동화는 절대 사절이다. 하지만 내가 이 동물이라도 그러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동화는 최고다. 이야기 속 동물의 처지가 확 이해가 되면서, 이야기 밖 일상의 동물도 다시 보게 하는 동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동화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김옥의 「학교에 간 개돌이」의 훈견, 그 이름도 정겨운 개, 개돌이다. 개돌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사투리를 쓴다! “싫당께롱! 나도 학교 가고 싶단 말여! 나도 하루 종일 집만 지킬라면 얼마나 심심헌 줄 알어? 한 번만 따라갈랑께 나 좀 델꼬 가잉?” (물론 진우의 귀에는 “멍멍!”으로 들릴 뿐이지만.)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가 말이다.

 

-

『나비 때문에』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자상한 할아버지 이원수 선생님의 단편 동화집이다. 덕분에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동화들을 읽었다. 특히 표제작 「나비 때문에」는 1963년 작으로 거의 반세기 전의 동화이지만, 의인화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보여주는 듯 감탄을 거듭하게 했다. 개 입장에서 쓴 1인칭 동화로 개 이름은 희수다. 하지만 제 입으로 ‘난 희수예요’라고 말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자기소개를 세련되게 하는 동물은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희수는 한 집에서 지내는 고양이 나비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런데 진짜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장난으로 그러는 거다. 물론 가끔 너무 약이 올라서 진심으로 달려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정말로 아프게 물진 않는다.


내가 입을 쩍 벌리면 나비의 머리나 목덜미쯤은 입 안으로 다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차마 꽉 깨물 수가 없어서 슬쩍 물어줍니다. 그러면 고양이는 신이 나서 내 입술을 물고 귀를 물고 마구 제멋대로 덤빕니다. (14면)

문제는 주인집 남매에게는 항상 희수가 나비를 괴롭히거나, 나비를 쫓아가다 지쳐 헐떡이는 못난 모습만 눈에 띈다는 것. 억울하고 분한 노릇이다. 어느 날 희수가 낮잠을 자다 깨어 보니 이 고양이가 희수 목에 앞발을 척 걸치고 자고 있다.

‘이게?’ .... 조그만 얼굴, 꼭 감은 눈은 갈매기처럼 양쪽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이 보면 볼수록 귀여웠습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자는 체를 했습니다. 나비가 깰까 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28면)

희수는 곰곰 생각한다. 그래, 이 모습을 아가씨와 오빠가 보게 하자. 그러면 우리가 사실은 사이좋게 논다는 걸 알아주겠지. 그러면 나도 좀 예뻐해주겠지. 좀이 쑤셔도 꼼짝 않고 누군가 봐주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나비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자 고양이는 매정하게 개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희수는 나비를 붙잡느라 얼떨결에 고양이 뒷다리를 덥석 물었는데 하필 그 장면을 아이들이 보고 만다! ‘미친 개’ 소리를 들으며 (옛날 동화를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로, 서슴없이 쓰이는 험한 말 발견하기가 있다. 이 책에는 ‘지랄’이란 단어도 그냥 나온다) 벌을 서고 돌아와 빈 밥그릇을 보자니 새삼 울컥한 희수. 밥을 주는 주인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을까? 시장에 간 아주머니를 마중 나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도 사람처럼 생각할 줄 알 것이다. 사람과 똑같을 리는 없지만 영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작가로서 이 균형을 잡기란 곡예에 가까운데, 이원수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이루어내셨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어린이 마음을 알고 계셔서다. 동생과 장난치다 오해받는 형, 친구보다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어린이, 그러면서도 그 동생이, 그 친구가 싫지 않은 아이들. 의식하든 안 하든 그런 아이들이라면 이 동화에 어찌 공감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니 효과는 만점이다!

