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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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인이 한창 공상에 잠긴 의사에게 물었다.

"혹시 반드시 이루었으면 하는 소원이 있소?" 엘리엇이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승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이 무엇이오, 의사 선생?"

재치 있게 응수할 생각이었으나 피로가 몰려오는데다 느닷없이 감상에 젖게 된 의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꼭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라면?"

"예, 내게는 단 하나뿐인 여자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단 한명의 여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中 11p.

 

만약 당신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돌아가거나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나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을 과거로의 시간여행. 예순살의 주인공 엘리엇은 우연히 캄보디아 노인에게 얻게 된 알약으로 믿기지는 않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 바로 과거에 이미 죽었기때문에 지금의 엘리엇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사랑했던 여인을 한번이라도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는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알약을 삼키고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긴 시간을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지만, 과거로 돌아간 예순 살의 엘리엇은 과거의 자신인 서른 살의 엘리엇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꿈에도 그리던 그녀 일리나를 다시 보게 된다. 몇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예순 살의 엘리엇 그는 서른 살의 엘리엇과 함께 그들이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여인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 그 죽음을 막고자 한다.

 

"당신이 찾으려 한 건 무엇이었죠?"

"일리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네. 그게 전부야."

"왜죠?" " 일리나를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엇이 그를 화장실 벽으로 밀어붙이며 소리를 질렀다.

"유감이지만 일리나는 곧 죽는다네."

"일리나는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에요. 그 나이에 죽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노신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못하고 서 있다가 사라지기 직전에야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그녀를 죽게 만든 사람은 바로 자네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中 169~170p.

 

반신반의하며 호기심에 삼킨 알약으로 엘리엇은 30년 전의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사랑했던 여인 일리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만 더 보고싶다는 생각에 돌아간 것이지만, 이후엔 사고로부터 그녀를 구하고자 안간힘을 쓰게 된다. 하지만 나비효과라 해야할까? 과거의 일부분이 바뀌게 되면 예순 살의 엘리엇의 삶은 현재의 모습과 달리 변한다는 사실. 그중 엘리엇이 현재의 삶에서 잃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인 딸 앤지. 일리나를 다시 살려내게 된다면 현재에 존재하는 딸 앤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 서른 살의 엘리엇과 서로 대립하게 된다.

 

시간여행자들의 이야기는 조금은 식상하기는 하지만 늘 흥미롭다. 누구나 한번쯤을 꿈꿔봤을 법한 생각이니까 말이다. 다시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이들도 있을 테고, 어쩌면 바꿔봤으면 하는 과거의 일들도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나의 일을 미리 알게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다. 엘리엇의 경우라면 일리나를 잃지 않을 수 있게 미리 알면 좋을 과거도 있겠지만.. 그래서 예순의 엘리엇은 30년 전 자신에게 자신이 폐암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망선고는 하지 않은것 처럼.. 늘 마지막의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는 작가 기욤 뮈소 답게 마지막 시간여행으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흔히 말하는 열린결말도 참 맘에 들긴 했다.

 

'인간이 운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운명이 결정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산다는 게 다 그런지도 모르지.' 죽음의 물결이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에 갇힌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건너편 세계로 기우뚱 넘어가기 직전, 그녀에게 간절한 후회로 남는 단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엘리엇과 싸우며 헤어졌고, 그의 뇌리에 영원히 간직될 자신에 대한 마지막 이미지가회환과 원망으로 얼룩졌다는 것이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中 205p.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 받고 있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전세계 최초로 영화화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간 유럽이나 미국에서 영화 제작 제안이 많았지만 늘 거절했던 기욤 뮈소가 한국에서의 영화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밥 딜런의 노래가 한국 영화 최초로 OST에 수록된다고 하니 영화만큼이나 음악도 쥐의 깊게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스토리 구성과 늘 뒤통수를 치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로맨스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탄탄한 원작인만큼 얼마만큼 영화로 잘 담아낼지 기대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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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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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것, 그건 각자가 선택한 직업에 알맞게만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고, 돈이라는 것도 하루 세끼 먹으면서 누추하지 않게 사람 품격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지면 되는 것 아닐까.

 

「풀꽃도 꽃이다」1권 中 79p.

