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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역설 -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
이동기 지음 / 아카넷 / 2020년 10월
평점 :
분단 70년,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이 요원해 보인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오명의 딱지를 언제 떼어낼 수 있을까. 젊은 층을 중심으로 통일보다는 현재 이대로가 더 좋다라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설문조사를 접하면서 우리 내부적으로도 하나된 생각보다 점차 마음이 분열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초중고 수업 시간에 최소한 1~2시간 이상은 통일을 주제로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어른들의 영향 때문인지 초등학교 학생들도 의외로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지금보다도 더 퍅퍅하게 실물 경제가 진행될 것이고 경제적인 수준을 맞추기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 이익을 나눠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가장 와 닿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통일 이야기는 우리의 숙원의 과제임에 틀림 없다.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 민족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해결해야 할 첫번째 숙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통일 정책은 초미의 관심사이며 심지어 당락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왔다. 냉전시기에는 반공 정책으로 내세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화해 무드가 펼쳐진 시대에는 햇볓 정책을 계승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근에는 남북간 정상회담이 한창 무르익을 때에는 정상회담을 주도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압승한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이처럼 '통일'은 '정치'의 도구가 되어 왔고 정치인의 부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주제가 되어왔다. 과연 진실로 통일을 바라는 정치인들이 있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통일을 때때마다 이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통일은 정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촘촘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통일의 모델로 독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처럼 이념 대립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곳이 독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공통된 정치적 이유로 분단된 사실과 분단된 당사국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강대국들의 유불리에 따라 민족이 둘로 갈라져야 했던 점은 붕어빵과 같이 닮아 있었다. 분단 된 후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적 수준의 차가 급격하게 벌어진 것도 공통점이다. 주민들이 서로 왕래가 단절되었고 군사적 대립도 팽팽했다는 점도 매우 흡사했다. 그런데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 통일 정책의 연계성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통일이라는 대전제 아래 시행 방법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반드시 통일을 이뤄내겠다는 정치인들의 생각이 여야를 떠나 일맥상통했다는 점이다.
독일이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던 점은 서로 입장이 다른 정치인들의 간의 불신과 오해를 없애기 위한 소통의 자리를 부단히 가졌다는 점이며, 평화 정치를 위한 모험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결 정치는 불신과 오해를 증폭시킬 수 밖에 없다. 신의와 선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정치는 분단된 지역의 최고 지도자들끼리의 생각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만남의 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갔으며 공간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도로도 개설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 쪽편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되어야 할 파트너로 생각했으며 서로의 정치적 입장을 먼저 인정하며 대화의 자리로 나섰다는 점이다.
"새로운 친구를 얻느라 오랜 친구를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되, 서로 다른 성격과 지향의 친구 둘을 모두 가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소위 당시 서독의 동방정책의 철학이기도 하다. 성향이 다른 친구를 얻기 위해 내 것을 포기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기에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독일 통일을 가리켜 '의도치 않았던 결과' 였다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며 될 수 있는 한 접근을 포기하지 않았다. 접근한고 해서 동질성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접근은 최소한의 관계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행위인 셈이다. 모험이자 실험이었고 새로운 친구를 얻기 위해 인내였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 진영에서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언젠가는 발현된다는 점이다. 구 동독 지역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혁명이 시발은 1980년대 후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의 소모임"에서 움직임이 발견되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를 시작으로 대중 운동이 전개되었고 우리에게도 친숙한 촛불집회가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저자 이동기 교수가 통일을 향한 첫 걸음으로 '국가연합'을 제시한 이유도 당시 동서독 통일의 방향이 흡수통일이 아니라 각국의 독자성을 인정하며 단위 국가의 통일을 넘어 유럽의 통일을 지향했기에 의도치 않게 통일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간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다양함을 통한 풍성함을 경험하고 공통의 공간을 만들어 가야함을 강조한다. 물론 위험이 따른 실험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국가 연합 형식의 통일 방향은 다양성과 기민함이 필요하며 인내와 절제가 뒤따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개혁과 변화도 체제 내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외부에서 필요한 것은 정치 선전과 이데올로기 압박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 안전과 신뢰, 평등과 복리를 통해 유인하고 자극하고 내적 변화를 돕고 외적 교란을 줄이는 것 뿐이다"
최근 국제 정세 속에 깨닫게 되는 점은 결코 외부의 힘을 이용하여 통일을 이뤄낼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단지 통일을 지지하는 듯 하나 결국 속내는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남북한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시기이며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실현 가능한 통일 정책을 제안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모험에 뛰어 들 준비를 해야 한다. 국민이 모험에 뛰어 들 수 있도록 탁월한 정치가가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통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다. 다른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해서 차선책으로 미뤄 둘 문제가 아니다. 어려움을 감내하고서라도 늦기 전에 도전하고 이뤄내야 할 시급한 사항이다. 통일에 대한 새로운 제3의 길을 제안한 <비밀과 역설>이 닫혀진 우리의 생각을 새로운 길로 이끄는 방향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