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애는 늘 벼룩시장이나 바자회에서 산, 몸에 맞지 않는 헌 옷을 입고 다닌다. 머리는 자주 감지 않아 떡이 지고, 멜빵을 변기에 빠뜨리는 바람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바빠서 살림을 잘 챙기지 못하는 탓에 집은 엉망일 때가 많다. 친구들 데려올 엄두도 내지 못한다. 데려올 친구도 없다. 조은애의 별명은 ‘지질이’다. 삽화가 없는 동화라면 읽기가 좀 괴로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림 속의 조은애는 귀엽다. ‘키는 엄마를 닮아 작고, 눈은 아빠를 닮아 단춧구멍 같고, 코랑 입은 그저 그렇고, 똥배가 좀 나왔다’는 작품의 묘사를 그대로 살렸는데도 귀여운 인물이 되었다. 대충 자른 단발과 짧은 팔다리도 사랑스럽다. 친구가 될 뻔한 박하은에게 마음과 달리 심통을 부리는 장면에서도 얼굴이 그리 미워 보이지 않는다.


반에서 제일 친구가 많은 오지희한테 “난쟁이 똥자루”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장면에서 조은애의 키는 다른 애들 키의 딱 절반이다. 그런데도 얼굴은 당당하다. “너는 아나운서가 꿈이라더니 아나운서 되긴 틀렸구나. 무슨 아나운서가 그렇게 나쁜 말만 골라서 하니?” 하고 되받아치는 조은애의 대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장면은 꼭 연극 무대 같다. 입체로 만든 세트에 종이 인형을 세워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금방 이사 갈 것처럼 어질러진 조은애네 집 안 풍경도 재미있는 미니어처와 실제 물건들로 연출해 아기자기하게만 보인다. 외톨이 이야기를 이렇게 생기 있게 표현한 그림이 있었나 싶다.


조은애는 이모의 조언대로 스스로 앞가림을 하기로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깨끗이 씻고, 옷도 어울리게 입는다. 용기를 내어 박하은을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미 응원하는 친구가 있으니 잘 될 것이다. 맨 먼저 주인공의 개성을 발견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준 화가가 바로 그 친구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5년 여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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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1-3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이름도 지금 외톨이지만 사실은 좋은아이라는 뜻인 것 같아 따스해요^^ 네꼬님말씀대로 외톨이이야기지만 생동감있어보여서 읽어보고싶어요!(슬픈 이야기는 두렵ㅠㅠ)

네꼬 2016-01-31 15:17   좋아요 0 | URL
조은애 이름 좋죠. ㅎㅎ 저도 슬픈 이야기 안 좋아해요. ㅠㅠ 제가 웃긴 얘기 발견하면 또 알려드릴게요! 같이 읽읍시다.

뽈따구 2016-02-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알라딘 헌책방에서 읽었어요. 이모 조언대로 혼자 앞가림할때 가슴 뭉클.
그리고 뒷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뎅 오지희랑 박하은이랑 셋이 친구가 되는! ㅎㅎㅎㅎ
 
