 

학생일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가 '공부해라'라는 잔소리였던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그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부모님의 잔소리가 다 자식 잘되라고 했던  쓴소리였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땐 왜 그리도 듣기 싫었던건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인생이란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 대학을 나와서 일류 직장에 취직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말도 아니다. 하지만 일류대학을 나와도 요즘같이 취업도 힘들고, 취업을 한다하더라도 그 회사라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일하다보면 이게 진짜 성공한 인생일까? 내가 원하던 진정한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는 입시 중심주의의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우리학교현실을 리얼하게 담고 있어서 씁쓸한 기분도 들고 찝찝한 느낌까지 들게 만들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만 볼 것 같았던 그런 현실적인 사실들 말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제발 생각을 좀 바꿔. 엄마와 난, 엄마와 딸의 관계일 뿐이지 내가 엄마의 소유물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야. 서로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거라고. 엄마들은 다 대학 나왔으면서 왜 그 쉬운 걸 구별할 줄 모르는지 몰라.

 

「풀꽃도 꽃이다」1권 中 230p.

 

일제고사의 석차를 공개하여 1등만을 강조하는 학교. 오로지 SKY대학을 소망하며 자식을 사교육의 장으로 내모는 부모와 그 부모의 극성에 견디지 못한 자식이 반항심으로 자살을 기도하고. 공부엔 관심없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진이 되어버린 일명 문제아들.

무너진 공교육의 현실 속에서 교사 강교민은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학교교육의 문제점과 사교육의 병폐를 지적하고, 교육적인 상담을 통해 방황하는 학생들을 지키고자 한다. 조정래 작가는 책머리에서 독자들에게 왜 주인공의 이름에 강교민이라는 이름을 붙였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작가님의 신념이 반영된 인물인것도 같은 강교민은 강한 교육 민주주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강력한 교육관과 리더십,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 제시, 교육민주주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너무도 이상적인 교육자상을 갖춘 강교민이라는 선생님이 아직 학교에 많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이 다 다르듯이 개성과 능력도 다 제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직종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소질과 재능 그리고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도 그 선택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풀꽃도 꽃이다」2권 中 226p.

 

물론 현실이 많이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책 속의 내용이 사실과 많이 다르다라는 지적도 없진 않다. 그리고 너무도 과하게 비하한것 같은 엄마들의 모습에선 조금 불편함도 느꼈다. 책 속에 등장한 여성들이 한국의 흔한 여성들이자 어머니 상인 것처럼 묘사했기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권의 소설이라고 결고 우습게 볼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기 자식에 대한 욕심은 똑같을 것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서 더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하는 그런 욕심말이다. 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나서 별탈없이 살아가는 것 또한 자식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자신들의 꿈과 미래를 선택하기보다는 오로지 일류 대학과 일류 직장이라는 한길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전국의 초.중.고생들. 홧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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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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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 혼자 왔냐?"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보리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한 명」中 17p.

 

책의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너무도 말이 되지 않고 믿기 힘든 이야기 였기에, 사실이 아닌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였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픈 이야기.. 여전히 진행중인 그 이야기.. 바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는 언젠가 그렇게 될지도 모를,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이라는 시점에서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들을 재구성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남은 생존자는 단 한 명, 그리고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고 살아온 다른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마지막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서 버스에 오르면서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자 용기를 내는 여정의 이야기다.

 

그녀 또한 일본군 위안부였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는 것은, 그녀가 위안부 신고를 하지 않아서다.

그녀는 자신처럼 위안부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어딘가에 또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창피스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한 명」中 31p.

 

아무런 이유없이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 어린 소녀들. 다슬기를 잡다가, 돈벌러 공장으로 가자는 말에.. 이유도 참 여러가지였다. 그리고.. '군인들이 데리고 잔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그 소녀들에게 가해진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너무나도 끔찍한 역사.. 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들어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기에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될지도 모를 위안부라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참담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자신들이 큰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평생 수치심을 안고 숨기며 끔찍한 삶을 살아왔다. 개나 고양이 보다도 못한 그런 삶 말이다. 어떠한 말로도 돈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의 삶으로 되돌려주면 모를까.

 

순덕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녀가 물었다.

"네 이름이 뭐더라?"

"그러게, 내 이름이 뭐더라...... 사람으로 태어나 고양이, 개만도 못하게 살아서 이름도 기억을 제대로 못하나 보네......"

 

「한 명」中 98p.