이 책에선 이원수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장도 만난다. 「등나무 그늘」에서 은준이는 창식이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그저 등나무 아래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등나무 그늘은 참 시원합니다. 등나무 줄기들이 얹혀 있는 시렁을 쳐다보면 초록 잎사귀들이 우거진 사이로 해가 반짝반짝하다가는 안 보이고, 안 보였다가는 또 반짝입니다. 눈이 부시어 땅바닥을 보면 땅바닥에는 그늘이 흐늘흐늘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늘에는 잘 돌아가는 팽이 같아 보이는 동그란 햇빛이 수없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53-54면) 

눈부신 햇빛의 묘사 자체도 섬세하지만, 여기에는 친구들과 놀이에 끼고 싶은 은준이의 살짝 외롭고 심심한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어서 울림이 더 깊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

다섯 편의 짧은 동화만으로 이원수 선생님의 면면을 살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동화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니다. 저학년용 동화집이지만 나는 우선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린이들 마음에 들고 싶다면, 말장난과 누구 흉내로는 어림도 없다. 어린이들은 아부하는 작가를 단번에 가려낸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건 자기들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친구라는 걸, 이원수 선생님은 잔소리도 없이 점잖고 단호하게 보여주실 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7-07-3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해요, 네꼬님.
그러니까 이 리뷰는 리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랄까요. 글을 읽으면서 입맛을 다셨어요. 너무나 맛있는 글이라서요. 다섯줄만 읽고 다시 일해야지, 네줄만 읽고 다시 일해야지, 바쁘니깐 오늘은 댓글 안달고 도망쳐야지, 했던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 글은 정말이지 온 맘을 다해 추천이예요!

네꼬 2007-07-3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헷. 뭐 그런 칭찬까지... (이렇게 의젓하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촐싹맞게 웃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받을게요. : )

섬사이님.
아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면 더 멋진 기분이 된답니다. : )

nada 2007-08-0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 젤 먼저 든 생각.
아, 정말 네꼬 님은 얼른 떡고양이 같은 아가부터 낳아야 하시는 거 아니에요? >.<
이렇게 좋은 동화 같이 읽으면서, 얼마나 아기자기 예쁘게 잘 키우시겠어요.

네꼬 2007-08-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떡고양이래. ㅋㅋ 맛있겠다..... 이건 아닌가?)
동화는 제가 좋아서 읽는 거고, 나중에 그 떡고양이는 지가 알아서 읽어야죠, 뭐.
그나저나 일단 하늘을 봐야 별을... 쿨럭.

씩씩하니 2007-08-0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가 좋아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동화를 읽고 느낌을 나눌 수 있으시네요..
하긴..저도 좋아하긴 하지만,,리뷰가,점점 어려워서 요즘은 슬럼프에 빠졌답니다..
쓸려면 왠지 기부터 죽지 뭐에요...ㅋㅋ

네꼬 2007-08-0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씩씩하니님.
전 그냥 일기 쓴다~ 생각하고. (안 그러면 저야말로 기죽어서 못 쓸 거예요.) 전 어째 동화를 읽을 때만 깊이 빠지는 것 같아요. 어려서 책을 안 읽어서 그런가?
 
움직이다
도요새 편집부 엮음 / 도요새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도넛공주님 서재에서 이 책의 리뷰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동했는지, 그만 덥석 사버렸다. 그리고 책이 도착한 날은 하루 종일 틈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보면서 조용한 사무실에 감탄사를 울려주었다. 그리고 내 자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의무적으로 이 책을 펼쳐 보게 하였다. 그들은 나의 감탄사를 이중주, 삼중주,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만들어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점이 아니라 별자리 하나를 내주어야 할 만큼 아름다운 사진집이다.


이 책은 환경재단 ‘2007 그린아트페스티벌’의 메인전시 <움직이다>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사진집으로 국내외의 동물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하이디 앤 한스, 프란스 랜팅, 김기찬, 김녕만 등이 뜻을 모았다. 그들의 카메라가 동네 골목길부터 밀림과 극지방, 물속까지 누비면서 찍은 동물과 사람의 사진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감동적이고,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동질감과 경외감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는 동물은 : 꽃에 코를 대고 눈을 감은 염소, 세상을 품을 듯 날개를 넓게 펼친 알바트로스, 황제 펭귄 가족,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카리부(나는 동물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에 언제나 무한한 감동을 받는다), 잠수하는 북극곰(엉덩이 사진도 있음), 벽만큼 어두운 표정으로 눈을 꼭 감은 동물원의 코끼리 등이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는 사람은 : 오글오글 모여든 강아지들에게 밥을 주는 아이들, 순록들과 함께 먹고 자며, 순록이 새로운 터전을 찾을 때까지 그 뒤를 따라가는 네네츠족, 말과 함께 평원을 가르는 인디언들, 돼지를 리어카에 싣고 장가보내는 농부, 자신이 키우는 염소와 똑같은(정말 똑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사냥한 사슴을 질질 끌고 가는 사냥꾼이다.