머리에 뿔이 나고 방망이를 든 일본 도깨비와 달리 우리나라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한다. 상상 속 존재의 국적이며 생김새를 따지는 것에 시큰둥할 때도 있었지만, 『샘마을 몽당깨비』를 보면 우리나라 도깨비가 요괴처럼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의 이야기에 등장하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처럼 생긴 쪽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사람인 버들이를 좋아한 죄로 은행나무 뿌리에 갇히는 벌을 받다 엉겁결에 현대에 깨어난 몽당깨비는 털이 부숭부숭 난 얼굴과 손만 가리면 그냥 땅딸막하고 후줄근한 사람으로 보인다. 텔레비전에 “도깨비가 홀릴 지경”이라며 놀라고 주삿바늘에 털이 곤두서서 줄행랑치는 모습도 친근하다. 글에서나 그림에서나 투박하지만 정이 가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섬세함에 놀라게 된다. 가는 펜으로 윤곽을 그리고 여러 겹의 선으로 명암을 나타냈는데, 빛과 어둠의 조화가 단조롭지 않게 연출되었다. 주인공이 도깨비이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이 주로 밤이기 때문에 그림에 색을 입혔다면 오히려 칙칙해지기 쉬웠을 것이다. 버들이의 후손 아름이가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달빛이 비스듬히 그들을 비춘다. 이별이 아쉬워 주저앉은 몽당깨비의 굽은 등에는 가만히 어둠이 앉았다. 정성스러운 손길로 그려진 선은 밤을 부드럽게 표현하고 어둠 속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해준다. 도시 개발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 세상 같아도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기꺼이 벌을 받으러 은행나무로 돌아가는 몽당깨비 이야기에 걸맞은 그림이다. 담백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 계간 『창비어린이』 2015년 봄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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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01-3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우리 네꼬님 문학잡지에 글 쓰시는구나. 멋지시다.@_@;(저만 뒷북인걸까요? 죄송ㅠㅠ) 저같은 설렁독자는 무한 감탄하게되는 네꼬님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 잘 읽었습니다^^

네꼬 2016-01-31 15:18   좋아요 0 | URL
문학잡지에 글 쓴다, 라니 너무 거창해요;; 계절에 하나씩 짧은 글 쓰는 거예요. 너무 게으른 것 같고, 여기저기 흩어지는 것 같고 해서 한데 모아두려고 서재에 적어 두는 거예요. (사실은 지금도 하나 마감해야 되는데 시작이 안 되어서 지난 원고들 보고 있어요... ㅠㅠ 마감이여 ㅠㅠ )
 

 

 

 

 

 

 

 

 

 

 

 

『너하고 안 놀아』는 노마, 영이, 기동이, 똘똘이 등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짤막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읽은 뒤에 이야기 속 인물과 비슷한 친구 이름 적기를 했다. 슬기롭고 씩씩한 주인공 노마 옆에는 다들 자기 이름을 적지 않을까 했는데, 진우도 은호도 지은이도 약속이나 한 듯 석규 이름을 썼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놀이를 제안하고 역할을 나누는, 말하자면 리더 역할을 잘하는 아이란다. 다만 진우는 “근데 걔 좀 잘난 척을 해요.” 하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그런데 『앨머의 모험』을 읽은 뒤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책은 엉뚱한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여행을 떠난 앨머가 결국 그 물건들 덕분에 모험에 성공하는 이야기이다. 앨머처럼 모험을 떠난다면 배낭에 무엇을 넣을지 목록 작성하기를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서 친구 한 명까지는 같이 가도 된다고 했다. 역시 모두가 같은 이름을 적어 냈는데, 이번에는 석규가 아니라 세준이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친구가 꼭 같이 있고 싶은 친구는 아닌 모양이다.

 

“세준이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세준이랑은 안 싸워요. 아무도 안 싸워요.”

“모르겠어요. 그냥 웃겨요.”

 

모두가 세준이를 좋아한다. 세준이는 외모도 성적도 보통인 평범한 아이다. 마냥 활발한 것도 아니고 이따금 수줍음을 타기도 한다. 그런데도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은 세준이와 같은 모둠이 되고 싶어하고 여자 아이들 대부분이 세준이에게 고백 편지를 썼다. 엄마들도 “애가 집에 와서 세준이 얘기를 제일 많이 한다” “어른인 나도 세준이하고는 얘기할 맛이 난다”며 세준이는 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사실 세준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 역시 세준이가 좋다.

 

세준이는 어른들에게는 물론 친구에게도 인사를 잘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인사를 받으면 답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세준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외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적절하게 대꾸한 뒤에 자기 얘기를 한다. 세준이와의 대화가 즐거운 것은 바로 이런 매너 때문이다.

