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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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덜일 사람 꽤 되지 않나?

 

「한국이 싫어서」中 10~11p.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들 하는 말 중 하나인 다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3포세대. 더 나아가 인간관계 그리고 내집 도 포기했다 하여 5포세대까지..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들이 벌써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간다니 참 웃지 못할 현실이다. 전체 실업율에 청년실업은 두배가 넘는다고 한다. 불황에 청년 10명 중에 1명 꼴로 실업자라는 말이다. 물론 취업에 성공 한다해도 최저임금에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하루하루가 전혀 즐겁지 않은 현실을 보낸다. 그럴때마다 드는 생각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누구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그래서 책 제목이 더 눈에 확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싫어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주용한 거지. 돈이 안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한국이 싫어서」中 151~152p.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주인공 계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로 마치 친구에게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의 친숙한 말투와 이야기들도 읽으면서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지극히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낮은 시급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직장, 출퇴근 시간마다 마주쳐야하는 지옥철.. 등 한국이 본인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호주로 이민을 떠나게 되는 계나가 부모님의 반대, 공항에서의 남자친구와의 이별, 호주에서의 불안정한 미래까지.. 모든 걸 무릅쓰고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 계나. 부모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난 부잣집 자식이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흔하디 흔한 20대 후반의 흑수저로 태어나 가진게 너무도 없는 20대 후반의 여자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보지 못해서 겪어보진 못했지만,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매일 울면서 출퇴근하고, 재미도 없는, 적성에도 잘 맞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는.. 그러다 이민을 가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반대에 쉽지 않은 선택이긴 하지만 그 용기는 정말 부럽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이 싫어서」中 186p.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소설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 역시도 한국이 싫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두어번 해봤던 것 같다. 물론 떠난다고 해서 무조건 달콤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고, 현실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남는 다는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거 만큼 힘든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이곳에서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계나 역시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엔 호주에서 살아남는다. 앞으로 열릴 미래가 무조건 밝은 빛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원하는 걸 얻은 셈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는 하지만.. 가끔씩 한국이 싫어질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 있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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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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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오온 듯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잠옷을 입으렴」中 50p.

 

책을 읽을 때, 읽었던 책을 또다시 읽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전에 읽었던 내용이 너무 좋아서 다시한번 기억하고자 책을 다시 꺼내드는 경우가 있고, 읽었는지 모르고 다시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 이도우 작가의 '잠옷을 입으렴'은 후자에 해당되는 책이다. 제목이며 작가며 그리 낯설지 않았는데, 표지가 바껴서 재출간되었고, 가장 중요한것! ㅋ 내 책장에 이전 책이 없었기에 처음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그 책은 대체 어디로간건지..ㅋ 아무튼 읽다가보니 주인공 둘령과 수안이를 예전에 내가 만났었고, 또 웃었고, 슬퍼했던... 사실 전체적인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읽고나서 감동은 여전한지라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어서 너무도 좋았던 책이었다.

 

"생각해보니 둘녕이 너야말로 풍향계 같은 사람이야. 내세우지 않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넌 어딜 가든 잘 살 거야."  이상하게도 그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못내 다정하면서도 서운했다. 그 때문인지 밤새 잠을 설치고 말았다.

 

「잠옷을 입으렴」中 302p.

 

엄마가 집을 나가 버린 후 모암마을 외가에 맡겨진 열한 살 소녀 둘령. 그곳에서 만나게 된 외할머니와 이모 내외, 막내이모와 막내삼촌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 수안. 처음엔 가족이라기엔 너무도 낯선 이들이었고, 특히나 자신에게 곁을 주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대하던 수안이까지. 둘령은 너무도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지만 작은 사건을 시작으로 둘령이와 수안이는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더할 나위 없는 단짝이기에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비밀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이 책은 성인이 된 둘녕이의 1인칭 시점 소설로 그녀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을 추억하며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두 소녀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었던 닳을 만큼 읽었던 수많은 책들, 종이인형 놀이, 늘 아팠던 수안이를 위해 둘녕이가 만들어주는 만병통치약, 걸스카우트, 첫사랑... 등 둘녕이와 수안이의 성장기에는 늘 함께였기에 서로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만들어준다. 그러하기에 성인이 된 지금도 둘녕은 과거의 수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닫아버린 듯 조용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언제나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사촌은 그랬다. 그런 점이 함께했던 시절 동안 나를 힘들게도 했지만, 그 순간은 다 고마운 기억뿐인 것 같았다. 습한 바람이 불어와 오동나무 옷장 문이 삐걱거렸다.

 

「잠옷을 입으렴」中 372p.

 

가끔 이기적인 수안의 모습에 화가났다가도 수안이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에 그녀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고, 어떻게 보면 늘 약자라 할 수 있었던 둘녕이 너무도 안쓰러웠기에 자꾸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둘녕이가 행ㅂ고했으면 하는 마음이 너무도 컸다. 그러하기에 다 읽고 나서 자꾸만 밀려오는 아련함에 가슴이 아팠다. 또 잔잔한 결말이지만 그 누구도 행복한 이는 없어 보였기 때문에 마음이 더 아련해지는 듯 하다.