누구나 동물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고양이와 강아지, 코뿔소와 기린은 좋아하면서 새와 뱀과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나처럼 이중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동물의 생명을 무시할 권리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사진들은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잊고 지냈던 다른 '움직이는' 종족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이 지구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한번쯤 고민하게 하고, 대충 버리려던 종이를 분리수거함에 넣게 하고, 자동차 타는 것을 미안하게 하고, 사무실 에어컨을 자꾸 끄게 한다. 그러니까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출판사가 신경을 쓸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건지, 어떻게 된 게 알라딘에 이 책 소개는 목차만 달랑이다. 이런 책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사라질까 봐 걱정이다. 사실 요 며칠 너무너무 바빠서 쓰고 싶은 리뷰도,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손을 댈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의 리뷰는 빨리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 점심을 김밥으로 때웠다. 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네꼬 씨인 것을 생각하면 나로선 엄청난 결심이지만, 이 책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7-07-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를 쓰기 위해 김밥으로 때웠군요. 이렇게 멋지게 리뷰썼으니깐 추천도 하고, 김밥대신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순대국도 사줄게요. 그러니 오늘의 김밥을 아쉬워하지 말고, 이런 리뷰를 써냈음에 자랑스러워 하셔야 해요. 아셨죠?

네꼬 2007-07-04 19:16   좋아요 0 | URL
순대국을 사주신다니!! 이렇게 황홀한 프로포즈가 또 있을까요? 히야. 김밥으로 때운 보람이 있네요! ♡ (추천보다 그게 더 감사. ㅠㅠ)

홍수맘 2007-07-0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중히 여기는 밥을 대충 때우게 할 만큼 가치있는 책이라면 저도 안 볼수가 없겠네요. ^^.

네꼬 2007-07-04 18:05   좋아요 0 | URL
아예 굶지는 못하고....-_-;; 제 한계죠 뭐. 홍수맘님도 보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

nada 2007-07-04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해요.^^ 정말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권하고 싶은 책이 있잖아요. 그런 책을 보면 막 행복하다가 안타깝고 나으 안목에 마구 감탄하다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게 신경질 나고..완전 조울증이 따로 없어요. 양배추 사진은 없던가요..

네꼬 2007-07-04 18:07   좋아요 0 | URL
움직이는 양배추라면 있었을 텐데... ^^ 맞아요!!! 정말 이런 책이 소문 나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입니다!!! (갑작 불끈. 다혈질 네꼬.) 고맙습니다. (응?)

비로그인 2007-07-0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기 표지 사진. 곰이 물을 털어내는 순간 포착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라딘]이 신경 안써도 괜찮아요. 네꼬님 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으니까.
아...네꼬님의 리뷰를 보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리스트에 꾸욱-

네꼬 2007-07-04 18:08   좋아요 0 | URL
미리보기가 없어서 아쉬워요. 하지만 실제로 보면 너무 아름다운 사진들이니 책으로 만나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 : )

산사춘 2007-07-0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독특하네요. 활자책만 샀는데 도전! 좁게 사는 인생이어요.

네꼬 2007-07-05 13:01   좋아요 0 | URL
오옷, 산사춘님 오셨군요. 좁게 사는 인생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 )

비로그인 2007-07-0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이제 찬찬히 댓글달기
아까 포스팅 봤는데 시간이 없어서 :)
제목이 참 심플하고 간략한데 담긴 내용은 풍성한 책이로군요!
네꼬님이 점심을 희생한 그 숭고한 정신을 살려 저도 읽도록 할게요 불끈!

네꼬 2007-07-05 13:02   좋아요 0 | URL
마음 같아선 아예 굶을 수도 있었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김밥 한 줄로 때우는 건 거의 굶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환경재단 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줘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은데 감동까지 줍니다. 도넛공주님께 감사할 따름이어요.

