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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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힘들었니?"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현 씨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찬 입김이 나와 하얗게 흩어졌다.

 

「82년생 김지영」中 17p.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감상은 '독특했고, 공감된다'였다. 흔히 생각하는 소설의 문체와는 다르게, 르포나 보고서를 읽는 듯한 문체에 사회통계자료와 같은 주석들로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만큼 가독성도 뛰어났다. 그리고  특별하고 뛰어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너무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누구든 공감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고, 그러했기에 특히나 많은 여성들에게 지지를 받게 된 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 김지영씨라는 인물은 한 인격체로 태어나서 자신이 가진 고유의 개성대로 원하는 삶을 살아갔다 라기보다는 그냥 그 시대의 평균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 아니 남성을 제외한 이들의 표상이 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자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은 잊은채 살아가고 있는 거의 모든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가 아닐까.

 

김지영 씨가 회사를 그만둔 2014년, 대한민국 기혼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결혼, 임신, 출산, 어린 자녀의 육아와 교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출산기 전후로 현저히 낮아지는데, 20~29세 여성의 63.8퍼센트가 경제활동에 참가하다가 30~39세에는 58퍼센트로 하락하고 40대부터 다시 66.7퍼센트로 증가한다.

 

「82년생 김지영」中 145~146p.

 

 사실 거창하게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많은 여성들의 표상이라고 칭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 김지영씨가 그만큼 특별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다. 엄청난 재난과 고통을 겪고, 말 못할 슬픔과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한국에서 여자라는 이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일 뿐이다. 딸이기에, 여성이기에 느꼈을 감정과 소외감을 느끼며, 남녀차별이 당연시 된 시대를 살아온 그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것이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다.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졌고, 여권 신장도 높아졌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세상이 되지 않았냐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겐 82년생 김지영씨의 삶이 공감 되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막상 사회라는 곳에 나가보면 알겠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지금도 '김치녀','된장녀','맘충'이라 불리며 여성혐오와 관려된 일들이나 범죄가 지금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지영 그녀가 살았던 삶이나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삶이나.. 그래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여성이라는 이름의 인격체들을 위해선 지금과는 더 달려져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라는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살길 바란다면.. 그러기 위해선  이제는 공감만 할게 아니라 더 나아진 미래를 위해 먼저 행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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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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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는 욕하면서도 본다라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이유~라고 한다면 뭔가 자꾸 끌리는 자극적인 요소들이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소름끼치는 스토킹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던 <리카>의 10년 후 이야기 <리턴>. 전작을 읽으면서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고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서 두번 다시 공포 소설은 읽지 않으리라 생각했건만... 다시금 후속작을 집어든건 리카라는 기이한 여자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섭다무섭다 하면서도 끌리는 건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와 강한 흡입력으로 이야기를 끌어주는 작가의 힘도 큰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면서....다시금 책을 들게 된 것일 뿐. 전작을 읽지 않더라도 대충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단지 리턴을 읽게 된 계기가 왜 리카라는 존재가 탄생했나~하는 궁금증도 있었는데.. 리턴에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3편 <리버스>에서는 그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이 막장같은 책을 또 읽어야한다는 씁쓸함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리카가 두렵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기이한 무엇인가가. 감정이 없는, 또는 감정이 너무 많은 정체불명의 무엇인가가. 논리가 통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한마디로 괴물이라고 하면 간단하지만, 리카는 그 단어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감정과 논리로 행동하는 리카. 어느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여자. 리카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리턴」中 147p.

10년 전, 혼마 다카오라는 남자는 만남 사이트에서 호기심에 알게된 여자 리카에 의해 두 팔과 두 다리 그리고 눈,코, 혀까지 잘린채 납치되었던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던 하라다는 혼마를 도우려다 리카에 의해 죽어버렸고 베테랑 형사 스기와라는 너무도 큰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그 후 리카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져갈 무렵 어느 날 등산을 하던 남성에게서 발견된 10년 전 사라졌던 혼마 다카오의 시신. 그리고 서서히 잊혀져갔던 리카가 다시 나타나게 된다. 전작에서는 리카의 기이한 스토킹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다시 돌아온 리턴에서는 스기와라의 곁을 지키며 콜드케이스 부서에서 여전히 리카의 뒤를 쫓던 나오미와 다른 형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로 리카의 뒤를 쫓는 형사들이 주된 이야기였고, 리카의 기이한 등장이 좀 적은 편이라 솔직히 전작에 비해 덜 소름끼치고 조금 덜 공포스러웠다. 또 혼자서는 리카를 절대 쫓을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을텐데 단독으로 수사를 한다던지 하는 형사들이 답답했다. 전작이 너무 충격이었기에 이번 책도 너무 기대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실망감도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다른 리카의 탄생을 암시하는 반전은 소름끼치긴 했다.

