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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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서사의 지루함과 현실감 없는 연극조의 대화가 그것이다.
<분노의 포도>를 읽기 전,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걱정했던 류의 어려움은 없이 책을 읽었다.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의 이야기임에도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흡사한 상황과 모습들이 펼쳐진다. 어느 미국인 가족의 생활기는 때와 곳을 달리한 나에게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인물들간의 대화도 현실의 내가 말함직한 직설화법이었고 생활언어였다. 분량이 만만치 않았지만 수월수월 읽을 수 있었다. 간혹 띄엄띄엄 읽기도 했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쓸 것이 없는 너무나 현실적인 문장들이었다. 이야기하는 그대로 사실이었음이 분명한 한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 가족의 생존기.

대공황 시절의 미국 농촌은 그렇게 피폐했었고 사람들은 잔인하게 가난했었구나. 들어서 알고 있다, 보릿고개가 어땠으며 육이오가 얼마나 비참했었는지.
배워서 알고 있는 이야기들. 인간성 상실의 시대, 자본에 의한 인간의 도구화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예의를 잃는 상황들. 
자본에 의해 땅을 빼앗긴 사람들. 자연에 의지해서 이웃과 조화하며 살던 아메리카 땅의 농부들은 일거리를 찾아 온 식구가 트럭을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 동부에서 서부로 66번 국도 따라 '고 웨스트'. 금광이 발견된 그 땅에 일자리도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캘리포니아. 자본과 기업에 땅을 빼앗긴 동부의 사람들이 노숙을 해가며 광야를 건넌다.    
광야를 건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러진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서부로 간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욕심. 생존에의 욕구는 동물적이었다. 동물은 단순하다. 살고 싶어하고 죽기 싫어한다. 그게 다다. 죽지 않기 위해 동물들은 향기로운 복숭아가 열리고 영근 포도송이가 주렁주렁한 캘리포니아로 간다. 

거대한 농장은 주인이 있다. 농장은 거대해서 많은 일손이 필요했다. 수천, 수만 에이커의 땅에 복숭아가 열리면 농장주는 일손을 구해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들고 금방 일손을 구할 수 있었다. 배고픈 사람들이 계속 농장으로 밀려오고 일당은 내려간다. 그나마도 복숭아 수확이 끝나면 다시 다른 농장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은 농장주를 위한 소모품이었다. 수확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섬세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도구는 다른 기계와 달랐다.
사용가치를 다한 인간은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땅의 노숙자였다. 농장주는 그들이 싫었고 두려웠다. 
희망이 없는 가난한 이주민들로부터 절망과 분노의 기운을 감지한 농장주는 그 웅성거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누어 줄 것은 없다. 과실이 남아도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농장주는 계곡과 바다에 버려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이 혹여 주워라도 먹을까 석회를 뿌리고 기름을 부어 태워버린다. 돼지도 마찬가지, 팔리지 못한 돼지는 가격안정을 위해 땅에 묻어 버린다. 오키들(오클라호마 사람), 동부의 촌놈들은 버려지는 과실과 돼지를 주워도 못 먹는다. 사 먹을래야 사 먹을 돈도 없다. 일자리가 없고 노동력이 가치가 없어진 마당에 일을 한다해도 제대로 먹기가 힘들다. 배곯은 길 위의 사람들이 분노한다. 동물에게 먹히지 못하고 썩어나는 포도들이 분노한다. 무엇때문에 태어나고 길러졌는지 모르는 돼지들이 땅에 묻히면서 대지가 분노한다.
더럽고 약한 떠돌이 농부들간의 작은 연대도 농장주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가난한 강도들이 자기 것을 빼앗을까 전전긍긍. 두려움에 떨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산업 자본주의의 단면, 친미 반미 양단의 관점들과 구호에 익숙한 나는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보았다. 불과 백 년 전 모습에서 아마 지금도 그러할 것이겠지만 그곳도 자본에 의해 억압당하는 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느 걸. 국가니, 자본이니 거창하다. 나와 같은 소심한 욕심 가진 사람들이 희노애락, 아둥바둥 살고 있는 사람 사는 땅 아메리카. 사람끼리 연대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만 찰나의 자각. 내일이면 나는 미국놈 욕할 테고 오늘도 일본놈 욕하고 있다.
무엇엔가 내 정신을 빼앗긴 건 아닐까. 돈과 직업, 종교와 사상 그것을 뛰어넘는 진정한 가치, 이웃 사랑과 모두 함께 따뜻하게 잘 먹고 조화롭게 사는 것. 이웃과 대지와 나무와 새들까지도...


