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람, 남자 사람에 대한 오래된 질문, 새로운 대답!

혐오의 시대를 사는 청소년을 위한 젠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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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요즘엔 기계가 발달해서 집안일은 별로 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빨래도 시냇가에 가서 방망이로 두들겨 빨았고, 밥도 장작불을 지펴서 가마솥에 했고, 옷도 누에에서 실을 뽑아 천을 짜서 손바느질로 지었으니 힘들었다지만 요즘엔 대체 뭐가 힘들어?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잖아.”


나이가 지긋한 어른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은 다양한 가전제품이 발명되었으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편해졌다는 생각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빨래를 예로 들어 볼게요.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해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 여전히 많아요. 옷이 제 발로 걸어서 세탁기에 들어가던가요? 또 모든 옷을 세탁기에 그냥 던져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와이셔츠는 세탁기에 넣기 전에 손으로 애벌빨래를 해야 하고, 속옷과 수건은 이따금 삶아야 해요. 세탁이 끝난 다음엔 물을 먹어서 무거워진 옷들을 빨랫줄로 옮겨서 널었다가 다 마른 다음에 개어야 하지요. 주름진 옷은 빳빳하게 다림질해서 종류별로, 또 주인별로 분류해서 옷장에 넣어야 합니다. 집에서 물빨래를 할 수 없는 옷은 세탁소에 맡겼다가 찾아와야 하고요. 옷마다 세제도 다른 것을 써야 하고, 세탁기도 때가 되면 청소를 해야 해요.



어쨌든 세탁기가 없던 시절보다는 나아진 것 아니냐고요? 연구에 따르면, 가전제품의 발명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가사 노동 시간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사회학자 윤정로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각자가 가진 옷가지가 점점 늘어나고, 세탁 기술이 크게 발전한 데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청결과 옷매무새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어요. 그래서 훨씬 자주 빨래를 하고 다림질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답니다. 요리도 손쉬운 조리 기구가 발전하고 슈퍼마켓이 확산되면서 매끼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조리 기법이 더 복잡해졌고요. 스팀 청소기를 쓰는 가정에서는 청소하는 횟수가 증가했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없던 쇼핑, 운전, 공과금 처리, 은행 업무 같은 새로운 가사 노동이 계속 출현하고 있지요. ‘이상적’인 아내와 엄마에게 요구되는 가사 노동의 질적 수준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윤정로는 이 연구에서 가전제품의 발전은 역설적이게도 ‘어머니들에게 더 많은 일’을 만들어 주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정말 반전에 가까운 사실이지요? 그러니 가사 노동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돼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가사 노동이 많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자도 아내가 필요해


가사 노동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에요. 그러니 누구나 스스로 해야 합니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자기가 입은 옷을 빨고, 자기가 지내는 공간을 청소하는 것은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한 명이 도맡아 하고 있어요. 전업주부이든 ‘워킹 맘’이든 가리지 않고 주로 여성이, 즉 엄마가 그 일을 하지요.


많은 여성이 사회에서 일하고 있지만, 가정이 여성의 공간이고 사회는 남성의 공간이라는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이를 학자들은 어려운 말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남성은 돈을 벌어서 나머지 가족들의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은 남성이 돈을 잘 벌어 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델입니다. 성별에 따라 역할과 공간을 분담한 것이죠.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아요. 남성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바깥일’을, 여성은 사소하고 가치 없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거든요.



흔히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실 이 모델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가족 중 단 한 명이 나머지 가족 모두를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안정적으로 버는 것은 쉽지 않거든요. 서양에서는 20세기 중반에나 가능해졌고, 우리나라도 1970년대에 겨우 일부 중산층에서 가능해졌어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성들이 부업을 해서 생계비를 보탰어요. 게다가 점점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반면 필요한 생활비는 늘어나서 한 명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어요. 동시에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이 모델은 깨어지고 있지요.


문제는 이런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오늘날에도 사람들 머릿속에 너무 뿌리 깊게 남아 있다는 거예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 평론가 애너벨 크랩은 『아내 가뭄』이라는 책에서 여성들은 맞벌이를 하지만 남성들은 ‘맞살림’을 하지 않는 현실을 다루었어요. ‘남자는 직장, 여자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여전한 강한 탓에 남성은 오롯이 직장 일에 몰두할 수 있지만, 여성은 똑같이 밖에서 일을 하면서도 자녀 양육부터 여러 집안일을 다 떠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크랩은 이 상황을 이런 말로 표현했어요.


“(일하는 여성들은) 마치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크랩은 또 하나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여 주었어요. 가사 노동은 여성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성차별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2012년에 미국 학자들이 232명의 남성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연구를 했어요.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는 다이앤 블레이크라는 여자 이름의 이력서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데이비드 블레이크라는 남자 이름의 이력서를 보여 주었답니다. 이름만 다를 뿐 이력서의 내용은 똑같았어요. 하지만 남자 관리자 중 ‘전통적’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다이앤 블레이크에 대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라고 평가했답니다.


이 연구를 두고 크랩은 ‘이 남자들, 참 고약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이들이 모두 악의로 가득 차서 여자들을 일부러 차별한 것은 아닐 테니까요. 다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이나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편견을 갖게 되었고 그 때문에 판단을 그르친 것이지요. 가사 노동이 여성만의 일이라는 생각은 여러모로 방해가 되는군요.


- 출간 전 연재 6회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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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탯 2017-11-1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 노동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이에요. 그러니 누구나 스스로 해야 합니다.

이 말이 너무나 속 시원합니다! 제가 항상 말 하는 내용인데, 저 간단한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모릅니다. 험한 말 없이도 논리적으로 바람직한 결론을 딱 내어놓는 글솜씨에 감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