마노아 2007-07-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호기심 급상승이에요! 사진도 좀 올려주세요. 넘나 궁금해요. 저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답니다. 요새 책 그만 사기 모드 돌입중인데 자꾸 의지가 꺾여요(>_<)

네꼬 2007-07-05 13:04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마노아님처럼 포토리뷰를 올리고 싶었는데, 책을 찍으려니까 자꾸만 반사도 되고, 원래는 아름다운 사진이 제 카메라를 거치면서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여하간 민폐를 끼치게 생겨서 포기했어요. 마노아님은 책을 사시면 사진도 예쁘게 찍어주시고 리뷰도 잘 써주시고 하니까, 책 좀더 사셔도 될 것 같은데요. : )

2007-07-05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5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0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향기로운 2007-07-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여우님처럼 사람들 마음을 혹하게 하려면 파란꼬리여야 합니다 =3=3=3=3=3

네꼬 2007-07-07 23:22   좋아요 0 | URL
그런데 저, 줄무늬 고양인데 꼬리만 파란색이면 너무 날라리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도넛공주 2007-07-0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쁘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리뷰도 정말 마음을 '움직'이네요.만세.

네꼬 2007-07-07 23:22   좋아요 0 | URL
숨어 있는 이 책을 어떻게 찾으신 건지, 나는 도넛님이 더 만세, 그리고 만세에!!!

에디 2007-07-0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문하기 직전에 가격을 보고 조금 말성이는 중;

네꼬 2007-07-08 00:18   좋아요 0 | URL
자자, 망설이지 마세요. 반복해서 보는 횟수를 생각하면 그게 다 보상이 된다니까요. (게다가 환경재단에 좋은 일!) 팔 빠져라 부채질~~~
 
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교토 여행을 좋아한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숨을 곳이, 마음 놓고 사랑할 도시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지난 봄, 치료가 되었든 치유가 되었든 어떤 위로가 필요했을 때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난 여행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조금도 얻지 못했다. 사람이 많고 날이 흐렸다고는 하지만 벚꽃이 만발한 교토는 분명히 아름다웠고, 사람들도 여전히 친절했다. 그러나 나는 걸음마다 아팠고, 새벽이면 눈도 뜨기 전에 이미 울면서 잠을 깨었다.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교토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대로 이 도시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끌림』은 어느 시인의 여행을 기록한 책이지만 ‘산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한강 하류의 다리 공사를 보면서 그 일이 시를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던 시인이니, 그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무척 기대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200여 도시를 여행하고도 그 기록을 그저 ‘산문집’이라 하다니, 그리고 ‘끌림’이라는 이 뜻밖의 제목을 붙이다니. 못 떠나는 사람이 주눅 들게 하지 않는, 떠나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달콤하게 대리만족시켜 주지 않는 이 책이 나는 처음부터 좋았다.


책을 펼치면 속표지도 차례도 없이 곧바로 그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왜 떠나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그가 도착한 도시가 어디인지 떠벌리지 않고, 당연히 그 도시의 역사며 문화적 발자취도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주 가깝게(이것이 중요하다. 도시의 풍경을 담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깝게) 들이댄 카메라로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길모퉁이와 과일과 술병과 옥수수와 빨래와 고양이와 자전거를 담아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 먼 데를 구경하고 온 이의 모험담을 듣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고 말 없는 친구의 손에 끌려 정말로 그 도시에 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만난다.


거대한 어항 같은 도시 안에서 물기 없는 호흡을 하고 있을 때.... 깊은 밤 잠에서 깨어 통장 잔액 확인을 하고 있을 때,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 시켜놓고 기다리다 주인이 가져다준 신문 첫 장을 외면하고 싶을 때,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아플 적에 친구 고래가 아픈 고래를 수면까지 밀어올려서 숨을 쉬게 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 웅크린 채로 먼 길 가는 달팽이의 축축한 행로를 지켜보고 있을 때, .... 뭔가 가득 채워놓은 것이 쓰러져 엎어졌을 때, 이사 후 아무렇게나 기대 놓은 그림을 누군가가 말을 해줘서야 바로잡고 있을 때... 보름달 주기를 따라 피었다 졌다를 반복하던 마당의 꽃들이 어느 순간 돌아가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할 때, 다시 또 누군가를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을 때.  