 

무더운 여름,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면 그 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공포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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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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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기분나쁜 소설이라니...여름엔 공포 스릴러 소설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집어든 책 때문에 밤잠을 설치게 될 줄이야.

범죄의 유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떤 범죄든 최악이니까 무슨 범죄가 최고로 나쁘다라고 할 수 없지만, 그중에서 찝찝하면서도 기분나쁜 범죄가 바로 스토킹이 아닐까 싶다. 가해자가 누군인지도 잘 모르면서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살인의 공포까지 온전히 느껴야하는 두려움까지. 국내에서 얼마전 영화로도 개봉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줬던 책 "아빠와 엄마와 딸의 10일간"의 저자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데뷔작인 <리카>는 상상을 초월한 스토킹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혼마 다카오는 아내와 딸이 있는 마흔이 넘은 중년의 회사원으로 컴퓨터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후배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인해 우연히 당시 유행하던 만남 사이트에 접속하게 된다. 그는 그 사이트를 통해 모르는 여자들과 메일도 주고 받고 서로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만나고 만남 사이트를 정리하려던 혼마는 자신을 간호사라고 소개한 리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몇번의 메일을 통해 괜찮은 여자라는 호감이 생기게 되고 자신의 휴대폰번호까지 알려주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부터 리카의 광기어린 스토킹이 시작된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리카의 전화, 잠깐 회의에 들어갔다 오면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에 메세지까지. 왠지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된 혼마는 만남사이트도 정리하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게 되지만 리카의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게 된다. 그 무서운 집착은 혼마 뿐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까지 손을 뻗고, 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대학동기인 하라다와 베테랑 형사 스기와라도 혀를 내두른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생긴 작은 틈이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더니, 한계를 뛰어넘어 폭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나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듯했다. 단순한 악의(惡意)나 원한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에 있는 무엇인가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두려운 건 리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미나 이유를 알면 웬만한 것은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의식의 악의에는 대처할 도리가 없다. 내가 리카에게 느낀 건 그런 종류의 위협이었다.

 

「리카」中 119p.

 

사실 리카와 혼마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 그녀의 집착은 이해되지 않을 만큼 엄청났다. 순간의 호기심으로 인해 혼마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냥 소설일 뿐이야~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소름끼칠정도로 무섭다. 거무틱틱한 피부에 표정도 없고 심한 악취까지 나는 바짝 마른 장신의 그녀. 사람이 아닌게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드는 리카가 어디선가 나타날것만 같은.. 처음에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만남 사이트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벌을 받은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차츰 너무도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스토킹이라는 무서운 범죄의 이야기이기에 더 소름끼쳤고 공포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리카가 광기어린 집착을 해야만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더 찝찝함을 갖게 되었다. 어디선가 누간가를 지켜보고 있을 리카를 생각하니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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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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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진. 이제 알겠구나. 나라가 없으면 사람도 아니구나.

 

「군함도 1」中 25p.

 

일본의 군함도, 하시마 섬을 아시나요?! 어떤 이들에게는 올해 기대작으로 뽑히는 개봉 예정 영화 중 하나인 '군함도'로 혹은 예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시마 섬을 찾아갔던 방송을 본 이들이라면 이 섬이 어떤 곳이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방송을 보고 "그런 아픈 역사가 있는지 몰랐구나~!"하는 탄식과 안타까움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도 책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사실 생각보다 책이 쉽게 술술 읽히진 않았지만 다시 한번 아픈 슬픈 역사에 대해 일깨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것이었구나.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 지상은 처음으로 나라라는 말을 생각했다. 내놓으라면 그게 어디 곡식만이었나. 조상님 제사 모시던 유기그릇까지 다 꺼내주어야 했다. 가자고 하니까 여기까지 끌려왔다. 그러고도 이제 또 서라면 서고, 때리면 맞아야 한다. 왜 우리가 이래야 하는가. 우리는 그 무엇에서도 주인이 아니다. 이제야 알겠다,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인가를.