(음... 결론이 <분노의 포도> 결말을 따라가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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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8-2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후레시맨 시절 영어 원서로 보다가 지루해서 때려친 작품이에요...영문과 수업시간에 다시 봤는데요...역시 지루하더고요~ 아마도 제대로 못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아니면 영어라는 문장에 휘둘려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거 존스타인백의 작품을 흠모하는 후배에게 존스타인백의 작품은 제미 없다고 하니...어떤 작품이 재미없냐면서 열변을 토하던 그 친구가 떠오르네요..^^

차좋아 2011-08-23 23:25   좋아요 0 | URL
후레시맨 시절이라길래(오후에 덧글을 처음 읽었을 때) 후레쉬맨 티브이 플그램 하던 시절을 말한는줄 알았어요. ㅎㅎ 제 수준이 이래요 ㅋ
다시 보고 알았습니다.ㅎㅎㅎㅎ

저도 지루했어요. 여타 소설에서 느끼던 긴장감이 없으니 책 여러번 들었다 놨어요. 문장이 쉬워 술술 읽히기는 했는데 쉽게 놓게도 되더라고요. 분량이 상당하니 읽는데 오래 걸릴 밖에요.ㅎㅎ


pjy 2011-08-2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내용이 현실과 너무 정확하게 맞아들어가는게 무섭습니다-_-; 일단 결말을 제가 읽고 급! 정치권의 필독도서로 권장해드리고 싶네요

차좋아 2011-08-23 23:31   좋아요 0 | URL
일반의 정서로써 이 책을 이 이야기를 접한다면 분명 이 세상이 문제가 있구나라는걸 깨닫거나, 다시 느끼거나 할꺼에요. 분명히.
근데 그건 오키들을 전제 했을 때구요. 이미 자본의 노예가 된 자본가들 정치인들 종교 지도자들이 본다면 글세요~ 뻔한 이야기에 귀기울일 인종들이 아닐꺼에요. 그치들에게서 기대 버려야지요. 우리끼리라도 연대하고 이해하면 다행입니다.
무상급식 투표 따위, 찬반 양분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는 거 보면 속상해서... 에휴~~

동우 2011-08-24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향편님.
나는 사회적 혹은 계충적 연대의식보다는 인간의 연대의식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성을 그린 것으로 읽히는바 있었습니다.
진부한 휴머니즘쯤으로 이 소설을 폄훼할수 있으나.
존 스타인벡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계층은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
동류의식 가득한 순정한 집단 속에서도 계층은 있습니다.
인간성이란 일반화하여 집단적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신비한 그 무엇입니다.
우리의 조르바가 통찰하듯 말입니다. 하하하

차좋아 2011-08-24 09: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계층적 연대의식의 다른 표현이 집단 이기주의 일수도 있으니까요.
소수의 압제자도 어찌보면 불행한 인종들. 수억 수천억 돈을 가지고도 계량될뿐 도대체 얼마만큼인지도 모를 그 부. 그 부 때문에 외롭게 사는 사람들 보면 자본의 숙주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견해 또한 열등감에 의한 감상적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의미에서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 결말을 폄훼하지는 않아요.