 

책을 읽은 이라면 꼭 한번은 써보고 싶어질 법한 멘트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그럼 이만..총총,,,

 

해가 저물어 밤이 내릴 때까지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어둠이 깃들자 기척이 들려왔다. 누군가 오고 있고, 나는 그걸 안다. 그 아이는 내게 묻겠지. 왜 이제 왔어. 그럼 나는 대답해야지. 그러게, 어딘가 다녀오느라 늦었네 라고. 그게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기를, 아마도 풍향계가 가리키는 곳. 언젠가 삼촌이 말한 것처럼, 북쪽보다 더 북쪽이고, 남쪽보다 더 남쪽인 곳이었다 하리라.

 

"어서 와, 수안아."

 

「잠옷을 입으렴」中 4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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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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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것은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결코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나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中 11p.

 

여행기를 읽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하다. 여행기를 읽고 나면 언젠가는 꼭 여긴 가봐야지~!! 하고선 부푼 기대와 상상을 펼치기 마련인데... 이곳으로 여행을 가고싶다는 욕망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이름난 관광지를 관광책자와 지도를 살피며 그곳의 멋진 배경과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는 그런 흔한 여행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책자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그 흔하디 흔한 여행책자도 찾기 힘든 곳, 몽골. 거기에서도 잘 들어보지도 못했던 곳 서북부 국경지대인 알타이와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여행한 독특한 여행자.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는 어느날 독일어로 글을 쓰는 몽골 소설가 갈잔 치낙의 작품 '귀향'을 선물을 받게 되었고, 단숨에 읽게 된 그 책으로 스스로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한 채 갈잔 치낙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곤 도저히 저항하지 못할 운명의 힘에 이끌려 몽골을 찾게 된다.

 

여기서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ㄸ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中 138~139p.

 

운명의 힘에 이끌려 가게된 곳, 몽골. 이곳에서 겪은 특별히 흥미로운 사건들이 있는 여행기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직접 유목인이 되어 체험하고 그린 삶의 이야기 같았다. 몽골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투박하고 황량함이었다면, 그녀가 쓴 글에서는  그런 황량함보다는 사람냄새가 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몽골 평원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바람을 견디며 유르테에 머물고, 야크똥을 주워 태우며 온기를 더하고, 옷에서는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빨래도 않고 씻기도 힘든. 진정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비현실 적인..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인의 모습과 같은 그런 생활. 흔한 여행자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여행일테지.. 

 

책의 곳곳에는 마치 형관펜으로 줄을 치듯 강조된 부분들이 있다. 작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픈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내내 은근히 거슬렸다. 뭔가 그 부분을 자꾸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그리고 자꾸만 숨은 의미를 찾으려고 해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전혀 재미있지 않는 여행 에세이였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꾸며쓰려고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읽기에 수월했고, 뭔가 더 자연스러웠고, 사실 작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녀 다웠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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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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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추운 거리에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될 때는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라면을 선택하게 된다. 짙은 김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 콱 쏘는 조미료의 기운이 목구멍을 따라가며 전율을 일으키고, 추위에 꼬인 창자가 녹는다.

 

「라면을 끓이며」中 16p.

 

책을 선택하는 기준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만 믿고 구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선뜻 손이 가지 않기 마련이다. 출간과 동시에 말도 많았던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손꼽히는 작가이긴 하지만 나에겐 너무 어려운 듯한 느낌의 작가이기도 하다. 출판도 안된 책이 사재기 논란에 휩싸이고.. 나오자마자 단번에 베스트셀러에 진입을 하고.. 물론 유명한 작가의 책이니 그만큼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는 건 사실이겠지만 어찌보면 뭐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제목과 어울리게 이 책을 구입하면 함께오는 사은품이 양은냄비였다고 한다. 라면을 끓여먹으라는 센스~!!였나보다. 하지만 이게 도서정가제 위반이 될 줄이야;;; 어쩌면 책은 책의 가치로만 판단받아야 하는데 사은품으로 독자를 현혹한 셈이고 이같은 이벤트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리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오죽하면 사은품을 위해 책을 구입하고, 상품을 구입했는데 책이 딸려오더라 하는 우스갯 소리도 나오니까 말이다. 말도 많고 논란도 있었기에 더 읽기에 망설여졌던 책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궁금해 졌던 책이기도 했다.

 

전기밭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였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라면을 끓이며」中 71p.

