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소주 한잔할줄 안다면 딱 좋은데ㅋㅋㅋㅋ
편히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소주 한 잔.. 하는 문자에 스트레스 받았어? 누가 속상하게 했냐,며 문자특유의 걱정서린 답장이 왔다.
일종의 외로움이긴 했지만 그 처량한 단어를 주책없이 떠들 정도의 사무침이 없었고 또 스트레스냐는 물음에 대하여는 스스로 뭐가 스트레스지, 되뇌어보아야 했으므로 사실 별일은 없는 셈이었다.
왜 그런 시답잖은 말을 건넸을까?,
갑자기 소주 한 잔이 그려지는 퇴근시간 무렵의 유혹을 이기고 원래 계획대로 산엘 갔다.
산에 오르는 발걸음의 힘찬 디딤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 같았다. 하낫둘 하낫둘(쿵쾅 쿵쾅)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던 심장박동이 느껴졌고 서리같은 입김은 어두운 산에 흩어져 곧 안개가 되었다.
안개가 짙은 밤의 산길을 걸으며 나는 외로운가, 생각을 한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힘든가,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아 나는 외롭고 힘들구나, 라고 결론을 지었지만 그것이 불행하고 슬프다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나는 외롭고, 힘들고, 행복하고, 즐겁다. 복잡다단, 여러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 거니까 어찌보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의 방증이었다.
아 다시 카톡.
별일있나 싶어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나는
스트레스 없어 심심해서 그래ㅋㅋㅋㅋㅋㅋ 하고 얼버무렸었다.
일시적인 혹은 변덕스런 감정의 변화를 내보이기 싫어 대강 둘러대고 말았는데 내가 보낸 말이 그야말로 적실한 내 상태라는 걸 산에서 내려올 즈음에야 깨달았다.
'진짜 심심했던 거였어',
문제는 무료함이다. 일을 하면서도 땀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 고기와 술을 먹으면서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한 나날들. 무료한 일상이 싫었던 거였다.
화이트 데이였다. (어제는)
등산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모든 근심과 고민이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구르며 놀았다. 아내에겐 와인을 한 잔하자며 분위기를 띄우고 냉장고를 뒤져 그럴듯하게 안주를 만들어냈다. 음식 만들기는 내 장기다.
고민끝에 선택한 와인은 무려 에스쿠도 로호였다. 내 기준과 구매력에 비춰서 나에겐 매우 고급와인, 기분이 좋았다.
아내와 동생은 신나는 일 있냐며 궁금해 했고 나는 산에 갔다왔잖아,라고 대답했다.
어제의 일과 어제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는 지금.
근데 그 무료,라는 녀석 지금 내 뒤에 있다. 징그러운 놈....공짜라도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