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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준비 된 독자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추천한 책이고 선물 받은 책이고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라 재밌을 준비가 되어 있는 책.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히지 않아 당황했었지만 앞에 말한 이유들 때문에 재미있게 읽고 말았다. 이 책은 재밌을 거야, 재밌어야 해, 암 그렇고 말고....
'재미있는 책일 거야' 일종의 최면, 암시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면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느끼는 게 인간이다. 어떤 면에서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잔인한 폭력자였던 알렉스는 교화교육을 받고 폭력을 거부하게 된다. 일종의 조건 반사. 폭력에서 쾌감을 느꼈던 알렉스가 폭력을 두려워한다.(좀 억지스러운데..)
6개월 넘어 받아오던 이명 치료가 끝났다. 결국 이명은 잡히지 않았고 선생님은 더 이상의 약물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치료 기간이 길었고 긴 기간만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과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의사 선생님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의사선생님에게 내가 알려준 거다) 진료의자에서 일어나려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건네준 건 씨디였다.
"씨디에 여러 가지 소리가 있어요. 하나씩 들어보고 이명 소리와 제일 비슷한 소리를 매일 들으세요. 그 소리에 익숙해지면 이명이 좀 덜해질 거에요."
".....네.."
"세상엔 여러가지 소음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 소음들을 항상 의식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소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요. 냉장고 소리, 환풍기 소리, 컴퓨터 소리... 이런 소리들은 늘 존재하지만 우리는 큰 불편을 못 느껴요. 귀에서 나는 소리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괜찮아지실 거에요. 의식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씨디가 도움이 될 거에요. 자기 전에 매일 들으세요."
"...........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전 지금 이명에 처음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아요. 많이 노력했고 포기도 했어요. 조금 익숙해진 거 같은데 이 씨디 안 들어도 제가 참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잘 안 되니까 치료라는 게 있는 거에요. 꼭 들으세요"
씨디에는 파도소리, 무슨 소리1, 무슨 소리2 등등이 있었는데 결국 씨디를 듣지 않았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소음으로 덮는 치료 따위 믿음도 가지 않았지만 그렇게 위안을 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내가 컨트롤 하겠다.(다시 생각하니 대단한 이유 같다) 문득 귀를 젓가락으로 쑤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지만 감각을 마비시켜 위안을 삼고 싶지는 않았다.
알렉스는 폭력성을 거세당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글세......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유일하게 무서웠던 장면 알렉스의 교화.
그 외의 폭력들.
폭력이 난무하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니 글줄로 핏빛 세상을 아무리 묘사한다 한들 세상 뉴스에 버금갈까... 그냥 비슷해 보였다. 이가 깨지고 붉은 피가 낭자했지만 그저 억지스러웠다. 나는 더 센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맞춤형 인간이 유리병 속에서 자라는 <멋진 신세계>와 빅 브라더의 시선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는 <1984>보다 더 충격적인 그런 세상. 앞으로 다가올 그런 무서운 세상.... 그런 기대, 기대라고? 바람은 아니고 가학적 세상을 바라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건 아니고? 혹은 혀나 끌끌 차면서 나와는 상관 없는 듯 관조하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