 

 

 

 

 

 

 

 

 

 

 

 

『만복이네 떡집』은 마음과 달리 자꾸만 못된 말과 행동이 튀어나와 친구가 없는 만복이가 이상한 떡집을 발견하고 친구 사귀는 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입을 딱 달라붙게 하는 찹쌀떡, 좋은 말을 하게 하는 꿀떡, 남의 생각을 듣게 하는 쑥떡 덕분이다. 같이 책을 읽던 세준이가 자기는 이 떡집에서 파는 떡 중 ‘오래 오래 살게 하는 가래떡’을 사 먹고 싶다고 했다.

 

“이거 값이 아이들 웃음 아흔아홉 개인데, 너무 비싸지 않아?”

“한 번에 여러 명이 웃으면 되잖아요!.”

 

역시 세준이는 통이 크구나, 했더니 즐겁게 웃던 세준이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엄마가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저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세준이의 인기는 결국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세준이 자신은 친구들의 마음을 다 받아주느라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준이는 모험용 배낭에 각종 요리 도구와 만화책과 게임기를 넣겠다고 하면서도 친구 이름은 적지 않았다.

 

“꼭 친구랑 같이 가야 돼요?”

“아니야. 혼자 가면 심심할까 봐 그러지.”

“그럼 혼자 갈래요. 저는 심심한 거 좋아요!”

 

친구가 많지만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세준이. 이런 세준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2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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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약한 속마음, 센 겉행동
    from 뽈따구책방 2015-11-05 16:16 
    어제 아들이 친한 친구가 짝꿍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막 다 속상해서 "왜 그럴까" 싶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꼬님이 글로 써준 세준이 말이 생각났다. “저희 반에도 욕하고 짝꿍이랑 만날 싸우는 애가 있는데요, 걔가 속마음은 되게 약해요. 근데 그거 다른 애들이 알까 봐 일부러 막 더 세게 하는 거예요.” 와... 이런 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더불어 아들의 또 다른 친구의 일기도 생각이 났다. "★
 
 
다락방 2015-08-06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준이가 자라면 저 같은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3=3=3=3=3=3=3=3=3=3=3=3=3=3=3=3=3


네꼬 2015-08-08 09:32   좋아요 0 | URL
이 댓글은 말씀보다 도망 방귀가 핵심이군요!

뽈따구 2015-08-0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우, 은호, 지은, 석규, 세준이 다 초등학교 2학년일까요? ㅎㅎ
(문득 나이가 궁금해지네요. ^^)

세권다 미리보기가 재미난데, 특히 만복이네 떡 집은 미리보기가 참 재미나네요.
근데 중고책방엔 ˝만복이네 떡 집˝만 없어요. 슬퍼요. ㅜㅜ.

네꼬 2015-08-08 09:35   좋아요 0 | URL
네 저 이야기 속 아이들은 모두 2학년이에요. 각자 성격이 더 잘 보이는 때인 것 같아요. (1학년은 뭐 대화를 하는 데 의의를 ㅎㅎ)

만복이네 떡집은 읽으면 떡 먹고 싶은 부작용이 좀 있습니다. 그림이 사실적인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먹고 싶어져요. 중고 등록 알림 서비스를 받아보시지요!

moonnight 2015-08-0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 세준♡ 제 조카아이들도 세준이같은 어린이로 성장했음 좋겠어요. ^^ 한편으론 세준이도 나름 힘들어서 친구 없이 모험을 떠나고 싶어하는 건가 싶어서 안스럽기도ㅠㅠ

네꼬 2015-08-08 09: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세준이가 친구 없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좀 걱정을 했어요. 세준 어머님도 그렇고요. 그런데 얼마 전에 MBTI 검사를 했더니 (나 자격증 있음 엣헴) 자기가 좋아서 친구랑 노는 것 같더라고요. 막 그것도 멋짐. *ㅅ*
 

 

 

 

 

 

 

 

 

 

 

 

 

 

