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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2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7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구판절판


조화(造花)는 조화(弔花)다. 인간이 만든 것들은 어떤 경우에도 자라지 않는다. 자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식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죽어 있다. 플라스틱 꽃에는 향기가 없다. 그래서 아무리 빛깔이 고와도 벌나비가 날아오지 않는다.-138쪽

빗소리가 조금씩 기세를 더해가고 있었다. 빗소리 속에서 사념의 벌레들이 시간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밀도는 그대로였다. 빗소리 속에서는 시간이 미래로 흐르지 않고 과거로 흐른다. 과거로 흘러서 추억을 소급한다.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언젠가 소요가 내게 들려주었던 천지교감강우설(天地交感降雨設)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는 흔히 우림 지역에는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온갖 초목이 울창하고 사막 지역에는 비가 적게 내리기 때문에 소수의 초목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반대가 아닐까요. 우림 지역에는 온갖 초목이 울창하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고 사막 지역에는 소수의 초목밖에 자라지 않기 때문에 비가 적게 내리는 것은 아닐까요."
하늘이 비를 내려보냈을 때 그 지역에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강우량도 적절하게 조절된다는 지론이었다.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많으면 강우량도 증가하고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들이 적으면 강우량도 감소된다는 설명이었다. 고대 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은 대부분 사막현상을 드러내 보이는데 이는 인간이 자연을 보살피는 일에는 주력하지 않고 이용하는 일에만 주력해서 수많은 생명체들을 급속히 감소시켜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인간의 가슴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인간의 가슴도 소망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가슴이 있고 소망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지는 가슴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망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가슴에는 축복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소망의 나무들이 말라비틀어진 가슴에는 축복의 비가 인색하게 내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은 대체로 일치한다. 사막국가들의 전설이나 신화나 동화에는 모반과 약탈과 사기와 절도가 성행한다. 사막국가에서는 자연이 척박하기 때문에 인간의 가슴도 척박해서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요의 지론은 정반대였다. 인간의 가슴이 척박해졌기 때문에 자연이 척박해졌다는 것이었다.-144,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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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9-2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지교감강우설(天地交感降雨設)..동감이 가는 글이네요.
역시 이외수다운 발상의 전환이네요.

ceylontea 2005-09-2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틀에 박힌 생활을 하다보면.. 무력증에 빠지기 쉬워요.. 이럴 때.. 이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생각들을 읽으면... 삶의 활력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책을 읽게 되더라구요.. ^^
 
장외인간 1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절판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매출이 아니라 낭만이었다. 그녀는 모든 상황을 낭만과 연계해서 추론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지론에 의하면, 낭만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이 삭막해지고, 사람들의 가슴이 삭막해지기 때문에 세상이 황무지로 변하고, 세상이 황무지로 변하기 때문에 소망의 씨앗들이 말라죽는다. 한 페이지의 낭만이 사라지는 순간에 한 모금의 음악이 사라지고, 한 모금의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에 한 아름의 사랑 또한 사라진다.-120쪽

나는 남들이 다 알고 있는 현상을 혼자 모르고 있는 경우보다, 남들이 다 모르고 있는 현상을 혼자 알고 있는 경우가 몇 배나 더 외롭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가고 있었다.-145쪽

겨울에는 가급적이면 그리움을 간직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에 간직하는 그리움은 잠시만 방치해 두어도 혈관을 얼어붙게 만든다.-219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겨울 벌판의 나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시인의 이름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면, 적어도 겨울 벌판의 나무들처럼 한 계절 아픔쯤은 헐벗은 몸으로 기꺼이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지상에 봄을 보내주시는 까닭은, 겨울 벌판의 나무들을 너무 오래 추위 속에 서 있도록 만들고 싶지 않아서일 거라고 생각했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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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구판절판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 넣으면 안 되는 법이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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