다소 어쩡쩡하지만 분명한 거 보단 신뢰가 갑니다. 케이시 목사도 어정쩡...
저도 그래요.ㅋㅋㅋ
 
잘 달린다 - 지식공작소 마라톤 1
이안 맥닐 외 지음, 엄진현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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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안차지만  다시 꼼곰히 읽어보니 좋은 책이 분명하다.
달리기를 처음 하려는 사람, 5분 이상 달리기가 자신 없는 사람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듯.
뭐든 그렇지만 기초가 중요한 법. 조금 더딘 일정이지만 13주 프로그램으로 달리기를 한 시간 이상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건방진 소리 하나 하자면,
'젠장, 한 시간 달리기 목표 프로그램을 돈주고 사다니....'

아쉬운 건,
이책 10년전에 알았더라면 안 다치고 더 즐겁게 달리기 했을 거 같긴 하다.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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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은 어떠신갑요~?
치료 후 완쾌되었나요?^^

차좋아 2011-08-22 18:13   좋아요 0 | URL
무릎 통증엔 쉬는거 외엔 별다른 치료가 없는지라 한참 쉬었거든요. 2주는 운동 딱 끊고 그 이후에도 많이 안 뛰고요. 산에나 할랑하게 다니는데 아직 조심스러워서 달리기는 잘 안해요.

ㅋㅋㅋㅋㅋㅋㅋ 양철나무꾼님 제가요 몇 날을 고로워했어요. 부화내동ㅋㅋㅋ
오타라고 생각하셨음..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오타일리 없잖아요?
아.. 많이 쪽팔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동우 2011-08-23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미 달리기 수준에 오른 향편님이나 책부족 추장님 같은 이에게는 초보수준인 책인가 보지요?
달리기는 본능적인 움직임인줄 알았더니, 체계적 이론적으로 시작해야 하나 봅니다.

나는 향편님, 런닝 머쉰 벨트 위에서 시속 5.5km 정도에도 헥헥... ㅎㅎㅎ

차좋아 2011-08-23 11:58   좋아요 0 | URL
잘 달리자. 매력적인 제목이었어요. 잘 달리고 싶었거든요.
운동에 있어서 통증은 애인과같은 것. 이라는 잘못된 생각 이 책읽고 고쳤어요. 달려서 아프면 안된대요. 그 말이 맞아요. 아픈거 참고 망음이 앞서 달리면 앞으로 달리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알면서도 무리했던 제가 한심스럽더라고요.
앞으로 잘 달릴거에요^^

yamoo 2011-08-2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한 시간 달리기 목표를 돈주고 사다니...ㅋㅋㅋ 아, 차좋아님 때문에 한 바탕 웃고 갑니다..ㅎㅎ

차좋아 2011-08-23 23:34   좋아요 0 | URL
웃겼어요? ㅎㅎㅎㅎㅎㅎ 다행이다. 웃길 의도는 없었지만 다행이에요. 달리기 좀 한다고 한시간 달리기 우습게 이야기해서 건방져 보일까 쬐금 걱정은 했거든요. 게다가 즐거워까지 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데리다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데리다 평전 - 순수함을 열망한 한 유령의 이야기
제이슨 포웰 지음, 박현정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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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조심스럽게 사유하였다.
책들의 홍수 속에서 그리고 내가 곧 진리요 길이다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오리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정신 차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데리다에게서 새삼 배웠다. 데리다는 니체를 읽을 때 맹목적으로 빠져들지 않았다. 그리고 섣불리 판단하고 옳다 그르다 결론짓지 않았다. 빠짐없이 읽고 오랜 시간 동안 읽고 열심히 읽고 끊임없이 파헤치며 읽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읽고, 니체의 말로 니체의 모순을 발견하고 니체를 해체시켰다. 니체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마르크스, 프로이드 따위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앞 다투어 갑론을박하는 요즘과 사뭇 달랐다. (물론 데리다의 사유가 무르익은 뒤에는 용감하게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데리다는 치열하게 꿈꾸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이 진짜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은 데리다 훨씬 전부터 회자되었던 말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생겨난 후 변화하다가 결국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 속에 현재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의식 속에 현재, 존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를 꿈꾸었다. 그러나 절대적인 존재는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니체와 하이데거에 이은 데리다의 사유다. 다만 데리다는 절대적인 존재의 도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했다. 이것은 니체와 하이데거에서 벗어난 데리다의 사유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오리라고 희망한다는 것은 오리혀 절망이겠지만,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올 때까지 치열하게 행동하게끔 하는 채찍질이지 않을까 싶다.