 

오래전에 절판된 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바다의 기별' 과 같은 기존의 산문집에 실렸던 글의 일부와 그 이후에 새롭게 쓴 원고지 400장 분량의 산문들을 합쳐서 엮은 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작가 자신이 쓴 산문들 중에서 꼭 남기고 싶은 글들을 모은 것이라 '김훈 산문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김훈의 작품은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모든 글들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산문은 글을 쓴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주관적인 내면,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글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밥', '돈', '몸', '길', '글' 과 같은 주제에 맞춰 그의 가족 이야기나 만난 사람들. 유년 시절의 추억 등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있었다. 짧은 문장, 짧은 내용으로 쓰여져있는 글들이긴 하지만 뭔가 모를 힘있는 문체와 깊은 인상을 남기며  어쩌면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대표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행복에 대한 추억은 별것 없다. 다만 나날들이 무사하기를 빈다. 무사한 날들이 쌓여서 행복이 되든지 불행이 되든지, 그저 하루하루가 별 탈 없기를 바란다. 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또 그렇게 순하게 세월이 끝나기를 바란다.

 

「라면을 끓이며」中 137p.

 

무명의 작가의 책이었다면 큰 사은품을 주고 베스트셀러 차트에 단숨에 진입한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 김훈 이라는 작가의 이름이기에 더 화제성에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논란이야 어쨌든 간에 내가 만난 김훈은 멋드러진 문장에 기교를 부린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 김밥 속에 단무지와 시금치 또는 우엉 한 줄만 넣어 한 두 가지 재료만으로 맛을 낸 것을 좋아하는 그 답게 솔직하면서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가로 기억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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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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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불쑥 바람의 형상이 드러나기라도 할 것 처럼. 공기 틈에 숨어 있던 빗방울들이 일제히 튕겨져나와, 투명한 보석들같이 허공에 떠서 반짝이기라도 할 것처럼.

 

「소년이 온다」中 7p.

 

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아프다. 어쩌면 모르고 싶어서.. 알면서도 모른체 하고 관심도 없었던.. 하지만 외면해서도 잊어서도 안될 이야기다. 쉽게 말하기도 쓰기도 힘든 이야기다. 책을 읽고 나서 저려오는 가슴에 먹먹해지는 감정, 그리고 자꾸만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만큼 한장한장 넘기는 것도 너무 버거웠던 '소년이 온다'. 나는 솔직히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정치에도 관심이 없고, 역사도 언제나 시험에 출제되는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 공부한게 다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고 또 의미하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참 무관심하고 무지했구나 하고서 말이다. 물론 책의 내용은 허구다. 소설이니까.. 하지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너무도 몰랐던 이야기. 말도 안되는 있어서도 안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그 피를 그냥 덮으란 말입니까. 먼저 가신 혼들이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 끝이 갈라져 있다. 반복되는 피라는 단어가 어쩐지 가슴을 답답하게 해, 너는 다시 입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혼한테는 몸이 없는데, 어떻게 눈을 뜨고 우릴 지켜볼까.

 

「소년이 온다」中 22p.

 

5월의 그 날, 중학생 동호는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친구 정대를 찾다가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하지만 사실 동호는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정대의 죽음을 목격했다. 자꾸만 쌓여가는 주검들을 기록하고 초를 밝히고, 시신이 도착할 때마다 정대일까봐 확인한다. 친구의 손을 놓고 도망가버린 자신을 원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손을 뿌리친채.. 그리고 그날에 죽어간 소년과 수많은 희생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 영혼이 된 채 하지못했던 말을 전하고, 지독하리만큼 잔인했던 고문의 아픔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아들을 가슴에 묻었던 엄마의 이야기까지.. 

 

꽃피는 5월, 그 날. 당신은 그날에 대해서 얼마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가?! 소설의 배경은 바로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났던 열흘 동안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언론 통제와 왜곡으로 인해 계엄군의 폭력은 엄폐되고 시민들의 폭력성만 언급되었던 그날의 진실들.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망자는 150여 명 정도. 하지만 암매장으로 인한 행방불명인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추측컨데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전혀 어울리지는 않지만.. 비공식적인 작전명은 '화려한휴가' 그리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기까지 1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더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박정대가 아니었어.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나를 죽인 사람과 누나를 죽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을까. 아직 죽지 않았다해도 그들에게도 혼이 있을 테니, 생각하고 생각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내 몸을 버리고 싶었어. 죽은 그 몸뚱이로부터 얇고 팽팽한 거미줄같이 뻗어나와 끌어당기는 힘을 잘라내고 싶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찌.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소년이 온다」中 51~52p.

 

페이지를 한장씩 넘길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계속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읽는 내내 망설였다. 또 누군가에게 꼭 읽어보라고 선뜻 권하기엔 좀 복잡한 감정이 먼저들게 되는.. 하지만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책이다. 사실 역사시간에 배우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단지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있었던.. 그런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로만 기억되었던 것 같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따위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 없었다.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데...

 

나혼자만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싸운게 아닌, 인간의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수많은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며.. 참 복잡했던 마음과 많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잊지 않을 께요.. 당신들을..

 

그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몰라.

언제나 같은 사람인지, 그때마다 다른 사람인지도 몰라.

어쩌면 한사람씩 오는 게 아닌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 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소년이 온다」中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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