 

평화의 소녀상. 혹은 위안부 소녀상이라고 불리는 동상이 있다. 단발머리에 두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있는 어린 소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형성화 한 동상으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 만큼 이 소녀상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툭하면 철거해야 한다고 .. 일본정부는 10억 엔을 제시하며 그 대가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양측 입장에서는 서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소설 속 설정처럼 진짜 한 명 만 남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잊혀질지도 모를 아픈 역사. .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침묵과 무관심 하기보다는 더 관심을 가져서 잊혀지지 않게.. 감추고 숨겨야 할 역사가 아닌 그들을 위로하고 또 남은 이들또한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지켜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간 곳에서 애순의 몸은 낙서장이 되었다. 일본 군인들은 바늘과 먹물로 애순의 배에, 불두덩에, 혀에 문신을 새겼다. 그곳에서 소녀들의 몸은 소녀들의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평택 조카가 원망스럽지만 원망하고 싶지 않다. 세상 그누구도 원망하거나 증오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 한마디를 들으면 용서가 되려나?

신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 한마디를.

 

「한 명」中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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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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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라스베이거스로 가자!'

어차피 죽을 거라면 서른이 되기 직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되는 그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는 거야. 카지노에서 전부를 잃어도 상관없다. 내 인생의 전부를 걸고 승부를 펼쳐 보는 거다. 그리고 땡, 서른이 되는 날 미련없이 목숨을 끊는다.

'1년, 내게 주어진 날들은 앞으로 1년이야.'

지금 나에게는 '죽지 못한 탓에 맞이하게 된 시간'밖에 없다. 나는 지금부터의 시간을 '남아 있는 목숨'이라 부를 것이다.

그날부터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中 45~46p.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 모든 나이가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뭔가 새로움을 직면하고 있을 것 같은 나이. 열 아홉이라는 나이일 때도 다가올 스물이라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동경과 설렘으로 맞이했었고 그 설렘과는 달리 평범한 이십대를 보냈었다. 그러다 맞이한 스물 아홉이라는, 아직 어리다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리게만 볼 수는 없는 나이에 직면했을 땐 열 아홉에 느꼈던 동경과 설렘보다는 뭔가 두렵고 부담스러움이 앞섰던 것 같다.  그러했기에 책 제목만 먼저 보았을 때 끌렸던 이유가 나 뿐만 아니라 다른이들도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두렵고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 테지...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준 책 중 하나이기도 하고 제목이 끌리기도 했던 책인데, 읽어야지 하고선 계속 미뤄뒀다 이미 삼십대에 접어든 지금 이 책을 읽게 되다니.. 언젠가 서른이라는 나이가 되었을 땐 나도 내인생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지 않을까 했는데 그저 별다를게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실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주인공 아마리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큰 의미로 와닿는듯 했다.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中 62p.

 

인생은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기 위핸 어떻게.. 등등 코치해주던 흔해빠진 자기계발서들과는 조금 달랐던 이 책은 작가이자 주인공인 하야마 아마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은 실화라기엔 너무도 드라마틱했기에 믿기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그래서인지 조금더 쉽게 읽혔고 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리는 스물아홉의 생일에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죽음을 결심하고, 그마저도 용기가 없어서 실패한 이후 TV속 화려해보이는 라스베가스에 매료되어 자신의 스물아홉 마지막 날 라스베가스에서 최고의 하루를 보내고 미련 없이 죽음을 선택하기로 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렇게 세우게 된 1년 간의 시한부 계획. 그 계획은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에겐 인생의 전화점이 되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된다. 뚱뚱한 몸에 제대로 된 친구도 없고, 변변한 직장도 없이 파견사원으로 근무하던 그녀는 1년 뒤 라스베가스에서의 화려한 날을 위해 낮엔 평범한 파견회사의 사원으로, 밤에는 긴자의 호스티스로 이중생활을 하게 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죽지 않기로 했다. 카지노에서 이겼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죽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1년 전 3평짜리 원룸에서 식칼을 손목에 갖다 댔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알던 그녀는 어제 죽었다. 이로써 나는 '또 다른 오늘'을 얻었고, 인생의 연장전을 이어가게 되었다.