데리다는 죽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나에게 “눈멂”을 남겼다.
데리다는 2004년에 죽었다. 그러나 <데리다 평전> 속에 나오는 수많은 저서들, 수많은 철학자들, 수많은 개념과 정의들은 앞으로도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며, 그 수많은 것들 속에서 유독 나에게 반짝였던 데리다의 “눈멂”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다. “타자는 볼 테지만 나는 볼 수 없는 것, 나 자신에 대해 놓치는 것을, 타자에서 본다. 이 눈멂은 개인들에게 자신보다 더 큰 공동체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눈은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울고 눈물 흘리기 위한 것이다. 나를 나 자신에 대해 눈멀게 하는 그 눈물은 타자에로의 시선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데리다가 과거의 사람들을 사유하고 절대적인 존재의 도래를 꿈꾸었던 것처럼 나는 데리다를 사유하고 얻은 공동체를 위한 눈물 흘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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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7-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좋아 님, 소설 분야 신간 평가단 아니셨어요?^^

전 인문은...특히 데리다 따위(?)는 마냥 어려웠었는데,
머리에 쏙 정리되는 멋진 리뷰예요~^^

차좋아 2011-07-20 00:47   좋아요 0 | URL
멋진 리뷰라니... ㅎㅎㅎ 읽느라 정리하느라 고생 좀 한 책이었는데 진짜 고마운걸요^^
데리다 따위(!) 다시 안 읽을 거예요.ㅋㅋㅋㅋ

인문 분야 평가단이지만 저는 소설이 훨씬 좋아요^^

동우 2011-07-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의 절창입니다.
"데리다는 죽어서 세상에 이름을 남겼고 나에게 눈멂을 남겼다."

향편님.
우리, 사조에 현혹되지 말고 지식에 압도되지 맙시다.
세상 책들 구름처럼 읽읍시다.
조르바스럽게 삽시다그려.

새로이 접하는 것들 모두 조르바스럽게 감탄으로 맞으면 되지요. ㅎㅎㅎ

차좋아 2011-07-24 00:28   좋아요 0 | URL
조르바 읽으며 동우님 생각을 했었어요. 동우님이 조르바라면 제가 그 친구(카잔차키스)라도 될테니 말이죠.
부산에서의 조우, 해변, 한밤의 흥청거림. ㅎㅎㅎ 크레타의 바닷가만 할지 못 할지 그건 모르지만 그날 광한리의 바닷내도 좋았습니다.

ㅎㅎㅎㅎㅎ
 
[불안의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의 시대 -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
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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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우리가 낙관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다-

부제에서 말한 '우리'라고 하는 것은 미국, 미국인 넓게봐서 서양인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들에게는 미국과 서양이 세계니까 다시 말해(저자가 말한 의미로서) 우리란 세계인이라는 말이다.

 

미국인 정치 평론가, 칼럼리스트인 저자의 정치.경제학적 지식과 사건의 본질을 보는 안목은 신뢰할 만하다. 다분히 미국인다운 시선으로 관찰하지만 세계 정치 지리의 표면을 관찰하기에는 저자의 국적과 시선의 높이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누구에게나 객관적인 시선은 없는 법이니까...