한때는 흙으로 척척 빚어 사람을 만든 하느님이 지금은 송편 하나를 어쩌지 못해 쩔쩔 매고 있다. 얼굴에도 팔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들 예수도 재주 없기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할머니가 친절히 알려주는데도 멋쩍어 얼굴을 붉힌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은 오순도순 사람 사는 정에 가슴이 더워지고, “원래 심보 나쁜 사람은, 송편 빚어 놓으면 그렇게 못생겼단다.” 하는 할머니 핀잔에 눈물이 핑 돈다. 그래, 내가 못나서 사람을 못나게 빚은 걸 누굴 탓하겠냐, 그래, 내가 미안하다 하시겠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의 삽화는 사실 예술적이기보다는 통속적인 그림에 가깝다. 90년대 초반 동네 서점 어린이 책 코너를 휩쓴 ‘소년소녀 명랑 소설’ 그림이 그랬듯, 특별한 기법 없이 단순하고 재미있게 그려진데다 모든 면에 그림이 들어간다. 딱 만화 같다. 이런 그림의 강점은 만만함이다. 하긴 하느님이 우리 곁에서 가난하고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그림이 세련되면 못나 보이고 비장하면 민망했을 것이다. 할 줄 아는 일은 없으면서 툭하면 울고 떼쓰는 천덕꾸러기 하느님, 어둡고 축축한 지하 셋방에서 앓으며 에어컨 있는 아파트에 사는 꿈을 꾸는 하느님 이야기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그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나는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그림보다 더 좋은 삽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아직 통일이 안 되었으니 아직 이 땅에 계실 텐데, 지난 한가위에 하느님은 어디서 송편을 빚으셨을까.

 

 

 

* 계간 『창비어린이』 2014년 겨울호에 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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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따구 2015-08-0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화 같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서 책을 찾아봤어요. 잘 읽겠습니당~ /^^

네꼬 2015-08-04 17:19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닉네임이 너무 재밌어요 ㅎㅎ) 일단 이 동화가 좋은 작품이에요. 권정생 선생님이 웃긴 것도 잘 쓰신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기회 되시면 꼭 읽어봐 주세요! (^^)/
 

삼형제 중 둘째인 지우는 또래보다 속이 깊고 말수가 적다. 처음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지우에게 늘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느라 늘 바빠 “지우에게 마음만큼 다정하게 대해줄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지우와 『넌 누구 생쥐니?』를 읽었다. 책 속 아기 생쥐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고양이 배 속에 있다고 대답한다. 아빠는 쥐덫에 갇혔고, 누나는 여행을 떠났고, 남동생은 없다며 더 풀이 죽는다. 그러나 아기 생쥐는 결국 용감하게 가족을 되찾고 남동생도 얻게 된다. 책을 읽은 다음 아이에게 ‘지금 아빠는 무얼 하실까, 엄마는? 누나는?’ 하고 물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지우 엄마는 지금 뭘 하고 계실까?”

“회사에서 전화 받아요. 일하고 열 시 넘어서 와요. 엄마 회사가 늦게 끝나거든요.”

 

의도치 않게 지우도 아기 생쥐처럼 풀이 죽었다.

 

“어떤 때는 아침에도 와요.”

“엄마 오실 때까지 기다리니? 아니면 자?”

“아빠가 자라고 하고 형이랑 동생은 자는데 나는 거의 안 자요.”

“그러면 학교 가서 피곤하지 않아? 엄마 아빠 걱정하실 텐데.”

“누워 있는데 잠 안 올 때도 있고, 잤다가도 눈이 떠져요. 엄마 오면.”

 

지우는 깨어 있어도 방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방에 들어오면 잠깐 인사하는 게 전부라고. 엄마는 일찍 퇴근하는 날엔 집에서 일을 하신단다.

 

 

 

 

 

 

 

 

나는 엄마들은 모두 늘 바쁘다며 『엄마 등에 업혀서』를 읽어 주었다. 세상 모든 아기들이 안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는 온종일 바쁘기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아이를 업는다. 아마존에 사는 엄마는 아이를 한쪽으로 둘러멘 채 숲 속을 걷고, 파푸아뉴기니 엄마는 아기가 담긴 그물을 이마에 걸고 일하고, 캐나다 북쪽에 있는 누나부트 엄마는 아기를 외투 모자에 넣고 얼음낚시를 한다. 책을 읽고 지우에게 이중 어느 나라 식으로 업히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답한다.