#024 나는 간다

 

이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틈틈이 꺼내 아무데나 펼쳐서 읽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를 따라가 멕시코의 청결한 이발사를 만나고, 자기 키만 한 액자를 들고 선 청년과 함께 빠리의 지하철을 타며, 런던의 택시운전사로부터 행색이 초라한 손님에게 팁을 받은 슬픈 이야기를 듣고, 잔돈이 없어 여행자에게 그냥 옥수수를 내주는 순박한 페루 청년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수첩의 달력 칸칸에 베토벤, 존 레넌, 고흐, 아인슈타인을 적어 넣은 어떤 여행자의 수첩을 엿보고,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베니스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여행은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끄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 도시가 나를 부른 이유를 깨달을 때까지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머물러야 한다. 걷고 보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도망가서는 안 된다. 도망해버리면, 돌아오는 길이 괴로울 테니까. ‘끌림’으로 떠나고, ‘끌림’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교토에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도시가 나를 불러준다면. 그러면 가서 그곳의 공기를 꼭 안아주어야겠다. 다행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넛공주 2007-06-1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토옆의 고베도 네꼬님과 참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네꼬 2007-06-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넛님 / (아참, 공주님이라고 해야 하지?) 아무튼 도넛님. 네, 고베도 좋았어요. (하지만 비가 오는 밤에 길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쿨럭.)

다락방 2007-06-1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개인적인 취향을 말하자면 저는 산문집도, 여행기도 좋아하지 않아요. 특히나 여행기는 제게 그저 재미없는 책이예요. 이상하지요?

그런데 네꼬님의 이토록 아름다운 리뷰를 읽으니, 아뿔싸, 나는 그동안 너무나 편협하게 살았구나, 이토록 좋은것을 읽지도 못하고 이 세월을 보냈구나 싶어집니다.

진심으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멋져요, 이런 글을 쓰시는 네꼬님 :)

에디 2007-06-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조금 아닐지라도 ' 마음 놓고 사랑할 도시가 있다는 것' 이 부럽워요. : )
전 한 도시를 여러번 가보질 못해서.

...그러고 보면 저의 도시 취향은 참 formal 한듯. 너무.

베니스에 대한 커멘트는 기억해두었다가 앞으로 써먹을께요.

Mephistopheles 2007-06-1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여행은 관광객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답니다. 그런 면으로 따진다면 여행은 제법 고된 행위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고되기 때문에 얻는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겠지요..^^

마늘빵 2007-06-12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

네꼬 2007-06-1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 저도 여행기는 너무 잘난척하는 경우가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 책은 달라요. 시인들은 이런 마음으로 시를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죠, 아직 안 해본 게 남았다는 게 좋지 않으세요? : )

주이님 / 저는 교토처럼 오래된 도시를 좋아해요. (경주도 좋아합니다, 물론) 베니스 얘기는 작가의 것이에요. 시인은 괜히 되는 게 아니더군요. -_-

메피님 / 맞아요. "훌쩍, 쉼을 찾아, 여유를 찾아" 라는 말은 어쩌면 그냥 하는 말일지도. -_- 발발발 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에너지를 동원해 느껴야겠죠.

아프님 / 응? 초콜릿 주게요?

비로그인 2007-06-1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행기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데... 네꼬님 리뷰때문에 끌리네요.
베니스는 정말 가봐야 아는 곳.
탄식이 절로 나오죠. :)

비로그인 2007-06-1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교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중 액자식 구조로 쓰신 것 같습니다만. 제겐 그렇게 보여요.
저 다른 색의 글자들의 모양과 서술이. (웃음)

네꼬 2007-06-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끌리셨다니 역시 이 책의 힘이로군요. 제목 참 잘 지었다 싶어요. : ) 책 속의 사진과 글을 보니 저도 베니스에 꼭 가보고 싶어졌어요.

엘신님 / "돌아"간다고요? (오옷, 역시!) 에, 쓰고 보니 정말, 액자같네요. 하핫.

2007-06-12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1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도대체 뭘 쓰셨기에, 쑥스...? 궁금궁금 왕 궁금) 전 언제고 때가 되면 책이 사람을 찾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물론 고양이도 찾아오고요.)

비로그인 2007-06-1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네꼬님 저도 교토가고 싶어요~~

네꼬 2007-06-1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츠님 / 자자, 유람단을 꾸려보아요~~

비로그인 2007-06-1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서재, 무척 깔끔합니다.^^ '글을 아는 고양이'....문구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네꼬 2007-06-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우아아아앙---------- (미아보호소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