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형제 중 둘째인 지우는 또래보다 속이 깊고 말수가 적다. 처음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 텐데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지우에게 늘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회사를 운영하느라 늘 바빠 “지우에게 마음만큼 다정하게 대해줄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지우와 『넌 누구 생쥐니?』를 읽었다. 책 속 아기 생쥐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고양이 배 속에 있다고 대답한다. 아빠는 쥐덫에 갇혔고, 누나는 여행을 떠났고, 남동생은 없다며 더 풀이 죽는다. 그러나 아기 생쥐는 결국 용감하게 가족을 되찾고 남동생도 얻게 된다. 책을 읽은 다음 아이에게 ‘지금 아빠는 무얼 하실까, 엄마는? 누나는?’ 하고 물으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지우 엄마는 지금 뭘 하고 계실까?”
“회사에서 전화 받아요. 일하고 열 시 넘어서 와요. 엄마 회사가 늦게 끝나거든요.”
의도치 않게 지우도 아기 생쥐처럼 풀이 죽었다.
“어떤 때는 아침에도 와요.”
“엄마 오실 때까지 기다리니? 아니면 자?”
“아빠가 자라고 하고 형이랑 동생은 자는데 나는 거의 안 자요.”
“그러면 학교 가서 피곤하지 않아? 엄마 아빠 걱정하실 텐데.”
“누워 있는데 잠 안 올 때도 있고, 잤다가도 눈이 떠져요. 엄마 오면.”
지우는 깨어 있어도 방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가 방에 들어오면 잠깐 인사하는 게 전부라고. 엄마는 일찍 퇴근하는 날엔 집에서 일을 하신단다.
나는 엄마들은 모두 늘 바쁘다며 『엄마 등에 업혀서』를 읽어 주었다. 세상 모든 아기들이 안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엄마 아빠는 온종일 바쁘기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아이를 업는다. 아마존에 사는 엄마는 아이를 한쪽으로 둘러멘 채 숲 속을 걷고, 파푸아뉴기니 엄마는 아기가 담긴 그물을 이마에 걸고 일하고, 캐나다 북쪽에 있는 누나부트 엄마는 아기를 외투 모자에 넣고 얼음낚시를 한다. 책을 읽고 지우에게 이중 어느 나라 식으로 업히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답한다.
“업어주는 건 이제 힘드니까…… 그냥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지우는 담담한데 내가 괜히 찡해졌다.
회사 다니는 엄마만 바쁜 것이 아니다. 태인이네는 아빠가 일이 바쁜데다가 출퇴근 시각이 불규칙해서 엄마가 온종일 태인이와 동생을 돌본다. 아빠가 애정 표현이 많은 편이어서 아이들과 아빠 사이는 무척 좋지만 엄마가 받는 ‘업무 하중’은 적지 않은 모양이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태인이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다고 토로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셔서 언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그런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 대신 이모가 태인이를 독서교실에 데려다 주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휴가 갔어요. 오늘은 엄마 혼자 논대요.”
나중에 태인이 엄마에게 들으니, 언니와 한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아이들을 봐주고 번갈아 휴가를 갖기로 했단다. 둘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15년이나 남았으니 체력을 비축해야겠다 싶더라고.
“우리 엄마 이제 퇴근도 해요. 밤에 아홉 시부터는 엄마 퇴근이래요.”
엄마가 아빠처럼 ‘퇴근’도 하고 ‘휴가’도 내는 것이 재미있는지, 태인이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열 시에 자기만 하면” 엄마 퇴근 이후로는 자유 시간인 것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빠가 일찍 퇴근하시면 같이 “엄마 데리러” 갈 거라는 태인이에게 『엄마 마중』을 읽어 주었다. 추운 날 전차 정류장으로 엄마를 마중 나온 아기가 지나가는 차장마다 붙잡고 “우리 엄마 안 와요?” 묻는다. 꼼짝 않고 엄마를 기다리면서 코끝이 빨개진 아기를 보고 태인이는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엄마한테도 읽어주고 싶다며 책을 빌려갔다. 글쎄, 태인이는 웃었지만 엄마는 어쩌면 코끝이 빨개질지도 모르겠다.
* 비룡소 북클럽 부모님 소식지 <비버맘> 1학년 / 2015년 봄에 쓴 것
* 물론 가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