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신령(神靈)하기까지 하다. 아키라의 폭주로 도시가 붕괴되는 2권의 마지막 씬에서는 소리가 들렸고 수동적으로 따라가듯, 천천히 칸과 칸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국역판 편집의 아쉬운 점을 모두 덮고도 남는 Great Wor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다만 이 작품 이후에 오토모 가츠히로의 작품 행보가 옴니버스와 블랙코메디 등으로 흐른 게 아쉽다. <아키라> 이후의 작품들만으로도 가츠히로를 좋아하지만 <아키라>를 읽은 지금에야 그의 이후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 이후와 같은 발산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월 20일 2 명 신청합니다. 7년 전 모 신문에 연재하시던 `동무론`을 만났던 작고 보잘것없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그날의 사건 이후 이제껏 숙독하며 생각 벼리를 키우는 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성과 사진으로 전해지던 `이상한 칠판(들)`. 단 하루라도 제 오감으로 공동의 장소에서 체감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비평은 다면적인 fact를 쓰는게 아니다. 
  비평은 순간의 정확한 확신을 쓰는 것이다."


1. 
 어떤 것이 속도를 취하게 되면 그것을 감각으로 붙잡기 힘들어지게 되고, 그 정체가 모호해지는 것이 물질계의 법칙이라면 때론, 멈추어도 알쏭달쏭한 것들이 있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전시가치에만 쓸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게 돼버린다. 최후의 속도 뒤에 본연의 모습을 잘라 먹어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권태가 멈춤의 정서이고 허무나 고통과 슬픔 끝의 메마른 기분도 멈춤의 감정 현상이라 치면 그것들 사이에 가름막을 세우는 일은 쉬운가? 가름막을 멈추어 둘 수가 있나? 한 가정의 여주인이 된 '나'는 "텔레비전을, 드라마와 게임 쇼를 많이 보았고, 나보코프의 소설을 죄다 읽는다거나 이어 발자크의 소설을 죄다 읽는다거나 하는 식의 나만의 프로젝트를 마련"(125면)하며 쭉 뻗은 낮잠같은 중년의 시간을 산다.


 2.
 「오스카 와일드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번은 그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화제는 권태(지루함)에 관해서였다.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와일드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기대에 찬 시선으로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그가 말했다. "나는 지루하면 좋은 소설을 한 권 집어서 벽난로 가에 앉아 그것을 읽겠소."
 실제로 그 두 가지, 즉 불타오르는 벽난로와 펼쳐진 소설은 서로 잘 어울린다.」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길 펴냄,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 발터 벤야민 선집 9』,463면)


 3. 
 권태는 무의미의 노동이다. 노동이 의미있는 것이라면 권태도 의미 있는 무의미다.


 4.
 앤드루 포터의 이 소설집 속 단편 소설은 모두 1인칭인데, 자고로 소설은 독백과 어울린다. (벤야민에 따르면) 소설은 인쇄된 글자로 가능한 예술이기 때문에 고립돼 있다. 자연법칙이다. 소설은 고독한 개인이 쓰고 읽는다. 소설이 연거푸 골똘히 말하는 것은 죽음인데, 고독에게 죽음만큼 가까운 것도 없을 것이다. 포터의 소설(나는 수록작 중 앞의 네 편만 읽었다) 속 1인칭 나의 기억 속 주인공들은 죽거나 죽을 뻔하거나 죽어간다. 혼자 말하는 입과 마음, 머리가 늘어놓는 글자의 짜임이 독자를 장례식자에 들어선 자로 만든다. 고독이 참기 힘든 건 부분들이 불협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이 멈춤이고 존재의 중심이 된 근대인에게 빠깥 세상의 급하고 빠른 질서는 영원히 낯설다. 어쩌면 소설만이 근대인에게 있어 하나뿐인 쉼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죽고, 그의 생을 반추하는 식의 '소설'이라는 외양. 하지만 저자는 허구적인 이야기는 자기가 쓰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 난 소설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물질적 필요에 얽매였던 삶을 그리려고 할 때, 내겐 예술의 편을 들 권리도, 무언가 <굉장히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인> 것을 만들 권리도 없는 것이다."(20면)


"그것은 더 이상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휑해져 버린 얼굴 한가운데 코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헐렁하게 느껴지는 진청색 양복에 감싸인 그는 누워 있는 한 마리 새 같았다."(12면)


 외양과 식은 다른 것입니다. "아버지의 삶을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한 사람의 결심의 단락이 아버지의 죽음 다음에서 시작된거라면, 식마저도 사치일 수 있습니다. ("월요일이 되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했던 냄새였다. 썩은 물이 고인 화병에 꽂혀 방치된 꽃들이 발하는 은은하면서도 끔찍한 악취였다.":13면) 지나친 사유와 세밀함이 본질을 가리기도 합니다. 모든 글쓰기는 사적인 것일진대 거기서 식을 꾸역꾸역 챙기다보면 볼품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기 글쓰기의 본령을 일찍이 간파하고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갔습니다.


"좀처럼 독서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 두꺼운 책의 어느 부분에 이르면 아버지는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을 터였다."(122면)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쓰는 것은 시간을 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의 완전한 주의 안에서 산만한 모든 것들은 지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독서와 집필이 버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지연시키지 않고 앞당기는 것만 같습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다른 우선순위들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데, 추락에의 강박적인 즐거움(사회성 안에서 문자적 쾌락은 모두 추락입니다)은 내 정신과 육체의 급소들을 정확하게 투과합니다. 무한한 황홀함과 천재지변같은 공포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늦은 봄날, 활짝 핀 쥐똥나무 꽃의 향기, 11월에 개들이 낭랑하게 짖어 대는 소리, 바깥 날씨가 차가운지 여기까지 들려오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 그래, 아마 그랬으리라, 세상을 이끌고, 지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래도 이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나요>라고 말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누렸으리라."(84면)




<외울 대목>


"어느 일요일, 열두 살이었던 나는 미사가 끝난 후 아버지와 함께 시청의 커다란 계단을 올라갔다. 우린 시립 도서관의 문을 찾았다. 둘 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난 너무나도 신이 났다. 문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은 조용했다. 교회보다도 조용했고, 마루는 삐걱거렸으며, 특히 뭔가 오래된 듯한 이상한 냄새가 우릴 감쌌다. 서가에로의 접근을 막은 아주 높직한 카운터에서 두 남자가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질문하는 동안 아버지는 가만히 있었다. 「책을 대출하고 싶어요.」 남자 중 하나가 곧바로 대답했다. 「어떤 책을 원하죠?」 집에서 우리는 빌리고 싶은 책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제목들을 비스킷 이름을 말하듯 쉽사리 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우리 대신 골라 주었다. 내게는 『콜롱바』를, 그리고 아버지에게는 모파상이 지은 어떤 가벼운 소설을. 우리는 두 번 다시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 그 책들을, 아마 반납 기한이 지난 후에, 반납해야 했던 사람은 어머니였다."(125~126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