 

「군함도 1」中 118~119p.

 

한수산 작가의 30년에 걸친 취재와 집필로 탄생한 소설 군함도도는 강제 징용과 원폭을 소재로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아버지였던 이들이 일본으로 징용을 끌려가게 된다. 그중 친일파의 둘째아들 지성도 임신한 아내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죽음과 같은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군함도로 가게 되었고, 석탄을 캐기 위해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들과 함께 처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군함도를 탈출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남자들이 떠나가고 죽어가는데, 그래도 남겨놓고 간 그들의 자식을 지키고 길러내야 하는 여자의 처지가 서럽고도 절절하게 가슴을 적셔왔다. 그러리라. 살아서 견디고 이겨내야 하리다. 그래서 어느날 시퍼렇게 자라날 그 아이들에게 억장이 무너지건 이 한스런 세월을 말해야 하리라. 잊지 않고 전해서 알게 하리라. 못난 조상은 이렇게 살았다만 너희들만은 달라야 한다고, 저마다 시퍼렇게 제 뜻 펵 ㅗ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이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그렇게 말이다.

 

「군함도 2」中 101~102p.

 

 좋은 조건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라는 달콤한 말에 속아 수많은 조선인들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곳 군함도에서 인간이하 동물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면 알수록 씁쓸함과 함께 더 화가나는 이유는 일본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숨긴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시키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여 홍보하고 있다라는 점과 역사교과서에도 싣지 않아 자국민들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라는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 조차도 이러한 역사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다. 나역시도 그랬으니까.. 어쩌면 모른다는 것 보다 무관심.. 알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과거사라고 해서 잊어야 할 역사가 아니라 현재도 미래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왜 이렇게 되었나. 자유다. 자유를 잃어버려서다. 이런저런 자유는 많고도 많다. 나라를 잃어버리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자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 선태의 자유다. 우리는 모든 선택권을 잃었다. 그것보다 더 큰 자유가 어디 있을것인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 벌레도 못되는, 짐승만도 못한, 그게 우리들이다.

 

 「군함도 2」中 2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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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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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급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의사다. 밤새고 일하는 고생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이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외진 응급실에서 조용히 일할 뿐이다. 큰 신념이나 의지가 있어 사회나 시스템을 개혁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내 환자가 눈 앞에서 죽어가면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떨린다. 생각 없는 나도 며칠 동안을 자책하고 후회도 한다.

 

「만약은 없다」中 172~173 p.

 

죽음. 막연한 것 같은 말이지만 늘 죽음은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로 또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것 중 하나다. 그런 죽음을 바로 가까이에서 늘 일상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바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만약은 없다"는 의사라는 직업 중 죽음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기록의 책이다. 실제로 자신이 목격한 사실도 있고, 또 그 사실을 극적으로 구성하거나 가공한 글들. 그래서 사실인듯 아닌듯 한 글들을 기반으로 써내려간 책이다.

 

병원에서도 늘 다른 병동에 비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곳 응급실. 의학 드라마에서만 봐도 그렇다. 끊임없이 환자들이 실려오고 또 오고, 여기저기에서 울리는 경보음에 심정지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죽음과 삶의 경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늘 주위에 있다라고는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런 극단적인 상황과 마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시도를 하고,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고, 병에 걸리곤 한다. 그러한 이들을 매번 마주해야하는 그들은 육체적으로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실려 온 남성을 면담과 협진을 통해 다시 돌려보내고, 몇시간 뒤 싸늘한 시체로 그 남성을 다시 마주하게 되고, 교통사고로 온 여성에겐 손조차 써볼 틈 없이 급사한 이야기. 지하철에 뛰어내려 하반신이 으스러진 할아버지 등등 너무도 잔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치 내가 응급실 현장에 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다시 기억하기 조차 힘든 비극적이고 잔인한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는 건 참 끔찍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잊지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글을 써내려 갔다고 한다.

 

이러한 저자가 이렇게 책으로 나마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진부한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일상 속에서 죽음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을 테지만,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에서 만약이란 없다. 늘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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