이 책의 시대적 배경, 1978년부터 최근까지의 정치 지형이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지역, 인종, 종교, 경제 전반의 세계사적 이슈와 문제를 유기적으로 잘 다듬고 연결한 편집도 썩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가 아무리 멀고 깊이 본다 하더라도 자신이 딛고 있는 자리를 못 보는 것은 이 책을 보며 아쉬웠던 점인데, 그 아쉬움이라는 것도 읽는 내 자리의 문제는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딱히 단점이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근 30여 년간의 세계사적 일화와 배경을 읽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나에게 세계사란 당대성이 결여된 역사에 한정된 것들이라는 것을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딱 그만큼의 세계사적 일화들에 대해선 너무나 무지했었다. 대처 총리, 미테랑 대통령, 레이건... 익숙한 이름의 인물들이 근현대사에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입체적으로 조감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이 초강대국이었음은 부정할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었는데 지금은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런 인식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중국의 거침없는 성장과 러시아의 독재 정치의 부활에 대항하는 저자의 진단과 해법은 다분히 미국인다웠지만 저자의 포지션을 고려해서 읽는다면 세계정치 역학을 구경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 듯하다. 

1978~1991년 까지를 전환의 시대,
1991~2008년은 낙관의 시대,
그리고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경제가 침체된 2008년 이후 현재를 불안의 시대라고 진단한
포맷은 적절한 구분이었다. 3기로 나뉘어진 시기의 일련의 사건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니 꽤 괜찮은 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점이라면, 책은 정치 비하인드 스토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들리는데 반해 앞으로의 진단 부분에서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확한 진단에는 적절한 처방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째지고 깨지고 멍든 것은 의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무책임하게도 별다른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대공황이 일어난 지 80년이 지났다. 강하고 성공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미국의 모습이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세계를 위한 최선의 희망이다.-
저자의 대안이라는 게 이 모양이니 뒷맛이 좋을리 없다.  
불안의 시대까지 오게된 배경만 공부하자면 이책은 훌륭하다. 하지만 그저 '화이팅!' 하자고 하니,그것도 미국인만 화이팅 하자는 말 같아서 씁쓸... 

저자의 한계라 생각하기로 했다. 넓은 시야와 국가간의 여러 문재를 파악하는 분석력은 뛰어나지만 그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능력은 없는 저널리스트.
어쩌면 그럴 듯하게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서 미래를 예견하는 돌팔이 예언가보다는 나을지도.... 최소한 혹세무민은 안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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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7-1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죠. ^^ 과거와 현재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네요. 근데 여기 책 저자의 마지막 말은 책에 대한 신뢰를 확 떨어뜨리는데요. 쓰다가 지쳐서 빨리 마감이나 하자는 절박한 마음이 느껴지는 마지막 말 같아요. ^^

차좋아 2011-07-18 12:22   좋아요 0 | URL
정리가 아쉬운 책이었어요. ㅎㅎ 그래도 즐겁게 읽었으니 만족하고 있습니다.

동우 2011-07-2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향편님.
정확한 진단만 있다면야 우선 환자는 안심.
인간 욕망의 그 미묘한 현상을 계량화하는 경제학이라는...그 무수한 종속변수를 감안하여.
정확하게 예측한다면 점쟁이의 경지가 아닌가요? 하하

불안의 시대, 향편님은 자꾸 새로운 책을 내게 권합니다그려.

차좋아 2011-07-24 00:33   좋아요 0 | URL
정확이라는 건 사실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일들을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하지만 어떤 입장에서는 분명한 사실이겠구나 판단 되더라구요.

