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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을 때의 후회는 후회가 아니다.

다만 기억의 우물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짓이다. 무심하고 어리석었던 시간들은 아주 잘게 쪼개져 연속사진처럼 선명하게 재생된다. 그리고는 여기쯤이냐고, 아니면 어디서부터였냐고, 다만 길이 나누어지기 시작한 그 지점을 손가락질해보라고, 다그치고 또 다그치는 것이다.

 '정미경-타인의 삶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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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오라 하셔서 강으로 나갔습니다
처음엔 수천개 햇살을 불러내어 찬란하게 하시더니
산그늘로 모조리 거두시고 바람이 가리키는
아무도 없는 강 끝으로 따라오라 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숲으로 오라 하셔서 숲속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만나자 하시던 자리엔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를 대신 보내곤
몇날 몇밤을 붉은 나뭇잎과 함께 새우게 하시는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고개를 넘으라 하셔서 고개를 넘었습니다
고갯마루에 한 무리 기러기떼를 먼저 보내시곤
그 중 한 마리 자꾸만 뒤돌아보게 하시며
하늘 저편으로 보내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저를 오솔길에서 세상 속으로 불러내시곤
세상의 거리 가득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떠오르다간 잠겨가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상처와 고통을 더 먼저 주셨습니다 당신은
상처를 씻을 한 접시의 소금과 빈 갯벌 앞에 놓고
당신은 어둠 속에서 이 세상에 의미없이 오는 고통은 없다고
그렇게 써놓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지금 풀벌레 울음으로도 흔들리는 여린 촛불입니다
당신이 붙이신 불이라 온몸을 태우고 있으나
제 작은 영혼의 일만팔천 갑절 더 많은 어둠을 함께 보내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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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너그럽지 않고, 삶의 반전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우리를 찾아온다. 사랑이 너그럽지 않고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우리를 찾아오는 것처럼.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또는 우리의 사랑은 파멸을 꿈꿀 만큼 지리멸렬해지거나 감당할 수 없게 전복적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조바심이 난다던, 매일매일을 생의 첫날인 듯 살겠다던, 스무 살의 설렘과 다짐은 낡은 가구처럼 처치 곤란한 감상이 되어 젖은 아궁이 속으로 던져진 뒤인 것이다.

그리고 서른, 스물과 마흔 사이, 미혹과 불혹 사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거추장스러운, 이 어정쩡한 서른의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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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란, 알아서 무뎌지고 저절로 잊혀질 때까지의 과정 속에서, 적어도 이해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가져다주는, 남이 나에게 또는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다. 사실 그 위로란 건,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생색 말이다. 혹자는 그 기회를 빌려 간간이 쉼표 찍어 호흡을 늘여가며 의도적으로 약을 올리기도 한다. 그래도 상대방은 차마 화를 낼 수 없는 게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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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빠개지도록 밀고 들어오는 진실들을 받아들이고 또, 승낙 없이 떠나려는 것들을 순순히 흘려보내려면 마음속에 얼마나 큰 강이 흘러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았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가혹한 진실마저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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