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1936년 12월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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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1-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동주님.. 제게도 눈 한줌 편지에 넣어 보내주세요.

진/우맘 2004-01-1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체부 아저씨가 싫어하실걸요.^^;;;

ceylontea 2004-01-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진/우맘님 다운 코멘트시네요...(머라... 내가 어떤데..라고 외치시는 님이 보일 듯도 합니다... )
올해는 눈이 없네요... 지난해는 많이 왔었던 것 같은데....

ceylontea 2004-01-12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눈이 오늘 왔습니다..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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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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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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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3-11-2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동규님의 '조그만 사랑노래'도 좋아요~
가객 앨범에서 김광석이 부른 '부치지 않은 편지'던가? 그 노래도 좋고요~
ㅋㅋㅋ(정호승님의 '또 기다리는 편지'도 좋아해요~)
'가객'이란 앨범 아세요? 전 그거 디따 좋아하거든요.. 오랫만에 들어봐야겠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ceylontea 2003-11-3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조그만 사랑노래도 좋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페이퍼에 올릴게요... 흐흐...
''가객''앨범은 모르는데.... ^^
chichi님 추천하시는 편지 시리즈.... 기회가 닿으면 다 읽고 들어볼게요... ^^

책읽는나무 2003-12-0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조그만 사랑노래''그시를 아끼고 좋아하는데.......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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