동우님 제가 담에 부산 갈 대 이책 가지고 갈게요. 그리고 다른 책들도요.ㅎㅎ 돌려보면 좋잖아요. (종이도 아끼고)
택배도 있지만 제가 부산 갈 꺼니까 들고 갈래요. ㅎㅎ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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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말미의 이윤기님의 번역후기를 읽으며 나도 크레타 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들었다. 이윤기 선생님처럼 그곳에 가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읽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 

나는 조르바가 되고 싶다. 조르바 처럼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처럼 되고 싶다. 그리스인 조르바, 자유로운 영혼의 조르바. 조르바를 흉내 낸다고 조르바처럼 살게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조르바는 조르바로 태어났다. 아니, 나는 조르바 처럼 살고 싶기에 조르바가 되고 싶은거다. 조르바가 되지 않으면 조르바 처럼 살 수 없으니까...
(얽힌 듯 하지만 조르바에 대한 내 관념이다.) 

내게 있어 조르바스럽다, 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지 아시는가? 무엇 때문인지 기억 안나지만 나는 조르바스럽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자와 남자에게서 딱 한 번씩.
그 남자와 여자는 기억도 못하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의 내 기쁨을 기억한다. 그래?, 하고 무심한 채 했었지만 사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이 멈추었었다. 내가 조르바다웠다던 그 소리가 듣기 좋아서 말이다. 
나의 시간을 잠시 멈추었지만 나에게 조르바스럽다, 라고 이야기한 친구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나보다. 어떻게 조르바스러웠는지 한번 더 듣고 싶었지만 친구의 화제는 바뀌었고 나는 아쉬움 남겨둔채로 친구를 따라 본래 나의시간으로 갔었다.  
조르바는 내게 그런 인물이다. 조르바스럽다라니...

내가 아는 한 인간은 누구나 조르바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유롭고 싶고, 쾌락을 지향하는 인간 군상들.
조르바와 다른 모든 인간의 차이점은 단 하나이다. 절제.
조르바가 무절제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유로운 쾌락주의자 조르바는 절제마저 자유롭게 컨트롤하는 인간이었다. 도덕과 율법, 인습과 윤리라는 이름의 절제에 구속된 다른 모든 인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국가에 대한 복종심, 신에 대한 외경, 종종간의 인습, 시대적 윤리....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단하나의 인간 조르바. 자유를 지향하는 조르바에게는 단 하나의 법칙이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주로 측은지심에 근거하는)이 그것인데 이웃인간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경우는 조르바는 쾌락에의 욕구도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목청껏 화를 내곤 한다.

아! 의리있는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지 삼 년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조르바의 구절구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화개장터버전으로...) 
그 때 포스트잇을 떠덕떠덕 많이도 붙였었는데 그 책은 어디로 가버리고 이번에 새로 사서 읽게 된 <그리스인 조르바>. 독후감을 써야하니 밑줄을 좀 쳐야겠는데 너무 재밌어서 그냥 눈으로 한번 더 확인하고는 넘어가 버렸더니 기억나는 구절을 찾기가 좀 어렵다. ㅎㅎ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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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7-1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바 조르바 해서 어떤 소설인가 궁금하기에 읽은 책인데 말이죠. 저도 대감동이었죠. 직감적이고 자유로운 그의 생명!

항상 그렇게 살기를 꿈꾸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영..속상하죠.

차좋아님이 좋아하는 것이 그런 말이었군요. 나중에 꼭 써 먹을겁니다. ㅋㅋㅋ

차좋아 2011-07-18 12:34   좋아요 0 | URL
의식 무의식적으로 저는 조르바를 조금씩 닮아가는 것 같아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조르바스러운 행동은 중요한게 아니고 마음의 문제말입니다.ㅎㅎ

나중에 써 먹는다고 하시곤 금방 써 먹으셨어요 ㅎㅎㅎㅎㅎ

동우 2011-07-2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야아, 향편님.
할 얘기 좀 있지만 내 것 다 쓰고 나서 말하리다.

차좋아 2011-07-24 00:34   좋아요 0 | URL
아 그리스인 조르바, 저도 미완인데 잊고 있었습니다.

분노의 포도는 오늘 잡았어요. 재밌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