서른 살 첫날, 내가 받은 선물은 '생명'이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中 227p.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른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었지 사실 그 기대감을 성공으로 이루기 위해서 나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은채 서른을 맞이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이 힘들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왔던라면 어쩌면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밤낮없이 일했고, 3~4시간만 잠들고 너무도 간절하게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도착한 라스베가스에서 인생을 건 도박?!을 했고, 물론 큰 돈을 바라고 간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쥔 승리는 단돈 5달러 뿐이었다. 겨우 5달러?!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녀는 힘들고 우울했던 자신의 지난 인생과는 작별을 고했고, 5달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크나큰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나는 단 6일을 위해 1년을 살았고, 삶을 끝내기 위해 6일을 불태웠다. 그 끄트머리에서 '20대의 나'는 죽고 30대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일'이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늘의 연속일 테니까.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中 234p.

 

1년이라는 길다면 길지만 짧은 시간동안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간절함과 절실함이 그녀를 이토록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변화를 시킨게 아닐까 싶다. 목표만 세우고 실천은 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피나는 노력을 했던 그녀, 그리고 절망적인 순간 자신의 마음가짐 하나로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을 준 그녀에게 큰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우울하다고 생각되는 청춘이 있다면 아마리 만큼의 큰 목표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조금의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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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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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채식주의자」_ 채식주의자 中 43p.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2016년 수상이자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로 요즘 서점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요즘 너도나도 읽어보겠다고 난리난, 그래서 9년전 출판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고, 독서율을 급 높이는 효과를 톡톡히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뭐 그리 대단한 상인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 현대 중국문단의 대표작가라고 꼽히는 옌롄커 등 주요 후보작가들을 제치고 수상을 했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한강 작가가 권위 있는 이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으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이 젤 큰 몫을 한 공도 컸을 것이고, 쟁쟁한 후보들을 제쳤다고 해서 오르한 파묵을, 옌롄커를 능가했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문학을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작가임엔 분명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엉덩이를 보았다. 토실토실한 두개의 둔덕 위로 흔히 천사의 미소라고 불리는, 옴폭하게 찍힌 두 개의 보조개가 있었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채식주의자」_ 몽고반점 中 101p.

 

채식주의자는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세가지의 중편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엔 하나로 묶여 있는 연작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은이 달라 서로 독립된 주제들이 펼쳐지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하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연작소설이라는게 조금은 특이하긴 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화자가 다르게 다른시점에서 이야기하니 이해하기엔 좀 쉬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개에게 다리를 물린 트라우마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영혜와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는 남편, 처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욕망하는 영혜의 형부, 그리고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보고도 어쩌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인혜가 각각 화자로 등장한다.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가 꿈때문에 채식주의를 선언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주변사람들과의 마찰이라고 하기엔 그리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채식주의가 아닌 집착에 가까운 채식주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단지 채식을 선호한다는 의미보단 사회를 거부하나고 해야할까? 그녀의 행동 뿐 아니라 그런 영혜로부터 도망가버린 남편도, 폭력과 강압적으로 육식을 강요하는 아버지도, 진정 예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욕망뒤에 감춰진 추함이었을지도 모를 형부도 다들 이해가 되지 않을뿐이었다. 술술 읽히는 반면에 이해가 쉽지 않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가...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 아무도 없는 병실을 살피며 영혜는 말했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정말 나무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식물이 어떻게 말을 하니. 어떻게 생각을 해.

영혜는 눈을 빛냈다. 불가사의한 미소가 영혜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언니 말이 맞아......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채식주의자」_ 나무 불꽃 中 187p.

 

예전에 채식주의자는 영화로도 개봉했었다고 한다. 삼류영화같기도 하다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하는데 조만간 찾아서 꼭 챙겨봐야 할것 같다. 나무가 되려는 영혜, 예술이라는 욕망으로 처제를 탐하는 형부 그리고 그 둘을 바라봐야했던 인혜까지. .. 그들을 이해하기엔 어쩌며 원작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애매모호한 주제와 내용들을 이해하기엔 영상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니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취향이지만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보다는 읽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불편했고, 정치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된 소설이긴 하지만 '소년이 온다'가 더 좋았고 더 많이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조금더 익숙한 역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봐주고 알아줬으면 하는 역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난 이전부터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고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맨부커상을 받고 떠들썩 해지기 전에는 그리 대중적인 작가도 아니었을 것이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다. 두루두루.. 어렵기는 하지만 매력이 있는 작가 한강~!!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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