 

“업어주는 건 이제 힘드니까……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지우는 담담한데 내가 괜히 찡해졌다.

 

회사 다니는 엄마만 바쁜 것이 아니다. 태인이네는 아빠가 일이 바쁜데다가 출퇴근 시각이 불규칙해서 엄마가 온종일 태인이와 동생을 돌본다. 아빠가 애정 표현이 많은 편이어서 아이들과 아빠 사이는 무척 좋지만 엄마가 받는 ‘업무 하중’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태인이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토로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언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런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 대신 이모가 태인이를 독서교실에 데려다 주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휴가 갔어요. 오늘은 엄마 혼자 논대요.”

 

나중에 태인이 엄마에게 들으니, 언니와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고 번갈아 휴가를 갖기로 했단다. 둘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15년이나 남았으니 체력을 비축해야겠다 싶더라고.

 

“우리 엄마 이제 퇴근도 해요. 밤에 아홉 시부터는 엄마 퇴근이래요.”

 

엄마가 아빠처럼 ‘퇴근’도 하고 ‘휴가’도 내는 것이 재미있는지, 태인이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열 시에 자기만 하면” 엄마 퇴근 이후로는 자유 시간인 것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면 같이 “엄마 데리러” 갈 거라는 태인이에게 『엄마 마중』을 읽어 주었다. 추운 날 전차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 나온 아기가 지나가는 차장마다 붙잡고 “우리 엄마 안 와요?” 묻는다. 꼼짝 않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코끝이 빨개진 아기를 보고 태인이는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한테도 읽어주고 싶다며 책을 빌려갔다. 글쎄, 태인이는 웃었지만 엄마는 어쩌면 코끝이 빨개질지도 모르겠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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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루 2015-07-2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으앙.. 뭐죠.. 왜 제 코끝도 빨개지는거죠 ㅜㅜ

네꼬 2015-07-30 13:54   좋아요 0 | URL
비니루님 코 흥! 풉시다

뽈따구 2015-07-28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꼬님은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시지만, 아이들 마음도 같이 읽어주시나봐요. ^^

네꼬 2015-07-30 13:55   좋아요 0 | URL
뽈따구님, 마음을 읽는다니 그럴 수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ㅜㅜ 제 마음도 몰라요. ㅜㅜ

아무개 2015-07-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잉~
쿨쩍~

네꼬 2015-07-30 13:56   좋아요 0 | URL
여기도 코 푸실 분 있네요... 같이 풀어요. ㅠㅠ

moonnight 2015-07-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ㅜㅜ 네꼬님이랑 책읽는 아이들은 참 행운이로군요^^

네꼬 2015-07-30 13:5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의 이 말씀은 좀 아이들도 들었으면 좋겠네요. (겸손이란 없다...)

슝슝 2015-08-0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보고 <엄마 등에 업혀서> 바로 사러 갑니당 >_< 감사해요

네꼬 2015-08-04 19:58   좋아요 0 | URL
슝슝님 안녕하세요? 별말씀을요! >..<

다락방 2015-08-0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네꼬님하고 책 같이 읽고 싶어요 ㅠㅠ

mong 2015-08-04 17:57   좋아요 0 | URL
다락님 우리 같이 신청합시다!

네꼬 2015-08-04 19:59   좋아요 0 | URL
어디서 만날까요? ^^

mong 2015-08-06 14:04   좋아요 0 | URL
네꼬님 좋은 곳으로 ^^

네꼬 2015-08-06 15:24   좋아요 0 | URL
알림 센터에 ˝네꼬님 좋은 곳으로˝라고 뜨는 거 보고 완전 놀랐잖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ng 2015-08-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재미있다

네꼬 2015-08-08 09:31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 나도 재미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